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라해도 괜찮아-38화 (38/54)
  • 〈 38화 〉 평범한 가족을 바랐다

    * * *

    수업이라는 게 이렇게 지루한 거였나. 열정적으로 수업하는 수학 선생님에게는 참으로 죄송한 일이었다.

    그냥 퍼질러서 자고 싶은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잠에 들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인데 가까스로 참았다. 하품을 진하게 하고 반쯤 풀린 눈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둘러봤다.

    어떤 아이들은 자고 있었고 몇몇은 열심히 필기를 하며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한 남자애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최승현은 날 안 본 척 하려고 하는 거 같았다. 이제야 교과서를 부랴부랴 펴고 있는 걸 보니 수업 시작하고부터 나를 노려보고 있었나보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날 보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아무래도 좋았다. 감정이 메말라 어떤 이가 고백을 해도 받아들일 것만 같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그 정도로 세상만사 제멋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최근에는 나도 내 생각을 모르겠으니까. 평소와 같은 해프닝이 어쩌면 필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수업시간에 멍 때림?”

    최승현이 수업이 끝나자 내 자리로 다가왔다. 멍 때리고 있던 게 신경 쓰이나 보다. 가족을 위해 우등생이 되고자 노력해왔다. 그런 방식의 일환으로 수업만큼은 충실히 들었다.

    근데 유지하려 했던 가족은 전혀 원치 않던 방향으로 가속해 나아갔다. 내가 취했던 모든 방식을 부정당한 느낌이라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업시간에 날 왜 보고 있는데? 스토커가 장래희망이 된 건가?”

    답하지 않고 되묻자. 그는 조금 당황했다. 뒤통수를 긁더니 안절부절 눈을 돌렸다.

    “뭐... 상관없지만.”

    난 시선을 창문으로 돌리며 작게 말했다.

    중간고사도 끝나고 이제 1학기 기말고사를 향해 시간은 달려갔다. 반년이 가까운 시간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나의 태도도 나를 감싸고 있는 인간관계도... 가족들도.

    최승현의 행동에 짜증도 화도 나지 않고 고요했다.

    “뭐야... 예전 같았으면 눈으로 죽일 것처럼 째려볼 텐데.”

    그런 대답을 들어서 최승현은 놀란 듯 했다.

    최승현의 말을 곱씹었다. 예전에는 내가 어떻게 했더라?

    맞는다고 행동한 것들이 모두 틀렸으니...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 모르겠다. 애초에 예전이라는 게 언제지. 이전의 나? 아님 지금의 나? 모르겠다. 안다고 착각했을 뿐, 그냥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괜찮아. 보든 말든. 네 신체부위인데... 맘대로 하세요.”

    그래. 상관없어.

    “갑자기 왜 그래? 은근히 무섭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것도.”

    최승현 주제에 나를 걱정하다니. 이왕이면 유나가 걱정해 줬으면 좋겠는데... 유나에게 다 털어놓고. 그냥 끝낼까...

    “그럼 다행이긴 한데. 아 맞아. 지은이가 너랑 영화 보러 가고 싶다던데 주말에 시간 괜찮아?”

    “지은이가? 나랑?”

    지은이 몽글몽글한 작은 동물 같은 아이였다. 나처럼 무뚝뚝한 사람도 잘 따라줬다. 그런 지은이가 나랑 영화를 보고 싶다니.

    영화를 보러간 지도 오래 되었으니 괜찮을까. 할 일도 딱히 없고. 집에 있기는 더더욱 싫고.

    “괜찮은데.”

    “너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예전 같으면...”

    또 걱정했다. 나를 지옥에서 꺼내줄 생각이 없다면... 그의 걱정조차도 조롱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이유도 모르는 그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지은이만 오는 거면 상관 없...”

    상관없어. 라고 하려고 했는데. 내 말을 듣던 최승현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이거 저 녀석도 오는 거였나.

    “설마... 너도 오는 거야?”

    “으음... 맞아.”

    어린 동생이 밖을 다닌다는데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 시스콘 오빠는 나랑 같이 가는 것도 안심할 수 없는 듯 했다.

    예상 못 했는데. 최승현도 올 줄이야.

    지은이랑 단 둘이 가는 줄 알았다. 지금 와서 취소하자니 지은이의 모습이 밟혀서 그러진 못하겠다. 지은이를 보는 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 작은 얘를 보고 있으면 옛 향수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평범한 가족을 갈망했던 보육원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샘솟았다. 그때는 아무런 걱정 없이 가족만 있으면 모든 게 완벽하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희망으로 가득했었다.

    오히려 그때가 더 행복했었는지도 몰랐다. 그저 가족이 없는 것을 탓하며 멋대로 하던 어린 시절... 아무런 걱정 없이 희망만을 가진 채로 태수와 유나하고 뛰놀던 그때가 이제는 그리웠다.

