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신- 낮과 밤의 신부-3화 (3/95)

[3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가비가 일곱 살 때.

부모님은 가비를 데리고 지방 어딘가의 펜션으로 여행을 갔다. 해질녘이었고 부모님은 저녁 준비로 분주했다. 창밖을 내다보던 가비의 눈에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마치 가비를 향해 나오라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엄마, 나 마당에서 놀아도 돼?’

‘안 돼. 밥 먹고 아빠 엄마랑 같이 나가.’

하지만 그럼 새끼고양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밖에 새끼고양이가 있어. 고양이만 보고 올게. 응?’

창문을 빼꼼 내다본 엄마가 고양이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럼 잠깐만 보고 와. 알았지?’

‘응!’

엄마는 고양이가 펜션에서 키우는 동물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비가 아기 때부터 동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허락을 받은 가비가 슬리퍼를 신고 정원으로 나갔다.

새끼고양이가 다가와서 가비의 발치에 얼굴을 비볐다. 가비는 그 모습을 보고 활짝 웃었다.

머리를 쓰다듬자, 고양이가 슬쩍 피하며 저만치 달아났다.

‘어디가!’

가비가 고양이를 쫓았다. 그럴수록 고양이는 더 멀리 달아났다.

‘가지 마! 안 돼!’

고양이가 펜션 밖으로 나갔다.

‘야옹아!’

자신을 따라오는 가비를 몇 번이고 돌아보던 고양이가 돌연 우뚝 멈춰 섰다. 가비가 숨을 몰아쉬며 고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집에 가자.’

고양이를 달래던 가비가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이렇게 온 걸까. 펜션이 조그맣게 보일 정도로 먼 거리였다.

‘엄마한테 혼나. 빨리 가자.’

고양이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퍼엉-!

뒤에서 굉음이 들렸다. 깜짝 놀란 가비가 귀를 막으며 엎어졌다.

울먹이며 놀란 가슴으로 돌아보니, 부모님이 있는 펜션에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가스폭발 사고였다.

티브이 뉴스에도 나올 만큼 큰 사고. 사망자는 가비의 부모님을 비롯해 일가족 네 명이 더 있었다.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며 가비를 보고 천운이라고 했다.

천운.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난 아이의 운이 천운이라니.

어쩌면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를 그 생각을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끊었다.

‘내 새끼. 우리 강아지.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다행이야….’

부모가 없는 삶이 외로울 만도 했지만, 할아버지의 아낌없던 사랑으로 사춘기도 무난히 잘 넘겼다.

태권도, 검도, 수영, 권투에 합기도까지- 안 해본 운동이 없었다. 운동신경도 뛰어났고 뭘 해도 잘했다.

은가비는 할아버지 은수만의 보물이자 자랑이었다.

역시 할아버지 말이 다 맞네….

가비는 생각했다.

이 세상에 겉과 속이 다른 건 사람뿐이라고.

그러니까 그걸 잘 구별해야 한다고.

구별하지 못해서 선배 같은 사람을 삼 년 내내 짝사랑했고.

시간 아깝게.

현장 사진은 제대로 갔으니까 지금쯤 은영이가 신고했겠지?

경찰과 주변 사람들에게 다 알렸을 테고.

그 싸패 놈은 어떻게 됐을까?

피를 꽤 흘렸던데.

난 아마…, 실종신고 되겠지?

점박이와 애들은.

잡혔을까? 잘 도망갔겠지?

부모님으로 시작된 생각은 할아버지와 사건을 지나쳐, 언제나 제 주변을 맴돌던 동물들의 안위로 이어졌다.

분명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들에게 도움받을 거야.

고마워. 항상 외롭지 않게 내 곁에 있어 줘서.

위험한 순간마다 날 지켜줘서…….

가비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난……,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문득 이런 자신이 이상했다.

마치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을 것처럼.

자신이 있던 자리,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할아버지가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세계는 가비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으응.”

온갖 생각으로 난무하던 의식이 돌아왔다.

“…으.”

어깨가 빠질 것처럼 아파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을 떠보니 손과 발이 밧줄에 묶여 있었다.

그제야 가비는 정신을 잃기 전 보았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멧돼지를 닮은 괴물 같은 동물. 그 동물을 피해 내달리던 자신.

그리고 그것을 눈 깜짝할 새에 반 토막 내버린……,

“정신이 들었군.”

툭.

투박한 신발 끝이 가비의 발을 쳤다. 가비가 움찔, 다리를 접었다.

