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36화 (136/211)
  • #136. 회장 아들 사칭사건.

    설민혁은 눈빛을 보고 누군지 안 모양이다.

    “이 새끼, 아직도 그러네. 예전에 한 번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그랬는데.”

    “뭐 하는 새낀데?”

    “내가 데리고 있던 앤데, 놈팡이 짓을 해. 예전에 공무원인 여자 한 명 등골 오지게 빼먹더만 이젠 아예 내 이름을 대네.”

    마요르카 유흥주점 관련해서 일을 하던 놈팡이로 얼굴이 반반하긴 한데 호스트로 갈 정도는 아닌 놈이라고 한다.

    설민혁 사칭, 물론 할 만하다.

    대전, 세종, 충청을 주름잡는 대기업의 회장의 서출 아들.

    사주로 휘어잡지 못했다면, 나도 술 먹고 노래 부르라 하면 탬버린 들고 빌빌 기었을 것이다.

    이 동네에서 사칭하기 가장 좋은 기업도 거기고.

    “넌 뭐 인맥이 다 그러냐.”

    “버리고 살라며? 버려야지. 근데 아……. 족치고 싶네, 내 이름을 팔고 다녀? 가뜩이나 악명이 자자한데.”

    “안 그래도 칼침 맞을 짓만 골라 했죠잉?”

    “난 악몽을 꿔.”

    “뭔?”

    “애들이 다 큰 애기 데려와서, 내 아들이야 하면서 안기는 꿈.”

    “푸하하하하하. 미친.”

    미친놈, 이건 웃겼다.

    “야, 내 농담에도 웃네?”

    내가 웃으니까 신난 게 보인다. 하여간 관심 종자.

    “일단 회장 아들이라고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거 허언증 끼 있지 않았냐?”

    “좀 그런 게 있었다.”

    믿게 만들 거짓말은 리얼리티가 섞여야 하는데, 주변에서 설민혁을 보고 배운 모양.

    물론 회장 아들이다, 이런 말은 강라은한테는 안 한 모양이다.

    이런 화술은 나도 써먹는 거라서 이해가 간다.

    단계적으로 입문시키는 것이다.

    처음부터 ‘회장 아들이야.’ 이걸 누가 믿겠나.

    대전이면 스카이피아 다니는 사원이라고만 말해도 먹고 들어가는 게 있을 것이니 그걸로 허세 부리고 돈도 좀 팍팍 쓰는 모습 보이고.

    ‘나는 출생의 비밀이 있어.’ 등등으로 궁금증을 유도한다.

    거기다 스카이피아 관련 떡밥, 여직원 누구가 어쨌다 등등 던져 주고.

    그러다 여자친구가 진짜 스카이피아 선민혁이 누군지 회사까지 뒤져 보게 유도한다.

    근데 그게 알고 보니 스카이피아 설 회장 숨겨 둔 아들이라네?

    이거 극적이지 않은가.

    “그런 놈팡이치고는 회사 내부 사정을 너무 잘 아는데? 뭐, 사칭을 하려면 그 정도 노력은 해야겠지만.”

    “그건…… 나도 잘 모르지.”

    일단 스카이피아 이효인, 정은수 등의 이름 자체는 인터넷에도 노출되어 있다.

    어디 담당, 무슨 담당.

    이름 중에 여자 이름 같다 싶으면 가져다 쓰는 게 불가능하진 않은 것이다.

    사칭으로 여자를 만난다면 목적은 돈이거나, 여자 그 자체거나.

    강라은이 원래도 좀 집착하는 기질은 있지만 여사원들에게 원망을 돌리는 것은.

    그 여사원들의 이름을 지속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일 것이다.

    근데…….

    왜 하필 또 이태현의 숨긴 자식으로 추정되는 이효인한테 그 화살이 갔나.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겹치는 거 아닌가.

    “너 뭐 이상한 생각 안 드냐? 누가 감시한다거나 그런 느낌?”

    “그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순간 뭔가 상상 하나가 스쳤다.

    누가 봐도 설민혁을 연상시킬 수 있는 가명을 쓰는 놈팡이가 이 근방의 여성들에게 염문을 부리고 다닌다?

    여간한 것들 다 꼬아서 보는 내 입장에서 이건 ‘설민혁 반대 운동 모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설민혁이 실제로 여자들을 무수히 유혹하고 다닌 것은 사실이고, 그 끝도 별로 좋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그 약점을 충분히 부각시킬 수 있다.

