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라해도 괜찮아-33화 (33/54)
  • 〈 33화 〉 한 번 더 힘내자

    * * *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손에 쥔 것 들을 잃기 싫어 아등바등 그리 살아가는 것일까. 고민해 본 적도 없다. 그런 고민을 해보는 사람들은 양손에 하나 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

    애초에 무엇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은 한번이라도 행복을 느껴보았기에 바라는 것일 테니까.

    불행만 겪어온 사람은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스쳐 갈 뿐일 테니까.

    불행이 즐비한 그곳이 삶의 터전이라 믿어왔다.

    “진짜?”

    “글쎄? 나는 잘 몰라.”

    만에 하나. 그저 놓치며 스치고 있을 뿐, 행복이라는 게 늘 곁에 있는 것이라면. 잘 모르겠고. 그 사실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 수 없는데. 그저 행복이라는 게 곁에 계속 있었던 거라면.

    “대단하지... 율이가 1등 했어.”

    “하긴, 율이가 2등이었던 거에 더 놀랐어야 하는 건데. 고등학교 들어오기 전까지 다 1등 했었으니까.”

    “그런데... 수정이는 1등 뺏겨서 안 좋은 거 아닌가?”

    왜? 난 그걸 보지 못했던 걸까. 내가 처했던 상황 때문에?

    그 컴컴한 상황에 시야가 가려 발끝만을 바라보며 살아와서 그럴까. 그럼 그 상황에서도 더욱 발버둥 쳐 고개를 들었으면 흐릿하게나마 주변이 보였을까.

    만에 하나 그때 고개를 들었는데 캄캄했던 것조차 아니었다면. 그저 어두운 현실이라고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럼 나는 혼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래 겁먹고 아무 짓도 하지 못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잦았다. 과거의 자신에게 의문을 품었다.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나를 질책하듯.

    그럼에도 나도 정답은 알지 못했다. 그저 의문만 생겨났고. 그 의문의 답을 내려주지는 못했다.

    “수정이가 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최승현이 날 바라봤다.

    “너한테 안 물었거든?”

    그 멍청한 표정에 기분이 나빠져서 노려보자 최승현은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유나는 내 기분이 그러든지 말든지 천천히 다가왔다.

    손짓을 하기에 뭔가 비밀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아 귀를 내주었더니.

    “율아~ 1등한 거 축하해!”

    큰소리로 말했다.

    “유나... 그냥 그쪽에서 말하지... 굳이! 가까이 와서 크게 말하고 있어.”

    “으악!”

    기분 나빠져서 유나의 머리를 밀어냈다. 아 귀 아파. 진짜 아파. 귀가 욱신거려서 힘을 줘서 한 대 더 때렸다.

    유나는 밀려진 곳이 아픈지 머리를 만지며 최승현 쪽에 붙었다.

    “율아, 수정이 괜찮겠지?... 요즘 계속 우리를 피하잖아.”

    시험 등수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이번 학교 시험에서 수정이는 나하고의 순위경쟁에서 졌다. 최종 2위를 한 것도 대단한 성적이었다. 근데 수정이는 시험에 조금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걱정이었다.

    거기다가 태수하고 있었던 날 이후로 우리와 놀아주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는데도... 수정이는 여전히 우리를 피해 다녔다. 기분이 풀리면 다시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변하는 건 없었다.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어서 학교 정문에서 수정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학교 안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정문을 지나가리라. 이미 아는 사이가 되었는데 예전처럼 돌아가는 건 싫었다.

    “으~ 이제 시험은 끝났고. 뭐 할 일 없나?”

    유나가 기지개를 켜며 학교를 바라봤다.

    “내 성적 말고 유나, 너 성적은 어떤데?”

    내 질문에 눈썹을 움찔거리는 유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잘 물어봤다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평균은 넘겼어.”

    그 말에 몸을 움찔했다. 정말인가? 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공부는 절망적으로 못하는 그 유나가 평균을 넘겼다고?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는데. 이제까지 넘긴 적이 없잖아?”

