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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작의 외전이 좀 이상합니다 (120)화 (120/138)

외전 1, 3화



 

공작 부부를 위한 귀빈실로 안내하는 하인의 뒤를 따라 둘러본 이스키아 성 내부는 어딘가 괴상했다.

견고하지만 소박하게 지어진 성의 외벽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번쩍거리는 가구와 쓸데없이 화려하기만 한 장식품들이 복도에 죽 늘어서 있었다.

심지어 귀빈실의 커튼과 카펫은 지독하게 유행을 타는 디자인이었는데, 성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혀 맞질 않아 오히려 촌스러워 보였다.

비앙카가 빠른 손놀림으로 고급 흑단목으로 만든 반질반질한 가구 안에 짐을 풀었다. 그 사이, 그들을 안내하던 성의 사용인이 머쓱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원래 저희 영주님께서는 검소하신 분인데, 전 영주님이 사치품을 매년 새로 사들이시는 바람에…. 이스키아 자작님께서 복권하신 뒤엔 새것을 버리는 건 아깝다고 계속 사용하고 계세요.”

“아….”

오스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인이 공손한 태도로 말을 덧붙였다.

“머무시는 동안 이스키아 성의 자랑인 온천실을 두 분께서 따로 사용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 두었습니다.”

“온천이요?”

“해수온천은 이스키아의 자랑이거든요. 성 근처에서도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오른답니다.”

오스칼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이스키아가 라인하트의 유명한 휴양지 중 하나라더니, 정말인 모양이었다.

“그럼, 준비가 다 되시면 식당으로 모시겠습니다.”

사용인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떠나고, 비앙카의 도움을 받아 화려한 만찬용 드레스로 갈아입은 오스칼이 역시 만찬 의상으로 갈아입는 중인 레오를 기다렸다.

이윽고, 레오가 오스칼을 찾아 나왔다.

“오스칼, 준비는 다 했… 크흠.”

한층 더 아름답게 변신한 오스칼을 본 레오가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전투 중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범벅이 된 오스칼도 귀여워 죽을 지경이었는데, 이렇게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절할 정도로 예뻤다.

오스칼이 레오의 팔짱을 끼자, 그가 귀빈실의 커다란 침대를 눈에 담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름다운 공작 내외가 만찬장에 들어서자, 이스키아 자작 부부가 예를 갖추었다. 만찬장은 한눈에 보기에도 격식에 따라 성심성의껏 준비한 티가 역력했다. 만찬장을 온통 휘감은 엄숙한 분위기에 오스칼이 바짝 움츠러들었다.

“비록 차린 것은 없지만,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방장 유리겔은 솜씨가 아주 좋답니다.”

자작의 웃음기 어린 인사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오스칼은 딱 죽을 맛이었다. 까다로운 귀족들의 식사 예법을 따르느라 정성껏 차린 음식의 맛을 느낄 새도 없었다.

게다가 자작 부부는 긴 세월을 건너뛰어 다시 모시게 된 주군, 칼릭스 공작 부부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오스칼은 대화에 집중하려 무던히 애썼지만, 생소한 주제에 대화의 절반 정도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대화에 참여하랴, 예법을 지키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에 비해 레오는 여유 있는 얼굴이었다.

‘그러고 보니 레오는 노이어 영주도 노련하게 상대했었지.’

오스칼은 뭐든 잘 해내는 레오를 부러워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하지만 뼈에 붙은 고기의 살점은 제대로 잘 썰리지 않았다. 너풀거리는 소맷자락이 식기에 닿지 않도록 신경 쓰느라 더욱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잔뜩 집중한 오스칼이 미간을 좁혔다.

“비전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식견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예…?”

이스키아 자작의 물음에 오스칼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식견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 문제가 뭔지도 이해를 못 했으니까. 오스칼이 당황해 입을 뻐끔거렸다.

“어…. 그게….”

목이 탄 오스칼이 옆에 놓인 물잔을 집어 들었다. 공교롭게도 술이 담긴 잔이었다. 하지만 이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오스칼이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본 자작부인이 손을 뻗어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어머, 비전하…. 그건 술….”

“쿨럭. 쿨럭.”

목 안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감각에 오스칼이 요란한 기침을 해댔다.

쨍그랑-

찢어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오스칼의 식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당황해 허둥거리던 오스칼의 드레스 위로 철퍽, 소리를 내며 음식이 쏟아졌다.

찰나의 적막과 함께 당황한 세 사람의 시선이 오스칼을 향했다. 곧이어 레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스칼을 살폈다.

“다친 곳은 없나?”

“비전하, 괜찮으십니까.”

살짝 얼굴을 굳혔던 이스키아 자작 내외가 이내 걱정스러운 낯을 했다. 멀리서 성의 사용인들이 달려와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오스칼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눈 위가 빨갛게 부어오른 오스칼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전… 괜찮아요. 죄송해요. 제가 결례를….”

레오에 대한 미안함과 자작 부부 앞에서 보인 미숙함에 수치심이 밀려들어 목구멍으로 울컥 울음이 올라왔다. 오스칼이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입을 열었다.

