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Pride (Good Night, Shara) - 8
군부대 역시 정상적으로 남은 것은 없는 듯 했다. 그들이 경계를 서며 지켰던 듯 한 입구는 완전히 부서져 있었고 외부인들을 위협하던 철조망들도 녹이 슬어있음과 동시에 여기저기 뜯겨져 있었다. 사람은 못 들어와도 개나 고양이들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다. 사람도 못 들어오니 크립톤들도 들어오지 못하겠지.
우리가 들어온 이곳은 나의 상상을 무너트렸다. 삼촌이 있던 곳만 해도 최소한 동네크기의 부대였는데 이곳은 아무리 넓게 잡아줘봐야 초등학교 2배정도의 크기였다. 생활을 했을 큰 건물 하나와 작은 건물이 3개 더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컨테이너들이 몰려있었다.
차량들이 부서지거나 주차되어 있는 곳은 정비고로 생각되었고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태영이 증명해주었다. 그가 그쪽을 향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었다. 녹슨 축구골대가 나란히 있는 운동장은 오랜만에 사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의 발자국만이 찍히며.
“여기야.”
멀리서도 초라해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그랬다. 누가 군부대 아니랄까봐 초록, 갈색, 검정색을 얼룩지게 칠해진 벽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거기다 반쯤은 무너져있기까지 했으니 더더욱. 그래도 섹터에 있던 태영의 정비고보다는 넓고 더 있어보였다.
태영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더니 구석의 문으로 들어갔다. 나도 사라를 데리고 뒤따라 들어갔고 두껍게 쌓인 먼지의 냄새가 코를 강하게 찌르고 있었다. 사라는 자신의 손으로 바로 코와 입을 가렸고 나는 그대로 폐가 아프더라도 맡을 수 밖에 없었다. 남는 손이 없으니까. 마스크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려만.
“여기서 일부 챙길거고 밖에 타던 차랑 똑같은 게 있었지?”
운동장을 가로지으며 보았던, 삼촌이 내게 준 것과 똑같이 생겼지만 움직이지는 않을 것 같던 차를 말하는 듯 했다.
“거기서도 부품하나를 챙길거야. 우선 여기부터 내가 챙길테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공기가 많이 안좋네.”
“그냥 어떤 걸 떼어가면 되는지 알려줘. 그러면 내가 뜯어올 테니까.”
차에 대해서도 몰랐고 부품의 이름도 모르지만 모양만 설명해준다면 가능했다. 처음 아빠새끼한테서 사람의 속에 대해서 배울 때 장기의 이름도 제대로 몰랐지만 모양의 설명으로 뭐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함부로 막 뜯으면 안 돼. 얼마 안 걸리니까 그냥 기다려.”
“그냥 잘라와버리면 되지. 칫.”
“엔. 태영씨가 전문가니까 말 듣자.”
사라가 그렇게 말해서 듣기로 했다. 그래도 그가 알려주지 않은 것에 삐져서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바깥의 해는 동쪽에서 하늘 중앙으로 많이 움직인 뒤였다. 그렇다고 무척이나 따뜻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야가 탁 트여서 괜찮았다.
밖으로 나온김에 사라를 안전하게 숨길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다시 부대를 둘러보았다. 일단 내 눈에는 마땅히 숨길장소가 보이지 않았다. 상대는 7명이라 건물들을 이용해 싸워야 하는데 그런 건물들안에 사라를 숨길 수는 없었다. 이건 모두 부대의 잘못이다. 나라를 지키는데 이런 손가락만한 부대로 뭘 어떻게 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러니까 나 하나 못 잡았지. 조금 곤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부터는 확실하게 준비를 마치고 행동하자고 어울리지도 않는 다짐을 했다.
“정비고안은 다 챙겼어. 이제 차에서 뜯어 챙기고 돌아가자.”
태영이 금방 정비고안에서 나왔다. 그는 마지막 부품들을 챙기고 돌아가고 싶은 듯 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게 된 듯 했다. 내가 불러들인 꼴이나 다름없는‘적’들이 20분 채 되지 않아 벌써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 신호탄은 운동장 저 너머에서 쏴진 총성이었다. 다행히 사라는 물론이고 나도 맞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나의 뒤로 숨겼다. 그리고 곧바로 빠르게 허리츰의 권총을 꺼내 ‘적’들을 향해 겨누고 쏘았다. 두 발의 총알들이 우리가 새긴 발자국 위로 빠르게 날아갔다.
