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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10화 (10/54)
  • 〈 10화 〉 그럼에도 살아야지

    * * *

    난 그 사진을 그대로 몸에 품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으며 등교를 하며 수업을 들으며 내 머릿속은 그 사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사진 자체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난 그 글귀에서 충격을 받았다.

    왜? 왜 그러는데? 진짜.......뭐가 문젠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머릿속을 휘저으며 가슴을 찢어발기며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가족이라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 같다. 이번 생도 실패했다는 그 사실이 마음을 난도질했다.

    “율......아..... 율아!!!”

    “어? 왜?”

    “나랑 안 놀아줌?”

    지금은 점심시간이었다. 시청각실 열쇠를 가지고 슬그머니 들어왔으나 어디서 나의 냄새를 맡았는지 유나는 단번에 위치를 찾아냈다. 문을 잠가놓았는데도. 내가 있는 것이 확신하고는 문을 부술 것처럼 두드리기에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얀데레 기질은 안 알려줬는데 무서운 유나였다.

    “언니가 지금 바빠. 착한 유나는 혼자 놀면 안 될까?”

    “언니? 내 키가 더 큰데?”

    키? 이 아가씨가 지금 내 키를 건드리네!

    유나가 지금 나랑 노는 것보다 싸움이 하고 싶은가. 키 작은 건 나의 콤플렉스였고 그걸 잘 알고 있는 건 유나인데. 그걸 꼭 집어 이야기 하다니 소꿉친구만의 스킬인가.

    타인이 내 키에 대해 언급한다면 그냥 넘길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 볼 사람들이 아니니까. 근데 유나가 하면 달랐다. 내가 싫어하는 걸 잘 알고 있으니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믿음에서 오는 분노였다.

    그 만큼 나는 유나가 좋았다. 같이 있으면 편했고 안심이 되었다.

    “어? 이제 표정이 생겼어. 아깐 인형같이 가만히 있어서 무서웠단 말이야.”

    진짜 무서웠다는 듯 몸서리를 치는 유나였다. 그런데 그 말은 즉......

    “내가 지금 화내고 있는데 무섭지 않다는 말이지?”

    “율이는 화내면 귀여워. 가만히 있을 때는 무섭지.”

    장난스럽게 웃음 짓는 유나에게 꿀밤을 먹여보지만 그걸 맞고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 유나였다. 그런 유나의 모습에 나도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유나는 매점에서 사온 과자를 오물오물 먹으며 나를 쳐다봤다.

    “이번에 진태 오빠 휴가 나오셨지? 언제까지 있어?”

    지금 그다지 듣고 싶은 이름이 아니었다. 집에서 본 그 사진의 의미에 대해 나는 아직 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유나랑 오빠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서로의 집을 왕래하던 사이라 집안 가족들과는 이미 얼굴을 튼 사이였다. 외동딸인 유나는 오빠가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그런 순수한 질투에 그 당시에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내일이면 다시 갈 거야.”

    “율이하고 진태 오빠 사이 무척 좋잖아. 나도 그런 오빠 있으면 좋겠다.”

    마냥 부럽다는 듯 유나는 칭얼거렸다.

    사이가 좋다? 우리가? 그건 거짓이었다.

    난 그저 갈등을 피하고 다툼을 피했을 뿐이다. 착한 딸로 귀여운 여동생으로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서율’이 되어야만 했다. 가족에게만큼은 쓸모없는 아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가족의 보호아래에서 나의 자리만 보장된다면 나의 감정 따위 철저하게 짓누르고 살 수 있었다. 그걸 유나가 사이좋은 것으로 봤다고 한다면 주변 모든 이들도 그리 알고 있을 테지.

    그러니까 나의 연기는 완벽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집 아이는 부모에게 잘하는 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까지 잘했다. 이 근방에 엄친딸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자신 있었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었다. 나는 착한 딸, 귀여운 여동생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렇게 되고자 노력했어도 그게 정답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규범이 되는 바른 지식이 없었다. 나의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했다.

    그들이 좋아할 만한 행동을 그때그때 판단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도출할 수 있도록.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매번 생각해서 말하고 매번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밝은 표정을 만들었다.

    “유나야. 오빠하고 나, 어떻게 보여?”

    지금 생각해보니 오빠와의 사이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가족의 틀에서 볼 때 무척이나 다정다감한 남매지만........ 남매의 틀에서 우리의 모습이 어떤지를 몰랐다.

    “흠....... 다른 남매들과 다른 것 같아. 좋은 의미로 다르다는 거야. 정말 사이가 좋아 보여.”

    유나의 말을 듣고 알게 됐다.

    또 실패한 거라고.

    오빠의 방에서 본 사진은 가족사진이 아니었다. 나의 단독 사진이었다.

    중3 여름방학 때, 거실에서 낮잠을 자는 내가 피사체였으며 평온히 잠자고 있는 귀여운 여동생의 사진일 뿐이었다.

    그 사진의 뒷면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건 갈망의 사진이었으며 숨길 수 없는 감정이 표출된 행위로 태어난 사진이었다. 뒷면에 쓰인 글귀는 내 꿈을... 단 하나뿐인 꿈을 바닥으로 내팽개쳐버렸다.

