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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소주에 단풍잎 그려졌다고 단풍맛 나는 겐가? (31/72)



〈 31화 〉소주에 단풍잎 그려졌다고 단풍맛 나는 겐가?

 스토리는 someday 이전의 시간대입니다. 아직 사귀기 전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치킨이 먹고 싶나?”
마왕이 내 침대 위에 엎드려 뒹굴거리며 물었다. 나는 책상 앞 회전의자에 앉은 채 생각했다.
“음~, 아무거나?”
“그렇게 말하면 정말 아무거나 시키겠네. 메론맛 치킨 괜찮은가?”
“아니, 그거 말고.”
“딸기맛은 어떤가?”
“과일맛 빼고 아무 거나.”
“그렇다면 민트초코 치킨이군?”
“그런 게 진짜 있긴 하냐?”
“당연히 있으니까 말하는  아니겠나. 그런데 지헌이여, 가만히 있을 순 없는가? 정신사납네.”
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회전의자에 앉은 채 발을 움직여 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바닥을 디뎌 멈춘  마왕에게 사과했다.
“미안, 심심해서.”
“짐과 있는데 심심할리가 있나. 같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 즐겁지 않나.”
“같이 있는 것 자체만으로 정신 사나운데.”
“뭣이?”
“농담이야.”
농담이라고 했는데도 마왕은  향해 베개를 던졌다. 나는 날아오는 베개를 잡고 쿠션처럼 껴안았다. 그녀가 베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 안 나던 향기가 풍겼다. 장본인이 바로 앞에 있는데 냄새를 맡기 좀 뭐해서 책상에 올려 놨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왕은 긴 은발을 침대 위에서 늘어뜨리며 뒹굴거렸다. 그러다 상체를 일으켜 내게 재촉했다.
“빨리 정하게. 퇴원 축하하려고 온 거 아닌가.”
그녀 말이 맞았다. 마왕이 내가 퇴원한  축하하기 위해 내 자취방에 왔다. 실은 여기 놀러 올 구실을 찾은 거겠지만.
어쨌든   먹을지 고민하다가, 뭔가 생각난 게 있어서 물어봤다.
“너 다이어트하는 거 아니었냐?”
마왕에게 이끌려 신나게 달린 날, 그녀는 자신이 다이어트하는 중이고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일어났던  보면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마왕은 검은 추리닝 상의 주머니에 한 손을 꽂아 넣고 대답했다.
“자네와 함께 있으면 항상 뭘 먹고 싶어서 말이지. 게다가 제대로 운동하고 있으니 걱정말게.”
“그럼 됐고.”
“게다가 퇴원도 했으니, 자네도 같이 운동할 때가 되지 않았나. 내일부터 시작할 것이네.”
“뭐?”
“왜 그런가? 한동안 다치는 바람에 하지 못했지 않나. 그럼 해야지.”
나는  하겠다는 말을 못했다. 차라리 마왕과 하는 운동이 힘들기만 하고 도움이 안 됐다면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칼에 베이고 차에 치이더라도 금방 낫는 건, 그녀가 이세계에 있었을 때의 힘을 일깨워줬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대신 살살 좀 해주라. 너랑 할 때마다 아파 뒤질 것 같아.”
“음? 자네는 그런 취향이 아니었던 겐가?”
“아니거든!”
“하핫! 농담일세. 이제 잡담은 그만하고 치킨이나 골라보세나.”
“그냥 반반으로 시켜. 반반으로.”
“흠……”
 말에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며, 주머니에서 빼낸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워낙 치킨 종류가 많아서 말이지. 후라이드와 양념만으로 치킨을 논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네. 치즈인지, 양파인지, 불닭소스인지, 종류가 넘쳐나다는 말일세. 무슨 반반을 할텐가?”
“그냥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하자. 응?”
내 애원에 마왕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
“알았네! 자네 요청대로 반반으로 시키지! 그럼 이제 브랜드를 어디로 할지 골라보세나!”
“그냥 시켜! 아무데나!”
“그런 안일한 대응으로는 요즘 치킨 대란 속에서 살아남지  할텐데?”
“그냥 시키라고! 좀!”
“하핫! 알았네! 알았으니 그만 화내게.”
그녀는 경쾌하게 웃으면서 폰을 조작했다. 주문을 완료했는지, 마왕은 침대에 거의 머리를 박듯이 누웠다.  바람에 달콤한 향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다.
나는 최대한 그걸 의식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의자에 앉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왕은 고개를 들어 계속해서 여기에 앉아있는 날 보고는, 다시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거기에만 있지 말고 침대로 오게. 같이 눕게나.”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되서 바로 거절했다.
“됐어.”
