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역술인이 되었다-66화 (66/211)
  • #66. 어머니 출석

    정치 가문이라니까 좀 웃기긴 하나 아니진 않다.

    “상운암면 쌍암리 이장님한테 들으셨구나.”

    “니 삼촌이드만.”

    할아버지 댁인데, 그 근처 산과 호수가 특작 부대가 수중 침투를 통해 탄약창을 타격 가능한 위치라서.

    충경 사단 군부대가 그 마을을 꽤 중시한다.

    친군화 행사 등을 통해 아마 마주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관선 군수도 하고 군내 버스 사업도 하고 잘나가긴 하셨죠.”

    굳이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자면.

    징용 끌려가기 싫어서 공부해 임실군 면서기가 되었다가.

    해방 후 지역에서 몇 안 되는 인텔리라 행정 거의 최고위직으로 영전되어 일했다.

    6.25때 마을 사람들을 소개해 전란 때 한 명도 납북, 사망이 없는 면을 만든 레전드를 찍었다고 들었다.

    다만 어린 장남이 피란 당시 유탄인가 불발탄에 피격되어 다리 하나를 잃었는데.

    그 때문에 더 큰 명성을 얻었다.

    자식은 다쳤는데 마을 사람들은 소개해 피란시켰으니.

    그 명성이 임실에만 그치지 않아 이를 토대로 관선 군수에 수차례 임명되셨다고.

    지방자치제로 바뀌고 민선에서도 큰 지지를 얻었는데 그때 연세가 이미 70대 중반이 넘어 은퇴하셨지마는.

    그 위상에 힘입어 할아버지 동생들과 아들들이 출마하여 다른 지역에서도 구청장도 따내고, 기초 의원도 따내고 그랬다는데 난 어려서 모르겠고.

    울 아버지는 내놓은 자식이라 그런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정치 가문 위상을 따르다가 집안이 망했다.

    ‘정치하지 말그라, 그런 거 절대 생각도 하지 말그라.’

    할배가 꼭 손자들 보면 그 얘기해서 아직도 기억난다.

    선거하는 데 그 당시 돈으로 억대가 깨지면서 가세가 기울었다.

    구청장도 한 명 기초 의원도 두 명 나온 집안이긴 한데.

    그 덕에 가문의 출마자들은 ‘전직’ 타이틀은 있거나 ‘후보’ 타이틀은 있는데 다 변변찮게 산다.

    그래도 돌아가셨음에도 아직 노인들 사이에선 이름나신 분이다.

    뭐, 임실엔 노인들밖에 없지만.

    “그럼 니도 뭐 좀 기초 의원 같은 거 해 볼 만하지 않나? 지난번에 들으니 자신감도 있더마는.”

    “하려면 대가리를 해야죠.”

    “거 임실의 손자, 충경 사단의 장병, 군내 사이비 소탕, 치즈 홍보 소설 가져다 붙일 게 많네.”

    생각보다 나한테 쓰인 프레임이 이것 저것 많다?

    <가문의 영광>

    당신은 몰락한 지역 유지 출신 지방관의 후손입니다.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울 상징이 되십시오.

    자아운 LV1 지급, 명예운 LV1 지급, 직장운 LV1 지급.

    인성운 포인트 1500지급.

    가문운 개방.

    레벨은 세 개나 준다고, 유도하는 것 같고.

    나도 의지가 아예 없다고는 안 하겠다만.

    정치는 돈 없으면 못 한다.

    * * *

    구민 강좌는 날이 갈수록 입소문을 타고 사람이 늘고 있었다.

    나도 세고는 있었는데 세다가 100분이 넘으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포기했다.

    오늘은 날도 쌀쌀한데 200석이 거의 다 차가네.

    “오늘 진짜 춥던데 나오지 말고 쉬시지 그러셨어요?”

    “온풍기 잘 틀어 줘서 괜찮아요.”

    거기다 새 건물주와 알바생도 요샌 꼬박꼬박 출석한다.

    수이야 뭐 원래도 나오던 친구지만 소녀보살은 굳이 나올 이유 없지 않나.

    지도 아는 이야기일 테고.

    “저기요, 수이 씨?”

