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4화 〉모에모에뀽♥ (54/72)



〈 54화 〉모에모에뀽♥

“자네, 깡패가 이슬이 먹고 싶다고 하네.”

처음엔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싶었다.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지켜보자, 마왕은 웃으며 외쳤다.

“쓰레쉬하게!”

그렇게 쓰레쉬를 픽하는 그녀는 신나 보였다. 유리가 집으로 가니 살판  마왕이었다.
이 판을 시작하기 전, 유리는 집에 저녁을 먹어야 한다면서 피시방을 떠났다. 나랑 같이 나가려 했지만 내가 완강히 거절했고, 그녀는 결국 혼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마왕은 그런 그녀를 비웃듯이 쳐다봤다  후 시작한 첫판에서, 그녀는 처음 사는 아이템으로 여신의 눈물을 골랐다.

“야! 여눈을 가면 어떡해!”

쓰레쉬에세 여신의 눈물은 쓰레기나 다름없는 거였다. 후반엔 쓰일지 몰라도 쓰레기인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런 쓰레기를 산 마왕은 당당했다.

“왜 그러는가! 짐이 하고 싶은 대로 하려는데.”

“그러면  혼자 있을 때 해야지! 랭크전이잖아!”

“과도한 경쟁은 자멸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네.”

“너 혼자 자멸하라고!”

어쩌면 다행일 수 있었다. 누가 그러는데, 사람 5명이 모이면 반드시 1명은 쓰레기라고 했다. 이 판에서 그 1명이 밝혀졌으니 그녀 멘탈만 조심하면 이길 가능성이 있었다.

트위치: 쓰레쉬
트위치: 여눈을  감?
트위치: 던짐 ㅅㄱ

역시 희망을 품는 게 아니었다.  말은 틀린 거였다. 5명 중 1명만 쓰레기인 게 아니라, 1명만 정상인이었다.

그걸 보여주듯이, 던진다는 트위치에게 다른 팀원들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놈은 당당히 타워로 걸어가다 죽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 콩가루 같은 상황에도 난 열심히 판을 이끌어가려 노력했다. 하지만 곧이어 또 다른 아군이 죽었고, 그걸 본 마왕이 키보드로 자음 4개만을 연속해서 쳤다.

이세계섹시대마왕: ㅁㄷㅊㅇ
이세계섹시대마왕: ㅁㄷㅊㅇ
이세계섹시대마왕: ㅁㄷㅊㅇ
이세계섹시대마왕: ㅁㄷㅊㅇ

‘ㅁㄷㅊㅇ’라는 건, 미드 역할을 맡은 아군 팀원과 적팀의 미드 팀원과 실력 차이가 현저하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바로  미드였다.

“야! 뭐해!”

“자네야 말로  하는 겐가! 경쟁에서! 게임이 장난인가!”

“경쟁은 자멸만 불러온다며!”

“그냥 한 말인데 진짜 믿으면 어쩌란 말인가!”

그럼 여눈이나 가지 말던가.

유리가 있을 때와 전혀 달랐다. 날카로운 고성이 오가고 서로 노려보며 사이에 낀 나마저도 기분이 나빠졌다. 그녀가 떠난 지금은 짜증나긴 해도, 즐거웠다.

한동안 게임에 집중하던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왕이 너무 깊게 들어가 죽고, 다시 살아나는  기다리며 입을 열었다.

“어찌할 겐가?”

그녀가 뭘 말하고 있는지 바로 눈치챘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일부러 모른 척 잡아뗐다.

“뭘.”

“유리 말일세. 지금처럼 하루종일 붙어 다니게 할 겐가?”

“……모르겠다.”

“그렇게 대답을 회피하면 짐도 힘들고 자네도 힘들 뿐이네.”

마왕 말이 맞았다. 대답하지 않고 결론을 내지 않으면, 유리는 계속해서 우릴 따라다닐 거였다.

“자네, 바론 잡으러 가세.”

“아, 응.”

유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캐릭터 조작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이동하는 동안 마왕은 말을 계속했다.

“언젠가는 결론을 내야 할 걸세. 짐도 슬슬 지쳐가네.”

“미안해.”

“미안하면 어서 내치게.”

“그러려고 해도, 걔가……”

“그 영악한 년.”

아무래도 오늘 낮일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부담스럽다고 말하자 유리는 유난스럽게 빌며 용서를 구했다. 마치 사람들에게 보라는 듯이.

아아, 전엔 안 그랬는데. 내가 좋아했던 그녀는 안 그랬는데.