눈을 들자 잿빛 하늘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쏟아졌고,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남자였다.

구름 위를 걷듯 진창을 내딛고, 짐승을 단칼에 갈라버린.

가비가 가는 눈을 떴다.

“넌…, 뭐야.”

기절하기 전, 남자가 제게 했던 질문을 고스란히 돌려줬다. 궁금했다. 이 야차같이 생긴 남자의 정체가.

사람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그 무언지.

남자가 무릎을 굽혀 앉았다. 눈앞으로 다가온 남자의 얼굴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과 반듯한 이마. 그 아래로 그림처럼 그려진 또렷한 이목구비.

마치 장인의 손길을 빌어 탄생한 것처럼, 남자의 얼굴은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차가운 회색 눈과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표정 탓에, 날 선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런 넌 뭐야.”

살짝 비틀린 남자의 입술 끝에서 나직한 물음이 뚝 떨어졌다.

“사람이라면 약관도 안 되어 장가도 못 간 꼬맹이일 테고.”

약관? 장가?

약관이란 말은 할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 나이 스물을 의미하는 말.

그런데 장가라니? 장가?

제 스타일이 보이시하다는 건 안다. 그래서 가끔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남자로 단정 짓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가비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야. 너 눈은 장식으로 달고 다녀?”

“이 미친놈이 어디서 반소님께…!”

남자의 뒤편에 서 있던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발끈하며 다가왔다.

남자, 반소가 손을 들어 곤과 풍을 제지했다. 곤과 풍이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얼른 뒤로 물러났다.

반소가 삐딱한 시선으로 가비를 바라봤다.

“내 눈은 장식이 아니다만, 귀물이 사람으로 변한 건 알아볼 수가 없다.”

이곳은 태황국(太煌國). 하늘 아래 유일무이한 나라였다. 그리고 태황국에는 사람이 사는 동서남쪽과, 귀물이 사는 북쪽 땅이 존재했다.

여긴 그 북쪽 귀물의 땅이고.

귀물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이었고 그 생김새와 지능도 천차만별이었다.

그런 땅에 이 젊은, 아니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들어와 있는 것이었다.

태황국의 왕인 ‘천자’가 금역으로 지정해 놓은 이 땅에.

오직 반소와 그가 이끄는 귀물경비대만 들어올 수 있는 이 땅에 말이다.

“허니 네 놈은 귀물이야, 사람이야.”

반소의 손끝이 가비의 턱을 들어 올렸다. 커다란 갈색 눈동자가 겁 없이 반소를 올려다보았다.

처음이었다. 제 눈을 이리도 똑바로 응시하는 자는.

“난 사람이고…,”

가비가 순간 말을 멈췄다. 반소라고 불린 이 남자 뒤로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떼로 있었다.

못해도 수십 명은 돼 보였다. 이런 녀석들 앞에서 과연 ‘여자’라고 성별을 밝히는 게 현명한 걸까?

아니. 위험할 수 있었다. 오히려 이들이 자신을 남자로 본 게 다행일지도.

“아무튼 난 사람이야. 귀물 같은 게 아니라.”

짐작했을 때 그 괴상망측하게 생긴 짐승 같은 것들을 귀물이라 부르는 듯했다.

반소라는 남자는 이 무리의 우두머리이고. 하지만 반소는 가비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귀물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것도 셀 수 없이 많이.

“어느 순간 사람처럼 된다고.”

그건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구두를 통해 기정사실로 내려온 얘기였다.

허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그런 놈은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이 불가하다.”

감정을 배제한 시선이 가비의 더러운 옷차림을 훑어내렸다. 생소한 옷과 신발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사람이라면 사는 지역과 부모의 이름을 대.”

“그건…,”

말문이 막혔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실 난 이쪽 세계 사람이 아니고 차원 이동을 한 것 같다, 라고 말해야 할까? 그럼 믿어줄까?

말도 안 됐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가비 본인도 코웃음을 칠 소리였다.

아마도 정신이 이상하다는 소리나 듣겠지.

어쨌든 잘못하면 귀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가비가 골몰하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니까 난 부모님이 안 계셔. 일찍 돌아가셨거든. 어릴 때 말이야.”

이건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은 가족 없이 혈혈단신이고,”

이것도 사실.

“눈을 떠보니까 여기 있었어.”

여기까진 전부 사실이었다.

“그 말을 믿으라고?”

반소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마치 범인을 취조하듯 첨예한 눈빛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가비가 마음을 다잡으며 반소를 직시했다.

