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118화 (118/211)
  • #118. 반가운 불청객.

    내가 울리긴 했지만 술들을 좀 과하게 자시네.

    은겸이가 이젠 거의 쓸모 없어진 주류 관련 지식을 줄줄 읊어서 좀 배웠다.

    증류주보다 양조주가 도수가 같으면 취기가 빠르게 오르고.

    숙취도 더 오래 간다고.

    “그러니 엄마가 더 아껴 줘야 합니다. 엄마 외엔 현재 아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이 아껴…… 줘도 되지 않을까?”

    앞선 감평 이후 사후강평 중인데, 잘 듣다가 술이 들어가니 말씀들이 이상하다.

    구예련 님, 와인 잔을 볼에 대면서 고개를 기울인다.

    설유겸도 소리를 지른다.

    “나는 그런 게 아니야아, 애정 결핍 같잖아. 그냥 차라리 아기가 귀여워서, 그러고 싶어서 그런다고 할래.”

    이건 애정 안 준다는 엄마에 대한 실드 발언이야, 자폭 발언이야?

    “그치이, 우리 둘째는 야한 그림이나 그리지이, 여자 몸을 더 잘 그리지. 어디서 뭘 보고 그런 걸 그리나.”

    “언니 훔쳐봤다!”

    등도 서로 잘 안 밀어 준다고 들었다.

    설유겸이 부탁은 한다는데, 그러면 은겸은 또 정 없게 옷에 물 튀어도 상관없다는 양, 꽁꽁 싸매고 욕실 들어간다고.

    등이나 한번 밀어 준다고 해 볼까?

    그나저나 서울권 대리운전은 어딜 불러야 하나.

    은겸이네 집은 나도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한강 보이고 입구부터 보안이 살벌한 아파트다.

    어머니는 멀쩡한데 유겸이는 몸을 좀 못 가눈다.

    일단 어깨 잡아서 조종했다.

    “은겸이 술 끊게 해 주셨다죠?”

    “그게, 그렇게 됐네요.”

    “우리도 그 카운슬링 받아야 할까 봐요, 아우 머리야.”

    “그러면 들어가십시오.”

    “어딜 가세요?!”

    “어딜 가요?”

    머리카락 늘어뜨리고 부축받고 있던 설유겸까지 버럭 소리 지른다.

    밤 11시가 넘기는 했다.

    “그…… 뭐 호텔이라도 잡든가, 막차 있으면 타고 내려가야죠.”

    “이 밤중에? 자고 가요.”

    “언니 방 비었어요!”

    언니 방, 네, 그럽시다.

    그냥도 적당히 거절한 뒤에 승낙하려 했다.

    사주 강화술도 오르고, 바로 친해져서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

    거기다 ‘언니 방’에서 그 이상 거절할 수 없는 뭔가가 느껴진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들어가겠습니다.”

    불이 탁 하고 켜지자 간혹 연예인들 사는 집 공개하는 방송에서 보던 그런 집이다.

    오늘 집만 세 채 보네.

    가정부 아주머니와 막내는 자는 모양이다.

    거실에는 크게 가족사진이 있다.

    설정환 님이 어린 아들을 안고 있고 그 뒤로 두 딸과 부인이 있다.

    왠지 묵념해야 할 것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여기 은겸이 방, 비었으니까, 써요. 맘껏 쓰세요.”

    “그래도 되나요?”

    “좀 어지럽혀도 우리 막둥이 핑계 대면 깜박 죽으니까.”

    “재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녜요, 안 그래도 자고 가라고 하려고 그랬어. 화장실은 방에 딸려 있고.”

    은겸이 방에 입성했다.

    아, 일단 학사모 쓴 사진을 하나 찍어 두자.

    뭐, 다이어리 같은 거 없나 싶지만 얌전히 놔뒀다.

    책은 이런 걸 읽고 옷은 이런 걸 두고 왔구나.

    주인 없는 집에 혼자 와서 물건 뒤지는 거 너무 찌질하지 않나.

    다만 큼지막한 곰 인형 하나 앉아 있길래 한 번 깠다.

    괘씸한 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침대가 좋네, 이 침대에 같이 누워 있었으면 좋았겠다.