    “진짜야! 아니 그 표정은 뭐야!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당연했다. 채점에 실수가 있었거나. 다른 애의 시험지와 유나 꺼가 바뀐 거였다.

    유나가 공부를 안 한건 아니었다. 내가 붙들고 공부를 시키는데 빠져나가기는 힘들었다. 근데 내가 시켜도 유나의 성적은 오를 생각이 없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 몰라 최승현을 바라봤다. 그도 유나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동의해주리라.

    “최승현, 너라면 믿겠어? 난 못 믿는데.”

    “나도 점수가 올라가지고 유나도 오르지 않았을까?”

    “흥! 율아, 나도 성장한다는 걸 알아둬! 언제까지나 평균미만 꼬리표가 붙을 줄 알고?”

    성적 향상으로 의기양양한 유나를 보고 있자니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말 신기했다. 유나의 성적이라는 게 상승이라는 것도 하는구나. 처음 알았다.

    아니면 지금까지 공부를 하는 척만 하고 나를 속여 왔던 걸까... 어째서? 대학에 영향을 주는 고등학생이니까 더욱 열심히 한 걸까?

    내가 유나의 성적을 이해하기란 너무 힘든 것이라... 생각하는 걸 일단 포기했다.

    “고작 평균 넘긴 거 가지고 다음부터는 더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러자. 유나가 기겁을 했다.

    동시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가 와서 확인해보니 유나네 아빠, 아저씨였다.

    유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종종 전화를 거시는데 오늘은 무슨 일일까.

    유나에게 폰 화면을 보여주고는 전화를 받았다. 유나는 내 옆에 딱 들러붙어 엿들을 심산처럼 보였다. 기대오는 머리통에 고개가 살짝 꺾였다.

    “네,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아! 율아. 정말 고맙다! 유나 성적이 올랐어! 모의고사 때도 그렇고. 이번까지 고맙다.]

    “저도 방금 성적 오른 거. 유나한테서...”

    아저씨에게 말하던 도중에 갑자기 전화기를 뺏겼다. 유나의 손에 내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분명 자기 아빠인데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한 게 조금 심통이 났나보다.

    “아빠! 어떻게 알고 전화한 거야?! 그것보다 나한테 먼저 전화를 해야지, 율이한테 전화하는 건 뭐야!”

    [이것아... 율이가 너 가르친다고 집에 얼마나 찾아왔어. 율이도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 내서 찾아와 준 게 얼마나 고맙니. 아무리 친구라도 그렇게 공부 봐주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그건 그렇긴 한데. 음...”

    아저씨에게 조금 혼나자 울상으로 변했다.

    [그만 율이 바꿔, 할 말 있으니까. 그래도... 고생했다. 우리 딸, 다음에도 잘하자.]

    “응!...”

    유나는 아저씨의 칭찬에 다시금 수줍게 웃었다. 부모님의 칭찬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역시 자식이라면 어쩔 수 없나 보다. 듣고 싶은 말은 들었는지 순순히 폰을 돌려주었다.

    아저씨가 외식을 한다고 했다. 유나네 가족이라 우리 가족의 합동 외식. 말을 꺼내신 건 유나네 아빠였고 우리 아빠도 흔쾌히 승낙하셨다.

    옛날에는 종종 같이 외식을 했었다. 최근 들어서 하지 못했던 외식이 이렇게 유나 성적이 올랐다는 이유로 할 수 있다니.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였다.

    특히 유나 성적은 종잡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수정이의 마음도 종잡을 수 없었다.

    외식 시간이 다되어 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우리는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수정이 보고 싶당.”

    “그러게...”

    ­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오랜만인 거 같아요.”

    “그러게요. 애들끼리는 매일 만난 거 같은데. 어른들은 그러지 못했네요. 잘 지내셨죠?”

    양쪽의 엄마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율이한테 정말 고마워서 어쩌나 이거.”

    “괜찮아, 괜찮아. 유나가 율이하고 잘 지내주는 게 고맙지.”

    이번엔 양쪽의 아빠가 악수를 나눴다. 서로 나이대가 비슷해 은근히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들이다. 개인적으로 종종 만나 술 한잔할 때도 있는 것 같았다.