    수이는 날 좀 빤히 쳐다보기는 하는데, 이내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아니고 뭐야.

    “뭐, 자꾸 내외들을 하십니까?”

    “뭔 일 있었어, 있었어! 아이고오. 다시 좀 잘 해 봐요. 선생님도 장가가야지.”

    그리고 원조 학생인 아줌마들과 할배들이 나와 수이 사이의 묘한 기류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한마디씩 한다.

    중간엔 잠깐 나오다 안 나오던 교회 쪽 아주머니들도 오늘은 우수수 들어오고.

    이어 오늘은 드디어 사이다 할머니, 이희자 님이 회복 후 출석했는데.

    “이거 먹어.”

    “어이구 뭔데요?”

    “아 팔 아퍼.”

    할매가 어디서 속아서 산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묵직한 꿀단지를 받았다.

    “그 아드님한테 복채랑 받았는데요?”

    대답도 않고 할매는 휙 돌아가서 그냥 자리에 앉는다.

    저 할매는 정말 쿨하시네.

    어디 둘 데도 없어서 강단 옆에 뒀는데 꿀단지가 워낙 커서 눈에 띈다.

    그리고 오늘 이 강의에는….

    울 엄마가 와 있다.

    아는 척 좀 하려고 했는데 주시만 하고 있고 별말 없다.

    “…….”

    수이 두고 꽁냥대는 거나, 꿀단지 받는 거 다 본 듯 싶다.

    별말도 없고 아는 체도 안 하는 걸로 봐서 아무리 봐도 알고 왔다.

    엄마도 몇 년 전에 구청 스마트폰 교육에 나간 적이 있으니까.

    구청 교육이 익숙하기도 할 것이고.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여기같이 동네가 좁으면 소문나는 거 십상이다.

    뉴전북신문만 봤어도 알 테지만 엄니는 교차로만 읽으니 패스.

    물론 딱히 감추려고 감추진 않았다.

    사주로라도 돈 벌라고 잔소리한 건 엄마니까.

    그래도 이거 초등학생 때 참관수업 같은 거 받는 기분이긴 한데….

    그다지 쫄리진 않는다.

    원래 등 뒤에 엄마가 있으면 기세등등해지는 게 애고.

    어머니운은 사주의 근간이다.

    “자 오늘은 저기 처음 오신 어머님. 뒷자리 세 번째 줄 거기요.”

    “네에?”

    “저희 수업은 오신 분들 사주를 하나 두고 거기에 대해서 풀이하면서 하는 수업이거든요. 보통 제가 사연이 있으실 법한 수강생을 한 분 지목해서 그분 사주를 받고, 풀어 드리면서 수업을 시작하려고요.”

    “그게….”

    여기서 이놈 시키가? 라고 할 수 있겠소?

    물론 부담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닌데, 부담되게 오셨으니 부담을 줘야겠다.

    뭣보다 엄마 사주를 본다?

    한 시간 날로 먹는다.

    “왠지 제가 사주도 알 거 같은데요. 의외로 외견에 비해 나이가 있으실 거 같네요. 한 40대 후반으로 보는데.”

    “선생님 잘하시는 거 나왔네.”

    자주 듣는 청강생들인 할배 3인방은 내 필살기를 알고 있다.

    집에선 절대 이런 소리 안 한다만.

    공사 구분은 해야지.

    “자 일단 최근에 땅 사셨죠? 여기 수강생 어머님의 사주에 작년에 땅의 기운이 뜬금없이 들어오는데요. 어머님 자체는 땅보다는 현금과 예금에 관심이 많으셔서 아마 본인이 사신 땅은 아니고 물려받거나.”

    “예.”

    “아니면 남편이 혼자 덜컥 질렀거나인데 선친이 딱히 문제가 있으실 운기는 아니셨으니 아마 남편이.”

    “예 그랬습니다.”

    집에 오면 두고 보자 표정인데 대전 가서 호텔서 올해 11월까지 살아도 된다.

    그리고 그 땅.

    용화미륵교 치워지고 값이 올랐다.

    인생 역전급 땅값 상승은 아니나, 아버지의 투자 인생 중 최초로 번 투자가 됐다.

