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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짐과 지헌은, 전생에서 몸을 섞은 사이일세! (10/72)



〈 10화 〉짐과 지헌은, 전생에서 몸을 섞은 사이일세!

“잘 듣게. 짐과 지헌은, 전생에서 몸을 섞은 사이일세!”

“야!”


내 말에 마왕이 뻔뻔하게 쳐다봤다.

“왜 그런가?”


너무 뻔뻔한 모습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유리 상태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는 얼굴에 핏기가 가신 채 굳어 있었다. 나는 오해를 풀기 위해 계속해서 마왕에게 말했다.


“몸이 아니라 칼을 섞었잖아!”


“자네 기억 안 나는가? 자네가 짐의 목에 입을 대지 않았나.”

“아니 그건 맞지만! 표현이!”

“진, 짜야?”

유리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의 얼굴엔 혼란이 피어 있었다. 하지만 아까 마왕과 날 번갈아 볼 때와는 왠지 다른 느낌이었다.

“진짜로 둘이,”


“아니라니까? 선배가 말을 이상하게 한 거야!”

“자네, 짐의 신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냈으면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는 겐가?”

“말 좀 제대로 하라고!”


그렇게 외치면서 마왕을 쳐다봤다. 상처입은 것처럼  팔로 자기 몸을 감싸는 그녀는, 나만  수 있는 각도로 작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  보고 마왕이 왜 이러는지 알아챘다.


이건 대가였다. 조금 전, 나는 유리에게 과대가 같이 피시방 가자고 권했을 뿐이었다고 했다. 진실을 알기 위해 유리는 마왕에게 물었고, 마왕은 이걸 위해 내 말을 맞춰줬다.
마왕은  놀리면서 억울한 연기를 계속해갔다.

“짐은 자네를 믿었건만, 왜 그런 짓은 한 겐가?”


“아니라고!”

“설마 자네의 그런 얕은 꾀에 짐이 넘어갈 줄은 몰랐네.”

“아니 좀!”

“그래도……”

마왕이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짐도, 나쁘진 않았네.”


“연기 좀 하지마! 진짜로 믿잖아!”


유리는 마왕이 하는 연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이제는 거의 푸른색이 되어 버렸다. 나는 퍼렇게 질린 유리를 불렀다.

“유리야.”

“어, 응?”

“저거 다 거짓말이야. 설마 믿는 거 아니지?”

“거짓말이라니! 짐에게 속삭였던 사랑한다는 말도  거짓이었던 겐가?”


“넌 좀 닥쳐! 쟤가, 아니 선배가 개소리 하는 거거든?”


이제는 유리가 숨을 가쁘게 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마왕의 거짓말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유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선배가 원래  짓궂어서, 이런 장난을 많이 쳐. 원래 저 선배 이상한 거 알고 있잖아.”

“짐이 이상하다니!”


그럼 네가 정상인  알았냐! 라고 외치려다 참았다. 지금은 유리에게 집중할 때였다.


“잘 들어. 우리는, 아니 나랑 선배는 절대! 저어어어얼대! 사귀는 사이가 아니야.”


“절대?”


“어, 그래. 절대.”


또 마왕이 끼어들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어디에서 들었네만.”

제발 좀 어렵게 만들지 좀 마라!


“나, 이제 갈게.”


갑자기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그녀가 신발을 신고 문을 닫을 때까지 난 그저 바라만 봤다.


“선배, 나중에 봐요.”


그렇게 유리가 떠났다. 건물 복도를 발꿈치로 찍는 듯한 발소리가 멀어지자, 나는 바로 마왕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너는  그런 말을 해서 이렇게 만드냐?”

 말에 마왕이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자네가 먼저 짐의 입에 거짓말을 담게 만들었잖나.”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지.”

“아니라고? 뭐가 아닌 겐가?”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 유리가 오해하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 겐가. 자네와 유리는 이제 남남이지 않은가.”


마왕이 한 말에 입을  수 없었다. 확실히 나와 유리는 남남이었다. 나와 마왕이 사귄다고 해도 내가  기분이 나쁠 뿐,  이외엔 손해가 될 건 없었다. 그런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유리가 오해하는  바라지 않았다.

이때 마왕이 말했다.

“역시 자네는 아직도 마음에 유리를 두고 있는 걸세.”

 말을 듣고 정신이 들었다. 내가 아직도 그녀를 좋아할리가 없었다. 유리에 대한 마음은 7년 동안 좋아했던 걸로 충분했다.

마왕은 혼란스러워하는 날 즐기듯이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찌됐든 상관없네. 지금 유리양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네. 어서 가봐야 하지 않겠나?”

뭔가 그녀가 계획한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왕이 말한대로 움직이면 장난감 말이 된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유리가 나와 마왕 사이를 오해한 채로 두기는 싫었다.

“너, 이따 보자.”

그 말을 남기고 어서 유리를 따라잡기 위해 방을 나갔다. 그녀는 아직 이 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야!”

“……”


내가 불러도 유리는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동화 뒤축을 구겨 신고 그녀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유리야,  오해야.”

“다 오해라고?”