“오빠!”
우리를 향해 날아온 총알들이 현호오빠를 스쳐지나갔다. 조금만 비껴 맞았어도 얼굴이나 다름없었다. 모두 우리를 쏜 여자에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당장 저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만 해도 운동장 하나의 거리였다. 그런데도 여자의 총알은 정확이 오빠의 머리를 노리고서 뺨을 스쳐지나갔다. 단 두발로.
“모두 엎드려!”
오빠도 크게 놀랐는지 모두에게 엎드리라고 했다. 그 말을 나의 두 귀로 들었음에도 즉각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이 순간에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것이다.
“지현아!”
그런 나를 은아언니가 코트자락을 당겨주었다. 덕분에 넘어지듯이 엎드리게 되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엎드리자마자 나의 머리위로 총알 하나가 소리를 내며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배가 되어 가고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괴물이야? 진짜 저 3명이서 애들을 다 죽여버린거야?!”
“2명인 것 같은데. 한 명은 무기도, 가방도 없었어.”
“그러면 더 최악이라는 소리잖아!”
“다 시끄러!”
모두가 각각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의 ‘적’에 대해 떠들썩 하던 중 현호오빠가 소리쳤다. 오빠의 목소리를 모두의 감정을 일시적으로나마 죽였고 이목을 끌어 자신에게 집중케했다.
“저쪽의 실력이 어떻든 우리도 전혀 꿇리지 않고 수도 더 많아. 쫄지 마! 저 년이 친구들을 죽였어. 그런데 그냥 도망갈거야?”
맞는 말이었다. 분명 ‘적’도 실력이 상당했지만 우리도 지금가지 살아온 생존자였고 같은 사람들과의 싸움도 여러번 겪어왔다. 지금까지 알고 지냈거나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기도 했지만 그 과정들을 겪어오면서 강해졌다. 그건 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만 지금 맞대고자 하는 ‘적’은 우리들이 겪어온 그 모든 ‘과정’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벌써 이곳에 왔던 7명의 언니, 오빠들을 죽였다. 뿐만 아니라 방금 도착한 우리에게도 말도 안되는 사격을 보여주며 기를 꺾었다. 평소라면 우리를 이끌고도 남았을 오빠의 목소리가 지금만큼은 우리를 이끌지 못하고 있었다.
“사라졌어.”
우리가 그저 현호오빠의 말을 듣는 동안 은아언니가 조금 몸을 내밀고 우리를 쏘았던 ‘적’이 있는 장소를 쳐다보고 말했다. 언니가 제일먼저 일어나고 우리들도 따라 모두 일어섰다. 운동장 너머에 있던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휑한 건물만이 배경이 되어 남아있었다.
“입구는 여기뿐이었어. 아마 저 건물 어딘가에 있겠지.”
“쫓을 거에요?”
“쫓아, 그리고 잡아. 만약 잡지 못하겠으면 죽여버려.”
오빠의 눈에는 조금씩 이성이 없어지는 듯 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해기지기 시작했다. ‘적’들과 싸워서 죽는 건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오빠가 잘못 나아갈 것에 대한 불안이 더 컸다.
“정재랑 지원이는 맨 오른쪽 건물로 가봐. 준호랑 병진이는 맨 왼쪽 작은 건물로 가. 남은 은아랑 지현이는 나랑 같이 중앙의 건물을 찾아보자.”