나도 그걸 생각하면 한숨만 나왔다. 차마 때릴 수도 없고.

“다음에  그러면 한  때려줄 걸세. 말리지 말게.”

“말리기 싫은데, 말리고 싶다, 야.”

“하나만 하게, 하나만. 자네는 짐과 단둘이 있고 싶지 않은 겐가?”

“뭐?”

방금 들은 말에 놀라 그녀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때 점원이 끼어들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피시방 직원이 쟁반을 들고 찾아온 거였다. 저번에 우리가 시끄럽게 굴었을 때 주의 줬던 여성이었다. 그녀는 주문한 장본인인 마왕 앞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아아, 고맙네.”

마왕은 대충 대답하며 자기 앞에 놓인 그릇 2개를 방치했다. 게임에 집중하고 내게 주지 않길래, 직접 손을 들어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마왕은 자판에서 손을 떼고 내 손등을 때렸다.

찰싹!

“아! 왜! 너 먹을 거였으면 왜 나한테 뭐 먹을 거냐고 물었는데!”

“짐이 직접 주겠네. 기다리게.”

“아니, 그냥 내가 가져갈게. 왜 그래?”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지. 조금만 기다리게나.”

그녀가 말한 대로 일단 기다려봤다. 우리는 바론을 잡다 한타에 참여했고,  다 죽고 말았다. 화면이 회색으로 변하자 마왕은 그릇을 내 앞에 갖다주었다.

“짐을 잠깐 봐줄 수 없겠나?”

“뭔데.”

마왕은 왼손 엄지와 검지 끝을 겹쳐 손가락 하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손을 오므린 입술에 대고 뽀뽀했다.

“쪽, 모에모에.”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더니, 뽀뽀한 손가락 하트를  그릇에 가져다 댔다. 그러더니 거기에 담긴 무언가를 넣는 것처럼 그릇 가장자리를 약하게  번 두드렸다.

“뀽♥”

이제 그녀는 그릇을 내밀며 내게 말했다.

“짐의 애정을 넣었으니 한결 더 맛있어졌을 걸세.”

“……풉!”

결국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차마 큰소리로 웃진 못하고, 마왕에게 고개를 돌린  꺽꺽대며 어깨를 떨었다.

“아아!  그러는 겐가!”

마왕도 자기가 한 게 부끄러운지  어깨를 밀 듯이 쳤다. 하지만 난 여전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웃지 말게! 자네 웃으라고 한  맞네만, 그렇게 웃으라고 한  아닐세!”

“큭큭큭, 아, 미안. 푸흡!”

아무리 참으려 해도 웃음이 나왔다. 마왕이 한 짓이 웃긴 동시에, 너무 귀엽게 보였다. 인터넷으로 봤던 모에모에뀽은 웃기는 동시에 부담스러웠지만, 이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너무하지 않는가! 그렇게 비웃으면!”

“비웃는 게, 아니라! 풉!”

부끄럽기까지 하면, 너무 예뻐 보이잖아!

나는 웃으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맛은 평범한 냉동 볶음밥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먹는 내내 행복했다.

“애정이 들어가 있어서  맛있네!”

이렇게 말하면,

“그러지 말게!  대 맞는 수가 있네!”

부끄러워하는 마왕을 반찬 삼아 먹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내 날 두근거리게 만들던 마왕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주도권을 잡으니 이렇게나 기분 좋을 줄은. 당하는  나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마왕 입장에서 보니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아! 너무 맛있다! 진쫙!”

뻑!

“하지 말라고 했잖나!”

마왕이 참지 못하고 내게 주먹을 날렸다. 어깨를 맞은 나는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가격당한 부분을 손으로 감쌌다. 하지만 웃는  사이로 밥알이 튀어나오는  멈출 순 없었다.

“억, 크흐흐흑……!”

“웃는 겐가, 아니면 우는 겐가? 거 밥알 좀 흘리지 말게!”

“알았, 알았어, 푸흐흡! 흑!”

입가에 묻은 밥알을 먹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행복한 식사가 끝나고 게임을 몇 판 더한 우리는 피시방을 나왔다. 그 뒤 향한 곳은 바로 검도장이었다. 아 참고로 마왕이 쓰레쉬를 했던 판은 졌다.

그녀는 게임에 졌는데도 기분이 좋은지, 양손을 추리닝 상의 주머니에 넣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다 몸을 돌아 뒷걸음치며 물었다.

“언제 한 번 이런 적 있지 않나?”

“뭐가.”

“그저, 무얼 해도 기분이 좋을 때 말일세.”

