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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라해도 괜찮아-6화 (6/54)
  • 〈 6화 〉 그럼에도 살아야지

    * * *

    이름 최승현, 나이 17살, 무청고등학교 1학년 2반, 성적은 중상, 교우관계는 완만하며 선생님들도 그에 대해 별 문제없는 아이라고 말하고 있음. 이성관계는 유나 외 별다른 접점이 없음.

    “굳이 꼽자면 나도 있지만 여기선 제외하고.........”

    최승현을 게임 캐릭터 식으로 말하자면 이도저도 아닌 쓸모없는 캐릭터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그런 캐릭터가 유나라는 고 레벨에다가 전설 템을 갖춘 유망한 캐릭터의 파티에 얻어걸려 승승장구 하려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모은 기본적인 최승현의 스펙들을 동글동글한 글씨체로 노트에 써내려간다.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후 다시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봤다.

    “1학년 2반은 우리 반이잖아?”

    그러고 보니 말해 줬던 것 같은데? 왜 까먹고 있었을까. 아니 까먹었다기보다. 애초에 나는 우리 반 총 인원수가 몇인지 조차 모른다. 기껏 아는 것이라고 해봐야. 담임선생님 정도이다. 그 조차도 몇 번 불려가서 기억하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담임선생님도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어떤 의미로 나도 대단하네.

    아무튼 최승현을 몰랐던 건 지금까지 철저하게 상관이 없는 존재였다는 의미였다.

    일단 최승현에게는 흠이라는 게 없다. 그렇다고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척이나 보통이라고 할 수 있고 색으로 말하자면 무색, 향으로 말하자면 무취라는 것이다. 좋다와 나쁘다로 나누기에는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

    노트를 접어두고 책상위로 이마를 천천히 갖다 댔다. 나무의 차가움이 살짝 기분이 좋았다가 이내 미지근해 진다. 쉬는 시간이라 종종 들려오는 반 아이들의 욕설소리가 싱그럽기 까지 했다. 학기 초반인데도 저렇게까지 서로 욕을 주고받을 수 있다니 감탄스럽기 짝이 없다. 이게 자라나는 새싹들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올 따름이다.

    최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최승현의 흠을 발견해 유나의 정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작전이다.

    여기에는 한가지 한계가 있다. 나보다 유나 쪽이 최승현과 함께한 시간이 길기에 여러모로 다 깨우치고 있는 게 많은 쪽은 유나다. 유나는 그런 부정적인 면을 포함해서 그를 좋아하는 거겠지.

    “흠....... 골치구나.”

    “율아 머리박고 뭐하는 거야?”

    여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츤데레 여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트윈 테일의 머리스탈에 귀여운 외면에 반하는 육감적인 몸매는 지나가는 남정네들을 모두 포로로 만들어 버릴 것 같은 힘이 있었다. 그걸 유나는 전혀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흔히 말하는 여자판 둔감녀라는 거다.

    유나는 발랄하게 나의 어깨 위에 양손을 올린다.

    “최근 바퀴벌레를 발견해서 말이야. 그걸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 중.”

    “히잌!...... 바퀴벌레........ 개소름 돋았어!!”

    남녀노소, 모두가 싫어하는 그 이름을 언급하자.

    나에게 달라붙으며 발을 동동 굴리는 유나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퀴벌레 같은 사람이지만....... 밟으면 없어지려나 몰라.

    “야야. 김유나, 남의 반에서 뭐하냐?”

    어디선가 최승현이 나타났다. 웅성거리는 남자애들이 있는 거 보니 저 아이들과 같이 있었나 보다.

    “율이 보러왔어.”

    최승현의 눈을 피하며 쑥스러워하는 유나의 모습에 창자가 뒤집어 지는 것 같은 분노가 일었다.

    도대체 뭐야. 저런 아무 매력 없는 애가 뭐가 좋다고 그런 모습을 하는 건데.

    어떤 이가 보더라도 지금 유나의 모습은 사랑에 잠긴 소녀였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만, 둔감녀와 둔감남이라니....... 세기의 조합이다. 저 둘은 아무렇지 않더라도 보는 내가 암 걸려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에 분노하며 최승현을 노려보았다.

    “저기로 사라져주면 안될까. 유나랑 이야기 중이거든?”

    내가 최승현에게 말을 걸자. 반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그럴 만도 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이야기 한 인물이라곤 소꿉친구인 유나와 학교 선생님들이 전부였다. 내가 아니라 최승현에게 집중된 시선은 흥미위주가 본연이었으며 왜 나와 알고 있는 사이인지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나에게 묻는다고 해도 내가 대답해 줄 사람도 아니니까. 만만한 최승현에게 묻는다면 대답해 줄 것이라는 간단한 판단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정답이었다.

