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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34화 (34/54)
  • 〈 34화 〉 한 번 더 힘내자

    * * *

    저녁 식사는 맛있었다.

    양쪽의 아빠들은 번갈아가며 고기를 구워주셨다. 유나와 나는 잡담을 나누며 주섬주섬 음식을 입으로 날랐다. 몇 번이나 잘 익은 고기가 입안에 날랐다. 그럴 때마다 맛있는 육즙을 흘렸다.

    다들 젓가락이 움직이는 게 뜸해졌을 때, 엄마가 입 주변을 닦아내고는 아저씨를 바라봤다.

    “근데 무슨 이유로 이런 자리가 마련된 거죠?”

    식사를 하던 엄마가 이렇게 외식을 하게 된 것이 갑자기 궁금했나보다. 엄마가 아저씨를 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뜸을 들였다.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모른 체 음식을 먹는 유나를 보곤 웃으며 입을 여셨다.

    “율이가 유나한테 공부를 알려줘서요. 유나가 성적도 조금 올랐고. 율이한테 너무 고마워서요. 받기만 하면 그렇잖아요.”

    “그랬구나. 율이 덕분에 공짜밥 먹게 되었네요.”

    엄마가 날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네, 저희가 사는 거니까. 돈 걱정은 마시고 드시면 돼요.”

    아주머니가 엄마에게 맥주를 건넸다. 한 잔씩 주고받은 엄마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가 막바지에 들어갔을 때 어김없이 유나가 기대왔다. 유나의 샴푸향이 가깝게 느껴졌다.

    “배불러~”

    “나도.”

    “율이는 많이 안 먹었잖아. 오오 부드러워.”

    그 말에 공감하자. 유나는 내 볼을 찔러댔다. 유나가 매일 하던 짓이라 가만히 있었다.

    “우리 애들 참 사이가 좋네요.”

    아주머니가 볼에 손을 얹으며 서로 기대어 있는 나와 유나를 바라봤다. 어쩐지 쑥스러워져서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치원 때부터 알던 사이니까요. 유나가 율이 친구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술의 영향인지 조금은 들뜬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율이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어른스러워서 참 예뻤죠. 가끔 보면 약간 유나를 보살핀다는 느낌이 묘했는데. 벌써 둘 다 이렇게 커버려서는.”

    “맞아요. 작은 몸으로 둘이서 손잡고 걸어 다니는 게 정말 귀여웠었죠!”

    가게가 시끄럽긴 해도 아주머니와 엄마가 말하는 내용은 어렴풋이 들려왔다. 유나도 옛 생각이 나는지 더욱 내게 들러붙었다. 갑갑한데도 어쩐지 포근해지는 기분에 떨쳐내지는 못했다.

    “어릴 때부터 율이는 귀여웠는데~ 지금도 그렇고!”

    그런 쑥스러운 이야기를 유나는 잘도 했다. 항상 애는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줬다.

    “그래, 그래.”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유나는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같은 말을 했다. 역시나 나는 대꾸를 안했다.

    아주머니와 엄마는 그런 우리들을 더욱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다 아주머니께서 뭔가 생각났다는 듯 놀라셨다.

    “아! 진태는 군대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진태... 그 이름을 들으니 갑자기 주변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빳빳이 굳는 듯 했다. 하나뿐인 오빠의 이름인데도. 마음속 깊이 묻어둔 그 존재가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려고 했다.

    “요즘 통 연락이 없어서 걱정이네요. 밝고 싹싹한 아이니 잘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런가. 요새는 연락이 잘 되지 않는구나.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아서 몰랐다.

    그 일이 있은 후로 4개월 정도가 흘렀다. 오빠는 나에게 먼저 연락은 하지 않았다. 연락하기 껄끄러운 건 잘 알고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부모님한테도 연락을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군대에서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고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왠지 내가 그 사이를 틀어놓은 거 같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듯. 내가 그런 짓을 하고야 만 것은 아닌지 급격하게 무서워졌다.

    아니... 아닐 거야. 응. 아니야.

    강렬히 부정해도. 어렴풋이 고개를 내미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물음에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때.

    “율아, 앙~”

    유나가 쌈을 내밀었다. 갑작스레 입안으로 침투한 쌈에 놀랐다. 그에 점점 커져가던 생각이 멈췄다.

    고기 든 쌈을 입에 물고선 유나를 힐끔 바라봤다. 엄청 큰 쌈이었다.

    “낭 뱅붕릉뎅.”

    입이 가득 찬 탓에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고기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살이 찔 거 같아 고민이라면 내일의 나에게 맡기자고!”

    무책임한 말을 당당히 하는 유나를 힐끔 보고는 쌈을 씹기 시작했다.

    커다란 쌈이 조금씩 해체되고 야채와 고기와 쌈장의 조화. 그리고...

    그러곤 입에 스멀스멀 불이 나는 듯 했다. 갑작스런 매움의 통증에 화들짝 놀라 유나를 바라봤다. 유나의 손에서 초록색의 길다란 무언가가 보였다.

    “야!! 그거 청양고추!”

    평소에 잘 내지 않는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야 입안이 불타는 거 같아서 볼륨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유나를 붙잡아서 저 많은 청양고추를 입에 쑤셔 넣고 싶었는데... 제정신이 아닌 매운맛 때문에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당장 주변에서 물통을 찾아 들이켰다.