    “아...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응, 지은이한테 전해둘게.”

    하지만 이제는 가족은 나를 얽매는 족쇄가 되었다. 희망이 아닌 절망만을 안겨주는 그런 의미 없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

    “율아, 너 요즘 야릇한 눈 하고 다닌다던데. 사실이니?”

    점심시간, 유나와 수정이와 함께 시청각실로 왔다. 혼자 있고 싶어서 찾았는데 이미 애들이 문 앞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같이 있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서 쭈그려 앉는 순간에 유나는 내게 그리 말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수정이를 바라보니 그저 어색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반박해주지 않는 게 그러고 다닌 게 사실인가 보다.

    “무슨 개똥같은 말이지?”

    “계속 눈 풀려가지고 사람을 쳐다본다고 그러던데. 소문이 다 났어.”

    “이상한 소문도 나는구나.”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니까 이상한 소문이 나는 거야!”

    유나가 나를 혼냈다. 별로 이상한 짓 한적 없는데 저랬다. 그냥 평소대로였는데.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쉬는 시간에... 율이 찾으러 가니까. 율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을 계속 보고 있던데. 주변에서... 애들이 율이를 보고... 그림 같다며 속닥거리기도 했고.”

    “내가 그러고 있었다고?”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니 그런데 그런 걸로 소문이라는 게 나는 법인가?

    “무슨 일 있었어?”

    그러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아니. 아무 일도 없다. 평소와 같으며 평소의 나다. 최승현도 그렇고 유나도 그렇고 수정이도 그렇고... 나의 어디가 이상하다고 보는 걸까.

    아니... 인정하자. 너무 힘들고 짜증이 나는 데 풀 곳이 없다. 나갈 곳 없는 냄비 속 수증기처럼 그득하게 차오른 절망은 언제 터질지 몰랐다. 언제 곪아터져 무너질지 알 수가 없었다.

    유나가 걱정스러운 물음. 그 물음에 괜히 울컥했다. 항상 이런 식으로 물음을 던져오는 유나였다. 나를 가장 이해하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주는 사람. 근데 그런 사람이기에 이해받지 못하는 게 무서웠다.

    입이 달그락거렸다. 오늘은 말해야지... 내일은 말해야지... 하면서 버텨온 게 지금까지 흘러왔다. 외부의 문제는 거리낌 없이 율이에게 상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내면의 문제는 어째선지 목에서 탁 막혀 올라오지 않았다.

    그게 너무 답답했다.

    “피곤해서 그렇지. 그만 나 좀 내버려둬!”

    “율아...”

    그래서인지 조금 짜증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유나 앞에서 이랬던 적이 있던가... 유나에게만큼은 편한 친구사이로 있고 싶었다. 가족 때문에 쌓아온 모든 게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감정이 조금 들쑥날쑥했다.

    유나가 소문을 낸 게 아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을 조심하라는 것도 아닌... 나를 그저 걱정하는 거였다. 진정하자. 왜 이러는 거야. 자신을 다독이며. 감정을 추슬렀다.

    화내듯 쏟아낸 대답에 당황한 유나는 곰곰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터트린 감정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수정이는 그런 우리 둘 사이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과자... 먹을까?”

    수정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너나 할 것 없이 조용히 과자를 먹어댔다. 달달한 과자가 기분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유나가 떠들고 수정이가 부끄러운 듯 웃고 내가 그런 폭주하는 유나를 진정시키는 예전 같은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과자를 먹어도 먹는 게 아닌 거 같았다.

    “화내서 미안해. 그런데 정말 피곤해서 그런 거야.”

    이런 분위기가 너무 답답해 유나에게 말해본다.

    “응.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이렇게 끔찍한 점심시간은 처음이었다.

    드물게도 수정이가 열심히 말을 걸며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했고. 그 안쓰러운 모습에 유나나 나나 조금씩 말을 섞기 시작했다.

    별 일도 아닌 일에 자신이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이게 다 오빠 탓인게 너무 슬픈 일이었다.

    “유나야, 지은이가 영화 보러 가자던데 갈래?”

    “언제 가는 거야?”

    “이번 주말에.”

    날짜를 들은 유나는 심각하게 고민에 빠졌다. 놀러가자는데 유나가 고민에 빠지다니 조금 신기했다.

    “으아. 이번에는 못가겠다. 할머니 집에 가야돼. 율이랑 놀 수 있는 찬스였는데.”

    매일 같이 놀면서 찬스까지야. 너무 거창했다. 그건 그렇고 유나가 못 온다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정이에게도 물어봤는데 최승현이 아직 불편해서 힘들 것 같다고 한다. 같이 공부하는 건 괜찮았는데 영화 보는 건 안 된다니. 조금 이상했다. 아무튼 당사자인 수정이가 안된다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랑 지은이, 최승현 세 명이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