    설유겸을 매달고 오면서 땀을 좀 흘렸는데, 개인 욕실까지 있어 편하다.

    <초대>

    당신은 타인의 주거에 초대받아 숙박합니다.

    다른 주거 구조에 익숙해지며 타인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으로 비겁 운에 10포인트, 인성 운 탭의 주거 운에 10포인트가 오릅니다.

    이런 거면 여행을 한 번 다녀 보긴 해야겠는데.

    “자요?”

    으음.

    나도 술을 좀 먹은 편이고, 잠이 좀 일찍 들었다.

    “일어나세요, 응? 일어나요.”

    후임인 불침번이 깨우는 것 같은 속삭이는 목소리로 누군가가 날 깨운다.

    아, 그래도 후임이 있는 시기의 꿈이구먼.

    꿈에서 일이병인 것보다는 낫다.

    후임이 없는 시기의 군대 꿈이면 불침번이 깨워서 자기 사주보는 배드 엔딩이다.

    불안해서 눈을 뜨려는데 앞에 은겸이었다.

    아, 역시 꿈이구먼.

    오늘도 자고 가네.

    긴장이 풀려서 입꼬리가 휘말려 올라간다. 은겸이 녀석 좋아하는 팔 쫙 벌림을 해 줬다.

    잠깐만 은겸이 아닌 거 같은데? 여기 서울이지?

    “어?”

    “언니랑 똑같은 버릇이 있으시네요?”

    조금 당황했지만 역공할 거리는 넘친다.

    군대 꿈을 꿔서 양팔간격 앞으로 나란히를 한 건데 자기가 불쑥 올라온 거니까.

    뭐, 양팔간격 나란히라고 하기엔 큰 공을 안은 것처럼 팔을 둥글게 말긴 했겠다만.

    “……아, 근데 안기시네요?”

    “언니가 나한테는 안 해 주는 거라서? 막둥이한테는 해 주는데, 언니이 나도오 하면 징그러! 이래서?”

    내 가슴팍에 양팔을 올려 공간을 마련하고.

    그 양팔에 머리를 기대 누워서 잠시 안겨 있다.

    “가위눌린 줄 알았네.”

    “무겁죠?”

    복장이 가벼운데, 대체 어딜 봐서 그러나 싶다.

    “제 허벅다리가 사람의 몸무게를 판단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이 위에 올라오시면 제가 체중에 대한 정보를 비명으로 알려 드릴 수 있거든요. 제가 비명을 지르지 않으면 표준체중 이하로 다이어트가 필요 없습니다.”

    “진짜로요오?”

    “올라와 봐요.”

    일어나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 상태로 올라타면, 자세 환상적이겠지.

    다만 두 다리를 모아 옆으로 자전거 타듯이 앉는다면 그건 크게 이상할 거 없다고 생각된다.

    은겸이가 50 살짝 넘었다고 기만하길래, 달래려고 쳤던 드립이다.

    효과가 좋아서 재활용하고 있다.

    “변태다.”

    “여자 목욕하는 걸 훔쳐보지는 않습니다.”

    물 탈 소재를 들었으면 말에서 질 일이 없지.

    “몸이 진짜, 예뻐요, 그쵸?! 누드크로키 하면 진짜 언니한테 무릎 꿇고 부탁할 거야.”

    그런 것에 자꾸 관심을 갖는데 답해 줄 이유는 없다.

    여동생과 여자친구 몸을 가지고 토론을 나누는 건 신기한 일일지 몰라도 보편타당하지가 않다.

    “그래서 이 시간에 어떤?”

    “어, 음…… 엄마 그렇게 안 나빠요. 제가 잘못한 거예요.”

    “아까 말씀하시지.”

    “엄마가 듣는 건 부끄러우니까.”

    “저는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초점을 어머니에 맞추고 어머니의 가장 깊은 속내를 캐내기 위한 것이고 의도한 것이다만.

    독립한 자식 아니면 자식은 결국 부모의 모습이다.

    “에? 뭐가?”

    “자식의 잘못은 결국 부모의 잘못입니다. 그게 자식의 잘못이 되려면 자식이 독립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다가 부모의 얼굴에 먹칠을 할 때죠. 지금은 그런가요?”

    “아니요…….”

