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이게 바로 꼬들면이라는 거야! (32/72)



〈 32화 〉이게 바로 꼬들면이라는 거야!

웅웅! 웅웅! 웅웅!

짧게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에 잠에서 깼다. 평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팔을 움직여 폰을 집었다. 화면엔 8:00이란 숫자가 뜨면서 지금이 내가 일어날 시각인 걸 알리고 있었다.


잠에서  깬 머리를 굴리면서  내가 알람을 맞춰 놓은 거지 생각했다. 평소 아침보다 안 돌아가는 생각을 쥐어짜며 도출해  답은, 오늘 아침에 있을 강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바로 일어난 뒤, 씻고 대충 밥 먹은 다음에 나가도 여유시간이 15분이 남았다. 게다가 5분 정도는 늦어도 교수님은 지각으로 쳐주지 않을 것이었다. 즉, 20분을 더 침대에서 빈둥거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핸드폰을 조작해서 알람이 울리게 만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지각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그건 그때의 나였다. 아직 닥쳐오지 않은 미래의 나를 동정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우움……”


침대에 나 말고 누가 있는 거 같은데?


벽 쪽으로 돌아누웠던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살며시 몸을 돌려 신음소릴 낸 장본인을 쳐다봤다.

마왕은 날 보며 돌아 누운 채 자고 있었다. 그녀는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침 흘리는 입가를 오물거렸다.

“우무우뭉, 망.”

덕분에 졸음이 완전히 가셔버렸다. 얘가 왜 나랑 같이 자고 있는 거지, 생각하면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마왕 너머로 어지럽혀진 밥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닭뼈가 쌓인 치킨박스, 안주로 먹다 남은 과자 봉지, 맥주 캔들이 밥상위에 널린 걸 발견했다. 그걸 보자 어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냈다.

어제 퇴원을 축하한 기념으로 마왕과 치맥 파티를 벌였다. 그거 부터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마왕이 갑자기 폭탄주(내부자들 이경영 버젼)를 제조하지 않나, 큰소리로 노랠 부르지 않나, 나중엔 경찰까지……  마시고 할 수 있는 민폐는  부렸다. 그것 때문에 난 별로 마시지도 못하고 날뛰는 그녀를 말리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 올 때 그대로 추리닝을 입고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거기까지 나아가 버렸다면……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었다.


숙취와 스트레스로 아픈 머리에 손을 얹고, 마왕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침대에서 내려갔다.

차박!


“!”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위로 발을 디디고 말았다. 솟아오르는 짜증을 참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내가 밟은 액체는 먹다 남은 캔맥주에서 흘러나온 맥주였다.

“하아……”

다시 한  마왕을 쳐다봤다. 침대 위에서 태아처럼 쪼그려 자는 그녀를 당장이라도 깨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동안  도와줬던 것도 있었고, 싸우면 이길 수 없기에 난 말없이 화장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로 가는 동안, 나는 더럽혀진 방바닥을 내려봤다. 바닥엔 맥주캔들로 가득했다. 더군다나 그 사이로 닭 뼈나 과자 부스러기들이 쌓여 있어 짜증을 유발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고, 그나마 깔끔한 곳을 밟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더러워진 건 세면대 위에 두었던 비누가 바닥에 떨어진 것 뿐이었다.


아 이건 내가 한 거지.


나는 허리를 굽혀 비누를 원래 제자리에 갖다 놓고는, 텁텁한  때문에 양치를 시작했다. 그러다 습관처럼 가져오던 폰을 두고 온  기억나, 양치하면서 화장실을 나갔다. 폰을 줍기 위해 침대쪽으로 걸어가는 데, 마왕이 몸을 일으킨 게 보였다.

그녀는 헝클어진 은빛 머리를 긁적이면서 날 쳐다봤다. 게슴츠레 뜬 눈을 보며  양치하느라 어눌한 말투로 물었다.


