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2화
002
빠르게 내달리는 조손.
이건과 이정기는 마침내 목적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이건이 정찰을 통해 발견했던 곳.
“할아버지!”
바로 던전 내부의 안전지대를 발견한 것이었다.
“우와- 여기 너무 예뻐요!”
이정기는 안전지대의 모습에 기뻐하며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황량한 사막이나 다름없는 올림포스에 몇 그루 안 되지만 푸른 나무들이 자라나 있었고, 그 밑에는 오아시스라고 부를만한 아름다운 호수가 존재하고 있었다.
‘삼 년.’
이정기가 타이탄의 뱃속에서 지내온 시간.
‘삼 년.’
그리고 그 후 삼 년은 또 다른 타이탄의 뱃속에서 지내며 올림포스의 기후에 익숙해진 시간.
그 긴 시간을 거쳐 마침내 제대로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찾은 것이다.
“욘석.”
대자연이 무엇인지, 이정기가 알까.
그럼에도 이정기는 안전지대가 아름답다며 신이 나 있었다.
그런 이정기와 다르게 이건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안전지대.’
던전 내에서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으로 몬스터가 쉬이 접근할 수 없는 곳.
그러나 올림포스에 안전지대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곳 또한 완전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도 마력 밀도가 적당해서 나무나 물이 흐르게 된 공간.
그리고 이것은 전에 없던 변화였다.
‘던전이 변하고 있다.’
올림포스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
그렇기에 마냥 좋아해야 할 일이 아닌 조금은 긴장해야만 할 일이었다.
‘그래도 얼마간은 지낼 수 있겠지.’
처음으로 이정기에게 제대로 된 집이란 곳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감정이 바짝 메말랐던 이건도 조금은 기쁜 것이 사실이었다.
“정기야. 밥 먹자.”
이건이 이정기를 부르자 이정기가 쪼르르 달려와 자리에 앉았다.
[아공간 배낭]
하나에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아이템으로 일반 배낭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내부 공간은 가히 컨테이너 박스 수십 개와 비슷한 크기를 지닌 물품이었다.
특히나 이건이 가진 아공간 배낭은 조금 더 특별한 물품으로, 이건이 예전에 구했던 드레이크의 심장 스무 개를 합해 만든 것으로, 그 크기가 가히 다른 것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밥! 밥!”
노래를 부르는 이정기.
이건은 배낭을 열어 사냥했던 몬스터들의 사체를 꺼내 요리하기 시작했다.
“우유부터 먹거라.”
그리고 먼저, 황금 염소의 젖을 이정기에게 건넸다.
“맛없는데….”
“맛없어도 먹어라. 몸에는 좋단다.”
몸에 좋다는 이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황금 염소의 젖은 그야말로 마력의 보고나 다름없었다.
“알겠어요.”
지구에 있는 헌터들의 경매장에 황금 염소의 젖이 풀린다면 아마도 부르는 게 값일 터.
젖을 먹은 음용자의 마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질병에 대한 내성과 독에 대한 내성마저 키워주는 희귀하디 희귀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정기는 칠 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것을 음용했다.
치이익.
고기가 익는 소리.
“밥! 밥!”
이정기는 어느새 황금 염소의 젖을 전부 먹고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요리는.
“블랙 오크의 넓적다리다.”
“와아아!”
이정기가 기쁜 듯이 소리쳤다.
최상위의 몬스터만 존재하는 올림포스에서 맛이 있는 고기를 먹는 일이란 흔치 않았다.
과한 근육이나, 독, 혹은 아예 암석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대부분.
그러나 블랙 오크의 넓적다리는 그중에서도 이정기가 가장 좋아하는 별미였다.
와그작!
크게 한 입 베어 무는 이정기.
일반인이라면 음식을 먹는 순간 식도부터 위장까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몬스터가 가진 마력은 몬스터의 내부에서 독처럼 변해 유해한 성분으로 변모하게 되니까.