    “유겸 양 정도면 충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딸이죠. 어머니 잘못도 아니죠. 그저 그 딸의 애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부끄럼 많은 분이셨을 뿐입니다. 누구도 닮았고.”

    “누구도 닮았어요?”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딸이면 사랑해 줘야죠.”

    설유겸의 얼굴이 먹던 와인 빛이 됐다.

    “으아…… 부끄럽다. 왜 이렇게 이쁜 말을 잘해요?”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면 대사가 부끄럽지 않은 법입니다.”

    그 말 한마디를 못 하는 사람이 세상에 무척 많다.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나는 안 그래야지 하면서 산다.

    그리고 타인에게 그 이상의 말을 뜯어낼 수 있다면 그런 표현 정도는 상관없다.

    글로든, 말이든 표현하고 사는 사람 아닌가.

    “그 아저씨는요, 그렇게 사랑할 수 있나요? 그렇게 알고 있으신 거니까?”

    안다고 실천하는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자식을 낳아 봐야 알겠죠?”

    “아?”

    “자식을 낳으라는 진단의 본질은 부모가 형제 모두를 사랑하는 게 어려웠구나, 깨닫는 겁니다. 아, 나도 그렇구나, 어떤 손가락이 더 아프구나. 이거요.”

    “그 말 들으니까 정말, 결혼해 보고 싶다. 나는 안 그럴 거 같은데.”

    유겸이는 은겸의 책상 의자에, 나는 침대에 앉아 있는데.

    유겸 양 왜 팔을 내 무릎에 두십니까?

    매번 하던 좋은 말만 하는데, 은겸의 방이고 그 여동생과 단둘이.

    야심한 시각에.

    뭘 가져다 붙여도 미묘하다.

    설유겸 정신은 든 것 같은데 취기는 여전히 있어 보인다.

    양조주 숙취 심하다니까.

    말로 정리해야겠다 싶다.

    “불화가 생기는 게 고등학교 시절일 텐데 그때는 원래 그렇습니다. 하필 재수를 하다 보니 그 연장선이 길어진 것 정도죠. 유겸 양이 뭐라도 할 수 있다면 아마 괜찮아질 겁니다. 돈이라도 벌면 돼요.”

    정확히는 그 애정 결핍 어필을 탱킹 하실 분이 안 계신 상황이라 이렇게 된 것 같지만.

    그건 말 안 했다.

    그냥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사회인이 되어라, 정도의 조언으로 그쳤다.

    그런데.

    “돈 벌 방법, 눈앞에 있는데요. 그래도 돼요?”

    가소롭네.

    설유겸의 패턴이나 사주는 이제 파악이 된다.

    둘째로 인한 선천적인 애정 불공정에 의한 결핍인데, 절대적인 애정은 부족하지 않아서.

    엄마나 동경하는 언니한테 미움 사긴 싫은 성격.

    아니었으면 가출을 하건, 크게 반항을 하건 일탈을 벌써 세게 당겼다.

    자기 위치 파악은 된다는 반증이고, 큰 무리수를 두지 않을 것이다.

    둔다 해도, ‘내’가 움직이는 것이면 모를까.

    본인이 움직이려 들진 않을 것이며 고작 날 시험에 들게 하는 도발이나 가능하다.

    넋두리 같지만 지금도 도발이라 맞 도발로 대응했다.

    “할 수 있으면 해 보시든가.”

    “어어? 못 할 거 같아요?”

    못 할 거 같으니까 도발하지.

    감행한다 해도 무리수를 두면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다.

    은겸이 학사모 사진이 지켜보고 있거든.

    “사람은 그 한 끗을 못 깨고 보통 알 껍질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죠.”

    “비밀이면 되잖아요.”

    “비밀이면 돈을 못 받죠?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오셔야지?”

    설유겸은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앉는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엄마가 남자들 다 뭐만 하면 그러려고 든다고 했거든요.”

    아, 그러세요?

    에휴.

    굳이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런 대사를 더 나누면 별로니까.

    “어, 브라 안 했다.”

    “으아아아?”

    이 집은 문화인 양 편하게 풀고 있더라고.

    집에선 문 닫고 풀고 있는데 아버지 눈치만 좀 봤고.

    돌아가신 이후로는 엄마도 그거 터치 안 했다고 들었다.