오빠는 나의 이름과 은아언니의 이름을 말하며 3개의 팀을 나누었다. 벌써 모두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아직까지 입고 있는 교복 주머니에 꽂아두었던 권총을 오빠에게서 총알을 받고 장전했다. 쏴본 경험은 조금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이 떨리며 몸은 바짝 긴장을 했다. 그것을 본 은아언니가 나의 등을 두르려주며 안심시켜주려 했다. 그게 고마웠지만 긴장은 가시지 않았다. 우리들은 모두 각자 건물들로 향했다. 두 손으로 잡은 권총을 꽉 쥐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 이곳 안으로 들어온 듯 했다. 몇 명일까. 짧은 순간뿐이지만 놓치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귀를 기울이고 발소리들에 집중했다. 특기라면 특기일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발소리로 몇 명인지를 예측할 수 있었다. 10명안으로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이곳, 식당건물에 들어온 사람은 2명. 그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나는 칼집에 꽂아 놓은 나이프를 꺼내두었다. 벽을 사이에 두고있는 복도와 식당홀. 이곳을 연결하는 문에 내가 붙어 숨었고 총구가 드러나는 동시에 남자의 몸이 안으로 들어왔다. 내 거미줄 안으로.
“반가워.”
상대가 ‘초보’라고 해서 봐주지 않았다. 남자가 고개를 완전히 돌리기도 전에 나의 나이프가 그의 목에 붉은 선을 그었다. 커다란 나의 쿠크리나이프에 붉은색의 피가 도색되었다. 나의 뺨에도 피가 묻어 흘렀다. 그 광경은 한 순간이었다.
남자를 죽이고 쉴틈없이 몸을 움직여 뒤에서 지켜보던 여자의 배를 걷어차 버렸다. 나도 여자지만 여자들이 제일 껄끄러웠다. 뭐만하면 시끄럽게 비명을 질러 사람들을 모으는 하나의 소음덩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소음을 지르지 못하도록 배를 찬 것이고 여자가 쓰러지자마자 다시 한 번 더 걷어 차버렸다. 아예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도록.
그녀는 자신이 들고있던 콜트를 쏴보지도 못한 채 배를 움켜잡고 몸을 떨었다.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의 입 안에 식당에 있던 걸레를 쑤셔넣고 아예 소리를 내지도 못하게 막아버렸다. 추가로 나이프를 들고 여자의 팔과 다리를 한 번씩 꽂아 돌렸다. 들리지도 않을 비명을 지르지만 막힌 입에서는 작은 옹알이만이 튀어나왔다.
“아, 뼈 존나게 걸리네.”
나이프로 뼈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 감촉도 오랜만이었다. 그간 이렇게까지 쑤셔본 적은 잘 없었다.
“아파? 내가 너희 부모님처럼 말해볼까? 아프라고 쑤신거야. 씨발련아.”
이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식당의 주방으로 향했다. 여자의 바지가 남자가 목에서 쏟아져 나온 피를 머금었고 끌고가는 길로 핏 길을 그렸다. 아쉽게도 예술계에서 알아줄 그림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걸 판단해줄 사람도 없었고.
“읍! 으읍!”
“괜찮아, 괜찮아, 착하지? 이제 안아프게 해줄게.”
머리채를 잡던 손으로 그녀의 늘어지는 몸을 세우고서 빠르게 목을 붙잡았다. 여자의 눈동자를 두려움으로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라에게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눈동자였다. 사라도 두려움은 느끼지만 지금 내 앞의 여자처럼 흔들린 적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여자의 뒤, 물이 가득담긴 싱크대는 막혀버린 배수구때문에 내려가지 못하고 고여있었다.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탁해버린 물은 회색빛을 띄웠고 속은 보이지도 않았다. 벌레시체도 떠나니고 있는더러운 물이었다.
“고맙게 생각해. 물이 귀한 세상에서 물로 뒤지는 거니까.”
“웁!”
여자는 벗어나려 몸부림 쳤지만 다리만 허우적거릴뿐, 움직이지 못하는 두 팔은 축 늘어져만 있었다. 나에게서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있지 않았다. 그녀의 귀에 달콤한 유혹처럼 한마디 속삭였다.
“지금 네가 죽는데 쓰이는 물은 다른 누군가가 갈망하던 물이야. 무슨 소리냐고? 나도 몰라.”
손에 가득 힘을 주고 여자의 얼굴을 싱크대의 고인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여자의 검은 머리카락이 벌레사체처럼 떠다니고 탁한 물이 그녀의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래도 표정은 대충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죽여본게 한 두번도 아니니.