“이스키아 자작, 식사는 이쯤 해도 되겠습니까. 오늘 밤은 조금 피곤하군요.”

“예. 긴 여정으로 피곤하셨을 텐데, 저희가 두 분을 늦게까지 잡아 둔 것 같아 송구합니다.”

이스키아 자작이 고개를 숙였다. 짧게 눈인사를 한 레오가 오스칼을 부축했다.

“어머! 마님, 드레스가! 식당에서 무슨 일 있으셨어요?”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앙카가 엉망이 된 드레스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부인께서 많이 피곤한 듯하니, 바로 쉴 수 있게 준비하지.”

고개를 끄덕인 비앙카가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오스칼을 방에 딸린 욕실로 데려갔다. 비앙카는 얼른 오스칼의 더러워진 드레스를 벗기고, 욕조에 향유를 풀었다.

“새로 맞춘 드레스가 엉망이 되어 버려서 어떡하죠.”

비앙카가 아쉬운 목소리를 내며, 꼼꼼하게 오스칼의 몸을 닦았다. 그 말에 오스칼의 기분은 더 가라앉았다.

그런 드레스라면 검 하나는 족히 새로 살 수 있는 가격이었을 텐데. 값비싼 드레스를 하루아침에 못쓰게 만들어버렸으니, 도움이라곤 못 되는 공작 부인이었다.

비앙카는 살뜰하게 오스칼의 시중을 들면서도, 귀족 부인의 몸가짐을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스칼은 이따금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하얗고 보송보송한 네글리제를 입은 오스칼이 침실로 들어서자, 이미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레오가 소파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괜찮나? 오늘 여정이 힘들었을 텐데, 자작 부부와 식사까지 하느라 피곤했겠군.”

레오가 다정한 목소리로 오스칼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오스칼이 어두운 표정으로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최악이었다. 공작부인이 된 지 이틀 만에 레오의 체면을 몇 번이나 깎는 건지.

“나는… 역시 공작부인 자리엔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

가뜩이나 사교계에서 칼릭스 공작 부인의 자질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는데, 가신과의 식사 자리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오늘 일이 칼릭스 가의 가신들 사이에 소문이라도 난다면, 젊은 새 공작이 얼마나 어설픈 사람처럼 보일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울적한 기분에, 오스칼이 침대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였다. 레오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오늘 낮부터 자꾸 이상한 소릴 하는군.”

“하지만…. 자꾸 네게 창피만 주는 것 같단 말이야. 난… 검 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드러내진 않았지만, 이스키아 자작도 아깐 불쾌했을 거야. 공작 부인이라는 사람이 식사 자리를 엉망으로 만들었잖아. 이제 네 평판이 뭐가 되겠어.”

오스칼이 울먹였다.

“그런 일로 깎일 정도의 평판이라면 없는 게 나아!”

“이럴 줄 알았으면, 공작부인이 아니라 그냥 네 기사로 남을 걸 그랬어.”

“뭐?”

레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랬으면 네게 더 도움이 됐을 거야.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바보 같은 꼴을 보이지 않아도 되잖아.”

레오가 공작위를 되찾을 수 있게 돕는 것까지가 제 역할이었는데, 그 이상을 욕심낸 게 실수인 모양이었다. 공작이 된 레오에게 자신은 도무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레오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그의 목소리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너는 내게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하는군. 도움, 필요, 그딴 게 없으면 우리 사이는 아무것도 아닌 건가?”

“널 사랑하니까 네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거야.”

“그 말은, 네가 널 짐이라고 생각한다는 건가?”

오스칼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건 아니야. 하지만 어떻게 되찾은 공작위인데…. 내가 그걸 망치고 있잖아.”

“나는, 네가 싫다고 하면 공작위를 버릴 수도 있어. 이깟 작위 따위가 뭐라고!”

레오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지금껏 오스칼이 본 그의 모습 중, 가장 성난 얼굴이었다. 하지만 공작위를 버린다는 말에 오스칼이 눈을 치켜떴다.

“무슨 말이야! 공작위를 버리다니,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가진 작위가 널 괴롭게 만든다면, 공작위가 무슨 상관이지? 난 너만 있으면 돼! 항상 그랬어. 그런데 넌 그렇지 않은가 보군.”

그의 말에 오스칼은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레오와 함께하기 위해 현실의 삶마저 포기했는데, 제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레오가 야속했다.

“너야말로 힘겹게 되찾은 것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거 아니야? 공작령의 백성들, 가신들, 기사들…. 널 믿고 따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나 하나 때문에 그렇게 쉽게 공작위를 버리겠다는 말이 나와?”

“고작 너 하나라니? 너야말로 얼마나 가벼운 마음이면, 그렇게 쉽게 나와 결혼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건가?”

“그 말이 꼭 그런 뜻은 아니었어!”

오스칼이 변명했다. 세모꼴로 눈을 뜬 레오가 그도 모르게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생각을 내뱉었다.

“공작부인이 아니라 기사로 남는다는 말이 그 말 아닌가? 왜, 공작부인으로는 성에 차지 않나? 왕비라도 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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