    그 덕에 요새 반대했던 어머니 발언권이 줄고 아버지가 결혼 생활 근 30여 년만에 작은 목소리를 내고 사신다.

    “자식이 둘 정도 있어 보이시네요. 아들, 딸.”

    “예, 있어요. 있어.”

    “아들이 더 효도하죠?”

    “취업도 하고 장가를 가야 효도하는 거죠.”

    “아 취업은 하시지 않았을까? 요새 아들이 돈을 잘 벌 운세인 것 같아요.”

    “그래도 뭐, 지 애비 빼다 박아서 허영이 가득 든 딸년보단 낫다고 생각하네요. 아들은 엄마 닮는다잖아요.”

    동생은 이겼다, 26년만의 승리였다.

    그리고 아빠에 비교되는 게 아닌 것 하나만으로 엄마에게 듣는 엄청난 칭찬이었다.

    엄마들 꼭 그러잖은가, 맘에 안 들면 남편 자식인 양.

    그게 동생한테 넘어갔네? 맨날 느그 아빠 닮았다고 까더만.

    “뭐 아들 분이 어떻게 되길 바라시나요? 어머님은?”

    “다 필요 없고, 가급적 한국말 하는 며느리 데려왔음 좋겠네요. 우리 가산에 집을 큰 걸 못 해 줄 걸 아니까, 내가 며느리 밥 해 먹이고 애 돌보고 살 테니 그랬음 좋겠어요.”

    여기까지 와서 그 얘길 하네.

    “사주상, 아들분이 나이가 막 그렇게 많진 않게 보이는데요?”

    “여자 만나는 꼴을 근 20년을 못 봤는데 어떻게 믿어요. 안남미로 밥하는 아가씨라도 만날까 모르겠네요. 맨날 말은 만드는 가족을 얻어야 사람이 완벽하다 어쩌다 하면서….”

    거기까지요.

    엄마 말고도 몇 분의 사주를 더 봐 드린 후 강의가 끝났다.

    “예 오늘은 이만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재밌는 수업이었으면 좋겠네요. 또 뵙겠습니다.”

    짝짝짝.

    인사하고 강의 마치려는데, 처음 온 어떤 분인가가 박수를 친다.

    원래 이렇게 큰 강의실에서 마치면 저리 하는 줄 아셨나 보다.

    나도 이형탁 교수 강의 들었을 때 나라도 박수칠까? 하다가 멈칫했었거든.

    멋쩍게 치다가 그치려나 했는데 이어 그분 주변에서도 박수가 나왔다.

    그런데 박수 소리는 거기서만 나온 게 아니었다.

    사이다 할머니도 소극적이나마 박수를 쳐 주시고 계셨다.

    평소에 하던 그대로 새로 오신 분들 모셔서 사주 풀고 설명밖에 안 했는데.

    워낙 엄마 사주를 미친 듯이 잘 봤나?

    “그러고 보니까 우리 선생님한테 박수 한 번 안 쳐드렸네. 이제 박수 쳐 드리면서 마무리합시다.”

    학급 반장 역할 수준인 김홍로 할배가 마찬가지로 박수를 쳐 줬다.

    엄마를 면전에 두고 사주 봐도 안면에 철판 깔았는데 지금은 좀 상기된다.

    “아, 예, 그 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재밌었어요.”

    “장가가세요. 선생님.”

    “아 장가가세요는 뭔데요?”

    강의 나온 아줌마들이 엄마에 빙의해서 잔소리까지 한마디 꼭 하고 간다니까.

    쑥스럽기도 하고 엄마하곤 안 마주치려고 강의 받는 분들 다 빠져나갈 때까지 있다가 나가니까.

    송희영 씨가 채 기다리지도 않고 다가와 외쳤다.

    “오늘 160분이 오셨어요. 선생님!”

    많이 오셨구나 싶었지만 세 보진 않았는데.

    송희영 씨는 셌던 모양이다.

    하긴 공무원이면 세야지.

    근데 이걸 좋아할 때가 아니지 않을까.

    “어 지금이라도 대관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더 늘 거 같으세요?”

    더 늘 거 같다.

    사주강화술 지지자운 8레벨의 지지층 동원력에, 군사로 쓸 장정은 200명 모으면 많이 모이는 거지만.

