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마왕 만드는 법 (69/72)



〈 69화 〉마왕 만드는 법

“여기요, 지헌씨.”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도 선뜻 열쇠를 건네 주셨다. 이 집 전체 열쇠인지 꾸러미를 들고 2층으로 올랐다.


히키코모리먀낭 방에 처박힌 마왕을 꺼내기 전, 일단은 명분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소희야아. 노올자!”

“안 간다고 조금 전 말했네만.”

“정말로 안 나올 거야?”


“진심으로  나온다고 했잖나.”

“그래? 안 나오면, 쳐들어 가야지!”

말하면서 문고리를 돌렸다. 예상대로 열리지 않았고, 방문 열쇠를 꽂아 넣었다. 열쇠꾸러미가 움직이며 쇠소리를 내자, 안에 있는 마왕이 반응했다.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뭐하진, 너 보려고 문 따는 거지.”

이게 아니었다. 그 옆에 있는 걸 쑤셔 넣었다. 굳게 닫힌 방문을 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다시 마왕이 말했다.

“그만하게. 자네 볼 기분 아니네.”

“나는 너 보고 싶은 기분인데, 좀 다른가봐?”


“……시끄럽네.”

“응, 시끄러워도 할 거야.”


이게 세번째인데, 아직도 맞는 열쇠를 찾지 못했다. 집이 넓어서 문도 많은지, 열쇠가 너무 많았다.

계속해서 열쇠 꾸러미 소릴 내자, 마왕은 좀  강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하게! 어차피 다음에 보면 되지 않나!”


“다음에? 다음에 언제?”

“다음은, 다음은……. 다음일세!”


“난 바로 지금 너 보고 싶은데?”

철컥!


아 열렸다.


맞는 열쇠를 찾았다. 문을 열어  꺼진 방안을 훑어봤다. 저번에 와 본 대로 안은 온갖 2D여자아이로 가득했다. 피규어는 물론이고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여자애 브로마이드, 다키마쿠라, 심지어는이불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이불은 누군가 틀어박힌 것처럼 볼록 솟아 있었다. 만약 이 방에 처음 와본 사람이라면 저 안에 있는게 씹덕 안여돼라고 생각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저 안에 있는 사람이
은발 미녀이자,  여친인 걸 알고 있다.

“소희야! 노올자!”


이불 속에 틀어박힌 그녀는 꼼지락거리며  말을 무시했다. 물론 이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난 아무렇지 않게 밝은 목소리로 말하며 다가갔다.

“놀자니까 왜 그래?”

“…….”


“소희야, 보고 싶어. 응? 이불 치우자.”


“…….”


그녀 이불을 잡고 흔들어봐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이럴 것도 생각했다. 나오지 않는다면,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거기가 좋아? 그럼 나도 들어가도 돼?”

“…….”


“들어오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나도 들어간다?”


“?!”

이불 아래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러자 마왕은 최대한 팔다리를 움직이며 날 막으려 했다. 그렇다고 날 막을 순 없었지만.


조명 없는 어두운 방에, 거기다 이불 속까지 들어가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안엔 평소 마왕에게서 나던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마치 그녀 안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향기가 가득한 이불속에서, 마왕은 태아마냥 몸을 움크렸다.

“…….”


내가 들어왔는데도 계속해서 무시했고, 난 그런 그녀를 껴안았다. 마왕 목덜이에 코를 묻자 냄새의 진원지에 도달했다.


“!”


마왕이 내  안에 안긴 채 몸을 움찔하며 떨었다. 그게 귀엽게 느껴져 안은 팔에 힘을 더했다.

이불 속에 있으니 마치 우리 둘만 남은 느낌이었다. 물론 밖에 어머니도 계시고 세희도 있긴 하겠지만.

일단은 그들의 존재를 의식에서 지우고, 나지막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소희야.”

“…….”


“이래도 내가 널 더럽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

“그리고 있잖아. 내가 널 더럽다고 생각할 일은 절대 없어.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안 그래?”

“…….”

아아, 이러니까 안 나가고 싶어진다. 계속 이러고 싶네.

따스한 이불 속에서 보다 따뜻한 그녀를 안으니 잠이 솔솔 왔다. 만약 그녀가 나가라고 하지 않으면 이대로 있고 싶었다.

“나가게.”

드디어 마왕이 입을 열었다. 비록 부정적인 말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상처받지 않고 안은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은색인 머리에 묻은 머리를 움직이면서  부탁을 거절했다.

“싫은데. 이대로 있고 싶은데.”


“세희와 어머니께서 보지 않나.”

“안 보고 있을 건데, 무슨 소리야.”

“문도 열어두고 말일세.”


“그러면 닫으면 되지?”


“그럼 어서 닫게.”


“어? 닫으면 이대로 있어도 된다는 거야?”


“…….”

또 말이 없었다. 내가  때까지 계속 무시할 생각인 것 같았다.


이불 속에만 있느라 점점 숨쉬기 힘들어졌던 나는 할 수 없이 이불에서 나왔다. 시원해진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나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서랍장을 열었다. 이리저리 열어보면서쭈그리고 있는 마왕에게 질문했다.


“소희야,  추리닝은 어디에 둬?”


“…….”


“어어, 여긴가?”


여긴 속옷서랍이었다.

“아니네, 그럼 여기?”

맞은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건 평범한 옷이 아니라 여자애가 그려진 티셔츠였다. 아마 한정판이나 그런 거로 받은 거겠지.