“이허났야?”

“……음”

마왕은 짧은 신음소리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다 일어나려 한 건지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가,


“읍!”

갑자기 푸른 눈을 크게 뜨면서, 입덧하는 것처럼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심상치 않은 모습에 난 칫솔을 입에서 뺐다.


“왜 그래?”

“우웁!”


그녀는 대답대신 침대에서 빠른 속도로 일어나며 날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밀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쾅!

문이 힘차게 닫히고 난 뒤, 안에서 그녀가 괴로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욱, 우웨에에에엑! 우웨에엑!”

남자가 있는 자취방에서 여자가 내선 안 되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이건 괜찮았다. 어제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숙취로 구토 안 하는 게 이상한 거였다. 하지만 내용물이 변기 속으로 다이빙하면서 내는 첨벙 소리가, 그게 정말 괴로웠다.


양치질하기 힘들 정도로 괴로워서, 한 손에 칫솔을 든  양손으로 싱크대에 기댔다.

도대체 내가  저런 여자애한테 두근거린 거지. 아, 자괴감 든다……


몇 분 동안 구토소리가 이어지고, 샤워기 소리가 들린 뒤 문이 열렸다.

“아, 미안하군.”

마왕이 숙취로 힘들었는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에게 한마디 하려고 거품투성이인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마왕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막으며 문을 닫았다.


쾅!

“우에엑! 우웨엑! 웩!”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싱크대에 나오는 수돗물로 양치를 마쳤다. 입을 헹구고 칫솔까지 씻자, 다시 마왕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미안하게 됐네. 어제 먹은 치킨이 체했나 보군.”

“뭘 체해! 체한 게 아니라 숙취겠지!”


참다못해 그녀에게 소리쳤다. 화난 동시에 어제 마실 때와 달리 초췌한 얼굴을 한 마왕이 걱정됐다.  싱크대에 있는 깨끗해 보이는 머그잔을 들어, 싱크대에 설치된 정수기 물을 담아 건넸다.

“자.”

“고맙네. 꿀꺽, 꿀꺽, 꿀꺽.”

마왕은 어제 맥주를 들이켤 때처럼 한 번에 잔을 비웠다.

“캬아! 자네의 그 상냥함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구만?”


상쾌한 감탄사와 함께 잔을 내리며 그녀가 웃어 보였다.

아, 젠장. 방금 전까지 토하는 소릴 들었는데 왜 지금 두근거리는 거지. 예뻐서 그런 건가? 그런 건가?


나는 마왕이 내민 잔을 받아 들고 다시 물을 채웠다. 그렇게 물을 마시니, 내가 얼마나 갈증 났던 건지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녀가 했던 것처럼 한 번에 잔을 비우고 물을 담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왕이 컵을 뺏었다.

“야!”

“짐 한  마시고 자네  번 마셨으니, 이제 짐 차례 아닌가.”

반박하려는 사이 마왕은 컵에 입을 댔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투덜거리며 다른 컵을 잡았다.

그렇게 갈증을 채운 우리는 빈 잔을 싱크대 위에 내려놨다. 나는 마왕을 보면서 강의에 대해 물었다.


“넌 오늘 강의 없어?”

“오늘 말인가?”


그녀는 대답하며 고민하는 듯 입술을 오므렸다.

“으음, 오늘은 휴강일세.”


“좋겠네, 난 이따 강의 있는데.”


“그럼 자네도 휴강하게. 그러면 되지 않나.”


“뭐?”

순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마왕은 오히려 그것도 모르다는 얼굴로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는 겐가? 자체휴강하란 말일세.”


“그냥 빼먹으란 소리잖아!”

“왜 그런가. 원래 대학생의 본분은 자체휴강 아닌가.”


“뭔진 몰라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하핫! 그 농담 재밌었네!”

“농담 아니거든?”


“그렇게 화내지 말게나.”


