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의 손자
제1권 1화
프롤로그
“안 된다!”
장년의 남성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콰아앙!
주먹이 내뻗을 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땅거죽이 뒤집혔다.
“안 돼!”
남성은 그렇게 소리지르며 미친 듯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런 남성의 발길을 막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빌딩보다 더한 크기, 크기에 걸맞은 위압감을 내뿜는 몬스터들.
하나하나가 보스 몬스터라 불리는 타이탄들이 남성의 갈 길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비켜라!”
남성은 또다시 주먹을 내뻗으며 타이탄들을 부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남성이 그토록 바라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아, 안 돼!”
그는 쓰러져 피 흘리는 남자와 여자를 볼 수 있었다.
“강아! 영아야!”
그들은 남자의 아들과 며느리.
이 지옥에서 수년 동안 함께해 온 자신의 유일한 가족들.
“아, 아버님….”
이미 죽은 아들의 옆에 있는 며느리는 실낱같은 숨을 내뱉으며 헐떡이며 달려온 남성, 이건을 불렀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었던 일.
출산이 임박했던 며느리를 보호하고자 아들의 부탁으로 주변을 정찰하러 간 사이에 일어난 일.
실낱같았던 숨도 더욱 가냘파지고 있는 며느리는.
“이 아이를…, 부디…, 아이를….”
핏덩이와 같은 아기를 보물처럼 감싸 안고 있었다.
“안 된다! 너마저 보낼 순 없어! 영아야! 영아야!”
“부탁…, 드려요.”
이건의 외침도 소용이 없었다.
최강이라 불렸던 이건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적들을 도륙하는 것뿐.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재주 따윈 없었다.
세상 무엇도 부수고 갈라내었던 그의 힘도 아들 내외의 죽음에는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안 돼에에에에에-!”
마침내 며느리의 숨마저 끊어졌다.
남아있는 것은 타이탄의 시체와 타이탄들의 피로 만들어진 강.
아들 내외의 숨 끊어진 시체.
그리고.
“응애-! 응애-!”
이건의 절규에 울음을 터트린 갓난아기뿐이었다.
이건의 손자.
마지막 남은 유일한 가족.
꽈악.
이건은 아이를 안아 들며 눈물을 집어삼켰다.
꼬옥.
무엇을 알까.
아기는 그 조막만한 손가락으로 이건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지옥이 분명한 이곳에서 태어난 조그마한 아이.
“네 이름은…, 정기다. 이정기.”
이건은 이미 정해두었던 손자의 이름을 부르며 다짐했다.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꼭 지켜주마-!”
001
어느 날 지구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게이트, 그것이 등장하며 커다란 격변을 맞이한 것이었다.
이계와 연결된 게이트, 그곳을 통과하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유토피아가 아니었으며, 사람들이 정복해나갈 땅도 아니었다.
‘지옥.’
그야말로 생지옥.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괴물들이 득실거렸으며, 그것들에게는 인류의 병기는 통하지 않았다.
각국의 정부는 그 즉시 군대를 물리고 게이트를 봉쇄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오픈.’
얼마간 열려 있던 게이트들이 활짝 열리며 세계가 뒤섞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몬스터들의 침공이었다.
아비규환.
저쪽만이 지옥이라 생각했던 것은 이제 지구 또한 지옥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병장기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고, 핵무기마저 소용없었다.
세계가 멸망하리라 생각했건만, 여기에도 구원은 있었다.
‘헌터.’
특별한 힘을 지닌 존재들이 탄생한 것.
손으로 얼음을 쏘고, 검에 푸른 오러를 깃들인 신인류가 출현했고, 이들은 마력이라는 새로운 힘을 연료 삼아 괴물을 상대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류는 조금씩 저항을 해나갔다.
게이트와의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시엘이라 칭하는 최강의 일곱을 선별해,
이제 인류는 시엘을 선두로 저항이 아닌 반격을 꿈꾸었다.
‘전쟁을 끝내야 하오.’
오랜 전쟁으로 게이트에 대해 많은 것이 밝혀진 상황.
때마침, 게이트를 완전히 소멸할 방법이 밝혀졌다.
이 모든 배후.
게이트들의 조종자들이 있는 게이트를 찾아낸 것이었다.