    물을 입에 머금고 가만히 있는 것만이 최선책이었다. 내가 매운 거 잘 못 먹는 거 알면서 저런 거다.

    으... 매워서 눈물까지나. 혀가 다 아파.

    사래가 들린 듯 기침이 나오고 정수리가 화끈거렸다. 청양고추라는 게 이정도로 매운 거였나. 전에 몸은 잘 먹었던 거 같은데.

    “율이 왜 저러는 거니 유나야.”

    엄마가 나를 보며 그리 말했지만 유나는 익살스럽게 씰룩씰룩 웃었다.

    “고추를 잘못 먹었나 봐요.”

    완전 악마였다. 자기가 먹였으면서.

    “에고. 잘 보고 먹어야지.”

    엄마가 물병을 들고 나에게 다가오려 하자. 나에게서 피신해 있던 유나가 일어서며 말했다.

    “제가 줄게요. 아줌마.”

    “응, 알겠어.”

    엄마가 들고 있던 물병을 챙겨서 다가오는 유나는 싱글벙글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내가 아픈 게 유나는 즐겁나 봐. 어딘가 아른아른 거렸다. 내 눈물 때문인가.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했잖아.”

    무슨 짓이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유나의 그 말이 내 말을 막았다. 난 유나를 바라봤다. 입이 매워서 혀를 내밀고 있는 본새가 되었지만 서도. 유나의 표정이 자못 쓸쓸해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런 슬픈 표정을 하는 거야.”

    내 앞의 빈 병을 들고 가선 물을 채웠다. 위안을 주는 목소리였다. 심장이 시큰시큰 아플 정도로.

    오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가족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 그런 방식을 통해서 오빠를 막았는데... 결국은 가족의 사이를 비틀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정도는... 유나에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근데도 그런 생각은 다시 사라졌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입은 또 거짓말을 쌓았다. 아무것도 아닐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내가 앉아 있는 지면이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다. 말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끔찍했다.

    유나를 믿는다고 하는 자신조차도 모순처럼 느껴질 만큼...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 상황도 너무 싫었다.

    “응... 아무것도 아닐 거야. 정말 아무것도.”

    유나가 작게 읊조렸다. 그 소리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처량해서 마음이 타는 것 같았다. 걱정시켜서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조차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혀도 꾹꾹 눌러 담아 최대한 장난스런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나는 또 유나를 속였다.

    “응? 근데 유나야. 내 옆에 앉은 건 각오가 된 거겠지?”

    아아... 이거 조만간 썩어버릴지도. 응. 그래도 괜찮아. 지금의 관계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니까.

    “뭐야! 왜 이래!”

    “너도 고추 맛 좀 봐라!”

    응... 괜찮은 척, 안 아픈 척, 마음이 울어도 겉은 웃는. 내가 가장 잘하는 거. 지치지만. 그만하고 싶어도. 그럴 순 없었다.

    “으악! 저리가!”

    ­

    유나하고 율이가 학교 정문에서 수정이를 기다리던 때, 학교 안에서 수정이를 기다리던 이들이 있었다.

    “드디어 혼자 있네.”

    “왜...”

    “왜? 그년하고 같이 다니니까... 너도 뭐 좀 된 줄 아는 거 같은데. 기어오르는 것도 정도껏 하자. 수정아.”

    “걔들도 네 반응이 재미있어서 같이 다니는 거라니까? 정신 좀 차려.”

    일전에 수정이가 문제집을 사러 나갔을 때 만났던 애들이었다. 그때부터 벼루고 있었는데 유나와 율이가 같이 없자 갑자기 본색을 드러냈다.

    “아니야! 애들은 그렇지 않아... 이제 나 좀... 그만 괴롭혀!”

    수정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예전에는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율이와 함께 다니면서 어떻게든 변한 수정이었다.

    혼자 있는 것보다 친구와 함께 있는 게 좋다는 것을 알았다. 유나에게서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율이한테는 싫어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지 배웠다.

    율이는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자신이 싫으면 싫다고 하는 아이였다. 수정이는 그런 율이가 정말 멋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되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해왔다.

    당장 유나나 율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폰을 켰다가... 일전의 상황이 떠올라 다시 꺼버렸다. 아직 아이들에게 제대로 사과도 못했다. 갑자기 도움이라니... 염치도 없이 친구들을 이용하는 것만 같아서 꺼려졌다.

    괴롭힘을 당하던 때와는 달랐다. 머릿결을 관리를 해 찰랑거렸고 피부를 살리는 옅은 화장하고 있었다. 눈을 왜곡하던 안경은 이제 끼고 있지 않았다. 유나가 추천해준 렌즈를 착용했다.

    유나와 율이와 함께 다니며 자연스레 변화해갔다. 외모를 가꾸는 건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자신감을 가지고 싶었기에 그랬다.

    “어쭈...”

    예상하지 못한 반항에 애들의 눈이 해까닥 돌아갔다. 거칠게 뻗는 손길에 힘이 실려 있었다.

    수정이의 뺨과 복부.. 그리고 허벅지. 곳곳에 생채기가 생겨났다. 하지만 수정이의 눈빛만큼은 그대로였다.

    유나하고 율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건 이제는 싫었다. 친구들과 동등하게... 그리 변하고 싶었다.

    수정이는 그런 부조리에 처음으로 몸을 던져 싸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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