그녀가 날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 유리는 어이없는지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날 경멸하듯이 눈가에 힘을 주며 물었다.

“내가 그런다고 믿을 것 같아?”


“안 믿겠지. 하지만  믿을 거라고 그냥 오해하게  수는 없잖아.”


“오해 아니잖아. 둘이 사귀는 거 맞잖아.”

“아니라니까. 내가 왜  선배랑 사귀어.”


“사귀는 게 아니라면 왜 네 자취방에서 같이 피자 먹는 건데? 나도 아직 안 가봤는데.”

“피자는 먹을 데가 없어서 그런 거였지. 그리고 저번에 내가 오라고 해도 안 왔잖아.”


“그, 그때는 내가 바빴지! 다음에 가겠다고 했잖아!”


이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유리가 탔고, 나는 그녀가 닫힘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기 전에 따라 들어갔다. 만약 문이 신형이었다면 적외선 센서 때문에 다시 문이 열려서, 유리가 “나가.”라고 말할  있었다. 하지만 구형이라 문은 내가 들어가자 마자 닫혔다.

“……”

유리는 이제 더 이상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을 생각인지, 아까처럼 앞만 바라보고 날 무시했다.

“저기, 진짜 나랑 선배랑 사귀는  아니야. 만난지 이틀밖에 안 된 사람이랑 어떻게 사귀어.”

“게임에서 만났다며.”


“뭐?”

“게임에서 선배 만났다며. 그럼 안지 꽤 된 거 아냐?”

“아니 그때는 여자인지도 몰랐어. 걔가 여자인 건 그저께 알았다니까?”

“그렇다면 목에 입을 댔다는 이야기는?”


“그, 그건 게임이야기지. 게임 전술. 내가 그렇게  하면 판이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는?”


“그것도 게임 이야기지. 그게 치명상이었으니까.”


유리는 다시 입을 닫았다. 아까와 다르게 내 말이 진실인지 판명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침묵하는 그녀가 내 말을 믿길 기다렸다. 입을 연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한 후였다.

“알았어.”


그렇게 말하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이제는 믿어주는 건가, 하며 따라갔다. 하지만 유리는 여전히 발꿈치로 바닥을 찍듯이 걷다가,  돌아봤다.

“너네 둘이 사귀는 건  알았어.”

“아니라니까?”


“둘이 사귄다고 소문 안 낼게. 그래서 따라온 거 아냐?”

“네가 오해한 채로 두기 싫어서 그랬지!”


“오해? 오해한 게 왜? 네가 누구랑 사귀든지 난 하나도 신경 안 써. 그게 정신  나간 여자에다가, 엄청 더럽게 먹는 애라도, 나랑은 상관없다니까?”


아무래도 마왕 말이 맞은 모양이었다. 내가 아직도 유리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런 말에 상처 받을리가 없었다. 또박또박 쏘아 대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들릴 때마다, 가슴에 칼로 베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둘이 잘 어울리더라. 나랑 다르게 게임도 같이 하고. 단톡 보니까 운동도 되게 재밌게 하던데.”


운동? 아까 마왕에게 이끌려서 강제로 달리게 된 걸 떠올렸다. 대낮에 사람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그런 행동을 벌이다 보니, 소문이  모양이었다.


“둘이 잘 사귀고. 선배가 신경 쓸 것 같으니까 이제 너한테 연락  할게. 강의실에서도 아는  안 할 거고.  있어.”

다시 유리가 내게 떠나려 했다. 나는 그걸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내가 누구랑 사귀든 무슨 상관인데!”

그녀는 뚜벅뚜벅 소리내며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말했다.

“나랑 상관없다니까?”

“그럼 왜 그렇게 화가  거야.”


“화냈다고? 내가? 내가 언제.”


“발!”

나는 그녀의 발을 가리켰다.  자취방을 나갈 때마다 유리는 신발로 바닥을 찍으며 걸어댔다.

“너 짜증나거나 마음대로 안 될 때 그렇게 걷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 초등학교 때부터 너랑 같이 있던 놈이야.”


“짜증 안 냈어.”

“낸 거 맞잖아!”

“안 냈다니까? 이제 따라오지 말고, 말도 걸지마.”

단호하게 말하며, 유리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아까같이 붙잡지 못했다. 유리가 과대랑 키스할 때 끼어들지 못한 것과는 달리, 아무리 말해도  말을 들어주지 못할 것 같았다.


이게  마왕때문이었다. 마왕이 그런 짓을 해서 유리가 화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마왕은 유리 몫 샌드위치까지 다 먹고 피자와 같이 온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1.25L짜리 콜라병을 반쯤 비운 그녀는 페트병을 내려놓고 뻔뻔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 설득은 잘 되었나?”

“될리가 없잖아!”


문을 세게 닫으며 소리를 질렀다. 신발을 현관에 대충 벗어 던지고, 아까 유리가 했던 것처럼 발소리가 날 정도로 힘차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그렇게 말한 거야!”

“자자, 진정하게 용사여. 다 짐의 계획이었으니.”


“계획이었다고? 잠깐이나마 널 친구로 믿었던  잘못이었어!”