‘시엘이 게이트를 파괴하고, 전쟁을 끝내겠소.’
그렇게 마지막 전쟁이 시작되었다.
각 일곱의 시엘은 그들이 선택한 헌터들을 이끌고 최후의 게이트.
‘올림포스.’
조종자들이 있는 게이트에 들어섰다.
올림포스는 최후라는 이름에 걸맞게 특별했다.
그 안은 끝이 없을 정도로 넓었으며, 게이트의 파괴 조건인 핵을 찾는 데만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인류는 승리했다.
핵을 파괴하고 올림포스를 정복했다.
‘무슨…!’
그러나 모든 것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장 탈출해야 해요!’
올림포스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전에 없던 괴이한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것들의 이름은 타이탄.
하나하나가 최고등급의 게이트 보스 몬스터와도 같은 막강한 존재들.
‘저것들이 하나라도 빠져나가면 인류는 끝장입니다!’
끝난 것으로 생각했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임무는 실패했다.
최고의 헌터들조차 찢어 죽이는 타이탄들이 게이트 밖을 딛는 순간 인류 또한 끝이 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방법은 있었다.
헌터들 중 일부가 남아 타이탄들의 이목을 끄는 것.
그 사이 핵을 파괴해 열린 자그마한 통로로 다른 헌터들이 밖으로 나가.
‘게이트를 영원히 봉인하는 것.’
하지만 문제는 누가 남느냐는 것이었다.
남는자들의 죽음이 확정적인 상황.
그 누구 하나 쉬이 나설 수 있는 자는 존재치 않았다.
더욱이 이곳은 엉망이 되었다 한들, 돌아가 올림포스를 봉인하기만 한다면 그들에게 막대한 부귀영화와 평화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으니까.
결국, 남은 것은.
‘한국팀.’
한국의 시엘, 이건이 이끄는 파티였다.
과반수의 동의 끝에 결정된 선택.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이건은 무언가 석연찮은 진행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아버님.’
파티에 포함된 자신의 아들, 이강과 이강의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다른 파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여기서 자신들이 분열하면, 이건이 칼을 뽑으면 그 결과는 처참할 것이라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곳에 발디뎠것만, 결국 인류의 멸절이 이건의 손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지.’
이건은 어쩔 수 없이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다.
결국, 그들을 뒤로 한 채 생존한 다른 이들은 모두 게이트를 빠져나갔고, 그렇게 올림포스는 봉인되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한국의 헌터들, 이건과 그의 아들 이강, 이강의 아내 유영아를 포함한 스물넷의 파티는 끝없는 지옥에서 고독하게 싸워 생존해야만 했다.
* * *
휘이잉.
황량한 바람이 부는 사막에 검은 그림자 두 개가 걸어 나가고 있었다.
하나는 꽤 큰 키를 지닌 남자.
그리고 또 하나는 작디작은 소년의 그림자였다.
꼬옥.
소년은 큰 키를 지닌 남자의 손을 꼭 붙잡고 걷고 있었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게 소년의 몸을 흔들려 했지만.
우웅.
남자가 손을 뻗자 작은 진동과 함께 바람이 그들의 몸에 닿지 못했다.
남자가 멈춰서 소년을 보며 말했다.
“정기야. 힘 안드냐?”
정기, 그것이 소년의 이름이었다.
인류 최초로 게이트에서 태어난 아이.
태어나던 날, 아비와 어미를 타이탄의 손에 동시에 잃은 아이.
성인, 아니 최고의 헌터라 불리는 자들도 생존하기 어려웠던 올림포스에서 아이는 무려 칠 년을 버텼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정기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
최강이라 불리우는 이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괜찮아요.”
이정기는 씩씩하게 말했다.
벌써 수일을 내리 걸었다.
처음에는 이정기를 업고 갔지만, 이내 이정기는 스스로 걷기를 희망했다.
‘할아버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가벼운 너 하나 업고 수천 일을 걷는다고 해도 결코 힘들지 않다, 고 말해도 소용 없었다.
이정기는 스스로 걸어가길 원했다.
그것 때문에 걸음이 느려져 목적지에 다다르는 날이 멀어졌다고 하지만 괜찮았다.
“그래. 힘들면 언제든 말하거라.”