    거기다 설민혁과 연관이 있던 놈팡이면 공론화하기도 지랄맞다.

    “스읍, 아니 그렇게 보기엔 좀 너무 우연에 일관한 행보인데, 강라은이 깽판을 치는 건 예상외였나?”

    “뭔 소리?”

    뭐, 생각하면 말로 확언하는 버릇이 있는데 설민혁이 듣고 묻는다.

    생각해 놓고 보니까, 너무 비약이 아닌가 싶어서 확신하기 그렇다.

    그리고…….

    오히려 재미난 기회로 보인다.

    “아니, 상관없겠다.”

    “어?”

    “너 꽂아 줄 명분이 생긴 거 같다.”

    지금 생각하니 누가 시켜서 사칭했건, 그 놈팡이가 그냥 여자 등쳐 먹으려고 사칭했건 별 상관없었다.

    어떤 경우던 이용해 먹을 경우의 수가 있었다.

    그 사칭의 배후가 있었다고 그냥 닥치고 우기면 된다.

    있으면 발각해 써먹는 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칭하게 놔두느니 회사에서 보호하자고 하고.

    그러면 사칭 피해자 설민혁은 평판 똥망인 개망나니에서 누군가가 치졸한 수를 쓰면서까지 끌어 내리고 싶어 했을 무언가가 된다.

    * * *

    자살 소동 해결, 이어 ‘설은겸을 부리는 직원, 서길수 이사 간 질환을 맞힌, 성진경 부장을 좌천시킨 권력자.’인 명승철학관 관장님이 되었다.

    “무리수인데.”

    강라은 신세가 불쌍해서 설 회장 전문 간호 인력으로 생각을 해 봤다.

    그걸 꽂을 힘이 없지 않다.

    문제는 너무 큰 사고를 쳤다.

    자살 위험자를 채용하고 싶은 기업은 없다.

    뭐, 그냥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건이었으면 모르겠지만 스카이피아 사원들 다 알게 사고를 쳐 놔서.

    ……어.

    웃겼다.

    내가 어째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구먼.

    “오, 오 이사님.”

    “아, 와하하! 야아.”

    오원술 이사와 마주쳤는데, 과하게 반가워한다.

    사원들이나 아랫사람들 평판을 들어보면 무섭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내 앞에서는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다.

    보면 임원급들 아저씨들은 친화력에서 어디 뭐 꿀리는 사람들은 딱히 없었다.

    직원들에게 엄하다는 평가에도 나나 설은겸에게는 그러지 않는 편.

    마침 오원술을 만나니 안부 겸 묻고 싶은 게 있었다.

    “따님 병원 개원은 어떻게 되셨나요?”

    “제 딸한테도 관심 있으세요?”

    “예에?”

    “아하하하, 아니 회장님의 금지옥엽을 데리고 그러시면 안 되죠.”

    강라은 일자리 만들어 주려고 넌지시 꺼낸 말인데, 괜히 어깻죽지만 한 대 맞았다.

    이 양반이 웃어넘기고 있어.

    이 양반 딸은 회장 여행단 의료진이었던 오영화다.

    딸내미 되게 야해요, 라고 할 수도 없고. 것 참.

    “오늘은 말씀 좀 하세요.”

    “제가 뭘 안다고 그러겠습니까.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배우는 느낌입니다.”

    “더 배워야죠.”

    오늘은 오원술과 같이 회의실에 들어갔다.

    아저씨들 날 보더니 강라은 소동에 대해서 한마디씩 한다.

    “이야, 대단합니다. 봤어요.”

    “우리도 사주 한 번씩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쑥스러워하며 앉았다.

    강라은 건은 임원들이 나와 구경할 일까지는 아니었지만 본 양반들이 있어 당사자인 나는 조용히 있는데 저 양반들이 더 난리다.

    설양훈 회장이 뒤에서 지켜보던 화상 설치 등을 요새는 안 해서 회의가 빠르게 진행된다.

    뭐, 딱히 할 말 없고 눈 둘 곳 없어 사장 비서가 준 사업보고서를 읽었다.

    주로 사업 이야기인데, 큰 투자 결정에서는 역시 진행이 막힌다.

    원톱으로 결정할 구심점이 없으면 뭐가 안 되긴 하는구먼.