마왕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맥주캔 사이를 지나 침대에 앉았다.


“대학에선 자율성이 강조되지 않나. 한두번 빠진  정도는 괜찮을 걸세.”

“이미 빠졌거든? 오늘 진단서 가져가서 병결처리 해야 돼!”

“바로 해야 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번주 내로 하면 될 것을.”


“시끄러워! 그냥 오늘 할 거야!”

“그럼 그렇게 하게.”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말한 그녀는 침대 위에 쓰러지듯이 상체를 눕혔다. 그러더니 손을 움직여 자기 폰을 집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하는 마왕에게 말했다.


“어쨌든  나갈 거니까, 나 씻는 동안에 방 좀 치워 놔라.”

“에엥? 짐이 말인가?”


내 말이 마왕이 날 향해 억울한 듯이 입꼬리를 내린 얼굴을 보여줬다. 그런 뻔뻔한 모습에 나는 어이없어서 외쳤다.

“당연히 너지!  취해서 시끄럽게 한 거 기억 안 나냐?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당장 치워!”

“그렇다면 지금 당장 쫓아내 주게!”

“뭐?”

“그러면 안 치워도 되지 않나.”


“아 좀! 나 씻고 올 테니까 그동안 치워!”

그렇게 외친  난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건, 물을 내리지 않은 변기였다.

“물  내리냐아아!!”

“자네가 내려주면 되지 않나!”

“아 좀!”

나는 화내면서 변기 레버를 내렸다. 내려가는 변기물을 보며, 아무리 예쁜 미녀라도 속에 들어있던 건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엔 문을 닫고, 문고리 옆 작은 핀을 눌렀다. 마왕이 쉽게 엿보지 못하게 문을 잠그고 샤워를 시작했다.


샤워하는 사이엔, 놀랍게도 마왕은 날 건들지 않았다. 노크하면서 분리수거에 대해 물은  전부였다.

가뿐한 마음으로 샤워를 마친 후, 로션을 바르고 화장실을 나왔다. 내가 샤워한 사이 제대로 청소했는지 바닥에 맥주캔은 보이지 않았다.

“나왔는가?”

밥상 위에 있는 치킨 박스를 정리하며 마왕이 물었다.


“자네 샤워하는 동안 아침 준비하고 있네. 조금만 기다리게.”

아침밥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동침(만)한 상대가 차려주는 아침밥이었다. 그런데 난 그런 그녀한테 치우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중얼거리며, 마왕이 턱짓한 방향을 봤다.

“그런 거 안 해도 되는……”

인덕션 위에 냄비가 수증기를 내뿜는  보였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냄비 뚜껑을 열자, 아무 것도 없는 맹물이 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냄비 옆엔 컵라면이 그제서야 눈에 띄었다.


역시 마왕은 마왕이었다. 애초에 음식을 할 만큼 내가 샤워를 오래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나는 실망한 기색을 숨기며 조용히 뚜껑을 닫았다. 마왕에게 내색하지 않고 침대 밑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거기서 나갈 옷들을 챙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간단한 청바지에 맨투맨이라 갈아입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밖으로 나오니 마왕이 컵라면에 물을 붓고 있었다.

“다 갈아 입었나? 그럼 앉아서 기다리게.”

그 말을 듣고 밥상 앞에 가서 앉았다. 마왕이 컵라면을 가지고 오길 기다리는 사이 깔끔해진 방을 둘러봤다.

아까 샤워하러 들어가던 때보단 확실히 깔끔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던 맥주캔들은 커다란 비닐 봉투 안에 담겨서 정리되었다. 부스러기는 남아 있더라도, 바닥에 엎질러진 맥주웅덩이도 깨끗하게 닦여 있는  발견했다.

“자! 가져왔네!”


나는 작은 컵 컵라면을 양손에 들고 온 마왕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잘 치웠네?”

“당연하지 않은가. 누가 치웠는데.”

