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차원 은행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1화 (1/113)

제1화

오전 5시에 기상을 하여 한 시간동안 운동을 한다.

6시에 샤워를 하고 목욕을 한다.

7시에 회사에 갈 준비를 하고, 7시 반에 집을 나선다.

지하철을 타고 이십 분간 이동하는 동안 웹소설을 읽는다.

회사에 도착해서는 업무 준비를 시작하고.

9시가 되면 고객들을 받기 시작한다.

11시 30분에 점심을 먹기 시작해 12시 30분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렇게 4시 30분이 오면 은행의 업무 시간이 마감되고 문을 닫는다.

그리고 몇 시간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

그렇게 9시에서 10시쯤 퇴근을 하고,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과 말린 오징어를 사 집에서 술기운으로 외로움을 달래며 11시에 잠이 든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굴리듯 매일이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움직이고 정해진 날에 봉급을 받아 생활했다.

내 인생은 평범했다.

평범하다 못해 따분한 일상이었다.

살기 위해서 일을 했고, 살기 위해서 먹었으며, 살기 위해서 움직였다.

그저 ‘살자’라는 생각에 다른 길을 걷지 않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를 다녔다.

이런 내 평범한 행동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하지 않았던 걸까.

“그동안 수고했네.”

“와, 네가 드디어 승진을 했구나. 축하해!”

“승진했다며! 술 한 잔 사!”

28살.

나는 승진했다.

정확히는 ‘ㅇㅇ’은행 지점의 은행 대리가 되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은 작은 은행 지점이었다.

직원 총인원이 6명이 전부인.

사람들은 그곳에서 대리가 된 나를 부럽다고 하였다.

그런 부러움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지루함을 느꼈다.

매일 같은 일상이었기에 따분했다.

그렇다고 자극을 찾기 위해 그 일상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다.

내가 지금처럼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으니까.

“나, 잠시 담배 좀 피고 올게.”

“네. 다녀오세요.”

“어.”

내 말에 동료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게 가볍게 손을 흔든 뒤 은행의 뒷문으로 나갔다.

은행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서라도 정문에서 담배를 피면 안 된다.

그건 규칙이나 원칙을 떠나 기본적인 상식이다.

“아. 담배 사러 가야겠네.”

담배가 두 가치밖에 남지 않았다.

하루에 한 갑을 피는 내게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점심시간에 사오면 되려나.”

보름 전에 한 보루를 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두, 세 보루는 사 놓는 게 좋겠다.

“이것도 슬슬 끊어야 하는데. 내가 버는 족족 담배로 다 나가니.”

끊어야지, 끊어야지 하는데도 쉽지가 않다.

매일 지루한 일상에서 담배는 유일한 낙이었으니까.

“스읍, 후우···.”

담배를 깊게 빨아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기분과는 다르게 너무도 새파란 하늘이··· 어?

콰득, 콰지직.

하늘의 한 부분이 금이 가고 있었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었다.

하늘이 너무 맑다 못해 깨질 것 같다는 그런 말이 아닌.

정말로 하늘에 금이 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유리에 못을 박듯 하늘이 쩌적하고 깨졌다.

“···x발?”

생전 하지도 않던 욕설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하늘에 금이 가 결국에는 깨져버린 그곳은 한없이 어둡기만 했다.

저걸 단순히 검다고 해야 할까.

온갖 색이란 색이 다 뒤섞여 검게 변해 버린 그런 색이었다.

띠링.

하늘이 깨지는 것과 불쑥 시야를 가려버린 반투명한 홀로그램 메시지가 나타난 건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구’가 채무불이행으로 강제 집행에 들어갑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에게 채무가 적용됩니다.]

[‘한정우’의 인생의 가치를 측정합니다.]

[측정중··· 1%···.]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지구가 채무자라는 건 무슨 소리고 내 인생에 가치를 매긴다는 건 뚜 무슨 소리란 말인가.

꾸득, 꾸드득.

지금도 하늘은 깨지고 있었다.

이제는 1t 트럭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꿈틀, 꿈틀-

그 안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였다.

붉은색의 가루가 쏟아지는 듯한 보라색의 무언가가 자꾸 움직였다.

뭘까.

그것은 몰래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만큼 사람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57%···59%···.]

시야의 한쪽에서는 여전히 홀로그램이 떠 있었고, 균열은 계속 커졌다.

“눈···?”

2층 저택만큼 커진 균열 사이로 보이는 그것은 눈이었다.

내가 봤던 그 보라색 무언가는 동공이었던 것이다.

쿠구구구-

그 눈이 향한 곳의 건물이 무너졌다.

드드드드득-

내 직장이 무너져 내렸다.

은행 건물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폭삭 내려앉았다.

저 안에 있던 부하 직원들의 생사를 걱정할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눈은 뭐지?

나는 살 수 있는 걸까?

이대로 죽는 거야?

죽기 싫어.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저 눈과 마주치며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옮겼다.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막 무너진 건물 잔해에 몸을 숨겼을 때였다.

새로이 떠오른 메시지들이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한정우’는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한정우’의 인생의 평가는 ‘지나친 성실’입니다.]

[‘한정우’의 직업이 결정되었습니다.]

[당신은 차원 은행의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환한 빛이 내 몸을 감쌌다.

기겁하며 황급히 눈을 돌아봤다.

“아···.”

거대한 눈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나를 빤히 노려봤다.

보라색의 눈.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아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물거리는 얼빠진 목소리만이 내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고오오오-

그 눈동자의 주위로 붉은색 연기가 맴돌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 눈이.

싱긋.

웃었다.

반달로 희며 그 눈은 웃고 있었다.