    그러다 한 임원이 대놓고 말했다.

    “회장님이 깨어나시지 못할 때도 의논을 해 볼 때입니다.”

    와, 아무도 화두로 던지지 못하던 걸 말하네.

    설양훈이 쓰러지고 약 한 달쯤 지난 시점에서 처음 터져 나온 차기 회장 자리에 대한 발언이었다.

    “허어.”

    노승환과 오원술이 날 쳐다본다.

    나도 살짝 놀라는 중이다.

    설 회장이 쓰러지고 각계의 병문안이 있던 그 일주일에 탁고 3인이 보여서 의논한 게 있었다.

    우선 설민혁을 키워서 올린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시기에 이견이 있었다.

    ‘후계자 의논은 바로 시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내가 반대했다.

    ‘기업의 사정이 급하지만, 당장은 언급을 삼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요?’

    ‘저희 세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없으면 회사 내에서 힘 있는 사람들이 점차 알아서 움직임을 보일 것입니다.’

    ‘회장님께서 우리한테 그 말씀을 하신 건 그걸 미리 하라고 한 것일 텐데요.’

    오원술이 반박했다.

    ‘어, 주제넘은 말씀이지만 처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은 맞는데, 앞장서서 논의를 꺼내는 건 불리합니다.’

    ‘흠.’

    ‘조선 시대에 왕이 죽으면 며칠간 즉위식을 안 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거기다 곤룡포 들고 혼이 돌아오라는 쇼도 벌였고요. 그 사람들이 죽은 사람이 진짜로 살아오라고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진짜로 돌아가신 것도 아닌바, 회복을 기다리는 시간을 갖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러면 언제까지 그러는 게 좋겠습니까?’

    ‘딱, 저것들이 지들이 회사 탐내서 저러는 거 아닌가? 소리 나오기 직전이면 될 거 같습니다. 그건, 제가 시간 재 오겠습니다.’

    설 씨가 자식들을 여럿 알고 지내는 찰나라, 그들 반응을 보면 직방이었다.

    노승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그래도 구체적인 시기 정도는 재 주세요.’

    ‘음, 1년 내내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말도 안 되고, 돌아가신 것도 아니니까 얼추 한 달 정도 기다렸다가 누군가가 화두를 꺼내면 저희도 의견을 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우리가 먼저 꺼내지 않는다?’

    ‘예, 적어도 저는 누구 밀고 있는 게 다 보이는 사람이거든요. 누군가 이 사람만이 가능하다고 제언을 하면 그걸 트집 잡으면서 들이미는 게 가장 낫습니다.’

    ‘그렇게요?’

    ‘가장 먼저 제시된 의견은 언제나 너덜너덜해지거든요. 그 첫 제언을 너덜하게 만들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리고 진짜 한 달여 만에 의견이 터져 나왔다.

    노승환과 오원술이 그걸 기억하고 나한테 눈길을 줬다.

    오원술 저 아저씨는 엄지손가락 슬쩍 치켜세워 주네.

    어쩜 사람 생각이 다 똑같냐.

    이 말을 꺼낸 사람도 한 달 정도는 유예를 두고 추진할 셈이었던 모양이다.

    뭐, 사람 생각이 비슷비슷하니까, 사주를 빙자해 그냥 보편론만 말해도 사람들이 놀라면서 알아듣는 거겠지.

    노승환이 그 말을 한 이사를 향해 물었다.

    노승환은 확실히 인상이 무섭다.

    “회장님이 비록 병상에 누워 계시지만 깨어나실 겁니다.”

    “그래도 대안을 마련해 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소신 발언이 이어졌다.

    “저희 그룹에서 일을 제대로 해 보셨고, 회장님이 돌아가신다면 그래도 그 지분을 물려받으실 설윤환 전 본부장님 외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저 양반이 범인이네.

    유언장과 별개로 어찌 됐건 설양훈이 이렇게 죽으면 남은 다섯 자식에게 유류분이 나눠서 상속될 것이다.

    호적에서 파낸다고 했지만 친생자라서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노승환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분에 대한 회장님의 불신이야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인데……. 아니, 그렇다 쳐도 감옥에서 나오시긴 하겠습니까?”

    이어 정기상 교수가 한 손 보탰다.

    “제가 속해 있는 충청 포럼에서 이번에 대전 지역 기업인 사면을 충청 방문하는 모든 대권주자와 당 대표들에게 요청할 생각입니다.”