마왕은 으스대면서 내 앞에 컵라면을 내려놨다. 그러더니 원래 있던 쇠젓가락까지 컵라면 옆에 두었다.

마치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주는 아내 같았다. 안 그래도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그녀가 밥을 차려주니 더 예쁘게 보였다.

“……”


“음? 왜 그러는 겐가?”

내가 말없이 가만히 보고 있자 마왕이 푸른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뭘 그렇게 쳐다보는 겐가?”

“아니 너무 예뻐서. 어?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없이 쳐다보다가 그만 속마음을 말하고 말았다.

나는 얼굴이 뜨거워져서 얼버무리는 반면, 마왕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내게 웃어 보였다.


“그렇지? 짐이 예쁘긴 하지? 아하하하!”

마왕이 통쾌하게 웃어댔다.  부끄러운  숨기려고 컵라면 뚜껑을 벗기며 말했다.


“지금 라면 다 익은  아냐?”


“방금 물 넣었네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네. 진실을 말한 것이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지 않은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어 면발을 쑤셨다. 그녀 말대로 익지 않아서 딱딱했다. 난 그런 걸 무시하며 익지 않은 면을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그런  보며 마왕이 말했다.

“것보게. 면이 하나도 안 익지 않았잖나.”


“시끄러워! 이게 바로 꼬들면이라는 거야!”


“하하핫! 그런 걸로 해두지!”

그녀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라면 먹고 있는 날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부끄러운 나머지 라면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순식간에 컵라면을 먹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 간다.”

“에에, 가는 겐가? 어찌 짐처럼 자체휴강하지 않고?”

“안 한다고.”

“이렇게 예쁜 짐과 단둘이 있을 기회를 잃어버리는 구만?”


“시끄러워!”

난 침대 서랍에서 양말을 꺼내 신었다. 책상 옆에 있는 가방을 집고, 책상 위에 던져둔 교재 중에서 오늘 있을 강의에서 필요한  찾아서 넣었다.

 사이 컵라면을 먹던 마왕이 물었다.

“혹시 오늘 오전 강의 끝나고 또 강의 있는가?”

“아니? 왜?”

대답하면서 싱크대로 갔다. 거기에 둔 칫솔을 집고, 싱크대에 왜 있는지 모르는 치약을 집어 양치를 시작했다.

“혹시 오늘 아무  없다면 말일세. 후루루룩!”


마왕은 컵라면 국물을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같이 쇼핑이나 가세.”

“쇼핑? 그건 왜?”

“뭐, 그건 그때 가서 보지. 자네에게 나쁜 일은 아닐 걸세.”

얘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좋은 일이 없었는데.

그녀를 의심하며 양치를 마쳤다. 이제 완전히 나갈 준비를 마친 나는 가방을 메고 현관으로 향했다. 신발을 신는데 마왕이 먹다 말고 일어나 내게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은발을 흔들리며 다가오던 그녀는 내 앞에 멈추며 말했다.

“가면서 그 쓰레기 좀 버리게.”

맥주캔으로 가득 찬 쓰레기 봉투를 집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나가면서  조심하게. 사탕 준다고 따라가지 말고.”


“내가 무슨 심부름 가는 어린애냐?”

“짐과 친구라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알았나?”

“시끄러워!”


“아! 그리고!”

갑자기 마왕이 팔을 벌리며  껴안았다.  그 행동에 놀라서 몸을 굳혔다.

작은 몸이 내 품에 들어오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게다가 씻지 않았을 건데, 내 턱밑에 있는 은발에서 달콤한 그녀의 향기가 올라왔다.

“자.”

 얼굴이 뜨거워질 만큼 껴안던 그녀가 날 풀어줬다. 마왕은 숙취가 아직 안 풀렸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푸른 눈동자로 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이러면 예쁜 새댁 같은가?”

아까 그 소릴 들었고,  내용물을 봤는데도,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아, 자존심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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