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화-하늘에서 떨어진 인공지능이 내 등짝에!
마음이 심란해져서 평소 습관처럼 방구석을 박박 걸레로 닦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오늘, 한국에서 부분일식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NEWS 채널의 이공지 기자입니다. 2020년 6월 21일 내일에는 부분일식 현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일식이란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의 순서로 일직선 상에 놓일 때 지구에서 보기에 달이 마치 태양을 먹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말합니다.]
간단한 소개 이후에는 지루한 설명 시간이다. 다 아는 내용을 굳이 말해줘야 되나.
[ 완전히 달이 태양을 먹는 것처럼 보인다면 개기일식, 가장자리를 제외하고 가운데만 삼킨 것처럼 보이면 금환일식, 태양의 일부분을 베어 먹은 것처럼 보인다면 부분일식이라고 하는데요. 보통 이 일식은 1년에 2번 정도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구 전체로 봤을 때만 이에 해당되고 실제 대한민국은 위도가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일식을 관측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화룡점정으로 전문가까지 납신다. 왜 이리 뉴스는 다 똑같을까.
[ 이와 관련해서 천체물리학 교수인 박하늘 교수님의 인터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교수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에서 부분일식을 볼 수 있는 것은 2030년에나 가능하다고 떠벌였다. 그리고 점차 지구와 달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다고도 말했다. 먼 미래에는 지구에서 이런 일식현상을 관측할 수 없을 거라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에이 씨, 달이 태양을 가리든 말든, 멀어지든 가까워지든 하는 거랑 내가 방구석에서 바닥이나 닦고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나 죽고 나서도 수천년은 지나야 일어날 일인데. 좀 중요한 내용도 많을 텐데 저런 걸 뉴스라고 내보내고 있냐. 내보내고 있길. 위성이 추락한다든가 뭐 하늘에 구멍이 난다든가 하는 내용이면 또 몰라.’
“헉… 헉… 아이고 힘들어.”
방바닥을 물걸레로 닦다 보니 호흡이 가빠졌다. 때마침 뉴스에선 우리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식에 대해서나 떠드니, 문득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작년 말 코로나가 발생하고 난 뒤, 각국은 감염위험을 낮추기 위해 외부와의 교류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물류이동이 감소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생산량이 줄어드니, 경기가 악화되면서 사람들은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생산 감소가 이어졌다. 기업들은현재 고용하고 있는 인원들까지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감원에 들어갔다는 뉴스가 연일 나왔다. 그러니 취준생인 나와 같은 이들에게는 좋지 않았다. 가뜩이나 좁았던 취업문이, 아예 바늘구멍보다 작아졌다는 소리니까. 취업을 하려야 할 수가 없게 된 상황이었다.
취업도 어려워서 죽겠는데 코로나가 터져버리니, 그나마 취업하며 버티게 해주던 알바자리까지 날아가버렸다. 얼마 전에 가게가 폐업하는 바람에 말이다.
“죽으라고 하는구나. 아주.”
이제 수중에 남은 돈은 344만 2587원. 이 돈으로 다음 알바를 구하거나 취직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남아야 한다.
‘취업을 하고 싶어서 졸업장까지 기껏 따놨는데도 취업하지 못하는 내 인생은 레디 메이드 인생이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부모님으로부터 자취방 보증금이라도 지원받을수 있었다. 그게 나의 마지막 행운이었다.
더구나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 밖으로 마음 편하게 나가지도 못하고 사람 많은 곳은 가지도 못한다. 집에만 갇혀서 기업들의 채용공고 정보들을 뒤적거리고 채용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서류통과만 기다리고 있어야만 한다.
“아! 도저히 못 참겠네.”
일주일 만에 나갈 마음을 먹었다. 방구석을 닦느라 들고 있던 물걸레는, 화장실로 들어가 대야에 집어 던졌다. 비누로 손을 씻고 머리를 꼼꼼히 감았다.
그러고선 요즘 필수품인 KF94 마스크와 기본 템인 스마트폰을 챙기고, 외출용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슬리퍼까지 신고나서 문밖으로 나섰다. 슬리퍼를 질질 끌지만, 마치 어드벤처 영화의 모험가처럼 방밖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자.
#
삑!