“누군가 내게 원한이 있었던 모양이야. 날 납치해서 여기에 버리고 간 것 같아. 근데 그 원한이 뭔지 모르겠고, 나를 왜 여기에 버렸는지도 모르겠어. 어쨌든 여기 있는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건 사실 반, 거짓 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차라리 차원 이동을 할 거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라도 떨어지던지.

하필이면 귀물들이 사는 땅에, 하필이면 이런 도적 떼 같은 무리 앞에 떨어진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짜증 섞인 눈빛에서 진심을 읽었는지, 반소가 턱을 잡고 있던 손을 거뒀다. 자리에서 일어난 반소가 내리뜬 눈으로 가비를 바라봤다.

“네 놈 말이 사실이라면 살려줘야겠고, 아니라면 죽여야겠지.”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비의 눈이 충격으로 커졌다.

“무슨 말이야. 죽이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야! 나 사람이야. 몇 번을 말해, 사람이라고!”

하지만 반소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았다.

“가족도 모르고 살았던 지역도 모른다?”

간혹 그런 자가 있을지 모르나, 대부분은 출생기록부를 가지고 있었다.

“헌데 정신을 차려보니 귀물의 땅이었고, 누가 널 납치해서 버린 것 같다고?”

반소가 픽, 입꼬리를 올렸다.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나마 귀물의 땅을 구분 짓는 경계는 위험이 덜했다.

허나 경계를 넘어 땅 한복판에 들어온 건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네 말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어. 해서 알아야겠다. 네가 정말 사람인지, 사람을 먹어서 사람처럼 된 귀물인지.”

“좋아. 어떻게 증명할까? 방법이 있으며 말해. 그렇게 할 테니까.”

가비가 단호한 얼굴로 반소를 바라봤다. 뛰라면 뛸 테고 구르라면 구를 테다. 이 억울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가비의 당찬 태도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곤과 풍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어떤 사람도 반소를 저리 대하지 않았다. 불손한 건 둘째치고 반말지거리라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소가 누구인가.

그는 이곳 태황국의 천자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형이었다.

궁에서는 보통 ‘야왕’이라는 칭호로도 불리며, 북쪽 땅의 경계를 사수하는 귀물경비대의 수장이었다.

그 때문에 태황국의 모두가 반소의 얼굴은 몰라도, 이름만은 알고 있었다. 허니 가비를 향한 반소의 의심은 타당한 것이었다.

“좋다. 네 뜻도 그러하니 증명할 기회를 주지.”

“뭔데. 말해.”

가비가 입술을 꾹 물며 반소를 노려봤다. 이세계로 떨어진 것도 황당한데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반소가 뒤에 있는 귀물경비대의 좌대장, 곤에게 눈짓했다.

곤이 성큼성큼 걸어가 가비를 번쩍 들어 어깨에 짊어졌다.

“…어어,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지만 그건 말 그대로 ‘꿈틀’에 불과할 뿐이었다. 곤이라고 불린 떡대 같은 남자는 가비를 가까운 나무로 데려갔다.

푸른 잎사귀 하나 없는, 시꺼멓고 흉흉한 나무였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곤은 가비를 짊어진 채 가볍게 나무 위로 올랐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가비를 매달았다.

“야!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내리지 못해!”

누에고치 같은 몰골로 가비가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러다 멈칫, 동작을 멈췄다. 나무가 금세라도 휘청이며 부러질 것 같았다. 내려다본 바닥이 아찔했다. 가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야…, 야! 당장 내려!”

가비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다.

“나 귀물 아니라고! 사람이라니까!”

“그러니까.”

반소가 낮게 읊조렸다.

“네 놈이 귀물인지 사람인지 증명하겠다며.”

증명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

사사사삭-

반소가 손짓하자 귀물경비대 전원이 바위 뒤로,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 모습이 워낙 바람 같아 눈 깜짝할 새였다.

이내 자리엔 가비와 반소 둘만 남았다.

“해서 기회를 주고 있잖아. 지금.”

반소의 입매가 느른하게 비틀렸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귀물인지 사람인지를 알아보는 건.

“귀물은 결코, 동족을 먹지 않아.”

오직 서열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허니 네 놈이 귀물이라면 그냥 둘 테고, 사람이라면 뜯어먹겠지.”

사람이든 귀물이든 그게 무엇이든.

존재가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반소의 눈은 지나치게 차갑고 냉정했다.

가비의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그 눈빛이 필시, 고양이를 해쳤던 진호 선배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