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40화 (40/61)
  • 〈 40화 〉 39. 수습과 대비

    * * *

    “뭐, 우리 입장에서는 꼭 나쁜 일은 아니군.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너네를 도살할 수 있으니.”

    그 말과 함께 오웬스의 오른손에서 새하얀 전광이 피어올랐다.

    “그러니까 잘 죽어라. 네놈들의 무지를 탓하면서 말이야.”

    “망할!”

    그것을 본 클라운이 급히 뭔가를 꺼내들었다. 검은색 살덩이같은 물건이었다. 혼자서 꿈틀대는 그 살덩이를 곡도가 찌르려고 하는 순간,

    ‘진섬뢰(?雪)’

    파지지지지지직 ­ !!

    백색의 번개가 그 살덩이와 함께 클라운을 덮쳐버렸다.

    ***

    이날 초행자들의 최종 시험에서 있었던 습격은 지옥 전체에 큰 파문을 불러왔다. 드디어 변절자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소식이 계층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다.

    "그 놈들이 미쳤나, 진짜?"

    "대놓고 전쟁하자는 말이구만."

    "날뛰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 덕분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변절자 단체였다. 변절자 단체는 자신들이 사주한 일이 아니라고 한사코 부인했다. '악어'와 계약한 변절자들이 독단으로 벌인 일이라고 밝히며 자신들과 일전의 습격은 일절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공허한 변명에 불과했다.

    사실 변절자 단체가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초대자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동안 불가침 영역으로 취급 받아온 초행자들이 공격당했다는 것이었다.

    지옥에서 살아가는 누구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인 만큼,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 습격자가 변절자들이므로 복수의 화살은 자동으로 그들 모두에게 돌아갔다.

    인간, 드워프, 엘프, 하플링, 스피릿 등 거의 모든 종족이 변절자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할 준비를 하였다. 습격을 받은 것은 인간 초행자들이지만, 초행자 습격이라는 사건 자체가 다른 종족에게도 동일한 습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전 계층에 때아닌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1 계층은 사건에 대한 수습으로 정신이 없었다.

    “레이먼이, 레이먼이 죽다니...”

    “장난해? 저것들은 뭐야! 우린 정말 다 죽을 뻔했다고!”

    “이제 당신들은 믿을 수가 없겠군. 우리를 전부 사지로 집어넣으려는 건지 어떻게 아나?”

    많은 초행자들이 해당 사건에 대해 트라우마나 거점 바깥에 대한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아무리 사정을 설명해도 다른 초대자들에 대한 불신을 가지는 초행자들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초행자들의 과반수 이상이 비협조적으로 바뀌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많은 초행자들이 지켜준다고 한 교관들이 제 할 일은 못하고 악마들에게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 그들이 하라는 것을 따른다고 해서 도움이 되는지, 혹시 오히려 위험해지지는 않는지 의심하게 된 것이다.

    중급 악마들과 함께 상위 변절자들이 습격한 돌발 상황이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이미 깨져버린 신뢰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거기다 이번 습격으로 죽어나간 교관이 너무 많아서 통제 인원 자체에 결손이 생겼다. 가뜩이나 분위기도 안 좋은데 그걸 해결해줄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사건으로 초행자들에 대한 관리에 클랜 연합에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실력파 교관이나 소환에 동행할 초대자 지원이 대폭 확대될 예정이었다.

    그렇게 안팎으로 거점이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어느새 임박한 소환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이루어졌다.

    사르비나 거점에 거주하는 많은 초대자들이 저마다 장비와 물품을 체크하였다. 숲의 초입부로 가서 악마들을 잡으며 미리 몸을 푸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초행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와 감정이 어떻든 일단 생존이 가장 우선시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1클래스 초행자들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만큼 죽거나 다친 사람이 상당히 적었다. 덕분에 다른 클래스에 비해 비협조적이거나 불신을 내비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에 따라 소환에 대한 대비도 더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무작위 소환에 나가는 초행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첫번째 대비는 전력 증강이었다.

    따라서 본래 시험이 끝나고 수여되었어야 할 장비들과 응집체의 수여가 먼저 이루어졌다. 원래는 깃발을 회수해온 팀들만이 시험 통과를 인정 받지만, 이번엔 대대적인 로커스트들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것으로 그 제한이 바뀌었다. 즉 습격에서 살아남은 모든 초행자가 보상을 수령할 수 있었다.

    이번 습격으로 시험에 참가하던 초행자들의 반 정도가 사망했기 때문에 보상의 수량에 여유가 생긴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원래 시험에 떨어진 이들에게도 지급될 예정이었던 응집체는 너무 많이 남아서 한 명당 두 개씩 지급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렇게 응집체를 먼저 수여받은 나는 바로 그것들을 입으로 털어넣었다. 원래 응집체는 마석과 같은 방식으로 흡수하는 방식이라서 나는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응집체 1개의 흡수를 확인.]

    [응집체 1개의 흡수를 확인.]

    [초대자 김진운의 마력 순도가 강화된다.]

    [초대자 김진운의 마력 순환로가 확장된다.]

    응집체 흡수와 동시에 내 마력이 더 깨끗해지고 정순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어서 온몸에 뻗어있는 마력 순환로가 더 넓어지고 길어지는 것도 느껴졌다.