서랍 문을 닫고 그 옆에 있는 옷장을 열었다. 그러자 평소 그녀가 입고 다니던 추리닝이 옷걸이에 걸려진 채 나열된 걸 발견했다.


“아니 여기 있다고 말해주지.”

“……”

내 핀잔에도 마왕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보이지 않는 걸 알면서도 웃어 주고 추리닝을 하나 잡았다. 평소 그녀가 자주 입던 녹색 추리닝이었다.


그걸 들고 침대로 다가갔다.


“소희야, 나가려면 옷 입어야지?”

“…….”

“에이, 일어나라니까.”

눈치 못 채도록 친절히 말하면서 이불 자락을 잡았다. 이걸 놓으면 건물 옥상에서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꽉 잡은 뒤, 바로 이불을 당겼다.


팍!


“!”


식탁 위 그릇들을 깨뜨리지 않고 식탁보를 빼는 것처럼, 마왕은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을 때 알았지만, 마왕은 얇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잊어버린 티셔츠를.

어쨌든 겨우 이불 밖으로 꺼낸 마왕 옆에 옷을 내려놓았다.


“마왕님, 이제 기침하실 시간입니다.”


그러면서 침대와 그녀 사이에 손을 끼워넣었다.


“@#$%^@!”
당연하게도 그녀가 몸에 힘주며 반항했다. 물론 그녀와 알고 지낸지  됐던 나는 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뺨에 뽀뽀할 것처럼 마왕 얼굴에 머리를 들이댔다. 거기서 헝클어진 은발 사이로 나온 귓바퀴를 입술로 씹었다.

“끼잉!”


강아지같이 귀엽게 신음한 마왕이 몸에 힘을 풀었다. 난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일으켰다. 그녀를 침대 위에 앉힌후 아이 어르는 것처럼 부드럽게 말했다.

“좋아, 소희야. 이제 만세해야지?”


“뭣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며 날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내가 시킨 대로 엉거주춤 팔을 들었다.


“좋아.”

 그녀 옷 아래자락을 잡고, 한꺼번에 들어올렸다.

“꺄앗?!”


다시  번 귀여운 비명이 들여오고 매끈한 상체가 드러냈다. 피부에 닿은 천이라고는 브래지어만 있는 상태를 보니, 저절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최대한 그걸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추리닝 상의를입혔다.


“여기로  넣어. 그래, 이렇게.”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그녀 팔을 들어 억지로 입게  거였다.


찌이익!


“좋아, 이제 바지 입자!”


상의 지퍼를 끝까지 올라고 그녀 얼굴을 쳐다봤다. 아까 처음 문 열어줄 때만 해도 거의 죽을 상이었는데, 칭찬해주고 되도 않는 애교를 떨어서 그런지 조금은 생기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양손을 들어 죽상인 그녀 얼굴을 주물렀다. 부드러운 양쪽 뺨을 밀가루 반죽마냥 주무르면서 아기 다루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유, 우리 소희가 왜 이렇게 죽상일까? 응?”

“…….”

“소희, 그렇게 울지만 말고 웃자. 이렇게.”


양쪽 입가를 엄지로 짚고 억지로 밀어 올렸다. 그러자 얼굴은 죽상인데 입만은 웃고 있는 기괴한 표정이 만들어졌다.


난 그걸 사랑스럽다는 듯이 칭찬했다.

“이렇게 하니까. 우리 소희, 너무 예쁜데? 여신이네. 여신이야.”

“……풋!”


드디어 마왕이 웃었다. 목요일 자취방에서 수갑 열쇠를 잃어버린 걸 안 뒤로 처음 짓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웃음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왕은 자기가 웃은 걸 인식하고는 서둘러 입꼬리를 내렸다. 그녀에겐 잠깐의 굴복이겠지만, 나에겐 승리를 향한 첫단추였다.

그녀가 웃는 걸 보고 나는 더 신나서 그녀를 칭찬했다.

“와, 소희 너무 예쁘다. 진짜로.”

“어떻게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지?”


“이거 어떡하냐. 너무 예쁜데.”


칭찬하면 할수록 마왕이 반항하는 강도가 약해졌다. 결국엔 추리닝 바지까지 입혀줄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좋아. 이제 다 입었으니까 나갈까?”


“……싫네.”

마왕이 점점 자기 주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씻지도 않고 어딜 간다는 겐가?”

게다가 아까처럼 가기 싫다고 하지 않았다.

난 헝클어진 그녀 머리를 이 방에 있던 빗으로 곱게 빗어줬다.


“어딜 가긴, 클라이밍 하러  거라니까.”

“안 씼었네만.”

“거짓말하지 말고.”


“왜 짐을 거짓말쟁이라고 하는가?”

“안 씻었는데 이렇게 예쁘다고? 당연히 거짓말이지!”

“……훗”

이제는 작은 웃음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는 양말을 내가 신겨주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신었다.


“다 입었네.”

녹색 추리닝 차림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흰색 양말. 이제는 거의 평소 보던 마왕과 비슷했다. 하지만 아직 불안전했다. 그녀 눈에 생기가 아직 덜 돌아왔다.


 그녀를 마주보고 섰다. 그리고 그녀 양쪽 어깨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자.

쪽♥


“하, 자네.”

드디어 저 푸른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마왕은 다시 장난스런 표정을 띄며 나처럼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키스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네.”


“@#$%#&^%$#?!”

혀, 혀는  넣는데?!




그래도, 마왕 완성.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