“10000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편의점에서 앱으로 결제를 마친 뒤, 구매를 해서 나오자마자 편의점 앞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잡았다. 나머지 캔들은 내려 놓아두고서 경건한 자세로 캔 하나를 오픈했다. 딱! 하고 시원한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그렇게 바로 맥주를 원샷하니 갑갑했던 속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했다.
“캬~아! 그래! 이거지~외로운 내 인생을 위로해주는 건 너밖에 없다.”
다 먹은 캔을 발로 스트레스 풀 듯 밟아 찌그러트렸다.
그걸 버리려고 주우려는 순간, 나는 내 뒤통수를 신경 쓰지 못했다. 하늘에서 뭔가가 빛나며 나에게 내리꽂히는 장면을 말이다.
만약 그때 내가 알바생에게 뒤처리를 떠넘기고 캔을 버려뒀거나, 캔을 밟아서 찌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면 어땠을까. 나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 갔을까.
퍽!
“으악!”
별로 크지 않았던 뭔가가, 불행 중 다행히 머리가 아닌 내 등짝에 부딪히며 달라붙었다. 나는 그 충격 때문에 쪼그려 앉았다.
고통이 너무 지나쳐서였을까. 난 퓨즈가 나간 형광등이 꺼지듯이 기절했다. 잠시 의식을 잃었다.
꾸륵! 꾸륵!
내 등에 달라붙은 그것은 투명한 상태로 뭔가를 확인했다. 그러더니 내 머리쪽으로 움직여서 흡수되었다. 내가 몰랐을 때 일어난, 나중에서야 알았던 일이다.
#
“어? 뭐였지?”
한참 뒤에야 나는 다시 일어났다. 뭐하려고 쪼그려 앉았었담. 으으! 등짝이 갑자기 아파온다. 엄마한테 후려맞은 것보다 더 얼얼하네.
‘아오… 씁! 갑자기 맥주를 너무 급하게 마셔서 그러나?’
맥주를 마시고 캔을 밟은 순간까지는 기억난다. 그 뒤가 급작스럽게 부팅이 되면서, 일시적으로 저장파일이 날아간 컴퓨터처럼 까맣게 되었다. 나는 뒤통수를 부여잡고 쓰다듬으며, 바닥에 버려져 있던 맥주캔을 버렸다.
“으… 너무 급하게 마시면 안 되겠네.”
통증을 가라앉힐 겸 한참을 편의점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계산대에서이상하게 보는 알바를 피해 다시 일어났다.
‘그냥 멀리 여행이나 떠났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코로나같은 건 걱정 안해도 되는 세상의 해변으로.’
자취방 앞에 도착했다. 난 한숨을 쉬며, 좁은 자취방에 다시 틀어박혀야 한다는 사실에 갑갑해했다. 잠깐 감상에 잠겨있다가 비번을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한 손으로 맥주 세 캔,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채였다.
삐삐빅! 덜컹!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문을 열고 한 발을 들이미는 순간, 내 등 뒤로 후광이 비치듯 반짝했다. 그러더니 내 눈 앞에 방이 아닌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끝없는 백사장과 푸른빛의 투명한 바다였다.
[차원이동 능력과 인벤토리 능력 각성을 확인하였습니다.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응? 이게 무슨…….’
갑작스레 펼쳐진 대자연의 풍광과 홀로그램.
난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최신 VR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어우, 뉴스에서 요즘 증강현실이다 뭐다 뉴스는 언뜻 들은 것 같긴 한데. 이게 왜 내 방에서 벌어지는 거람.”
너튜브에서 흔히 보는 몰카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나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벗어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소리치면서 방송종료를 요구하기도 하고, 친구들이 장난치는 건가 싶어 친구들 이름을 불러도 봤다. 하지만 딱히 바뀌는 것은 없었다.
문득 발 밑을 내려다봤다. 백사장의 감촉은 진짜 같았다. 신기해서 멍하니 슬리퍼 한쪽을 벗고 모래의 감촉을 느끼는데, 멀찍이 있는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곰 세 마리가 나타났다.
곰과 눈이 마주친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뭐… 뭐야!!!!! C ba”
곰이 내 외침을 위협으로 들은 것일까.
가장 덩치 큰 곰이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새끼인 것으로 보이는 작은 곰 두 마리도 나를 찾아 쫓아왔다. 잡히는 순간 내 인생을 하직할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바로 뛰었다.
“히이익!”
