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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41화 (41/61)
  • 〈 41화 〉 40. 제 1 계층에서 살아남는 법

    * * *

    시험 보상으로 받은 장비는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아까 먹은 응집체와 새로 받은 맹염(??)의 반지로 당장 할 수 있는 전력 증강은 충분히 한 것 같다.

    “장비를 수여 받은 초행자분들께 알립니다! 잠시 후에 제 1 계층의 생태와 생존 전략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있을 예정입니다! 생존에 직결되는 정보들이 안내되므로 모든 초행자분들은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작위 소환에 대비해 초행자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대비, 그 두 번째는 쓸만한 정보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

    응집체의 흡수와 장비의 확인을 마친 나는 팀원들과 합류하여 곧장 안내를 받으러 갔다. 앞으로 소환이 시작되기까지 나흘이 채 남지 않았다. 조금의 시간이라도 아껴서 생존을 위한 대비를 해야했다.

    우리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1클래스 초행자들이 모두 모였다. 다들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먼저, 이 지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민아 교관이 지시하자 부교관들이 자신들의 몸집만한 지도를 들고 왔다. 그 커다란 지도를 앞에 펼치니 1클래스 전원이 지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지도를 최대한 눈에 담을 생각으로 집중하여 지도를 보았다.

    지도에는 환란의 숲 전체가 그려져 있었다. 그 울창한 수해를 해집으며 이런 지도를 완성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저 우리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초대자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보시는 지도에 색깔로 표시된 모든 부분이 환란의 숲입니다. 우리가 현재 위치한 사르비나 거점은 이곳이지요.”

    한민아 교관이 지도의 가운데 즈음을 가리키며 말했다.

    울긋불긋한 색으로 표시된 넓은 숲은 전체적으로 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그 한중간에 사르비나 거점이 자리를 잡은 형태였다. 그런데 그 주변으로 저마다 다른 색깔로 표시되는 점들이 여러개 있었다. 그것에 대해 궁금해지려는 찰나 안내가 이어졌다.

    “사르비나 거점 주변을 보시면 다른 여러 거점들이 보이실 겁니다. 다른 거점들은 모두 인류가 아닌 다른 종족이 세운 것입니다. 현재 인류를 제외하고 제 1 계층에 독자적인 거점을 세운 것은 엘프, 드워프, 하플링, 스피릿입니다.”

    다른 종족이 세운 다른 거점이라니. 인류와 다른 종족들이 지옥에서 공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거점이 있단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

    “그 외에도 종족은 많지만 거점을 세울만큼 인원이 많거나 세력이 강하지 않습니다. 보통 인류를 포함하여 5개의 종족이 지옥의 각 계층에 거점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점이 있든 없든 모든 종족은 무작위 소환에 공통으로 휘말립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족은 서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소환 이후 거점으로 복귀하실 때 인류 거점만이 아닌 여러 거점들로 복귀하실 수 있습니다. 종족에 상관 없이 최대한 가까운 거점으로 복귀하시길 추천드립니다.”

    복귀할 때 사르비나 거점이 가장 가깝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다른 거점에 들려볼 기회가 생긴다면 좋을 것 같았다. 타종족에 대해 아직 말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본적은 없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거점을 구성하는지도 궁금했다.

    “타종족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소환에 휘말리시면 높은 확률로 주변에 다른 종족이 있을 것입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들과는 되도록 분쟁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뜩이나 생존하기도 벅찬 지옥에서 다른 종족과 다툼까지 일어나면 시간과 체력이 낭비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간혹 작은 분쟁이 커져서 종족간의 마찰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되도록 무난하게 타종족과의 관계를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다툼이 최대한 없게 하라던 한민아 교관의 눈이 일순 빚났다.

    “다른 종족이 먼저 분쟁을 일으키면 마땅히 응하십시오. 먼저 공격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반격 및 사살까지 허용됩니다. 이는 모든 종족이 동의한 사실이며 누구도 여러분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지나치게 호전적이어서 상습적으로 싸움을 일으키는 종족도 있으므로 선공격에 대한 대응을 망설이지 망설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서늘하게 말하던 한민아 교관의 시선이 다시 지도를 향했다.

    “그럼 다시 지도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지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아 교관이 손가락으로 거점들이 몰린 가운데의 주변을 가리켰다. 거점들의 주변에는 거미줄이나 마인드맵을 연상하게 하는 길들이 뻗어져 있었다.

    언뜻 보면 중구난방으로 펼쳐진 것 같지만 일정한 규칙성을 가지고 뻗어져 있었다. 가장 굵은 6개의 줄기가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그 사이사이에 자잘한 선들이 이어져 환란의 숲 전체를 덮고 있었다.

    “보시면 가장 눈에 띄는 6개의 길이 보이실 겁니다. 소환 이후 여러분의 첫번째 목표는 이 6개의 대로 중 하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 대로들로부터 자잘한 길들이 빈틈없이 뻗어져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길들 중 하나를 발견하셨다면 바로 그 길을 따라 대로를 향하십시오.