    “유나야, 아주머니 아저씨의 반응이 정상으로 보여?”

    “무진장 기뻐 보인다. 울 엄마 아빠……”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진 내가 바라보자. 유나는 배시시 웃으며 볼을 긁었다.

    “자신들의 딸이 진심으로 바보가 아닌가 걱정까지 하셨다니까 말 다했지.”

    “뭐?! 그게 정말이야!”

    깜짝 놀라며 나에게 다가오는 유나였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앞에 두고 그런 고민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만 살짝 일러두셨다. 조금 공부머리가 모자랄 뿐인지 바보는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이 더 걱정을 키웠던 거 같다.

    이제는 그런 걱정은 없으시겠지.

    “참말이다.”

    피식 웃어 보이자. 유나는 화났다는 듯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걸어갔다. 그건 화가 났다기보다는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오랫동안 같이 있어서 그런지 유나의 행동과 생각은 어느 정도 읽히는 거 같았다.

    “정말이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 가족이네.”

    엄마가 내 옆에 서며 그러 말했다. 엄마와 내 시야의 끝에는 유나네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유나랑 같이 있으면 있던 기도 다 빨리는 거 같아.”

    엄마에게 내가 툴툴거리자 엄마는 따뜻하게 웃어 주셨다.

    “그래도 좋아 보이던 걸, 우리 딸.”

    “그랬나...? 엄마 착각 아니야?”

    “엄마의 착각이었니? 얼른 들어가자.”

    대답을 얼버무리는 나에게 엄마는 어깨를 두드려주시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유나랑 있으면 불편한 건 전혀 없는 것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마음이 여전히 복잡했다.

    “빨리 와! 율아.”

    가게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 유나가 내 팔을 잡고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가게 안은 시끄러웠다. 그래서 그 말이 유나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거다.

    “고마워. 너가 없었으면 이미 포기했을 지도 몰라.”

    사실은... 들려도 상관없었다.

    〈 33화 〉 한 번 더 힘내자

    * * *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손에 쥔 것 들을 잃기 싫어 아등바등 그리 살아가는 것일까. 고민해 본 적도 없다. 그런 고민을 해보는 사람들은 양손에 하나 둘,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테니까.

    애초에 무엇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은 한번이라도 행복을 느껴보았기에 바라는 것일 테니까.

    불행만 겪어온 사람은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스쳐 갈 뿐일 테니까.

    불행이 즐비한 그곳이 삶의 터전이라 믿어왔다.

    “진짜?”

    “글쎄? 나는 잘 몰라.”

    만에 하나. 그저 놓치며 스치고 있을 뿐, 행복이라는 게 늘 곁에 있는 것이라면. 잘 모르겠고. 그 사실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 수 없는데. 그저 행복이라는 게 곁에 계속 있었던 거라면.

    “대단하지... 율이가 1등 했어.”

    “하긴, 율이가 2등이었던 거에 더 놀랐어야 하는 건데. 고등학교 들어오기 전까지 다 1등 했었으니까.”

    “그런데... 수정이는 1등 뺏겨서 안 좋은 거 아닌가?”

    왜? 난 그걸 보지 못했던 걸까. 내가 처했던 상황 때문에?

    그 컴컴한 상황에 시야가 가려 발끝만을 바라보며 살아와서 그럴까. 그럼 그 상황에서도 더욱 발버둥 쳐 고개를 들었으면 흐릿하게나마 주변이 보였을까.

    만에 하나 그때 고개를 들었는데 캄캄했던 것조차 아니었다면. 그저 어두운 현실이라고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럼 나는 혼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걸까. 지래 겁먹고 아무 짓도 하지 못했다.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잦았다. 과거의 자신에게 의문을 품었다. 지금의 자신이 과거의 나를 질책하듯.

    그럼에도 나도 정답은 알지 못했다. 그저 의문만 생겨났고. 그 의문의 답을 내려주지는 못했다.

    “수정이가 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최승현이 날 바라봤다.

    “너한테 안 물었거든?”

    그 멍청한 표정에 기분이 나빠져서 노려보자 최승현은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유나는 내 기분이 그러든지 말든지 천천히 다가왔다.

