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나에겐 말동무하는 도령이 하나 있다.
어렸을 적에 전염병이 돌아 하루걸러 거적 쓴 시체가 늘어 이름 없는 아이가 흔했는데, 그 애도 매한가지였다. 하다못해 삼놈, 두식이, 먹쇠 같은, 소 뒷걸음에 쥐 잡듯 막 지은 이름 하나 못 얻고, 그러고 열여섯 해를 보냈다던가.
손위로 형 누이들이 있어 막둥이로 굳어진 깜찍한 애칭은 어느 순간 기씨 도령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변변한 이름은 없었다.
도령은 늘상 잔병치레를 달고 살아 신경질이 대단했다. 칠삭둥이랬나. 그 애 어미가 젖 한번 물리지 못하고 요절하였단다. 여하간 그 집 막내 도령이 질환 탓에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으니 대관절 용모가 어찌 생겨 먹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나도 그랬다.
다만 어느 고명하신 화백이 붓을 놀리고 가셨는데, 서화에 그려진 도령의 피부는 희고 눈썹 태가 몹시 고왔다. 반반하니 그리 생겼는가 보다 짐작할 뿐.
한데 그림엔 입이 없었다. 눈, 코, 귀만 붙은 달걀귀신도 아니고. 뭐 사정이 있겠거니. 그건 차치하고 아무리 봐도 망상과 과장이 지나친 그림이었다.
흰 종이 위에 검게 수놓인 도령은 요물인지 사람인지 헛갈릴 정도로 절색(絕色)하였다. 병자답지 않은 혈기는 덤. 게다가 상상 속 금수의 눈알을 도려낸 듯한 저 청색 눈동자는 무어요. 좌로 보면 검고, 우로 보면 푸름이 비쳤다.
웃돈을 얹어 줬나. 그리는 이가 패물을 받고 공을 들이지 않았음에야. 가부간 몹시도 빼어난 그림임은 틀림없었다.
도령의 초상은 전각 귀퉁이를 차지했는데, 오가는 이들은 한결 넋을 빼고 묘화를 흘깃거렸다. 화려한 그림의 주인, 17년째 잠적한 배꽃 같은 도령을 다들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게다가 신들린 붓 솜씨를 뽐낸 화백은 호도 출신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고, 보는 이도 남겨 두지 아니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일세.”
하여 사람들은 도령을 그린 게 귀신이 아니냐며 입을 찧고 몸을 떨었다.
기씨 댁은 무릿매골에서 제일 잘살았다. 뿌리 깊은 대갓집이 아니고 족보도 변변찮은 양반이랬는데, 말년에 운수가 트여 물을 팔아 졸부가 되었다던가.
서책을 끼고 사는 양반들도 기씨 대감 앞에선 젠체를 삼갔다. 속엣말로는 못 배운 잡상마냥 재물을 긁는다, 양반의 위엄이고 명예고 물 한 동이에 팔아먹은 인간. 시시덕거렸겠지.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굽신대며 대감에게 엽전이며 세간을 빌려 가곤 했다. 나라가 어지러워 돈 위에 신분이 당당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기씨 댁 대문 앞에는 늘 무언가를 꿔 오러 오는 이들로 장사진을 쳤다. 하여 대감이 표리부동한 치들을 노여워했느냐면 지금의 위세가 없었을 터.
알고서 모른 체 하는지, 웃는 등 뒤로 흉계라도 꾸미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마는, 드센 양반들이 마누라에게 딸려 보낸 씨앗 통에 넉살 좋게 쌀 떠 주고 엽전까지 얹어 주는 것이다.
꼬질꼬질 땟국물 먹은 비렁뱅이와 과부에게도 인심이 퍽 넉넉했다. 퍼 주고 퍼 주니 뒤에서 호박씨 깔지언정 앞에서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무릿매골 촌민들은 이장보다 기씨를 더 따랐다.
“어머니, 그놈은 아직도 투정을 부린답니까?”