하지만 이정기는 그런 몬스터의 고기를 아무렇지 않게 먹어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정기의 특별함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헌터라니.’
태어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을 때까지는 마력량이 너무나 변변찮아 이건도 이정기가 헌터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황금 염소의 젖을 먹으면서부터 이건은 이정기가 가진 특별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정기는 태어나면서부터 헌터였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화아악.
음식을 먹자 이정기의 몸에서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력 흡수율이 족히 일반 헌터의 몇 배는 돼.’
헌터는 마력을 흡수하여 성장할 수 있다.
마력석을 특별한 방식으로 흡수하거나, 몬스터를 사냥하며 자연스레 마력이 쌓인다.
그러나 이정기는.
‘몬스터를 먹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흡수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화아악.
그저 숨을 쉬고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흡수한다.
물론 그 양이 미세하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정기의 특별함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구와 비교해 수천 배나 높은 마력 밀도를 지닌 올림포스, 그곳에서 지내온 칠 년.
매일 같이 삼시 세끼를 몬스터로 먹으며, 숨을 쉬고, 움직인다.
그렇게 쌓인 이정기의 마력 양은 자그마치 A급 헌터에 비견될 정도.
겨우 일곱 살 난 소년.
그가 A급 헌터만큼의 마력을 지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이었다.
“꼭꼭 씹어먹어라.”
이건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맛있게 블랙 오크의 넓적다리를 먹는 이정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일 년의 시간이 또 흘렀다.
안전지대는 이제 제법 사람이 사는 것과 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오아시스의 바로 옆, 나무 아래 커다란 집이 바로 이건과 이정기가 거주하는 집이었다.
정기는 마당에 나와 검을 들고 있었다.
“하아압!”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은 단 몇 가지뿐이었다.
‘먹는 법.’
어떻게 해야 몬스터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숨 쉬는 법.’
어떻게 해야 숨을 쉬며 마력을 흡수해 몸을 지킬 수 있는지.
‘마력을 사용하는 법.’
마력장을 만들어 올림포스의 치명적인 기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
‘뛰는 법.’
혹여 이정기가 위험에 처하면 도망칠 수 있도록 이건은 아주 기초적인 것들만을 이정기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여덟 살 되던 해, 이정기의 생일날.
이건은 처음으로 또 다른 배움을 이정기에게 전수해주었다.
‘검이라는 거다.’
검을 다루는 법.
“하아압!”
그렇다고 처음부터 특별한 것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검을 어떻게 쥐어야 하고,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그것을 반복해서 시켰을 뿐이었다.
부우웅!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
여덟 살 난 소년이 매일같이 연습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정기에게는 달랐다.
뚝. 뚜욱.
이마에서부터 흐른 땀이 턱을 타고 바닥에 떨어지건만, 이정기는 신경하나 쓰지 않은 채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이정기에게 이것은 단순히 훈련이나 수업이 아니었다.
‘놀이.’
노는 것이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몬스터밖에 없는 올림포스에서 이정기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할아버지가 알려준 것들을 반복하며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지구에 대해 배우는 것뿐이었다.
그런 이정기에게 새로운 도구인 검과 그것을 휘두르는 것은 새로운 놀이기구로 노는 법을 배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합!”
그러니 이정기는 매일같이 쉬지 않고 마당에 나와 검을 휘둘렀다.
그에 따라 이정기의 육체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정기야.”
“할아버지!”
“밥 먹자.”
또한, 그에 걸맞게 식단도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마력을 가장 풍부히 품고 있는 음식 등을 이정기에 제공했었다면.
“먹어라.”
이제는 조금은 특별한 것들을 주었다.
“으엑.”
자이언트 센티페드 - 몸집이 거의 사람 두 배만한 크기의 징그러운 지네 - 가 오늘의 요리였다.
생긴 것부터 마음에 안 드는데, 그 맛은 더욱 끔찍했다.
거기다 이건은 조리 또한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꼬, 꼭 먹어야 해요?”
“건강식이야.”