    손짓을 하기에 뭔가 비밀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아 귀를 내주었더니.

    “율아~ 1등한 거 축하해!”

    큰소리로 말했다.

    “유나... 그냥 그쪽에서 말하지... 굳이! 가까이 와서 크게 말하고 있어.”

    “으악!”

    기분 나빠져서 유나의 머리를 밀어냈다. 아 귀 아파. 진짜 아파. 귀가 욱신거려서 힘을 줘서 한 대 더 때렸다.

    유나는 밀려진 곳이 아픈지 머리를 만지며 최승현 쪽에 붙었다.

    “율아, 수정이 괜찮겠지?... 요즘 계속 우리를 피하잖아.”

    시험 등수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이번 학교 시험에서 수정이는 나하고의 순위경쟁에서 졌다. 최종 2위를 한 것도 대단한 성적이었다. 근데 수정이는 시험에 조금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걱정이었다.

    거기다가 태수하고 있었던 날 이후로 우리와 놀아주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고 며칠이 흘렀는데도... 수정이는 여전히 우리를 피해 다녔다. 기분이 풀리면 다시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변하는 건 없었다.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어서 학교 정문에서 수정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학교 안에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정문을 지나가리라. 이미 아는 사이가 되었는데 예전처럼 돌아가는 건 싫었다.

    “으~ 이제 시험은 끝났고. 뭐 할 일 없나?”

    유나가 기지개를 켜며 학교를 바라봤다.

    “내 성적 말고 유나, 너 성적은 어떤데?”

    내 질문에 눈썹을 움찔거리는 유나. 어깨를 으쓱거리며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잘 물어봤다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평균은 넘겼어.”

    그 말에 몸을 움찔했다. 정말인가? 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공부는 절망적으로 못하는 그 유나가 평균을 넘겼다고?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는데. 이제까지 넘긴 적이 없잖아?”

    “진짜야! 아니 그 표정은 뭐야!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당연했다. 채점에 실수가 있었거나. 다른 애의 시험지와 유나 꺼가 바뀐 거였다.

    유나가 공부를 안 한건 아니었다. 내가 붙들고 공부를 시키는데 빠져나가기는 힘들었다. 근데 내가 시켜도 유나의 성적은 오를 생각이 없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오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혹시 몰라 최승현을 바라봤다. 그도 유나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동의해주리라.

    “최승현, 너라면 믿겠어? 난 못 믿는데.”

    “나도 점수가 올라가지고 유나도 오르지 않았을까?”

    “흥! 율아, 나도 성장한다는 걸 알아둬! 언제까지나 평균미만 꼬리표가 붙을 줄 알고?”

    성적 향상으로 의기양양한 유나를 보고 있자니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정말 신기했다. 유나의 성적이라는 게 상승이라는 것도 하는구나. 처음 알았다.

    아니면 지금까지 공부를 하는 척만 하고 나를 속여 왔던 걸까... 어째서? 대학에 영향을 주는 고등학생이니까 더욱 열심히 한 걸까?

    내가 유나의 성적을 이해하기란 너무 힘든 것이라... 생각하는 걸 일단 포기했다.

    “고작 평균 넘긴 거 가지고 다음부터는 더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러자. 유나가 기겁을 했다.

    동시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가 와서 확인해보니 유나네 아빠, 아저씨였다.

    유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종종 전화를 거시는데 오늘은 무슨 일일까.

    유나에게 폰 화면을 보여주고는 전화를 받았다. 유나는 내 옆에 딱 들러붙어 엿들을 심산처럼 보였다. 기대오는 머리통에 고개가 살짝 꺾였다.

    “네,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아! 율아. 정말 고맙다! 유나 성적이 올랐어! 모의고사 때도 그렇고. 이번까지 고맙다.]

    “저도 방금 성적 오른 거. 유나한테서...”

    아저씨에게 말하던 도중에 갑자기 전화기를 뺏겼다. 유나의 손에 내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분명 자기 아빠인데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한 게 조금 심통이 났나보다.