    시위나 관중 동원 능력이라고 한다면 표심 1000명의 반절은 가능하다.

    그러면 500분이 오실 수도 있다는 건데.

    500분은 200석인 구청 공개홀 터진다.

    몇 분은 계단에 앉히고 몇 분은 단상 앞에 앉히고 해도 안 될 것 같다.

    “예 더 오실 거 같은데.”

    “어떡하죠. 입장 인원을 이제 제약을….”

    그 얘기가 나올 거라 예상은 했는데 단호히 고개 저었다.

    “다 모셔야죠.”

    “네?”

    “죄송한데 알아봐 주심 감사할 거 같네요. 더 모여도 될 만한 곳.”

    박수 뽕을 맞으니까, 안 되겠다.

    “그 저희가 이렇게 많이 오신 건 정말 처음이라.”

    “겨울이라 민방위도 없고 예비군도 없을 텐데, 수백 명 수용이 정말 안 될까요? 원래 인원 수 없는 강의였을건데요.”

    “알아보긴 하겠는데….”

    “안 되면 제가 국장님이나 청장님한테 직접 말씀드리면 되나요?”

    “아 오늘은 세종 가셔서요.”

    “다음 주까지만 그럼 보죠. 이쯤에서 유지되면 괜찮겠는데 진짜 터지면 좀 더 큰 데를 마련하셔야 할 것 같아요.”

    “인원을 딱 여기 200분까지만….”

    “곤란하신 건 이해가 되는데요. 근데…. 원래 가르치는 사람은 여간해선 학생을 가리면 안 되잖아요. 최대한 부탁드릴게요.”

    정보를 쥔 이가 적어서 가르치는 이가 갑인 시대가 아니잖은가.

    교육도 서비스로 서비스직을 하는데, 배우는 이를 가릴 수 없다고 본다.

    사이비만 아니면 말이다.

    그리고 확연히 느껴지는 게 하나 있었다.

    날 보러 오는 사람이 늘면 늘수록 구청 공무원들의 태도가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있었다.

    “미친놈.”

    이어 집에 가자, 엄마한텐 최고의 칭찬을 받았다.

    욕과는 달리 저녁상을 보면 안다.

    * * *

    “그 석영인 님?”

    “안녕하세요.”

    “아 네 반갑습니다.”

    예약 손님을 받았는데 50대쯤으로 보이는 초췌한 아주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행색이나 얼굴이 초췌한 것이지, 이목구비가 여간 아주머니가 아니다.

    연예인인데 미모가 덜 퇴색되어 엄마 역할 맡기기가 좀 쉽지 않은 나이 든 여배우를 보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 좀 닮은 것 같기도….

    “아 장갑이랑 외투 여기 걸어 드릴게요.”

    장갑을 벗으시는데 손에 물을 댄 티는 없는데.

    불똥을 맞은 티는 있다.

    살림하는 어머니들은 둘 다 있는 경우가 많다.

    정확히는 세 가지로.

    나이 든 어머니들의 손에는 물, 불, 쇠가 다 흔적을 남기고 간 경우를 자주 본다.

    이 손님은 불의 흔적만 있는데….

    이건 골초 아저씨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흔적이다.

    “담배 태우신 적 있으시네요.”

    “예, 아…. 저는 그게.”

    “향이 안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끊으신 지 좀 됐고요. 어, 화류계 쪽 계통이었을 가능성을 조금만 높게 보겠습니다.”

    담배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별로 관대하진 않지만.

    저 나이대 아줌마들한텐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피웠다면 담배를 피우는 계층과의 연계가 중요한 직종에 종사했다는 뜻이다.

    여성 흡연율이 오른다지만 남성 흡연율보다는 낮다.

    즉 남성이 많이 찾는 직종 종사자.

    물론 마음 속으로는 ‘그쪽이시구먼’ 싶어도 욕일 수 있으니 가능성을 조금만 높게 본다 식으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런데 석영인 씨는 그와 별개로 나한테 다짜고짜 꾸벅 인사했다.

    그러자 누구 닮았는지 느낌이 왔다.

    “혹시…. 설민혁 씨 어머니 되시나요?”

    “아아 정말 말씀대로 영험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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