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마왕은 졸라짱세서 마족중에서도 최강이엇다
“하아, 하아, 더 이상은, 무리일세……”
마왕이 붉어진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안돼. 네가 원한 거잖아.”
나도 거친 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강요했다.
“짐이 잘못했네. 여기서 그만 두면 안 되겠나?”
“안 된다고.”
“이렇게 부탁하네. 아니면 조금만이라도 쉬게 해주게.”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래?”
“아아! 짐은 여기까질세!”
마왕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바닥에 드러누웠다. 하지만 그 행동이 날 더 한계점으로 몰아넣었다.
“여기까지라고?”
말하면서 몸을 그녀 쪽으로 움직였다.
“누가 여기까지래?”
“제발, 제바아알……!”
힘없이 벌린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입술 사이로, 나는 떡볶이 떡을 들이댔다.
“읍! 으읍!”
마왕은 내 속셈을 알아채고 황급히 입을 닫았다.
“입 벌려! 이거 다 먹어야 될 거 아냐!”
“싫, 우웁!”
거절하려 입을 벌리는 순간, 놓치지 않고 떡을 집어넣었다.
“하헤!”
자네!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입에 들어간 떡 때문에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그녀는 눈물젖은 눈으로 날 노려보다 떡을 씹었다.
“우물우물……꿀꺽! 크아아아아아!”
떡볶이를 씹어 삼킨 마왕이 울부짖었다. 마왕은 졸라짱세서 마족중에서도 최강이엇다. 아니 최강은 맞지만, 투명한 드래곤이 아닌 그녀는 크게 울부짖으며 몸을 일으켰다.
“쿨피스으으으으으!”
떨리는 손으로 밥상 위에 올려진 음료수를 집었다. 하지만 그 종이팩은 비어 있었고, 마왕은 무게감으로 그걸 알았지만 한방울이라도 마시려 애썼다.
“아아……!”
마왕은 종이팩을 거꾸로 들고, 그 아래에서 입을 벌린 채 음료수가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생명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날 향해 소리쳤다.
“어떤 생각으로 쿨피스를 다 먹은 겐가!”
“네가 다 처먹었잖아!”
말도 안 되는 궤변을 외친 그녀에게 소리쳤다.
약 10분 전, 학교에서 내 자취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방문 앞에 놓인 흰색 비닐 봉투를 발견했다. 그 안에 든 건 학교에 오기 전 마왕이 시켰던 떡볶이였다. 우리는 그걸 점심 삼아 먹기 시작했지만, 그녀가 맵기를 최대로 해놓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떡볶이 한 점에 쿨피스 반잔씩 먹던 그녀가 내게 따졌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겐가, 자네는!”
“아니 네가 다 처먹었다고!”
“지금은 봐줄 테니 다음엔 그러지 말게!”
“너 내 말 안 듣지!”
“정말이지……!”
마왕은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그러더니 싱크대에 달린 정수장치에 입을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야! 컵으로 받아 마시라고!”
“꿀꺽꿀꺽꿀꺽!”
내 말은 듣지 않고 물 마시는 것에만 집중했다. 마치 사막에 하루 종일 있던 사람처럼 기를 쓰고 마시는 그녀에게 말했다.
“냉장고에 우유 있어! 그거 먹든가!”
“꿀꺽, 커허어! 왜 그걸 빨리 말하지 않는 겐가!”
“말할 틈이나 줬냐!”
마왕은 은발을 휘날리며 냉장고로 달려갔다. 거의 뜯을 것처럼 냉장고 문을 연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유팩을 잡았다. 손을 떨며 우유팩 주둥이를 여는데, 저번에 새로 산 거라 잘 열리지 않았다.
“왜 안 뜯어 놓는 겐가!”
“그것까지 시비냐!”
“에잇!”
찌익, 탁!
난 신경쓰지 않고 그녀는 손으로 우유팩 입구를 잡아 뜯었다. 내용물이 넘쳐 흘러 검은 추리닝에 튀었지만, 마왕은 서둘러 우유를 마셨다. 한동안 거기서 입을 떼지 않다가, 여자애답지 않은 감탄사와 함께 우유팩을 세웠다.
“커허! 이제 살 것 같구만!”
입가와 가슴팍에 우유를 흘린 채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고, 난 아까 두근거렸던 거에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여자한테 두근거리다니. 유리한테 반한 것도 그렇고, 내가 여자 보는 눈이 너무 낮은 걸까?
마왕은 팔을 들어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으며 내게 따졌다.