    “아빠! 어떻게 알고 전화한 거야?! 그것보다 나한테 먼저 전화를 해야지, 율이한테 전화하는 건 뭐야!”

    [이것아... 율이가 너 가르친다고 집에 얼마나 찾아왔어. 율이도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시간 내서 찾아와 준 게 얼마나 고맙니. 아무리 친구라도 그렇게 공부 봐주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그건 그렇긴 한데. 음...”

    아저씨에게 조금 혼나자 울상으로 변했다.

    [그만 율이 바꿔, 할 말 있으니까. 그래도... 고생했다. 우리 딸, 다음에도 잘하자.]

    “응!...”

    유나는 아저씨의 칭찬에 다시금 수줍게 웃었다. 부모님의 칭찬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역시 자식이라면 어쩔 수 없나 보다. 듣고 싶은 말은 들었는지 순순히 폰을 돌려주었다.

    아저씨가 외식을 한다고 했다. 유나네 가족이라 우리 가족의 합동 외식. 말을 꺼내신 건 유나네 아빠였고 우리 아빠도 흔쾌히 승낙하셨다.

    옛날에는 종종 같이 외식을 했었다. 최근 들어서 하지 못했던 외식이 이렇게 유나 성적이 올랐다는 이유로 할 수 있다니.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였다.

    특히 유나 성적은 종잡을 수 없었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수정이의 마음도 종잡을 수 없었다.

    외식 시간이 다되어 갈 때까지 기다리다가 우리는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수정이 보고 싶당.”

    “그러게...”

    ­

    “이렇게 만나는 것도 오랜만인 거 같아요.”

    “그러게요. 애들끼리는 매일 만난 거 같은데. 어른들은 그러지 못했네요. 잘 지내셨죠?”

    양쪽의 엄마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율이한테 정말 고마워서 어쩌나 이거.”

    “괜찮아, 괜찮아. 유나가 율이하고 잘 지내주는 게 고맙지.”

    이번엔 양쪽의 아빠가 악수를 나눴다. 서로 나이대가 비슷해 은근히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들이다. 개인적으로 종종 만나 술 한잔할 때도 있는 것 같았다.

    “유나야, 아주머니 아저씨의 반응이 정상으로 보여?”

    “무진장 기뻐 보인다. 울 엄마 아빠……”

    그 상황이 어이가 없어진 내가 바라보자. 유나는 배시시 웃으며 볼을 긁었다.

    “자신들의 딸이 진심으로 바보가 아닌가 걱정까지 하셨다니까 말 다했지.”

    “뭐?! 그게 정말이야!”

    깜짝 놀라며 나에게 다가오는 유나였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앞에 두고 그런 고민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만 살짝 일러두셨다. 조금 공부머리가 모자랄 뿐인지 바보는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말이 더 걱정을 키웠던 거 같다.

    이제는 그런 걱정은 없으시겠지.

    “참말이다.”

    피식 웃어 보이자. 유나는 화났다는 듯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걸어갔다. 그건 화가 났다기보다는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오랫동안 같이 있어서 그런지 유나의 행동과 생각은 어느 정도 읽히는 거 같았다.

    “정말이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 가족이네.”

    엄마가 내 옆에 서며 그러 말했다. 엄마와 내 시야의 끝에는 유나네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유나랑 같이 있으면 있던 기도 다 빨리는 거 같아.”

    엄마에게 내가 툴툴거리자 엄마는 따뜻하게 웃어 주셨다.

    “그래도 좋아 보이던 걸, 우리 딸.”

    “그랬나...? 엄마 착각 아니야?”

    “엄마의 착각이었니? 얼른 들어가자.”

    대답을 얼버무리는 나에게 엄마는 어깨를 두드려주시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유나랑 있으면 불편한 건 전혀 없는 것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마음이 여전히 복잡했다.

    “빨리 와! 율아.”

    가게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 유나가 내 팔을 잡고 가게 안으로 이끌었다. 가게 안은 시끄러웠다. 그래서 그 말이 유나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거다.

    “고마워. 너가 없었으면 이미 포기했을 지도 몰라.”

    사실은... 들려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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