    당연하지만 바로 보였다, 관찰 레벨이 높아서.

    “보, 보였어요?”

    “땀이 차서 옷자락이 요소요소 붙어 있던데요.”

    “아, 아아아. 죄, 죄송합니다.”

    그제야 설유겸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미인계를 쓰기엔 너무 애다.

    * * *

    이튿날엔 밥까지 얻어먹었다.

    막내인 꼬맹이가 정말 이건 무슨 생물이냐 하면서 빤히 바라보는군.

    이 집안은 인물들이 다 잘났는데, 막내아들도 그렇다.

    다만 좀 잘 먹여서 그런지 포동포동하다.

    정확히는 이놈이 설 회장의 총애를 받는 손자다.

    영감이 얘가 성인이 될 때까지 못 살 것 같아 그렇지.

    아마 그랬으면 설민혁이나 누나들 따위였을 것이다.

    “신문사에 가신다고요?”

    “정확히는 신문사 내에 출판사가 있어서 거기를 갑니다.”

    “책 내셨대.”

    “어, 그 얘긴 아버님한테 들은 것 같기도, 이거 너무 우리 얘기만 했죠?”

    “아, 아닙니다. 두 분 친해지신 것 같아 좋습니다.”

    “두 분이라니 편하게 있어요, 편하게.”

    그게 편하겠습니까만.

    저 두 사람의 벽은 허물어진 것 같은데 내가 오히려 벽이 있다.

    내 사주를 객관적으로 보면 나 역시도 영역 동물이라.

    “어떤 책 쓰셨죠?”

    와 ‘정력 왕 김창남’이라고 안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사주 교양서 제목을 말씀드렸다.

    “어머, 그러면 책을 또 내시는 건가요? 출판사면.”

    “예, 그 정치 평론 서적을 써 달라고 해서.”

    “정치 평론이오?”

    “모르겠습니다. 게임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게임을 북한이 트집을 잡아서 몇 번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젊은 친구치고 정치적 식견이 있다고 써 보라네요.”

    설유겸이 끼어들어 말했다.

    “에이, 뭐야 그런 게 어딨어요.”

    인 믿는 모양이나, 진짜다.

    설유겸에게 보여 주니까 깜짝 놀란다.

    “뭐야? 이게 왜 있어?”

    “어머, 게임도 만드셨어요?”

    “제가 만들지는 않았고, 시나리오만 적었습니다.”

    “아유, 잘됐네. 유겸이 데리고 가서 이런 거 그림 그리게 시켜요.”

    “봐봐, 그래도 결국 보내 버리고 싶은 거.”

    “안 가면 내가 데리고 살아야죠, 선생님 말씀대로.”

    “으아, 싫다, 따라갈래요.”

    티격태격대는 건 여전하다.

    “이거저거 일을 많이 하시네요?”

    “역술인으로 돈 많은 이들의 주변에 있으면 결국 비선 실세 그 이상이 안 됩니다. 실세가 되려면 명성이 필요해서요.”

    “교사였다고도 들었는데요.”

    “전공은 그렇습니다.”

    “어, 우리 둘째 공부 좀 시켜 달라 하고 싶기도 하고, 제가 교육재단에 운영위원이거든요. 뭐, 그런 데에서 학생들 가르치시는 일에 잠시 있으셔도 좋을 것 같고.”

    종교 운 11레벨이 대형수도원이나, 학교 재단 맡는다고 했는데.

    * * *

    “형, 가!?”

    “어, 가.”

    장손인 막내랑도 트고 같이 놀았다.

    어색해하는 거 같아서 재밌는 거 보여 준다고 한 다음.

    휴지 돌돌 말아 한쪽 콧구멍에 끼고 흥! 하며 몇 번 발사해 주니까, 바로 친해졌다.

    언변이 안 통하는 사람에게는 행동만 한 게 없다.

    물론 그걸로 대결했다는 건 비밀로 하라고 했다.

    좋지 못한 버릇은 가르친 거 같은데 그건, 엄마가 잘하겠지.

    “벌써 가세요?”

    “끝나고 다시 와요. 간만에 남정네 있으니까 좋네.”