흐하하하하하-

눈의 주인의 목소리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찾았다! 찾았도다! 세계의 마지막 축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말들이 귓가에 들려왔다.

[당신은 5년 내로 천만 코인을 갚아야 합니다.]

[당신은 한 달에 500코인을 내야합니다.]

[은행장의 직업이 확인되었습니다.]

[은행 건설 시 빚이 변제됩니다.]

‘눈’이 서서히 감긴다.

감겼다고 생각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을 인지합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감기던 ‘눈’이 부릅 뜨이고.

‘눈’에서 보라색 연기가 뿜어져 나와 나를 감쌌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을 갈구합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의 후원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을 후원자로 승인하시겠습니까?]

yes/no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새로이 떠올랐다.

정신이 없었다.

내 주위를 감싼 보라색 기운에서 나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자신의 존재값을 지불하여 당신에게 간섭합니다.]

흐릿한 시야너머로 내 시야의 풍경들이 바뀌었다.

내 손을 누군가 들어올리는 느낌과 함께 내 손가락이 꿈틀거리며 ‘yes’를 누르려 했다.

‘안 돼!’

누르면 안 된다.

그 생각이 드는 것과 함께 내 손가락이 메시지 지척에 멈췄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메시지 너머로, ‘눈’에게서 온몸이 저릿한 집착이 느껴졌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안간힘을 쓰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손가락을 붙들었다.

[‘시스템’이 지나친 간섭을 감지합니다.]

[‘시스템’이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에게 경고합니다.]

보라색 기운이 옅어졌다.

잠시 빼앗겼던 몸의 제어권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주위 사물의 감지가 좀 더 수월해지고.

그에 따라 내 시야에 떠오른 메시지는 점점 많아졌다.

[일주일의 시간 내로 은행을 건설하십시오.]

[은행을 건설하지 못할 시, 당신은 사망합니다.]

[은행을 건설할 시 백만 코인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은행은 ‘던전’의 핵을 사용해야 건설이 가능합니다.]

메시지는 내게 해야 할 일을 정해주었고.

[‘지구’를 무법지대로 선포합니다.]

시스템이 지구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지구가 무법지대가 된 직후 세계 곳곳에 균열이 생겨나 몬스터를 배출했다.

내가 있는 곳도 마찬가지얐다.

무너진 건물 위로, 난장판이 되어 있는 도로 위, 지하철 역 등등.

곳곳에 생겨난 균열들이 몬스터를 뱉어냈다.

키에에에엑!

귀를 아프게 하는 괴성이 울려 퍼지고.

사, 살려주세요!

도망쳐! 괴물이야!

사람들이 몬스터들에게 쫓겼다.

보라색의 기운에 이끌려 눈이 내려다보는 정중앙까지 이동했던 나는 그 모든 것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쿠워어어어!

게임, 혹은 만화나 소설에서나 볼 법한 몬스터들이었다.

고블린부터 오우거까지.

다양한 형태의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공격하고, 잡아먹고, 건물과 도로가 망가져 가스가 분출되고 불길이 이는 도시의 풍경은.

지옥도(地獄道).

지옥을 땅 위로 소환하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현실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이 몬스터에게 쫓기는 와중에, 신기하게도 나를 공격하는 몬스터는 없었다.

내 몸을 휘감은 보라색 연기가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감춘 듯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조차 ‘나’를 보지 못했다.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생긴 균열을 발견합니다.]

‘눈’이 세상에 드러나게 했던 균열이 엄청난 스파크를 일으키며 닫히기 시작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탄식을 터뜨립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금을 사랑하는···.

메시지 너머로 집착이 느껴졌다.

닫히는 균열에서 짙어진 보라색 기운이 흘러나왔다.

나를 둘러싼 보라색 기운이 더욱 짙어지고,

키에에엑-

주위에 있던 몬스터들이 그 연기에 닿아 괴로워하며 쓰러졌다.

정신적인 거 외에는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던 나와는 다르게 몬스터들은 그 연기에 닿자마자 독한 독에 당한 듯 녹아내렸다.

[‘금을 사랑하는 파괴용’이 당신과의 만남을 기대합니다.]

소름끼치는 메시지와 함께 균열이 완전히 닫혔다.

스스스슷-

땅에 남아 있던 보라색 연기마저 사라지고, 내 주위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허억··· 허억···!”

거칠 게 숨을 몰아셨다.

그제야 내가 여태까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대체 뭐야···.”

한순간에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평범한 사람인 내게는 너무도 벅찬 일들이었다.

“내가··· 아니··· 이게···.”

제대로 생각도 들지 않았다.

뭐가 뭔지 상황 파악을 하는 것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니까, 지구가 시스템이란 것에 빚을 지다 못해 값지 못해서 강제 집행에 들어갔고 나는 직업으로 은행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 은행장이라는 직업은 그 파괴용이라는 놈이 내게 관심을 가질 정도로 대단하다는 거겠지.’

뭐 이리 현실성이 없는 내용이 다 있지?

소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지 않은가.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었기에, 너무도 황당한 일이었기에 웃음만 나왔다.

거기다 더 웃긴 건 내가 얻은 직업으로 인해 은행을 건설하지 않으면 내가 죽는단다.

“그럼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

일주일.

충분히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일주일이면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십수번도 더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네비게이션이 있는 지금에 찾아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족할 수도 있어.’

땅이 갈라졌고, 몬스터가 등장했다.

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는 지금 그것만을 믿고 움직이기에는 부족한 게 많았다.

그리고 던전이라는 게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그걸 찾는 것만 해도 일주일은 후딱 지나갈 수 있다.

“하아···.”

진짜 엿 같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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