“아니, 자네는 왜 짐이 싫다는데 그런 걸 입에 넣는 겐가?”
난 찢어진 우유팩을 잡은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
“아니, 네가 시킨 거잖아. 나는 못 먹어도 너는 다 먹어야지.”
“다 자넬 위해서 시킨 거 아닌가! 실연에 아파하는 자넬 위한 거였건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찼다는 얘기하기도 전에 네가 시킨 거잖아!”
“그래도 마음은 좀 나아지지 않았나.”
그렇게 물으며 밥상 앞에 앉았다. 난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를 보며, 내 자리로 돌아갔다.
확실히 그녀 말이 맞았다. 입 안을 강판으로 갈아버릴 듯한 매운맛을 맛보고 나니, 그날 비상계단에서 들었던 절규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였다.
“제발 깨끗하게 먹으면 안 되겠냐?”
“음? 자네는 짐이 더럽다는 겐가!”
떡볶이와 같이 온 튀김을 먹던 마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푸른 눈을 크게 뜬 그녀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주위를 둘러봐!”
바닥엔 그녀가 흘린 떡볶이 국물과 튀김 부스러기, 우유로 더러워져 있었다. 게다가 싱크대엔 물이 튀어서, 닦지 않으면 물때가 낄 거였다.
마왕은 튀김을 씹으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내게 말했다.
“에이, 사내놈이 쩨쩨하게 그런 걸 신경 쓰나.”
“내 방이니까 신경 쓰는 게 아닐까?”
“그러지 말고 이거나 먹게. 자, 아~ 하게.”
갑자기 그녀가 튀김을 나무젓가락으로 집어서 내게 내밀었다. 난 다가오는 고구마 튀김을 보며 먹을지 말지 고민했다. 하지만 마왕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고민하는 사이 벌어진 내 입 사이로 튀김을 목젖까지 쑤셔 넣었다.
“어! 커헉! 야!”
“짐이 먹여주니 더 맛있게 느껴진 겐가?”
“너무 깊히 넣었어! 토할 뻔했잖아!”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건만.”
뻔뻔한 마왕은 내 입에 들어갔던 젓가락으로 오징어 튀김을 집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서 희소성이 높은 오징어 튀김을 보고, 난 그녀를 멈춰세웠다.
“잠깐만.”
마왕은 푸른 눈동자를 움직여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더니,
“……냠.”
“야! 잠깐만이라고 했잖아!”
“너무 늦게 말하지 않았나. 다음부턴 빨리 말하게.”
“오징어 튀김은 그게 마지막이었거든!?”
눈을 크게 뜨며 화내는 내게, 그녀는 인자로운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인생에 있어 마지막은 없네. 새로운 시작만이 있을 뿐이지.”
“시끄러워!”
뻔뻔한 개소리에, 내 어깨 위에 올린 마왕의 손을 쳐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찢어진 갈색 종이봉투 안을 확인했다. 기름으로 인해 번들거리는 안쪽엔 고구마튀김, 당면 튀김정도밖에 없었다. 물론 그게 맛없는 건 아니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튀김 중에 가장 아래에 위치하는 것들이었다.
오징어튀김과 새우튀김, 만두튀김만 먹었던 그녀를 떠올리며 투덜거렸다.
“그새 다 처먹었냐.”
“숙녀에게 처먹었다는 게 뭔가. 자, 이거라도 줄 테니 화 풀게.”
마왕은 그렇게 말하며 젓가락으로 집은 무언가를 내밀었다. 난 그걸 받아 먹으려다 그게 새빨간 양념이 묻은 어묵인 걸 알아채고 머리를 뒤로 뺐다.
“안 먹어!”
“짐이 기껏 주려고 했더니만.”
“죽이려고 했던 거겠지!”
“칫……!”
내 말에 그녀가 연분홍색으로 돌아온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난 그게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게도 보였다.
……내가 미쳤지.
“줘봐! 헙!”
아직도 내민 그녀의 젓가락을 깨물어 어묵을 먹었다.
자기가 내밀었던 어묵을 먹자, 마왕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맛있는가?”
“겁나 매워!”
맵다는 맛을 넘어서, 고통만이 느껴졌다. 어묵이 닿는 곳마다 마치 그 자리를 사포로 깎아 내리는 것 같았다. 겨우 씹고 삼켜도, 양념은 목구멍과 식도에 날카로운 발자국을 남겼다.
“크어어억! 우유 내놔!”