나는 종종 어머니를 따라 아픈 그 집 막내아들을 돌보았다.
내 어미는 영험한 무녀였는데, 신기로는 따라올 위인이 없고, 용모는 월궁항아도 치맛자락 속에 숨을 만한 대단한 미인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이웃들 점이나 쳐 주고 굿이나 해 주는 무당 신세로 전락했지만, 여하튼 그랬다.
한데 왜 의원은 고사하고 무녀가 나서냐면, 도령의 고질병이 약초로 손쓸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방도가 없으니 토지신께 빌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내 어머니를 불렀을 테지.
“어째 한 번에 받아먹는 법이 없을까요. 약이 아무리 쓰다지만 애도 아니고, 참 나.”
“군소리 말고 서둘러라. 늦겠다.”
어머니의 날 선 재촉에 못 이겨 터벅터벅 도령의 방으로 향했다.
녀석은 원체 병약했다. 거기다 나이 아홉에 아버지 따라 뱃놀이를 갔다 강에 빠져 징하게 물을 들이켰다지. 뇌수에 기생충이 둥지를 틀었는지 정신이 간간이 회까닥 돈다더라. 대관절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만, 환약이 도통 들어먹질 않는다 하여 굿하는 무녀까지 동원한 것이다.
“약 잡수시오.”
도령과의 소통 방법은 장지문 아래에 뚫린 손바닥 두 개만 한 구멍이었다. 나는 거길 통해 한약이며, 대접, 탕기 따위를 밀어 주었다.
“도령.”
“…….”
“어머니가 빈 사기그릇 갖고 돌아오라 하셨는데.”
내가 1년 동안 어머니 따라 도령의 수발을 들며 느낀 게 있는데, 우선 저놈은 성질이 사나웠다. 쓴 약을 쓸개 삼키듯 꺼려했다. 그리고 매병 환자지만 의식을 영 던져두고 사는 건 아니라 말이 통할 때가 종종 있었다.
솔직히 나는 도령이 온전히 미쳤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지금도 이렇게,
“악!”
불쑥 구멍 밖으로 하얀 손이 뻗어져 나왔다. 그러곤 홀랑 사발을 뒤엎는 게 아닌가. 대청에 쏟아진 약내를 수습하는 건 종들이지만, 내가 애써 달인 약재가 빗물처럼 버려지는 꼴이 달가울 리가.
“전생에 나랑 원수라도 졌소, 어?”
내 뺨이 붉으락푸르락하든 말든, 놈은 탕기를 차 버리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돈을 쥐여 줬으면 병을 낫게 해야지.”
놈이 지껄였다. 칠흑 속을 굴러나오는 목소리가 미친 사람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명료하다. 올 때마다 신경질 내는 꼴을 보니 내 기척도 알고, 저딴 식으로 굴면 내가 씩씩대리란 것도 알고 즐긴다.
“매병 환자가 아주 다 죽었지.”
“이따위 약 그만 올리고 제대로 된 걸 가져와.”
도령은 킬킬대다 사나워졌다가, 짜증스럽게 뇌까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또 정신이 삐걱삐걱. 저 포악한 윽박이 제풀에 죽으면 이슬 먹은 들꽃처럼 싱그러운 목소리가 나서는 것이다.
“단 걸 내오라니까, 어서.”
저 혓바닥엔 단맛을 잃어 아사한 걸귀라도 들러붙었나.
나는 묵묵히 일어나 비질하던 시비에게 젖은 무명천을 부탁했다. 엎어진 약이나 치울 생각이었다.
‘한 사발이나 쏟아 버렸네.’
이 귀한 걸 짜내려면 고달픈 허리 끌고 밭 몇 마지기를 매야 하며, 푸성귀 바구니 이고 며칠 밤낮 시장 바닥을 굴러야 하는지 저 화상은 알긴 할까?
‘쯧, 아까워라.’