물 가운데로 물결만 치다가 조금씩 공기방울이 올라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면서 많이, 아주 많이 올라왔다. 몸부림도 아까보다 거세지기는 했지만 여자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조금씩, 절정에 달한 그녀는 숨을 쉬지 못했고 물 위로 기포도 올라오지 않음과 물결도 잔잔해졌을 때 여자의 몸도 따라 잔잔해졌다. 천천히 잡던 목을 놓고 허리츰의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물속의 여자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탁하기만 했던 몰속으로부터 붉은 물꽃이피어올랐다.
총소리가 들렸다. 은아언니와 현호오빠와 함께 가장 큰 건물을 수색하던 중이었다. 이제 2층을 찾으려던 때 그 총소리가 울려퍼진 것이다. 오빠는 빠르게 언니와 나를 불렀고 소리가 들려온 오른쪽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은 식당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서 모두 총을 꺼내들고 오빠의 신호에 맞추어 들어갔을 때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고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재 오빠가목을 반이나 베인 채 누워있던 것이다. 강처럼 흐르는 피가 식당을, 이곳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 말고도 모두가 두려움을 표하고 있었다. 오빠는 정재오빠의 눈을 감겨주고 더 깊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아 주저앉을 뻔했지만 은아언니의 부축으로 간신히 따라 들어갈 수 있었다. 오빠는 이미 주방 안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오빠, 뭐 있어요?”
“......그 년 죽여버릴거야. 진짜로 죽여버릴거야!”
“네?”
현호오빠는 아까보다 더 화난 상태였다. 이미 눈에는 그 여자만을 바라보고 있었고 우리를 밀치면서까지 나갈 정도였다. 그러면서 오빠가 보았던 무언가를 나도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완전히 주저앉아버렸다. 싱크대, 물이 가득한 곳에서 붉은색의 핏물이 가득했고 그 아래로 등을 기대며 앉아있는 지원언니의 몸은 뼈가 드러나있을 정도로 엉망투성이였다. 작은 어깨에는 진한 핏자국이 옷에 메말라있었고 바지도 핏길이 이어져 있었다. 얼굴에도 눈이 없었다.
이후, 준호오빠와 병진이오빠가 뒤늦게 도착했고 같이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현호오빠는 그들이 오자 바로 다음 지시를 주었다.
“다시 싹 다 뒤져. 그리고 보는 즉시 그냥 죽여버려!”
우리 모두 다시 ‘적’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나도 겨우 일어서서 움직일 수 있었지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마치 호랑이의 굴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들어가고 있는 듯 한 느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라는 말이 있다. 그 여자를 잡으려던 시점에서 어쩌면 우리는 이미 깊숙히 들어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만난게 과연 호랑이일까. 두려움이 더 피어올랐다.
이번에 숨은 곳은 작은 마트건물에 있던 동전노래방 부스 안이었다. 주위에 둘러싸여진 벽들 덕분에 안에 있으면 밖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녀석들도 내가 준비한 선물을 보았을 테고 다시 이곳들을 뒤적거리러 올 것이다. 내가 부대 밖으로 나갈 수는 없으니까. 그건 ‘적’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몇 명이 이곳으로 올까. 그건 도박이었다. 2명을 보내버렸으니 만약 전부 뭉쳐서 다닌다면 5명이서 이곳을 들어올 테지. 가장 최악의 경우이긴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건 아니었다. 몇 명이 들어오든 다 죽여버리면 그만이었다.
‘덜컥’
언제오나 하면서 여러가지 상황과 경우의 수를 생각하던 도중 마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후드자켓의 모자를 쓰고 조심히 부스의 작은 유리너머로 문쪽을 바라보았다. 태영에게 준 것과 같은 K2소총 2정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이곳에 온 적은 ‘2’명이었다.
먼저 들어온 남자가 마트건물로 들어와 입구에서 엄폐하며 섰고 다른 한명은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혹여나 내가 나타날까 경계하는 것이었다. ‘적’들은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애들임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봐야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 애초에 저런건 당연한 행동이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조용히 글록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부스의 유리창에 총구를 들이밀고 저 당연한 바보의 머리에 조준했다. 그대로 빠르게 2발을 쏘았다.
“병진아!”
