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이거 녹음하고 있다고!
“이런 개씨발잡것을 봤나!”
마왕의 욕설이 들리는 가운데,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알았던 과대는 잘생기고 재수없는 놈이었다. 자기 얼굴을 밑천삼아서 여러 여자를 꼬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 한 짓은 남이 했던 공로를 자기가 했던 걸로 속이는 개쓰레기에 불과했다.
우우웅, 우우웅
이때 내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건 모르는 번호였지만, 난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폰을 집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아는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뉴스 봤냐?
산뜻한 목소리에 개념없는 말투. 과대였다.
그인 걸 확인하자 화장실에서 단둘이 있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를 잊지 않으면서 화면을 조작하고 마왕도 들을 수 있게 스피커로 전환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고 폰을 조작하자 당황스러운 과대의 말이 들렸다.
-여보세요. 뭐야 이거, 지헌이 번호 맞나?
“내 번호 맞아. 왜.”
스피커로 바꾼 게 들키지 않도록, 말하는 동시에 폰을 침대 옆 서랍장에 올려 놨다.
“뭣……!”
마왕이 과대 목소리를 듣고 뭔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난 손짓해서 그걸 막으면서 폰 화면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내가 뭘하려는지 이해한 그녀는 입을 닫았고, 난 그가 마저 말할 수 있도록 물었다.
“왜 전화했어.”
-왜긴 왜야. 뉴스 안 봤냐?
“봤지. 너 뭐하는 거냐? 도대체?”
-아니 뭐, 틀린 말도 아니잖아? 걔 묶을 때 충전기 가져다 주기도 했고.
이건 과대 말이 맞았다. 내가 묶을 거 갖다 달라고 할 때, 그는 잠깐 얼 타다가 케이블을 가져왔다. 하지만 뉴스에선 그가 양아치를 때려 눕힌 영웅으로 등장했다.
“뉴스에선 다르게 나오던데?”
-그거지, 그거. 악의적인 편집. 인터뷰할 때 말이랑 거의 다르게 나오더라, 야.
“지랄하지 말고. 왜 전화했어.”
-그래. 그래야지.
내 말을 듣자 과대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우리 이렇게 하자. 내가 너한테 유리 줄게. 선배도 포기하고.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 건데.”
-뭐긴 뭐야. 달려간 거 네가 아니라 나라고 하는 거지.
“내가 걔를 때려눕힌 게 아니라, 네가 한 거라고?”
-그렇지! 우리 지헌이, 생각보다 말이 잘 통하네!
폰 너머로 그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간 소리내서 웃더니, 이번엔 목소리를 깔았다.
-아니, 딱히 너한테 나쁜 건 아니잖아. 그렇잖아. 너는 유리를 얻고, 난 유명세 좀 타고. 게다가 뭐, 나중에 상도 좀 받고.
“상?”
-있잖아, 그런 거! 용감한 시민상, 아니면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 그런 거.
그 말을 듣고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과대는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네 얼굴이 TV에 나오면 악플 꽤나 받지 않겠냐? 솔직히? 그런데 내 얼굴이 나와봐. 잘생겼어요, 오빠 사랑해요. 그런 게 지금 달리고 있다고. 내가 지금 너 욕 안 먹게 하는 거다. 알지?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너는 지금 내가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을 거라고 생각하냐?”
하다 못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가소로운 듯이 웃어댔다.
-기분 안 좋으면 뭐, 어쩔 건데?
“사실 네가 아니라 나였다고 방송국에 전화하던가, 그런 거.”
-이 병신아.
날 겁주려는 듯이 목소리를 깔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정곡이 찔렸다는 증거였다.
-지금 이미 뉴스 나왔어. 그런데 네가 그걸 말한다고 뉴스를 바꾸겠냐? 너 같은 찐따가 지껄인 말 하나로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못 알려 드렸네요, 영웅은 사실 훈남이 아니라 개씹찐따새끼였습니다, 이렇게 할 거 같냐? 착각하지마. 그리고 너, 과 단톡 볼 수 있지. 한번 봐봐.
그가 말한 대로 켜진 폰 화면을 봤다. 상태창에 과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톡들이 보였다. 어플로 들어가 보니, 그 동안 온 톡만 해도 100개가 넘었다. 내게 연락할 이유가 없어 알람을 끄느라 이렇게 대화한 것도 몰랐다.
-봤냐? 지금 거기에 말해봐, 내가 아니라 너였다고. 그럼 찐따새끼가 병신짓하냐고 그럴 걸?
“그럼 유리는. 유리가 말할 수도 있잖아.”
-아 이 병신새끼. 눈치 존나 없네, 진짜. 야. 내가 왜 그 친구 없는 년이랑 만나겠냐. 따먹고 버려도 소문이 안 나니까 그런 거 아냐.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말을 맞추기 위해 유리를 꺼냈지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 병신년 내가 아다만 따먹고 버리려 했는데, 포기한 거니까 감사하게 먹어라.
“……너, 네가 이런 말 한 거 퍼뜨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네 말 안 듣는다고, 병신아! 아무도 네 말 안 들어! 좆 같은 선배도 안 들어! 그러고보니 못따먹은 게 아쉽네, 그 년.
“이……!”
순간 마왕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입을 열려 했다. 난 다치지 않은 손을 들어 겨우 말렸다. 하지만 그걸 들었는지 과대가 물었다.
-뭐야, 너 지금 다른 사람이랑 있냐?
괜한 거짓말하면 들킬 것 같아서 말을 돌리기로 했다.
“야, 아까 화장실에서 말한 거 기억나?”
-아니 누구 있냐고.
“네가 그랬잖아. 나한테 맞는 급이랑 만나라고.”
-그건 그랬는데, 누구 있냐고 묻잖아. 지금.