마왕이 들고 있는 우유를 뺏어서 내 입에 들이 부었다. 입가로 우유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난 이 고통을 없애는 것에 집중했다.
“푸하아! 이제 살겠네!”
아까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감탄사를 내뱉으며 우유팩을 내렸다. 마왕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자네에 대한 짐의 마음이네만,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그게 네 마음이었냐?”
왠지 더럽게 맵더라.
나는 밥상에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더 이상은 못 먹겠다.”
어떻게든 참으면서 절반 정도까진 먹긴 했는데, 쿨피스도 다 떨어졌고 우유만으로 매운 맛을 참기엔 부족했다.
마왕은 계속해서 남은 튀김을 먹으면서 물었다.
“그럼 버릴 겐가?”
“버리다니. 얘가 음식 아낄 줄을 몰라. 아프리카에선 이것도 못 먹어서 굶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행복함을 느낄 정도로 짐은 얄팍한 인간이 아닐세. 그리고 그 아이들도 이걸 먹으면 못 먹겠다고 버리지 않겠나?”
“그러긴 그러겠네.”
나는 가볍게 웃으면서 음식을 씹는 마왕을 바라봤다. 그녀는 입가에 튀김 부스러기를 묻힌 채 다음 먹을 튀김을 집고 있었다. 그게 칠칠 맞아 보여서 난 마왕을 불렀다.
“뭘 그렇게 묻히고 먹냐. 입가에 뭐 묻었다.”
“음? 고맙군.”
그녀는 우유를 닦았던 소매를 들어 입가를 훔쳤다. 하지만 위치가 맞지 않았는지 부스러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니, 거기 말고 다른 데.”
“여긴가?”
“그 반대쪽.”
“음?”
“……가만 있어봐.”
떡볶이 올 때 같이 왔던 티슈를 집어, 밥상 위로 몸을 기울였다. 그 상태로 손을 뻗어 마왕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거친 티슈 너머로 부드럽고 탄력 있는 입술이 느껴지자, 나는 그녀에서 눈을 돌렸다.
“흠, 고맙네.”
티슈를 치우니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연분홍빛 입술이 움직였다. 마왕이 날 보면서 웃고 있는 걸 알아채자 얼굴이 뜨거웠다.
난 얼굴이 빨개진 걸 들킬까봐, 황급히 젓가락을 집어 떡볶이를 먹었다.
“……!”
또다시 몸부림치면서 우유를 마셨다. 마왕은 그런 날 보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들키지 않았길 바라면서, 빈 우유팩을 놓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빨리빨리 먹어! 이따가 나 어디 데리고 간다며!”
“부끄러운 걸 그렇게 티내지 않아도 괜찮네만.”
“뭐가!”
“짐은 마왕일세. 왕으로서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다네.”
“시끄러워!”
매운 맛이 가지지 않아서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능글맞게 웃는 마왕을 보고 싶지 않아서 건들지 않을 떡볶이 통을 들어 싱크대로 갔다. 싱크대 안에 놓인 음식쓰레기용 비닐봉투에 떡볶이를 부으며 소리쳤다.
“빨리 먹고 빨리 치워!”
“알았네. 알았어.”
체념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난 그녀가 웃고 있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떠오르는 얼굴을 애써 지워가며 떡볶이를 담았던 플라스틱 통을 물로 헹궜다. 그 사이, 물소리 말고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마왕이 다 먹고 치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정리가 끝날 때까지 그녀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이제 이걸로 끝인가?”
마왕이 종량제 봉투를 묶으며 물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 앉아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응, 대충은 끝났네.”
바닥에 흘렸던 음식 부스러기를 닦고, 플라스틱 통도 분리수거가 끝났다. 오늘 아침에 버렸으니 아직은 안 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봉투를 현관까지 갖다 놓은 마왕은, 침대까지 달려와 그 위로 몸을 던졌다.
“어휴! 이제 좀 쉬어야 겠구만!”
침대 반동으로 위아래로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무슨 밥 먹고 바로 눕냐.”
“밥이 아니라 떡볶이였지 않나.”
“그거나 그거나. 그런데 어디 간다며. 안 가게?”
“흐음.”
마왕은 몸을 돌려 이불 위로 엎드렸다.
“어차피 나중에 가도 괜찮네. 조금 늦는다고 해서 쇼핑몰이 금방 문닫을 곳은 아니지 않나.”
“쇼핑몰? 쇼핑하게?”
“그렇다네. 그 꼬라지로 짐의 부모님께 보일 수 없지 않나.”
“……내 꼬라지가 뭐 어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