경계를 하던 남자가 머리에 구멍이 뚫려 쓰러지고 마트안에 있던 남자가 시체의 것으로 들리는 이름을 부르며 뛰쳐나오려 했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부스 안에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
마트안에서 커다란 몸뚱아리가 튀어나왔다. 이미 승부는 나 있었다. 그는 이제 막 튀어나와서는 뒤늦게 나를 조준했지만 난 2발을 쏘고 난 후부터도 계속 조준하고 있었다. 뒤늦게야 나의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정말 뒤늦게서야.
“병신.”
그의 멍청함에 감탄사를 한 마디 내비쳐주고 다시 한 번 방아쇠를 당겼다. 나의 뺨에 붉은 선혈이 묻었다.
“시발!”
마트라고 적힌 건물로 들어온 우리. 그리고 소리치는 현호오빠. 은아언니는 나의 어깨를 잡아주며 아까처럼 쓰러지지 않도록 해주었다. 이번에도 쓰러질 뻔했으니까. 이곳으로 ‘적’을 찾으러 갔던 준호오빠와 병진오빠가 죽은 것이다. 둘다 총에 맞은 흔적으로 짙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병진오빠는 머리, 준호오빠는 심장쪽이었다.
“오빠. 우리라도 도망가죠. 상대를 잘 못 만난것 같아요.”
분노로 눈이 반쯤 뒤집힌 현호오빠에게 언니가 말했다. 언니의 말에는 나도 공감했다. 우리는 상대를 완전히 잘 못 만났다. 벌써 4명, 사거리의 사람들도 포함하면 11명이 ‘적’에게 죽었다. 거기다 이곳의 4명은 겨우 1명에게 살해당했다. 무기와 인원은 우리가 앞서는데 이런 싸움에 있어서는 ‘적’이 앞서나갔다.
“닥쳐!”
언니의 제안을 오빠가 세차게 걷어 차버렸다.
“무조건 죽여. 무조건!”
오빠는 이미 눈이 뒤집히다 못해 정신까지 뒤집어진 듯 했다. 지금 그에게는 우리의 목소리따위 닿지 않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되요. 다 죽일 셈이에요? 지현이까지도?”
“닥치라고 했잖아!”
급기야 오빠는 자신이 들고있던 총을 언니에게로 겨누었다. 그 모습에 재빨리 내가 중간을 가로막아섰다. 그리고 애원하듯 말했다.
“제발 그만해요. 지금 오빠가 겨누는 사람은 은아언니에요. ‘적’이 아니라구요.”
내가 가로막고 조금 지나서야 오빠는 떨리는 손과 함께 총을 내렸다. 그리고 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한 번 짚으며 고개를 뒤로 넘겼다. 한숨과 함께. 그러다 조금 진정된 눈동자가 우리에게 향했다.
“아까는 식당, 이번에는 여기. 그렇다면 다음은 중앙건물이겠지.”
오빠의 손가락이 우리의 뒤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고 우리가 줄곧 ‘적’을 찾아다녔던 곳이었다. 이제 또 들어가면 3번째였다.
“은아, 너는 1층을 뒤져봐. 지현이는 건물 바깥을 뒤져. 난 2층을 둘러볼게.”
“다 같이 뭉쳐있는게 좋지 않을까요? 2명이서도 감당하지 못했는데.”
“날 믿어. 지금까지 수없이 싸워왔어.‘적’은 겨우 한 명이고 좁은 공간에서 싸우는 거라면 나와 은아가 더 위야.”
오빠와 언니는 우리 중 가장 경험이 많았고 그 만큼 가장 잘 싸워왔고 지금까지 살아남아왔다. 그 덕분에나도 구해진 것이다. 죽기 일부직전에.
“지현이는 건물 바깥만 돌아다니다가 그 년을 발견하면 우리를 부르고 빠르게 도망가. 그정도 틈은 있을 테니까.”
“......알았어요.”
불안했지만 오빠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고 왔던 건 현호오빠였으니까. 그가 먼저 밖으로 나서고 은아언니와 내가 뒤를 따랐다. 겨우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킨 참이었다. 이제는 호랑이 굴이 아닌 뱃속에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미 발길을 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