바닥에 깔린 피자 박스를 밟고 마왕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런데도 그녀는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내게 말을 걸었다.


“용사였던 날 파멸시키려고 했던 거였냐!”

“자넬 파멸시키려는 방법은 많네. 허나 이런 방식은 아니지. 이건 자네와 유리를 이어주기 위한 계획이었네.”

“뭐?”

“먼저 이거 놓고 이야기하지 않겠나? 이러다가 자네가 감옥에 가는 방향으로 파멸되겠군.”


“……”

나는 손에 힘을 풀어 마왕을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그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 아직까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지 못하는 나에게 마왕이 콜라를 건넸다. 그걸 벌컥벌컥 마시니 어느 정도 진정됐다.

내가 병을 내려놓자 마왕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지금 유리를 좋아하는 것이 맞지?”

“……그런  같아.”


“좋네. 이번 계획은 자네가 자네 마음을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이니.”

“나머지 반은 뭔데.”

“유리를 흔들기 위함이지. 짐이 자네와 잤다는 말을 했을 때, 유리 얼굴을 보았나? 상당히 충격받은 것 같더군.”


마왕 말대로  말을 들은 유리는 꽤나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핏기가 가시고 눈이 흔들렸던 걸 보면.


“자네는 사람이 무언가를 가장 원할 때가 언제인지 아나?”


“언젠데.”

“바로 손에 한 번 쥐게 해주는 것이지. 자신의 손아귀에 있던 게, 어느 순간 남의 물건이 되는 것보다 아쉬운 게 어디 있겠는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자네는 지금까지 유리에게 단순한 ‘친구’에 불과했네. 하지만 짐이 자네를 ‘연인’으로써 빼앗으면 유리가 질투하며 자네를 원하는지 않겠는가? 게다가 반응을 보니 유리가 자네에게 이성적 호감을 안 가졌던 것도 아닐세.”


“뭐?”

“만약 단순한 친구였다면 그저 서운해하며 투정을 부렸겠지. 반면 유리는 자네에게 화를 내지 않았나.”

 말이 맞았다. 만약 유리가 서운한 감정을 보였더라면, 엘리베이터에서 서운했다며 화났다고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화났다는 걸 숨기려 했다.

“너, 언제부터 이걸 계획한 거냐?”

“음? 유리가 자네 방에 들어올 때부터 생각했다만?”

“그 짧은 순간에?”


“짐은 마왕일세. 자네가 비록 용사라지만 최전선에서 싸우는 일개 장수이지. 아,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어쨌든, 짐은 마왕이네. 그 뒤에서 모든  조종하는 왕이란 말일세.”

“그런데 왜 날 도와줘.”


“뭐, 이것때문이지.”


한 손을 들어 뭔가를 휘두르는 시늉을 했다. 자칫하면 낚시로 보일 수 있는  몸짓은, 사실 칼을 휘두르는 거였다. 그걸 보고 오늘 저녁에 있을 대련을 떠올렸다.

“게다가 자네는 짐의 친구 아닌가.”

그렇게 말하며 마왕이 웃었다. 그 웃음은 평소처럼 짓는 당당한 미소와 다르지 않았다.





내게 있어 지헌은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 그것 때문인지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부모님 다음으로 지헌이 떠올랐다. 그는 맞벌이로 바쁜 우리 부모님을 대신해주는 존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지헌에게 과대랑 사귀는 걸 들킬 때는 괜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왠지 모르게 죄악감이 들기도 했고, 사귄다는 이야기에 반응하는 지헌의 얼굴이 떠올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이상한 선배랑 어울려 다니는 걸 보자 마음이 초조했다.

어릴 때부터 낯을 많이 가리고 타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지헌이었다. 그런 그를 이끌고 다니는 건 항상 나였다. 그 선배가 했던 것처럼 그 손을 잡고 놀아주는 건 내가 하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아예 그 선배가 지헌이랑 그걸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가 복잡했다. 어릴 때부터 지헌이 좋아하는 건 바로 나였다. 초등학교때부터 날 좋아했는데 그렇게 쉽게 좋아하는 사람이 바뀔리 없었다.


하긴, 내가 사귀는 걸 들킨 다음날부터 지헌이 조금 달라지긴 했다. 외모나 이상한 옷을 입고 다니는  변한  없었지만 눈빛이 달랐다. 게다가 그 날부터 그 외국인 선배가 꼬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헌이 내가 하준이랑 사귄다는 걸 알고 자포자기로 선배랑 사귀는 걸지도 몰랐다.

웅 웅 웅


스마트폰이 세번 연속에서 울렸다. 하준이가 메시지를 보내면 이런 식으로 울리도록 설정해 두었다.


그래도 걱정거리가 한가지 줄어서 다행이었다. 하준이가 선배한테 접근하는 것 같았는데, 사실 선배는 지헌이랑 사귀고 있었다.  7년 동안 좋아했던 지헌이랑……

아니, 걔가 누구랑 사귀든 나랑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헌이는  타입도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일방적으로 날 좋아한 거였지, 내 쪽에서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폰을 봤다.


하준♡: 자기야
하준♡: 내일 영화
하준♡: 예매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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