혀를 차고 슬몃 장지문 구멍을 보는데. 문짝 하나를 두고 낯익은 인기척이 닿아 왔다. 내 반응을 살피기라도 하듯 코앞이었다.
어둠 안에 조용히 도사리는 검푸른 눈깔.
오늘 치 지랄이 끝난 도령은 그러고 나를 주시하고 있는 거였다. 비유하자면 바깥을 탐색하는 음습한 짐승의 모양새였다.
서화에 그려진 몰골은 화초 도령으로 손색이 없는데, 하는 꼬락서니는 영 딴판이다. 차라리 곱게 미쳐 잠들 때가 덜 피곤하지.
“더운데.”
“하면 대청으로 나오시지요. 한여름에 이불 속에 파묻히니 시원하겠소, 어디.”
내심 끌어내고픈 마음도 동했다. 나는 그 잘나다던 도령의 용모가 몹시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놈은 조용했다. 기대한 내가 맹추지. 코웃음 치던 그때, 사부작, 이불 개키는 소리가 흐르더니 도령은 대답 대신 흙모래 한번 만져 본 적 없는 고운 손톱으로 바닥을 들들 긁기 시작했다.
“도령.”
진정 더위를 먹고 돌아 버렸나? 아차, 저놈은 미쳤지.
이다음은 칠렐레 곡조 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게 무언 뚱딴지같은 작태지 싶기를 잠깐, 가락이 제법 간들간들하고 절묘하다.
나까지 땡볕을 먹은 게 틀림없다. 흥을 타는 목소리에 홀려 잠시 경청했다. 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이국의 노래였다.
도둑 스승을 두고 가창을 배우나. 내 알기론 도령의 정신 질환이 심하여 읽던 책도 치우고, 스승이라 부를 만한 치는 이 저택에 걸음도 하질 않는다던데.
문득 기 도령의 스승으로 초빙된 도곡의 학자 임영이 부러진 팔을 잡고 걸음아 나 살려라 전각 밖을 쏘아 나간 것이 생각났다. 귀신이라도 본 듯 질겁하게 흰 낯이었다.
“도령, 궁금해서 그러는데.”
부르니 가없을 듯 뽑아내던 곡조가 잦아들었다. 어여쁜 음성은 그치고 정적이 자리를 메웠다.
“그 노래 어디서 배웠소?”
대답 없이 또각, 또각, 손톱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장지문으로 옮겨 간 손은 커다란 단풍잎 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창호지에 어슴푸레하게 찍힌 도령의 손을 보며 재촉했다.
“듣기 좋아서 그러한데.”
하나 대답다운 대답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놈은 ‘그래?’ 한가롭게 되묻더니 차갑게 내뱉을 뿐이었다.
“뭐라도 가져와. 입가심을 해야겠다.”
다시 평소처럼 명령조였다. 곡조를 탈 땐 간드러지게 달뜨는 음성이 도로 투박한 껍질을 두른다. 삽시간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이후에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고슴도치처럼 지칠 줄 모르고 쏘아 대던 놈이 종종 나를 앞에 앉히고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여전히 약사발을 두고 먹이네 마네 피 튀기는 신경전을 벌였으나 가락이 울릴 때가 되면 자연스레 날을 거두고 각기 귀와 입에 집중했다.
도령은 대체로 놀고먹으며 저 하고 싶은 대로 날뛰었다. 하루는 내처 투정을, 이튿날은 입 한 번 벙긋 안 하고, 3일째는 죽은 사람 시늉을 하며 놀았다. 비위 맞추는 게 시집살이보다 각박했다.
하루는 지친 내가 어머니께 따져 물었다.
“도령의 병치레 원인이 무어냐고?”
“벌써 1년째 어머니만 고생하시잖아요.”
까탈스런 막내 도령 사람 구실 시키겠다며 애 끓인 세월이 까마득하다.
“저걸 고칠 수나 있느냐, 이거죠.”
아홉 살부터 도령의 병세가 심해졌으니 여태껏 몇 고개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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