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혹은 재난으로 인하여 어딘가에 갇히거나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때.
그때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절 고민하지 않고 물과 식량이라고 말할 것이다.
‘재난에 대비하여 비상식량을 구비해 놓아야 한다.’
어렸을 때부터 종종 들어왔던 말이고, 지진이나 홍수로 인해 피해를 보는 요즘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나도 그런 것들을 미리 구비해 놔, 집에서 며칠이고 버틸 수 있도록 준비했다.
쿠워어어어!
그런데 그런 준비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온다면?
거리에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집이 있던 자리에는, 건물이 무너지고 잔해만 남아 있다면.
미리 그런 것들을 준비해 놓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어디로 가야 하지? 애초에 던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단 말이야!’
보라색 연기가 사라지자마자 건물이 무너져 생긴 잔해에 몸을 숨겼다.
버젓이 몬스터들이 돌아다니는데, 그놈들을 피해 움직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다.
맞으면 아프고, 칼에 찔리며 죽는 평범하디 평범한 남자였다.
비록 은행장이라는 직업을 얻고 시스템이란 것에 대해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데 나보고 뭘 어떡하라고!”
그런 것들을 얻으면 뭘할까.
사용할 방법을 모르는데.
상태창, 플레이어 창, 스텟 창 등등···.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시스템을 부르는 모든 방법을 입에 담았지만, 새로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굳이 있다고 한다면.
[‘은행’을 건설하지 않으면 ‘은행장’의 시스템을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계속 은행을 건설해야 한다는 메시지만 떠오를 뿐이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렇기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몬스터들을 죽이며 움직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몬스터의 습성을 알아 잘 피해다닐 수도 없었다.
내가 할줄 아는 것이라고는 지금처럼 구석에 앉아 덜덜 떨고 있는 것뿐이었다.
[159:43:24]
벌써 8시간이 지났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움직여라.
몸아 좀 움직여라, 제발.
빳빳하게 굳은 몸은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죽치고 앉아 있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식수도 식량도 없고, 무엇보다 몬스터들이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어 언제 들켜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무런 힘도 무기도 없는 내게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정신 차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크게 심호흡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뚝, 뚜두둑.
장시간 한 자세로 앉아 있어서 그런 걸까.
일어서기가 무섭게 몸 마디마디에서 비명을 지른다.
뻐근하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에서 난 소리에 주위에 있던 몬스터들이 듣고 찾아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조심하자. 잘못하면 죽는다.’
던전을 찾아야 한다.
내게 남은 일주일이라는 시간.
그 시간은 절대 길지 않다. 오히려 짧다고 볼 수 있다.
“후우··· 후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몬스터들 틈새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숨이 거칠어졌다.
천천히 잔해 속에서 빠져나와 거리를 걸었다.
콰아아앙-
키에에에에엑!
저 멀리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으며 건물이 폭발하는 게 보였고, 하늘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더 바삐 놀렸다.
‘담배를 피면 안 되겠지?’
지나친 긴장 때문인지 니코틴이 땡긴다.
그렇다고 담배를 필 수도 없었다.
한가치 밖에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몬스터 중에 후각의 예민한 몬스터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거라도 들킬 거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무, 물···.”
입안이 비쩍 말랐다. 목이 타는 것 같았고, 시야가 흐려질 정도로 힘들었다.
한참을 목적지 없이 걸었다.
두 시간이 이상을 걸은 것 같다.
그녕 걷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세상은 균열이 생기고 망가진 이후로 평상시 기온보다 더 높아졌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고,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편의점이나 마트가 이 근처에 없나?’
아무리 세상이 망했다고 해도, 그 안에 있던 내용물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무너진 마트의 잔해 속에 음식이나 물이 있을 수도 있다.
“아, 저기···.”
반으로 쪼개진 마트의 간판이 보였다.
그리고 반쯤 부서진 마트가 보였고.
“···!”
나를 빤히 바라보는 괴조가 보였다.
타조의 몸통과 뱀의 머리를 하고 있는 이상한 새.
치르르르르-
두 갈래로 갈라진 혀가 나오며 뱀 특유의 소리를 흘리더니 그 괴조가 벌떡 일어났다.
“하,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앉았을 때는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일어선 괴조는 못해도 높이가 3m는 되어 보였다.
뱀의 쭉 찢어진 눈이 나를 노려봤다.
그 눈이 샐쭉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도망쳐야 한다.
여기서 이대로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된다.
주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포식자 앞에 선 쥐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키에에에에엑!
괴조가 울부짖었다.
제 딴에는 내게 위협을 가한다고 한 것 같은데.
“···!”
그 울음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정신이 퍼뜩 들었고, 잔뜩 굳어졌던 몸이 풀렸다.
‘뭐라도 들고 있어야 해.’
맨손으로 놈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등을 보이며 도망치기에는 상대의 속도를 가늠할 수가 없다.
저 정도로 긴 다리라면 내가 열 번 뛸 때 한 번의 걸음만 걸어도 되겠지.
분명 나보다 빠를 거다.
아니면 날아서 나를 쫓아올 거고.
‘괜히 이곳에 와서···!’
내 행동을 후회하고 욕을 한다고 해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저거라면···!”
건물이 무너지면서 드러난 철근이 보였다.
놈의 눈치를 보며 그것을 슬며시 주어들었다.
2m정도 남짓한 길이. 무게도 적당하다.