“그, 그래도….”
거의 야생 그대로의 날 것.
그러니 센티페드의 고기는 몬스터의 독성을 거의 그대로 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 먹으면, 오늘은 특별히 이 할애비가 너와 함께 놀아주마.”
“저, 정말요?”
“그래.”
“좋아요!”
마침내 고기를 씹기 시작하는 이정기.
그에 따른 변화가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불끈.
피부에 돌기 같은 것이 잠시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그렇게 돌기가 올라왔던 피부는 잠시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얼마나 놀랐던지.’
이제는 익숙해진 모습.
하지만 이건은 처음 저런 것을 보고 기겁을 했었다.
혹시 정기의 몸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죽이고 부수는 일이었으니, 혹여 병에 걸린 것이라면 어찌해야 하나 깊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건은 곧 그것이 병이 아님을 깨달았다.
꿀렁.
정기가 몬스터의 고기를 먹은 지 한참.
정기는 이제 다른 헌터들이 할 수 없는 또 다른 일을 해냈다.
몬스터의 고기를 먹어 마력을 흡수하는 것뿐이 아닌.
‘몬스터의 특성을 조금씩 흡수한다.’
아까 전 올라왔던 검은 돌기는 바로 자이언트 센티페드의 갑각과 같은 강인한 갑주 같은 것이었다.
저것으로 인해 정기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물론 몇 번 고기를 먹는다고 완전히 그 특성을 흡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언젠가 완전히 흡수하겠지.’
이건은 그걸 위해 이정기에게 몬스터의 사체를 먹이고 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다 먹었어요!”
신이 나 소리치는 이정기.
“그래. 놀아줘야겠구나.”
이건은 똑바로 서 이정기를 향해 말했다.
“검을 가지고 오너라.”
* * *
“…….”
이건은 이정기를 보며 피식 웃었다.
검을 쥐고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이 제법이었다.
검을 쥔 지 이제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이정기의 성취는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었다.
“오거라.”
이것은 이건과 이정기의 놀이.
“하압!”
이정기는 제법 그럴듯한 자세로 검을 휘두르며 이건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휘익! 휙!
빠르게 내리쳐지는 이정기의 검이었지만, 단 한 번도 이건의 몸에는 닿을 수 없었다.
전부 종이 한 장 차이로 빗겨나가고 있는 이정기의 검.
“더 빨리.”
“하압!”
“더 유연하게.”
“흡!”
하지만 이정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건의 옷깃조차 스치는 일은 없었다.
“최선을 다해 보거라.”
휘익!
다시 내리쳐지는 검.
타앗!
이번에는 이건도 피하지 않은 채 손날로 검을 후려쳤다.
“헙!”
숨을 들이켜며 물러서는 이정기.
정기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파리를 쫓는 듯 가벼웠던 이건의 손날에 담긴 힘이 상상 이상이었던 탓이었다.
“반칙이에요!”
“뭐가?”
“여태까지 할아버지가 제 검을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잖아요!”
씩씩대며 이정기가 소리쳤다.
“그래서?”
“그게….”
“검을 든 순간 반칙 같은 건 없다.”
“…….”
이건의 말에 이정기는 분한 듯 이건을 노려보았다.
“지금은 놀이지만, 누군가 네 목숨을 노린다면 그건 더 이상 놀이가 아니야.”
하지만 분한 눈빛은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 너는 이 할애비가 다칠까 봐 제대로 힘을 안 쓰고 있었지?”
“그건….”
“누가 누굴 걱정해?”
이건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걱정이나 배려는….”
이번에는 이건이 움직였다.
아주 가벼운 발놀림.
한 발, 그저 단 한 발을 내디뎠을 뿐인데.
“강자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이정기의 앞에 서서 이정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이정기가 급히 검을 치켜들려던 찰나.
타앗.
이미 이건의 손은 이정기의 정수리에 내리쳐졌다.
“아얏!”
이정기의 비명이 울렸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서 사 년의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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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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