“그러지 말게나. 짐이 여기 올 때부터 계속 거기에만 앉아 있지 않았나. 허리도 아플 건데 어서 오게.”
“안 간다고.”
“왜 그러는 겐가. 같은 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적도 있거늘.”
“그건 맞는데, 말  제대로 해라! 좀!”
“아하핫! 농담인데 뭘 그리 반응하나. 아니면, 설마!”
갑자기 마왕이 외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눈물을 훔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꼈다.
“짐의 순결을 빼앗”
“미쳤냐!”
그녀가 말을 마치기 전에 바로 끼어들었다. 만약 누군가 들었다면 그날 마왕처럼 경찰차에 타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반응에 마왕은 천연덕스럽게 웃고는 손사래를 쳤다.
“깔깔깔, 뭘 그렇게 정색을 하는 겐가. 그러지 말고 가서 맥주나 가져오게.”
“뭐? 네가 가져와. 나 여기 주인이거든?”
“어차피 자가도 아니고 월세지 않나. 게다가 짐은 손님이라네. 게다가, 치킨과 맥주를 누구 돈으로 산 건지 잊은 겐가?”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요!”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냉장고로 향했다. 그런 날 보고 마왕은 흐뭇한 반응을 보였다.
“음, 난 자네가 용사 같지 않다는 그런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네.”
“시끄러워. 용사 잘린지가 언젠데.”
그렇게 말하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마왕이 사온 각양각색의 캔맥주 중에서 눈에 띄는 거 2개를 골랐다. 양손에 하나씩 든 채 발로 냉장고를 닫은 후, 오른손에  걸 침대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내밀었다.
“자.”
“……”
“왜.”
그런데 받기는 커녕 멀뚱멀뚱하니  얼굴만 보고 있는 것이었다. 청량한 푸른 눈동자가 날 뚫어지게 바라보자 부끄럽기도 해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뭐가 문젠데?”
“자네는 레이디에 대한 기본이 아주 안 되어 있군.”
“뭐?”
“이럴 땐 캔을 따서 줘야 되지 않나. 연약한 숙녀에게 그런 거친 일을 맡기다니. 흠~!”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성인 남성을 발로 차서 피투성이가 되게 한 숙녀가 세상에 어디 있지?
하지만 싸우면 내가 지기에, 나는 캔을 하나 내려놓고 마왕에게 권했던 캔맥주를 따서 건넸다.
“자.”
“호오~”
이번엔 흥미로운 듯이 눈을 빛내며  쳐다봤다. 그 눈빛이 살짝 부담되기도 해서 긴장한 상태로 물었다.
“왜.  왜. 이번엔 뭐가 문젠데.”
“아무 것도 아닐세. 진짜로 해줄 줄 몰라서 말이지.”
마왕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내가 따준 캔맥주를 받아들었다. 내가 침대 위에 두었던 맥주를 집는 사이, 그녀는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꿀꺽! 캬아! 이 맛이로구만! 지헌이 따줘서 더 맛있구만”
입에 떼지 않고 술을 마시던 마왕은 요란하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시끄럽게 보이면서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말없이 캔을 따고 맥주를 마셨다.
“꿀꺽, 꿀꺽, 음?”
술맛이 이상해서 마시다 말고 캔을 입에서 뗐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하진 않았는데 평범한 맥주라면 나지 않을 복숭아 향이 났다. 마치 맥주에 복숭아맛 음료수를 섞은 맛이었다.
나는 복숭아가 그려진 맥주캔을 살피며 마왕에게 물었다.
“이거 뭐냐?  복숭아 맛이 나냐?”
“그거 말인가? 이리 줘보게.”
“어, 야!”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복숭아맛 맥주를 잡아 채가더니, 입에 대고 몇 모금 마시는 것이었다.
“꿀꺽, 꿀꺽. 음! 정말로 복숭아 맛이 나는구만!”
“그걸 왜 마셔!”
나는 화내며 그녀 손에 들린 맥주를 가져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왕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음? 설마 짐과 간접키스한 걸 의식하는 겐가?”
“시끄러워!”
전 같았으면 바로 입 대고 마셨겠지만, 지금은 의외로 두근거려 그러지 못했다.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난 화제를 돌렸다.
“근데 넌 맥주를 살 때 왜 맛도 모르고 사냐?”
“궁금하지 않은가. 복숭아가 그려져 있다고 정말로 복숭아맛이 나는지.”
“당연히 복숭아맛이 나겠지!”
“에이, 소주에 단풍잎 그려졌다고 단풍잎맛 나는  아니지 않은가.”
“그거랑 그거랑 같냐!”
홧김에 마왕이 입 대고 마셨던 맥주를 마셨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까 먹을 때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히힛.”