“그때 내가 녹음할 걸, 하고 후회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런 후회 안 할 거 같다.”
-뭐?
말하는 과대 목소리는, 당당하던 아까와 달리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하려는 말을 예상한 것 같았다.
기대를 하게 만들었으면 그 기대에 부응하는 게 도리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병실이 떠나가라 소리질렀다.
“이거 녹음하고 있다고! 이 병신아! 끊는다!”
-너……!
그가 뭐라 말하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기 직전부터 끊기 직전까지 음성이 파일로 저장됐다.
“대단하구먼! 자네!”
마왕이 통쾌하게 웃으면서 날 칭찬했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고, 그 놈이 전화하기 전에 차단을 걸고 있었다. 차단을 걸었던 건 전화번호만이 아니었다. 메신져도 차단하고, 심지어는 과톡도 나가버렸다.
폰을 침대 위에 던지며, 난 마왕에게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 잘했냐?”
“너무 잘했다네, 자네!”
안 그래도 예쁜 외모인데 빛이 날 것 같은 웃음을 지으며 마왕이 다가왔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려 날 껴안았고, 나도 그녀를 껴안아서 화답했다.
한동안 우리는 뼈가 으스러져라 껴안았고, 서로 침대에 앉은 채 마주봤다.
“자네 이제 그걸로 뭐 할 겐가? 방송국에 보낼 텐가?”
“그건 아닌데?”
“그럼 단톡에 뿌릴 겐가?”
“그것도 아니지.”
“그럼 어떻게 할 겐가?”
“당연히 소장해야지. 뭘 해.”
“뭣이?”
마왕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날 쳐다봤다. 날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마치 ‘이 바보 천치는 뭘 말하는 겐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바보 천치는 뭘 말하고 있는 겐가?”
역시나.
나는 지금 내가 뭘 하려는 건지 그녀에게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이렇게 정갈한 노크소리는 간호사 누나가 한 게 분명했다.
“실례할게요.”
간호사 특유의 피곤한 존댓말이 들리면서 병실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간호사 분이 문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환자분, 죄송한데 조금만 조용히, 어?”
내게 말하던 그녀가 마왕을 보자 말을 멈췄다. 난 여기서 마왕이 쫓겨나고, 난 전화로 내 계획이 뭔지 말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마왕은 간호사 누나를 향해 인사하듯이 손을 흔들었다.
“음! 오랜만이군!”
“또 왔니?”
“이번엔 다쳐서 오진 않았네.”
“그래, 다행이네. 다음부턴 좀만 조용히 해라, 알았지?”
하면서 문을 닫았다. 병실 문 너머로 멀어지는 발소리를 들으며 마왕에게 물었다.
“너 저 분 아냐?”
“짐이 자주 신세를 졌지, 암.”
“너 칼 맞았을 때?”
“첫만남은 목각이었네만, 나중에 벽돌 맞은 걸로 친해졌다네.”
“그거나 그거나. 그런데 참 여러가지로 맞았네. 안 맞은 물건이 있냐?”
“그것보단 자네가 그 파일로 뭘 할 건지 말해주게나.”
“아 그거? 그걸로 뭘 할 거냐면”
우우웅, 우우웅
이때 갑자기 내 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과대일 거라는 직감에 손을 뻗어 통화거부 버튼을 눌렀다. 아예 폰을 끄려고 하니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엔 유리였다.
입술에 검지를 대며 마왕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보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 직후, 나는 폰을 집고 전화를 받았다.
“어, 유리야. 왜?”
-지헌아아아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유리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에 떠는 것 같은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유리야, 너 왜 그래.”
-지헌아, 난 진짜 모르는 일이거든? 나도 방금 보고 알았어!
아무래도 내가 한 일을 자기가 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았다.
“너도 그거 봤어?”
-응! 아니, 이거 어떡해? 하준이가 한 거 아니잖아. 네가 했잖아.
“그랬긴 한데, 괜찮아.”
-너 단톡 나갔던데, 내가 대신 말해볼까?
“아니! 괜찮아! 안 해도 돼!”
-그래도……
유리가 그런 걸 말한다면 내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괜찮다고 말해도 불안한 모양이었다.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어디선가 봤던 대사를 말했다.
“난 괜찮아. 널 지킨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그래?
“쳇.”
유리의 목소리에 화색이 돈 반면, 갑자기 마왕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들면 하는 행동이었다.
그런 마왕을 보면서, 나는 내 계획을 말해주기 위해 유리와 통화를 끊으려 했다.
“유리야, 미안한데 이따 통화하면 안 될까?”
-지금? 지금 너랑 좀만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미안, 지금 뭐 하고 있어서. 나중에 전화할게.”
-진짜로?
“진짜 미안. 하고 있는 게 있어서 그래.”
-그래, 알았어…… 이따 꼭 통화 해야 돼!
“알았어. 끊어.”
-응!
유리의 대답을 듣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 보니 항상 먼저 끊는 쪽은 그녀였는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이제 내 계획을 말해주기 위해 마왕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짐은 안 지켜주는 겐가?”
갑자기 마왕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뭐?”
“유리는 지켜주면서, 짐은 안 지켜주는 거냐고 물었네만.”
“아니, 너, 걔랑 싸우면 이기지 않냐? 너 나보다 세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걸세. 만일 짐이 유리처럼 약했다면 지켜줬는가?”
“당연하지! 근데 그건 왜?”
“아닐세. 자네 이야기나 마저 듣지.”
이번엔 또 뜬금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입가를 올리며 작게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마왕이 이상한 게 한 두 번이 아니기에, 무시하며 이번에야 말로 내 계획을 말해줬다. 그걸 다들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역시 용사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만.”
“시끄러.”
“훗, 칭찬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