    환란의 숲은 이름처럼 길을 잃기 딱 좋은 곳입니다. 울창한 수해 자체도 훌륭한 장해물이 되지만, 가장 문제인 것은 일정 시간 돌아다니면 발생하는 환상 효과입니다. 이 환상 효과는 주변의 풍경을 왜곡하거나 가상의 적을 만들어 어러분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길이 상당히 잘 닦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 실종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길을 따라가야 산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대로에 도착하시면 길을 잃을 확률도 대폭 줄어들고 다른 초대자들과 합류할 수도 있습니다. 대로에 도달하냐 못하냐로 생존 확률이 극명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현명하고 냉정한 대처로 안전하게 길을 따라 거점에 잘 도착하시리라 믿습니다.”

    길을 찾고 이를 따라가는 방법에 대해 안내한 한민아 교관은 다시 부교관에게 지시하여 지도를 치웠다. 그러면서 방금 본 지도는 축소된 버전으로 전원에게 지급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지도를 치우고 나니 부교관들이 또 다른 거대한 두루마리를 가져왔다. 이번에도 성인 한 명 크기의 두루마리가 책상에 펼쳐졌다.

    두루마리에는 수많은 악마들이 그려져 있었다. 최하급부터 하급까지 1 계층에서 출현하는 것들을 정리해놓은 듯 보였다. 각 악마들의 이름과 특성, 공략법이 꽤 실감나는 삽화와 함께 실려 있었다.

    “이것은 환란의 숲에서 출현하는 악마들에 대한 정보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것도 축소 버전이 지급될 예정이지만 그래도 한 번 쭉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잘 들어두시고 나중에 다시 두루마리를 펼쳐보며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그후 한민아 교관은 악마 하나하나를 짚으며 설명을 해주었다. 모든 악마를 전부 기억할 수는 없었지만 그럭저럭 필요한 골자 정보는 다 얻을 수 있었다.

    악마의 종류는 급을 막론하고 어마무시하게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정리를 잘 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는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로 출현하는 악마들, 혹은 특별히 신경 써야하는 악마들을 추리는 것만 해도 정말 값진 정보가 될 것이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은 지옥에서도 확실히 통하는 말이었다.

    일단 자주 출현하는 최하급 악마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고블린(Goblin)

    임프(Imp)

    그렘린(Gremlin)

    폴른 페어리(Fallen fairy)

    위습(Wisp)

    고스트(Ghost)와 밴시(Banshee)를 비롯한 유령형 악마

    좀비(Zombie)와 스켈레톤(Skeleton)을 비롯한 최하급 언데드

    각자 일대일로 붙으면 별거 없는 것들이지만, 저들이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자신들의 특성을 활용하기 시작하면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각자 강점이 존재하고 동시에 약점도 존재하기 때문에 알아두는 것이 좋다.

    특히 폴른 페어리는 비교적 출현 빈도가 낮지만 위험한 악마 중 하나다. 놈들은 환란의 숲 전체에 깔려 있는 환상 효과를 이용한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환영 능력을 증폭시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놈들이 가장 강력한 계층이 제 1 계층이라고 한다. 아래 계층으로 내려가 봤자 능력을 증폭시킬 방법도 드물고 어지간한 이들은 다 마기 저항력으로 저항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외 하급 악마들도 알아두어야 할 놈들이 있었다. 최하급보단 훨씬 드물지만, 나름 자주 출현하는 하급 악마는 아래와 같았다.

    가고일(Gargoyle)

    웜(Worm)

    레버넌트(Revenant)

    드라우그(Draugr)

    와이번(Wyvern)

    사실 하급 악마는 너무 종류가 많아서 뭐가 자주 출현한다고 하긴 애매하지만, 그나마 잘 보이는 것들이 이놈들이었다.

    가고일은 입문자의 시험에서 유지윤과 함께 직접 잡아보았기에 설명을 들을 것도 없었다. 그 외 다른 하급 악마들도 다 하나같이 까다로운 면이 있기 때문에 그냥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게 맞다고 했다.

    그래도 유독 조심할 필요가 있는 녀석은 웜이었다. 웜은 평소 땅 안에서 굴을 파고 기어다니다가 불시에 튀어나오며 기습을 한다. 방심한 채 당했다가는 바로 죽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악마이다. 기다란 몸통에 달린 원형의 주둥이로 목표물을 갈아버리듯이 먹어치우므로, 뭘 어떻게 대응해 보기도 전에 죽을 확률이 높다.

    그래도 놈의 주요 활동 영역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니 잘 외워 두었다가 당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그렇게 꽤나 오랫동안 악마들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가는 중이었다.

    거기서 안내를 마치고 초행자들을 해산시킨 한민아 교관은 모두에게 요 며칠은 푹 쉬어두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컨디션을 최대로 끌어올려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에 충실히 따르기로 하며 숙소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제 1 계층이 수습과 대비로 바쁜 한편, 군주들이 자리한 제 8 계층에서는 소란이 조금씩 번져나가고 있었다. 엉덩이 무겁기로 유명한 군주나 신격의 악마들 몇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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