그런 내 모습을 본 그녀가 작게 웃었다. 부끄러워한 걸 들킨 건지, 아니면 간접키스해서 기분이 좋은 건지  모르겠다. 맥주 몇 모금만 마셨는데 취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가볍게  모금 더 마시고 마왕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 오늘 집에 늦게 들어가도 돼?”
입원했을 때 병실에서 같이 자고 갔던 그녀였다. 그때는 날 간병하기 위해 그랬던 거라고 변명할  있어도, 퇴원한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내 질문에 마왕은 맥주를 몇 모금 더 마시고 대답했다.
“자네 이름 대더니 오히려 자고 오라고 하더군.”
“진짜로?”
“그렇다네. 짐이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는가.”
“내가 남자인  아시지?”
“저번에 통화하지 않았나. 자네가 남자인 건 충분히 알고 계시네.”
내가 남자인 걸 알면서도 자고 오라고 했다고?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마왕이 뭔가 떠오른 듯이 소리쳤다.
“아! 그러고보니 이번주에 한 번 식사하러 오라더군.”
“그걸 왜 이제 말해!”
“당일 직전에 말하는 것보단 낫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지금까지 마왕의 부모님과 접촉한  어머님과 통화한 게 전부였다. 말투는 상냥했어도 쏘아붙듯이 말해서 날 몰아붙이는 분이셨다. 그나마 상냥하시다는 어머니께서 그러시는데,  아예 죽여버린다는 아버지는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평생.
걱정하는  보고 마왕은 너스레를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다시 맥주를 마시더니 말했다.
“걱정말게. 자네가 하준 같은 놈만 아니면  가능성은 의외로 높다네.”
“산다고 단언할  없는 거냐.”
“없는 거지.”
“그때는 거짓말이라도 있다고 해줘!”
“왜 짐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키는 겐가? 그리고 짐이 자네 방에 놀다 가는 게 뭐가 문제길래 이렇게 불안해하는 겐가? 혹시?”
갑자기 마왕이 옆으로 허리를 돌려 인어공주처럼 앉기 시작했다. 허리라인과 엉덩이를 강조하는 듯한 자세를 한 그녀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면, 자네가 짐을 덮치기라도  텐가?”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마왕을 쳐다봤다.
“너 나랑 싸우면 네가 이기잖아. 어떻게 덮쳐?”
“……으이구!”
갑자기 마왕이 한숨과 함께 날 발로 차버렸다. 맞은 부분이 아팠지만 그녀가 이상한 건 평소 그대로였기에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대화 주제는 교수님부터 시작해서 유리까지 이르렀다.
요즘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저번에 영화관에서 다쳤을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병문원을 왔는데, 이번에 입원했을 때 놀러  건 마왕밖에 없었다. 부모님한테 별말을 못들었으니 나쁜 일이 생긴 건 아닌 모양인데, 소식이 없으니 괜히 불안했다.
그런 생각을 마왕에게 말하다가, 갑자기 현관문 쪽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똑똑!
“배달왔습니다!”
“요호호호! 치킨이로세!”
그러자 마왕이 괴상한 웃음소릴 내면서 현관문으로 뛰어갔다. 나는 ‘저런 미친년’’하고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얼마 쓰지 않은 밥상을 침대 옆에 설치했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는 소리가 들린 후, 마왕은 다시 이상하게 웃으며 밥상 위에 치킨이 든 봉투를 올려 놨다.
“치킨이로세! 치킨!”
아니, 얘가 이렇게까지 이상하진 않았는데…… 술을 마셔서 그런가?
고개를 기울이며 비닐 봉투를 벗겨 치킨 먹을 준비를 시작했다. 치킨 박스를 꺼내 밥상 위에 두고, 치킨무 뚜껑을 뜯었다. 치킨무 국물이 넘실거리는 통을 내미는 사이, 마왕은 치킨 박스를 뜯었다.
“음~!”
고소한 치킨 냄새에 마왕이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광고 보는 것처럼 과장스러운 표정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근데 혹시, 유리 이야기가 나와서 일부러 밝은 척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하지만 마왕이 유리 때문에 불편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난 마저 치킨 먹을 준비를 끝냈다.
“자, 건배하세!”
그녀가 봉투를 가져올 때까지 계속 들고 있던 캔맥주를 내밀었다. 나도 그 행동에 맞춰서 복숭아맛 캔맥주를 마왕이 든 것에 부딪혔다.
퉁!
“자, 건배.”
“건뱁, 꿀꺽, 꿀꺽, 꿀꺽!”
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맥주를 들이켰다. 그렇게 캔을 거의 거꾸로 들 때까지 마시던 마왕은 캔을 떼며 소리쳤다.
“캬하! 시원, 꺼어억! 하구먼!”
……왜 나는 이런 여자애한테 두근거렸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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