운동을 한 게 이럴 때 도움이 된다.
‘호랑이 앞에서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어.’
베어델리스는 말했다.
상어도 자기 앞에서는 한낱 단백질에 불과했다고.
‘그 사람이라면 오히려 자기 세상인 것처럼 살겠네.’
언제나 최악의 환경을 찾아가 살아가는 생존 전문가인 그가 부러워졌다.
그라면 생존에 특화된 특별한 직업을 얻지 않았을까.
“닭고기나 뱀고기는 맛있었는데···.”
배가 고파서일까.
아니면 베어델리스의 힘인 걸까.
두려움이 조금은 사라지고 무력(無力)의 용기가 생겨났다.
그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고 해내는 의지의 생물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방법을 찾으면 이 엿 같은 상황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치르르르-
괴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까지 덜덜 떨던 내가 이제는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찾았다.
치르- 치르르르르-
알 수 없는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던 괴조가 돌연 몸을 흠칫 떨었다.
치르르르르르르!
하늘을 향해 울부짖더니, 몸을 돌려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뭐지?’
당황스럽다.
나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를 풍기던 괴조가 지금은 뭐에 쫓기듯 도망치고 있었다.
“···?”
뒤통수가 뚫어질 것 같은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봤다.
무너진 잔해만 있을 뿐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나 몬스터는 없었다.
띠리-.
귓가에 이명이 들린다.
눈앞에 흐릿하게 푸른색 창이 떠오르기 무섭게 사라졌다.
파지지직-
스파크가 튀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지만,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저 보랏빛 하늘 만이 여전히 세상을 어둡게 했다.
“어··· 물···!”
급히 괴조가 떠난 자리를 살피던 나는 땅을 아무렇게 뒹굴고 있는 물병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것 때문에 괴조를 만났고, 죽을 뻔했다.
꿀꺽꿀꺽··· 쿨럭- 커헉···!
급하게 마시다 체할 뻔했지만, 물을 마시는 걸 멈추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그것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그 자리에서 마셨다.
순식간에 2L 물병의 물이 동나고.
마트를 돌아다니며 몇 가지 먹을 거리를 찾았다.
으적으즉-
기다란 통 햄을 씹으며 멍하니 정면을 바라봤다.
한순간에 멸망한 세상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직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을 마시고 배가 어느정도 차니, 나와 함께 일을 하던 동료직원들이 떠올랐다.
내가 건물을 나가고 무너진 그 속에서 잔해에 깔려 죽지는 않았을까.
잔인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들에게 이 세상은 한없이 가혹할 텐데, 그런 것을 보지 않고 겪지 않을 수 있었을 테니까.
“···젠장.”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죽는 게 다행이라니.
그게 죽은 사람들 앞에서 할 소리란 말인가.
“움직이자···.”
이대로 앉아서 후회하고, 욕하고, 소리쳐도 이루어지는 건 없다.
움직이고 또 움직여서 뭐라도 해야 한다.
‘도대체 던전은 어떻게 생긴 거야?’
한참을 돌아다녔다.
밤이 될 때까지 나는 던전에 ‘던’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애초에 이건 시작부터가 잘못되었다.
던전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주로 생기는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던전을 찾아 들어가라 한다고 바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진짜, 미치겠네···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
몬스터에게 죽나, 시간에 쪼들려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 살다가 죽나.
다를 거 하나 없었다.
‘내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는 건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을 살겠다고 너무 나댄 건 아닐까.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내가 한 건, 해온 건 하라는 대로 살아온 게 다였다.
쉬지 않고 일했고, 돈을 벌기 위해서 내 인생을 바쳤다.
그런데 그 인생의 종착지가 이런, 이런 개 같은 죽음이라니.
“시발. 도대체 균열이 어떤 거냐고!”
허공에 대고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답답한 마음에 몬스터가 듣던, 말던 신경 쓰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저런 균열이 던전이면 좋···!”
바로 앞에 있는 던전을 바라보는 내 눈이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설마···?’
길 곳곳에는 몬스터가 나온 균열들이 수두룩했다.
얼마나 많은지, 열 걸음 걸을 때마다 하나씩 존재했다.
균열들의 크기는 제각각이었고, 그 색 또한 달랐다.
보라색, 빨간색, 파란색 등등···.
나는 저것을 지나쳐왔다. 몬스터가 나온 것이니만큼, 언제 몬스터가 나올지 몰라 다가갈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던전은 몬스터를 수용하고 있는···.”
던전이란 무엇인가.
내 생각이 맞다면 던전은 몬스터가 있는 일종의 아공간이었다.
던전의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지금, 오히려 저 균열이 던전을 통하는 입구라 여기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만약에 아니면 어떡하지?’
던전이 아니라면, 그냥 몬스터들이 나오는 일종의 통로라면.
나는 개죽음을 당하는 게 아닐까.
“···어차피 방법이 없잖아.”
현실이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현실과는 동떨어졌다.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벌어지는 지금.
차라리 뭐라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지금 상황에서 던전으로 보이는 건 이것밖에 없어.’
내게 남은 기회는 이것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런 확실시 되는 건 없었지만, 아주 작은 희망에 걸고 금방이라도 풀릴 것 같은 다리를 이끌며 균열에 다가갔다.
파아앗-
균열에 손을 뻗기가 무섭게 빛이 나를 감쌌다.
[‘외로움에 사무친 리치의 소굴’에 입장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