    [응집체로 인한 강화 효과와 고유특성의 시너지 효과 발생 확인.]

    [고유특성, ‘확장된 체내 마력 순환로’와의 시너지로 마력 순환로 확장의 효율이 1.5배 상승한다.]

    [고유특성, ‘마력 흡수형 소화기관’과의 시너지로 마력의 순도 상승에 효율 상승이 추가된다.]

    메세지 창을 보니 특성 덕분에 보너스까지 받아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가면 갈수록 마력 특수형 초대자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응집체의 흡수가 끝나자 다음으로 장비 수여가 이어졌다.

    “개인의 특성에 맞추어 준비된 장비가 수여될 예정입니다. 호명된 분은 앞으로 나와서 장비를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응집체를 흡수하고 한참 그 효과에 심취한 초행자들에게 한민아 교관이 장비 수여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초행자 김진운!”

    가장 먼저 내 이름이 불리길래 앞으로 나갔다.

    한민아 교관이 내게 건넨 것은 한 반지였다. 붉은색이 은은하게 어려있는 은빛의 반지였다. 냉큼 받으며 손가락에 끼워 보는데 한민아 교관이 선뜻 말했다.

    “변절자 클라운을 마주치고도 살아남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거기다 클라운이 만든 마기 줄기도 끊어내고, 얼굴에다 크게 한 방 먹이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뛰어난 초행자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담하고 능력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오웬스 총책임자에게서 들은 것인지 클라운에 대한 나의 대응을 칭찬하는 내용이었다.

    “아닙니다. 저만이 아니라 팀원들이 다들 잘해주었으니 살아남은 것이지요. 총책임자님이 제때 와주시기도 했구요.”

    나는 적당히 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말을 받았다. 한민아 교관은 그런 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는 다른 사람에게 장비를 수여 받으라고 알렸다.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오면서 문득 한민아 교관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교관들에 대한 신뢰가 많이 떨어진 이 상황에서도 신뢰 받는 소수의 교관 중 하나였다. 구출받은 초행자들이 숲의 입구로 나왔을 때에도 한민아 교관은 쉬지 않고 악마들을 죽여대고 있었다.

    온갓 악마들의 피로 흠뻑 적셔진 모습은 흡사 악귀와도 같았다. 그 상태로 줄기줄기 검강을 내뿜으며 악마들을 썰어버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초행자들은 한민아 교관이라는 사람에 대한 믿음 혹은 존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니 괜히 기분이 더 좋았다. 같은 검을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일종의 롤모델 중 하나로 내게 자리매김된 사람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장비를 받아왔으니 이제 장비의 효과를 확인할 때였다. 손가락에 반지를 끼우자 살짝 화끈한 느낌이 드는 것이 화 속성과 연관 있는 장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속 장신구를 획득.]

    [장신구가 초대자에게 귀속된다.]

    반지를 끼움과 동시에 장비가 귀속 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설마 귀속 장비일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좋은 장비를 지급해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바로 장비의 정보를 띄웠다.

    장신구 정보

    이름: 맹염(??)의 반지

    내구도: 100%(최대)

    장신구 특성

    ­ 우수한 화염내성: 화염, 고열, 불속성 공격에 강한 내성을 갖는다. 불에 뒤덮이거나 높은 온도의 환경에서 오히려 능률이 상승한다.

    불속성 데미지를 25% 확률로 완전 무시, 80% 확률로 절반으로 감소. 고온이나 불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이동속도 10% 상승 및 주는 대미지 20% 상승.

    장신구 기술

    ­ 작열 광선: 화(火) 계열 속성의 마력을 극한으로 응집시켜 직선으로 쏘아낸다. 쏘아진 초고온의 광선은 높은 관통력과 공격력을 지닌다.

    기술을 사용하는 순간에 한하여 화(火) 계열 속성 마력의 위력 200% 증폭, 잔여 마력이 피격 당한 대상의 신체 내부로 파고들어 사라질 때까지 본래 마력의 20% 위력으로 내상을 입힘.

    예상대로 반지는 화 계열 속성과 관련이 있는 장비였다. 특성과 기술이 각각 하나씩 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좋은 품질의 장비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전에 얻었던 우수한 초행자의 장비세트만 해도 아무런 특성이나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수한 화염내성’은 부러진 검의 ‘강력한 화염내성’과 거의 같은 효과다. 하지만 약간 더 성능이 떨어진다. 하지만 이 두 가지 효과가 중첩된다면 상당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작열 광선’은 열폭발과 더불어 비장의 한 수가 되어줄 것 같다. 열폭발은 다양하게 응용하기 좋지만 범위의 제한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 그 단점을 훌륭하게 보완하는 기술이 수중에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마력을 상당히 잡아먹으니 열폭발만큼 자주 사용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시험 보상으로 받은 장비는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아까 먹은 응집체와 새로 받은 맹염(??)의 반지로 당장 할 수 있는 전력 증강은 충분히 한 것 같다.

    “장비를 수여 받은 초행자분들께 알립니다! 잠시 후에 제 1 계층의 생태와 생존 전략에 대한 자세한 안내가 있을 예정입니다! 생존에 직결되는 정보들이 안내되므로 모든 초행자분들은 꼭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작위 소환에 대비해 초행자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대비, 그 두 번째는 쓸만한 정보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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