한쪽 발의 슬리퍼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져서 벗어버렸다. 그 와중에도 두 손에는 맥주와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아무도 없을 것만 같은, 무인도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누군가 튀어나올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겠지. 그래도 난 숨이 터져라 뛰면서 있는 힘껏 소리쳤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지금 내가 이렇게 곰을 만나 뛰는 상황도, 그렇게 상식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소리치며 도망치는 것도 잠시였다. 곰의 달리기 속도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아, 그냥 죽은 척을 하고 있어야 했나?’
점차 곰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당장 저것이 내 머리를 후려치고 잡아먹을 것만 같은 공포가 날 지배했다. 한동안 운동과 거리가 멀었던 지난 날의 과거를 후회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앞으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인스턴트도 줄이고 술도 끊겠습니다. 아직 결혼도 못 해보고 해 보고 싶은 것도많은데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 저항으로, 도망치는 와중에 들고 있던 맥주 캔 하나를 던져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본 거지만 곰의 흉폭성만 자극할 뿐이었다.
“크어어엉!”
“젠장, 맥주 마시러 나왔다가 이게 무슨 꼬라지야!”
안전 안내 문자를 어긴 탓일까? 문자대로 코로나 시국에 맞게 외출을 최대한 자제해야 했는데, 그걸 어겨서 나에게 이런 상황이 닥쳤는지 잠시 생각했다. 결과는 꽝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는 새에, 곰이 어느덧 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내 얼굴보다 큰 앞발을 휘두르려고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신의 계시인지 큰 키의 중년 남성이 가로막고 나타났다. 그리고선 게임에서 봤던 메이스라는 둔기를 휘둘러서 막았다.
빠악!
“우워워워워!”
메이스와 앞발을 부딪힌 곰이 포효하듯 소리질렀다.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주춤거렸다.
“허허허… 이놈이 오랜만에 난리군.”
중년인은 턱을 완전히 감싼 풀비어드수염을 하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인상답게, 그는 곰과 대치를 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별로 무섭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가 큰 곰 뒤쪽의 두 마리 곰을 슬쩍 보았다. 그러더니 입맛을 다셨다.
“새끼 곰들과 나온 어미 곰이었군. 그다지 죽이고 싶지 않은데…….”
곰들도 주춤주춤하며 덤벼들지 않았다. 메이스를 휘두른 남자가 약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나를 봤을 때랑 완전히 태도가 다르다.
한참 대치하는 그때, 숲에서 두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게임 속 모험가 복장을 한 사람들이었다. 키가 170은 되어보이는 호리호리한 여성 하나, 그리고 엘프처럼 귀가 뾰족한 사람 하나.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곰이네?”
“에디나, 잘 왔군. 저 곰들 좀 다독거려줘 봐. 많이 흥분한 것 같아. 큰곰은 나 때문에 살짝 다쳤으니, 부상당한 부분도 봐 주고.”
중년인이 뛰어온 여성들에게 말을 건넸다. 30대는 넘어 보이는 여성은 주머니에서 가루형태의 뭔가를 꺼냈다. 그러더니 후 불어서 바람에 흩날렸다.
곰들에게 가루가 닿았다. 그러자 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온순해졌다.
“새끼가 위협받았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혹시 곰에게 위협이 될 만한 행동을 했어?”
여성은 마치 조련사처럼 곰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다가 의문 어린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물어봤다. 난 저 큰 곰을 위협할 만한 의지도 능력도 갖고 있지 않았기에, 바로 아니라고 부정했다.
“네? 음… 그닥 위협적인 행동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했잖아. 어떤 남자가 엄청 소리 지르는 게 숲에 다 들려서 우리가 뛰어온 건데?”
내 부정의 의사표시는, 작은 곰 두 마리와 놀아주던 엘프 단발머리 여성에 의해 바로 부정당했다. 역시 엘프라서 그런지 동물과 소통하나보다. 남자는 들고 있던 메이스를 다리 쪽에 채우곤, 메고 있던 큰 짐가방을 내려놨다.
일이 어정쩡하게나마 마무리되는 기분이다.
푹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백사장의 모래가 깊게 꺼져 앉았다.
곰을 다독거리던 여자들은 곰을 배웅해주고 돌아왔다.
“그런데 지금 여기 있는 자네는 누군가?”
“원주민이래?”
“원주민이야?”
“제가요?”
서로가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기묘한 의사소통은, 서로 이상함을 감지하고 뚝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