    반 아이들이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품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남하고 연관되기 싫어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다.

    갑자기 최승현의 뒷덜미가 붙잡히더니 질질 끌려갔다. 승현은 발버둥을 쳐보지만 팔이 여러 개라 꿈적도 안했다.

    “율아, 승현이 괜찮을까?”

    “걔가 하기 나름이지.”

    나에게 한마디 하곤 남자애들에게도 물론이거니와 여자애들의 무리에 끌려가는 최승현의 모습에 측은함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꼴좋다!

    최승현은 초췌한 모습으로 수업종이 울리고 들어왔다. 그때까지 유나는 승현이 승현이라며 걱정하기에 그걸 보는 내 속이 다 타는 것 같았다.

    *

    시간이 흘러 종례시간, 우리 담임선생님 다른 선생님들 보다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시다.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을 노장이라는 별명으로 부를 정도인데 수업시간만 되면 엄청난 수마를 퍼트리며 교실이라는 전장을 잠재워 버리는 수완가셨다. 일단 수업시간에는 잠을 자면 안 되는 것이 나의 철칙이다. 노장선생님의 수업은 그런 나의 생각도 허물어트릴 정도였다.

    이전 삶에서도 공부를 조금 했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학업은 어느 정도 통달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에게 찍혀 집으로 전화가 가는 일만은 피해야 했기에 묵묵히 수업에 임하는 척을 하고 있다. 다 아는 내용에 지루하고 지루해도 어쩔 수가 없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노장선생님이 잠이 오는 수업을 하시긴 하지만 역시 연륜에서 묻어나는 수업의 질은 상당했다. 대학교수님의 수업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 정도였다. 교과서의 필요부분만을 딱 잘라내어 자신과의 지난 세월과 연관시켜 경험이 녹아든 수업은 나의 일말의 흥미를 끌기엔 충분했다.

    그래도 그 흥미는 잠시고 잠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가장 오래 버티는 게 나라고는 자부할 수 있다. 오늘도 영락없이 선생님의 수업에서 가장 마지막 까지 생존해있었다. 비록 사망자가 되긴 했지만 그 정도면 일단 만족했다.

    이 선생님은 학생들을 살피고 정열이 넘치셨다. 수업에서 뿜어내시는 수마의 영향을 제외하고는 학생들과도 잘 어울리시고 의외로 센스쟁이라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조금 있으신 걸로 알고 있다.

    그런 노장선생님은 지엄하게 입을 여셨다.

    “애들아........”

    틀에 박힌 종례 멘트다. 피시방에는 가지마라, 오늘 배운 학습 복습하고 내일 배우는 것들 예습해 와라.

    그래도 그런 말에는 진심이 묻어있다. 아마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본 것이겠지. 그중 엇나간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며 바른 길을 나간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길들이 옳은 길이라는 보장은 노장선생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서율, 마치고 교실에 잠시 남아줄 수 있겠니?”

    “네? 네.”

    첫 번째는 의문 두 번째는 수긍의 대답이었다. 나의 답을 들으신 노장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바라보셨다.

    “조심히 가거라.”

    ““네에!!! 안녕히 계세요!!!!!!””

    반 학생들은 나를 힐끔 보고선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나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 입학식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건 애들은 없다. 그렇기에 나에게는 굉장히 좋은 상황이다. 여학생이든 남학생이든 눈길로 친해지고 싶다는 추파는 보내지만 나는 그런 걸로는 반응하지 않는다. 귀찮은 거 딱 질색인걸.

    최승현을 힐끔 보니 여전히 영혼이 이탈한 것 같은 흐느적거림으로 교실을 나서는 중이었다. 조례시간부터 계속 시달린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저 정도까지 되니 어떤 물음들이 오갔을지 조금 궁금하긴 했다.

    그것보다 지금은 노장선생님이 어떤 용건이신지가 먼저였다. 나쁜 일은 한 적이 없다만.........

    고등학교에 올라오고 시험을 본 적은 아직 없다. 교무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선생님들이 이야기하시던 나에 관한 입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입학자들 사이에서 나의 성적이 전교 2등이라는 것이 그것이었다.

    중학교 시험이라 솔직히 너무 쉬워서 대충 훑어보고 문제를 풀었었다. 그게 그 정도의 등수가 나올 줄은 몰랐다. 점수는 꽤 높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내 밑에 그리 많은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문제가 상당히 어렵긴 했나보다.