“기분 좋냐?”

“자네와 함께 있는데 기분 나쁠 리가 없지 않나.”

“그러냐?”

“짐을 믿지 못하는 겐가?”

삐졌는지 마왕이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날 보며 뒷걸음질 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짐이 무얼 하면 믿을 텐가? 한 대 때리면 믿을 겐가?”

“안 믿는다고  했잖아!”

“하하핫! 농담일세! 농담!”

말을 마친 마왕은 다시 몸을 돌려 제대로 걸어갔다. 그러자 묶지 않은 은발이 넓게 펴지며 부채꼴을 만들었다.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허, 왜 그렇게 기분이 좋은 건데?”

“그러게 말일세. 짐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네. 다만 짐작 가는 게 하나 있지.”

“그게 뭔데.”

“자네도 좋아할 걸세.”

“뭐냐니까.”

얘가 이럴 때마다 정상적인 게 없었는데.

불안한 마음에 바로 자취방으로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미 내 주소를 알고 있었기에 난 발을 멈추지 않았다. 도축장으로 걸어가는 소가 이런 기분일까.

그렇게 걷다가 결국 검도장이 있는 건물에 도착하고 말았다. 건물 외형은 어제 왔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1층에 있는 카페와 편의점. 3층 너머로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사무실이 보였다.

나와 마왕은 평소대로 편의점 옆에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도착하니, 거의 매일같이 대련하던 검도장이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다른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상자였다.

“오호호! 왔구먼!”

마왕은 쾌재를 부르며 박스로 다가갔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테이프를 떼는 모습은, 크리스마스날 선물 포장을 뜯는 어린아이 같았다.

“자네! 이거 보게!”

해맑은 얼굴로 상자 안에서 꺼낸 건, 붉은색 권투 글러브였다.

……어? 잠깐만.

“해외배송이라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이리 빨리 오지 뭔가!”

잠깐만 잠깐만.

“자네도 좋아하는 거  알고 있네. 어서 와서 풀어보게.”

“어, 어, 내가 사실 약속이 있어서 그만 가볼게.”

바로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마왕에게 뒷덜미가 잡히고 말았다.

“자네 친구 없는 거 다 아는데 왜 그러는 겐가.”

“아, 아니, 내가 게임 이벤트 때문에 가봐야 되거든?”

“이번 변명은 좀 신빙성 있었네. 그래도 아까와 말이 다르지 않나.”

마왕은 버릇없는 고양이를 데려가는 것처럼,  뒷덜미를 놓지 않고 박스까지 끌고 갔다.

“그리 겁먹지 말게. 짐은 요즘 따라 드는 생각이 들어서 산 것이네.”

“뭐, 뭔데.”

“저번에 자네 주먹질하는 걸 봤네만, 형편없더군?”

“아니, 그래도, 이겼잖아?”

“힘에 기대서 이기면 무슨 소용인가. 기술이 있어야하네. 그래야 아픈 동시에 상처 나지 않게 때려줄 수 있지 않나.”

그녀는  놓지 않으며,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걸로 검도장 문을 열면서 말을 이었다.

“자넬 두드려 패기만 하려고 산 것이 아닐세. 미트도 사뒀으니.”

미트? 미트라면 큰 주걱같이 생긴 장갑이잖아. 훈련할 때 코치가 끼고 훈련생이 때리도록 대주는 거. 그러면 맞진 않고 때리는 것만 연습하는 건가?

넘쳐나는 불신 속에서도 한줄기 신뢰가 피어났다.

“그렇다고 미트만 때리면 심심하니, 가끔씩 짐과 같이 대련도 할 걸세.”

“!”

그걸 들은 순간 충격으로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마왕이 방심한 틈을 타 그녀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했다.

“어딜 가려는 겐가? 엇차!”

퍼억!

“허어억……!”

하지만 마왕은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날렸고,  고통으로 온몸에 힘이 빠져 바닥에 쓰러졌다. 내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과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위를 올려봤다. 마왕은 악마와 같은 얼굴로 당당한 웃음을 지었다.

“걱정말게! 뇌진탕을 대비해 헤드기어도 샀으며, 치아를 위해 마우스피스도 샀다네!”

뇌진탕 오거나 이빨 부러질 때까지 때린다는 거랑 뭐가 달라!

나는 바닥을 기어서라도 이 곳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마왕은 날 검도장 안으로 끌고 가며, 내 실낱같은 희망을 없애 버렸다.

“하핫! 모에모에한 주먹으로 뀽, 하고 때려주겠네!”

“아, 안돼애애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