“네.”
정기는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또한, 하나밖에 없는 할아버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했다.
겨우 일곱 살.
어리디어린 나이에 이미 소년은 철이 들어 버렸다.
저벅.
둘은 다시 걸어 나갔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이건은 이정기의 손을 잡고 과거를 떠올렸다.
정기가 태어났던 날, 그날의 일을.
‘응애!’
쉴 틈 없이 울어대는 아이.
최강의 헌터들에게도 지옥인 이곳에서 아이가 생존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무슨 일이…!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주마!’
이건은 그의 아들 내외와 태어난 정기에게 약속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했다.
하지만 안전한 곳이 어디 있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한 곳에 있었다.
‘타이탄!’
빌딩과도 같은 크기.
올림포스의 최상위 포식자.
그 가죽은 시엘 급의 헌터가 쏘아낸 전류에도 불타지 않았고, 오러 블레이드에도 쉬이 상처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건은 죽은 타이탄의 입을 벌리고 이정기와 함께 비집고 들어갔다.
정답이었다.
올림포스의 살인적인 기후에도 타이탄의 뱃속은 안전했다.
헌터들을 집어삼킬 듯한 막대한 마력도 타이탄의 뱃속에는 일부만이 스며들 뿐이었다.
‘응애!’
하지만 문제는 아직 있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
당연히 많은 것이 필요할 터였다.
더욱이 이건은 아이를 양육해본 경험도 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이었던 이강은 자신이 헌터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의 손에 맡겨져 키워졌고, 이따금 집에 들려 시간을 보낸 게 전부였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배가 고픈 게냐!’
급한 것은 식량.
이미 올림포스에서 헌터들이 먹을 식량은 동난지 오래였다.
헌터들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시체를 먹으며 버텨왔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헌터들이 몬스터의 몸에 쌓여 있는 독을 정화할 마력을 지녔기 때문.
아이에게 그 마력이 존재할 리 만무했다.
‘떠올려라! 떠올려라! 이건!’
스스로를 채찍질한 결과.
이건은 답을 찾았다.
‘황금 염소!’
올림포스의 일부 지역에 존재하던 특별한 생물.
흉악하기 그지없지만,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 털과 찬란한 뿔 때문에 기억하는 녀석.
그리고 무엇보다도.
‘녀석의 젖은 독이 없다!’
황금 염소의 젖은 독이 없다는 것.
이건은 일단 자신의 피를 흘려 이정기의 입에 물렸다.
마력으로 정화한 자신의 피라면 일단은 정기의 허기를 지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정기가 울음을 그쳤을 때.
‘정기야. 참거라.’
이건은 다시 이정기를 앞에 매고 황금 염소를 찾아 나서야만 했다.
그렇게 칠 년을 버텨왔다.
그때그때, 방법을 찾아 이정기를 양육했다.
처음에는 오로지 전투밖에 모르던 이건에게 타이탄과의 싸움보다 고된 하루하루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마저도 익숙해졌다.
“할아버지.”
“오냐.”
“뛰어도 될까요?”
그리고 칠 년이 지난 지금.
“흐음. 뭐, 이 정도 마력 밀도라면 괜찮을 듯싶구나.”
이정기는 제법 훌륭히 자라 있었다.
“헤. 알겠어요.”
너무나 사랑스럽게 웃은 이정기가 이건이 보호하는 마력장을 벗어났다.
휘이잉!
사막의 모래바람이 강렬하게 이정기를 쳐댔지만, 이정기는 아까 전 이건이 했던 것과 같이 손을 내뻗었다.
우웅.
놀랍게도 펼쳐지는 마력장.
이정기는 그 속에서 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허, 고놈 참.”
올림포스에서의 칠 년.
그건 살아만 남았다면 그 누구라도 강자로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
그것도.
‘응애!’
그 누구보다 특별한 아이라면 더욱 더 강하게 키울 수 있는 공간인 것이었다.
빠르게 내달리는 이정기가 어느새 이건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파앙!
물론 이건이 한 달음, 내딛기만 해도 따라잡을 수 있다 해도 말이다.
최강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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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록 | 2012년 4월 12일 제399-2016-000057호
발 행 일 | 2020년 12월 22일
ISBN 978-89-6788-793-3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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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