    그런 사실이 바탕이 되서 난 전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남들이 보기에는 우등생이었고 그런 나에게 담임인 노장선생님은 기대가 크셨다. 내가 교무실에 계속 불려간 이유가 노장선생님이 불러서였다.

    항상 손녀를 대하듯 나를 대하시는 노장선생님이시다. 본래 나이가 그렇게 많지는 않으실 텐데. 적지 않는 주름과 힘든 세월의 흔적인지 선생님의 시간은 조금 빨리 흐른 것 같다.

    나를 바라보시다가 잠시 뜸을 들이시는 노장선생님이시다.

    “오늘 수업에서 졸더구나.”

    살짝 웃으시는 선생님이셨다. 갑작스런 말에 나는 마른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죄송해요.”

    “아니야. 그냥 걱정 되서 그런 거지.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란다.”

    “최근 좀 피곤해서요.”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휴식도 중요하지. 노는 거랑 휴식은 다르다는 말도 있으니까.”

    공부 말씀입니까? 제가 공부를요? 터무니도 없습니다. 선생님. 전 그렇게 착한 학생도 아닐뿐더러 공부에 목숨 건 우등생도 아니랍니다. 그럼에 난 답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웃었다.

    노장선생님은 잠시 곤란해 하시며 입을 여셨다.

    “아무래도 수업 방식을 바꾸는 게 좋겠구나.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서율이 너에게 도움을 청해도 될까?”

    “저한테요?”

    나는 다른 애들보다 공부를 조금 한다. 그 뿐이지 누구에게 가르쳐주거나 하는 생산적인 일은 해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 심성이 바닥이라 어떤 이가 나에게 가르쳐줘야할 정도지 내가 가르침을 나누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도움을 달라니, 우등생 같은 행동이 낳은 산물인가?

    “내가 고안해낸 수업에 의견을 내주는 그런 방식으로 좋단다.”

    “제가 얻는 게 있을까요?”

    메리트......... 이 장면에 와서도 난 그걸 따진다. 나의 행동의 끝에는 반드시 이점이 있어야 한다. 노장선생님은 나의 그런 말에 잔잔히 웃으시며 윗옷 안주머니에 손을 넣으셨다. 그런 선생님의 행동에 한 가지 떠오른 게 있다. 다급히 입을 연다.

    “도.....돈은 필요 없습니다만...........”

    손 세례를 치자 보기 드문 웃음소리를 흘리셨다.

    “돈? 그 생각을 못했구나. 그것보다 더 실속 있는 걸 준비했지.”

    말을 마치시고는 손을 꺼내셨다. 회색의 작은 열쇠다. 열쇠 이름표에는 마카로 시청각실 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청각실 열쇠인가요?”

    “항상 혼자 있길래 걱정했는데. 옆 반에 유나? 였니. 아무튼 따돌림 당하는 것도 아닌 것을 보니.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완만한 교우관계도 학창시절의 묘미이지만 율이 처럼 뛰어난 학생이라면 일부러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밖에 하지 못하겠지. 그러니 이것이다.”

    앞으로 손을 자연스레 내미시는 노장선생님이셨다. 그에 나도 별 생각 없이 그걸 받아드렸다.

    “혼자 있고 싶을 때 가거라.”

    “.........”

    “서율이가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구나. 내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마. 하지만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이야기해 주겠니? 듣는 건 할 수 있으니까.”

    그때 깨달았다. 앞의 대화는 그저 이걸 나에게 주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생각해보면 학생인 나에게 수업개선에 도움을 달라는 선생님이 어디에 있나. 학생보다 뛰어나고 지식도 많은 젊은 교사들이 많다. 학생의 손을 빌릴 필요는 전혀 없다. 그저 이상하지 않게. 위험에 처한 학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선생님의 당연한 의무.

    열쇠를 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왜.... 그때는.... 없었을까요? 이런 선생님.......”

    과거의 모습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 때는 참 아팠는데. 생각만으로도 인상이 저절로 써졌다.

    노장선생님은 그런 모습에 헛기침을 흘리셨다.

    “흠....... 꽤 늦은 도움이었나 보구나.”

    그래요 늦었네요. 많이 늦었네요. 정말 늦었어요. 이미 문드러지고 문드러져서 형체도 알 수 없답니다. 조각조각 박살날 때로 박살나서 지금까지 걸어온 행적들에 흘리고 왔는지 모르겠네요.

    지금에 와서 본드로 붙인 단들 온전한 형태일리가 없답니다. 이런 나라도 고칠 수 있을까요? 고쳐질까요?

    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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