    정기상 교수가 속해 있는 충청 대망론의 근원, 충청 포럼에서 설윤환의 신년 사면을 여야 정치권에 주장하겠다고 한다.

    * * *

    은겸이와 퇴근 중이다.

    설은겸과 함께 다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선을 무척 많이 받는다.

    설은겸은 내가 그 시선에 신경깨나 쓰는 것 같아 보이니 피식 웃는다.

    “그런 느낌 드시지 않아요?”

    “어떤.”

    “아주 큰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느낌?”

    “……개야? 짖어 볼래?”

    어, 귀 빨개진다.

    “두, 둘이 있을 때만 그런 얘기 하라고요.”

    “아니, 내 취향을 왜 그렇게 만들어?”

    강아지 취급 같은 건 귀여우니 하겠다만 그런 취향은 없다.

    원한다면 맞춰 주겠지만.

    “근데요. 선생님 사주 보는 거 몇 번 봤지만 어떻게 그걸 맞춰요? 그게 나와?”

    은겸이는 그걸 궁금해한다.

    “몰랐는데, 알겠더라고 누구랑 같이 있다 보니까.”

    “누구…….”

    누구겠니.

    눈빛으로 말했다.

    몇 개월째 같이 살다시피 하고 있어서.

    아직도 귀랑 볼이 빨개지는 게 좋다.

    별걸 다 했는데.

    설은겸은 화제를 돌렸다.

    “말 진짜 잘하셨어요, 대단해.”

    “사람 자살 막아 본 게 좀 되어서.”

    “진짜요?”

    뭐 누구라곤 말 안 했다. 여자들이라서.

    죽겠다고 날뛰는 아가씨들 달래는 건 당분이기도 한데.

    다른 것도 있으니까.

    “그나저나 누굴 소개를 시켜 주신다고.”

    “아, 가시면 알 겁니다.”

    은겸이한테 누군가를 소개해 준다고 하고 저녁 약속 차 데려가고 있는 길이다.

    그리고 도착한 시카고피자 파는 음식점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만나자 은겸이가 놀람과 함께 한숨을 쉰다.

    “유겸이었어요?”

    “어, 언니다.”

    “이게 무슨 소개야?! 아는 사이잖아.”

    “친하진 않아 보여서.”

    “자매가 안 친하면 이 세상에 친한 사람이 어딨겠어요?”

    설은겸 요새 내 말투 따라 한다.

    “친한 거야? 정말, 정말정말?”

    설유겸의 반론이 있었다.

    친하다고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 안 친하다.

    안 친하다고 일부러라도 말하는 사람들이 친하지.

    “야, 그렇게 몰아가지 마.”

    “때릴 거야?”

    “안 때릴 거거든!?”

    이 자매들 티격태격도 생각보다 재미있다.

    “아, 그럼 등 밀어 줘도 돼?”

    “안 된다고 한 적 없거든.”

    “나가라고 한 적은 많은데.”

    “그랬나?”

    “목욕 같이 가도 돼?”

    “나 목욕탕 간 적이 없는데, 가는 거 안 좋아해.”

    “아, 그럼 같이 씻을까?”

    “왜 꼭 그래야 해?”

    “아저씨, 언니 등에 때 가득 있을 거야.”

    “야아아아아.”

    등 밀어 주고 싶네. 해 보자고 해야겠다.

    “자매들끼린데 같이 살면서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진짜 그래도 돼요? 나는 좋은데.”

    “저는, 다 크면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물론 설유겸의 애정 결핍을 견뎌내긴 어렵다.

    저 친구는 외동딸이었어야 했다.

    “생각보다 궁합 상, 짝이라기보다는 친구로서 잘 맞아요. 언니가 잘 감출 뿐이지 동생이랑 다를 바 없고 뭐 동생이 엄마 역할을 잘할 거.”

    설은겸이 눈을 흘겼다.

    “유겸이 오면……. 선생님 집에 안 들여보내 줄 거야. 오지 마요.”

    “은겸이가 오는 건?”

    “……몰라.”

    그러면 같이 안 살게 하지 당연히.

    티격태격대긴 해도 그래도 친해 보이는데…….

    공통의 목표를 줘야 하나.

    “뭐, 다름이 아니라, 두 분 모두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둘한테 해야 하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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