    ­사랑해, 서율. 너가 가족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몰랐을까. 어디서 잘못 되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답을 모르는 걸 내가 알 리가 없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솟아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덧없는 꿈이었던 거다. 17년의 세월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평범한 가족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는 꿈을 꿨다. 내 꿈은 그거 하나뿐이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토록 노력해서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봤다. 비록 이번 생에도 고아였다. 고아였기에 그 꿈을 다시 가졌다.

    어제 우산을 쓰고 데리러 와줬던 오빠는 날 가족이라고 말해줬다. 그때의 그 물음에 오빠는 화를 냈다. 평범한 오빠였다면 어땠을까? 애초에 비 오는 날에 데리러 오지 않았겠지.

    오늘 오빠 방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되지 않았을까?

    아니 그러기 전에 아침에 늦잠을 자버렸으면 어땠을까...........

    이 집안에 입양된 게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태어난 게 잘못........인 게 아닐까.

    난 존재 자체가 재앙인가? 내가 죽어야 할까? 밝은 표정으로 음식을 넘기는 유나에게 묻고 싶지만 또 나는 속으로만 삭힐 뿐이었다. 그럴수록 무뎌지고 썩고 나 혼자 아파하면 그걸로 넘어가지는 일이었다.

    “유나야 가족이 뭘까?”

    “갑자기 왜 그래?”

    유나는 과자 봉지를 접으며 답했다. 심각해진 나의 분위기에 유나까지도 움츠러들었다.

    “고아였던 순간부터..... 깨닫고 보니 언제나 내 삶은 타인의 기준에 맞춰져있더라. 버림받기 싫어서 항상 발버둥 치며 악착같이 살았어. 내가 가장 싫은 건 가족인데. 가장 필요한 것도 가족이야. 그래서 나에겐 선택권이 없어. 내가 가족을 버린다는 그런 선택권 말이야. 방금 부럽다고 했지?”

    “......”

    유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걸까? 아니면 나를 미친년으로 보고 있는 걸까? 이 감정을 유나에게 말한들 풀리는 건 없었다.

    내가 가진 단 두 가지의 자리에서 가족의 자리를 뺀다면 유나와 공유한 그 시절의 자리가 남았다. 유나와의 추억이 삶에서 가지고 있는 유일한 미련이었다. 이 미련만 없다면......... 난 자유를 되찾을 지도 몰랐다.

    “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어. 다른 선택지는 없어. 그냥 가족들에게 잘 보이는 수밖에. 부탁이야. 날 부러워하지 마. 더 비참해지니까.”

    유나에게 욕을 퍼부어서라도 나를 잊게 만들 수도 있었다. 폭력을 가해서 나를 싫어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이 아이에게는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유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내려다봤다. 순진하던 표정은 온데간대 없고 강인한 눈을 가진 여학생이 거기 서 있었다.

    “서율, 넌 나한테 엄청 소중해.”

    난 당황했다. 유나의 말투가 바뀐 것은 물론이고 내 이름에 성을 붙여 말하는 것은 처음 친구가 되었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압도당해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의 넌 정말 똑 부러지는 아이였던 거, 그런 너에게 매번 도움받기만 한 거 기억해? 소심했던 나는 할 말 다하고 사는 널 솔직히 존경했어. 하지만 그건 오래 가지 않더라? 중학교에 올라가고부터 점점 몸을 사리는 것 같았어.”

    나의 성별에 대해 외면하고 살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몸에서 2차 성징이 일어나자 나는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다. 온 몸이 남자와는 다르게 바뀌어 가는 것을 보고는 충격에 빠졌다. 그런 나의 외면만 보고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난 여자가 되어가는 자신을 이해하려고 했다. 인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정하자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남자의 시선으로 보던 세상이 여자의 시선으로 보자 거긴 딴 세상이었다. 그게 너무나 무서웠다.

    “그래서 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 매번 생각했어. 내가 좋아하던 어릴 적의 율이가 다시 돌아왔으면 해서........... 바보 같은 내가 떠올린 방법은 어린아이가 되는 것뿐이었어. 내가 어릴 때 너는 매번 구해줬으니까.”

    “그게....... 뭐야?”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지금까지 애교부리고 응? 귀여운 척 하고 응?”

    유나는 머리를 집으며 어이없어했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지금의 유나의 말들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더라도 넌 나에게 말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아. 그래도 바보 같은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유는.........”

    어린 아이 같이 유나의 말을 따라 말했다. 그런 나를 보며 유나는 웃으며 말해주었다.

    “내가 네 편이기 때문이야. 내가 가장 필요했던 순간에 옆에 있어줬던 너니까. 율이가 가장 힘든 순간에 내가 옆에 있을 거야. 율이가 날 싫어하더라도 곁에 있을 거야. 네가 날 버려도 같아. 이건 결정사항이고 변하지 않아.”

    눈물 흘리며 웃음 짓는 유나의 모습에 황폐한 가슴이 촉촉해 지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몰랐다. 그냥...... 그냥 막..... 가슴이......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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