    요즘은 사람들의 으레 하는 예의 섞인 말들이 행동에서 본심이 아님이 보이는 편인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은 실컷 울면 후련한 감정이 들고.

    그 우는 자리에서 달래 주는 사람은 어떻게든 득점을 하게 되어 있다.

    부끄럽고, 후련할 때 옆에 있는 사람이니.

    “그러면 또 오겠습니다.”

    “부담드리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절대 아닙니다. 식구들이랑 다 잘 맞는 거 같고.”

    막내놈은 콧구멍 희생해서 놀아 줬더니 게임하느라 안 나오네.

    냉정한 놈 같으니.

    “잘 맞으셨는데 말투가 여전히 딱딱하셔요.”

    “어, 사주 관련 이야기 한마디 더 해도 될까요.”

    “네, 네 물론이죠.”

    “사주의 오복은 가족이거든요. 아빠, 엄마, 배우자, 자식 그리고 나.”

    “그래요?”

    “그 가족이, 어쩌면 복이 늘어나는 느낌이 들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어제 일이 연상되는지 배웅 나온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잠시 흔들린다.

    그러다 구예련 씨는 웃으며 답했다.

    “잘 지냈으면 좋겠어요. 우리 딸들이랑.”

    * * *

    한밭 신문과는 차원이 다른 고층빌딩이다.

    다른 회사 사무실도 여러 개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건물을 신문사가 쓰고 있었다.

    신문사 빌딩 3층에 위치한 신문사의 계열사 출판사도 사무실이 넓다.

    얼마 전 취재기자가 직접 대전에 와서.

    허윤식에게 말했던 사주로 보는 정치인의 다섯 가지 유형을 취재해서 기사로 적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국지의 월간 정치 관련 잡지에 실렸다.

    내 경력에 사주 교양서 출판 및 불편한 정은 씨 집필이 적혀 있었다.

    특히 사주 교양서는 사주 이론은 기본 그 이상은 모르는 내 명성을 뻥튀기해 주는 느낌이다.

    한편 사주 교양서도 6쇄째 재판을 하고 있고.

    대전 한밭 신문 출판에서도 계속 다음 책을 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여기가 인세를 더 준다고 했다.

    사주 강화술의 비급은 사주를 응용한 서적 등의 문화 컨텐츠 매체로 사주의 저변을 늘리면 받는 보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 ‘정치인의 다섯 유형’ 관련한 책을 내 보자는 의견에 쉽게 응했다.

    익명만 쓰고 정치인 다 까는 식으로 대응하면 상관없지 싶다.

    “챕터를 나눠서 1챕터는 동아시아 역사 인물들을 넣고 2챕터는 어떻게든 생일을 입수할 수 있는 해외까지 포함한 현대사 인물들, 마지막 3챕터로 한국 정치인들을 넣는 식으로 구상하고 있습니다.”

    “괜찮겠는데요? 너무 그 정치 서적 느낌 안 나고.”

    “이게 제가 원고를 빠르게 쓰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책이 잠깐 선거 시즌에 팔리고 말 것 같잖아요. 그러니까 역사에 묻어 가는 거죠. 특히 왕들은 실록에 몇 시에 태어났다까지 다 적혀 있어서.”

    “좋습니다.”

    제언이 제법 먹힌 모양이다.

    정치 서적은 폭발력은 좋은데 트렌드를 너무 타서 매대에 오래 올려놓고 팔기엔 문제가 있다.

    그렇게 출판 기획 회의를 마치고 본사를 나왔다.

    올 때도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는 게 보였는데.

    기획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광화문과 서울역까지 이어진 거리가 경찰들로 가득하다.

    교통 통제도 하고 있고.

    뭔 큰 시위 있나?

    미처 신경을 못 썼는데, 오늘 가로등마다 작은 현수막 뭔가가 걸려 있다.

    용건을 다 마치고 나오니 이제야 뭔가 싶어 보는데.

    빵 모자와 흰옷의 할아버지가 손을 내민 사진들이 가득 있다.

    교황 방한.

    온다는 이야기는 뉴스로 본 것 같은데 정확한 날짜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이네?

    가만.

    “……설마.”

    뭔가, 느낌이 빡! 오는 종교운 이벤트였다.

    근데 그거 만렙이 진짜 효험 있으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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