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Pride (Good Night, Shara) - 7
“뭐야?!”
태영이 놀라고.
“꺄악!”
사라역시 놀랐다. 태영은 총소리를 듣자마자 훈련된 군인티를 내어 트럭에 엄폐했고 사라는 두 손으로 두 귀를 막으며 몸을 완전히 숙였다. 나만이 허리츰의 권총을 들고 버스 쪽을 빠르게 겨냥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버스창문으로 누군가 몸을 숙이는 것이 보였다. 그 틈을 타 다시 빠르게 주변들을 훑었다. 겨우 2초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충분했다. 다시 차량의 뒤로 숨자마자 총알들이 쏟아져 내리며 나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야! 공돌이! 첫 경험 시작이야. 벌써 흥분한거 아니지?”
“아니! 이런건 사양이거든!”
“거친건 싫어해? 난 존나게 거친게 좋은데!”
그와 말을 하면서 아스팔트 위를 굴러다니던 방탄모 하나를 주워 사라에게 씌워주었다. 꽤 멀쩡한 것으로. 턱끈이 없었지만 머리에 쓰기만 하면 충분한 것이라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수통을 하나 주워서 차량 옆으로 던졌다. 다시 총알들이 날아왔지만 그 어떤 총알도 수통을 맞추지는 못했다. 심지어는 크게 빗나가는 정도.
저들은 아마 약탈자다. 그것도 초보들. 그 이유는 우리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리없이 덮치려고 한 건 맞는데 처음 날아온 총알부터 아까 쏟아진 세례들은 전혀 사람을 맞출 의향이 없던 것들이었다. 총으로 위협하고 우리의 물건들을 뺏을 생각인 것이다. 진짜 약탈자라면 사람 몇 명 죽이는 것따위 마다하지 않는다. 사라같은 여자들을 제외하고서는. 요약하자면 운이 좋은 상황이다.
“버스에 하나! 임시거점에 셋! 쓰레기 잔해 뒤에 하나! 모두 총 한번 제대로 못 쏴본 민간인들이야. 잡것들인데 한바탕 해볼래?”
“수가 더 많잖아!”
“그럼 옆에서 주워 먹어!”
이번에는 차량의 옆으로 빠르게 몸을 내밀고 쓰레기 잔해 쪽으로 총을 겨누고 쏘았다. 이대로 총알이 쳐박혀 죽었으면 했지만 아쉽게도 애꿎은 쓰레기에만 박히고 말았다. 뒤의 적을 뚫지는 못했다. 글록17이 아니라 삼촌의 중고품들에 섞여있던 라이플이었으면 바로 대가리를 날렸을 것이다. 다시 몸을 숨기며 주유소 쪽을 슬쩍 확인했다. 2명이 더 있었다. 총 7명이었다.
“주유소에 둘 추가. 첫 경험부터 벌써 몇P 플레이야.”
태영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나의 말을 무시하고 트럭의 운전석을 열더니 주머니에서 작은 니퍼를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만지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 챈 나는 곧바로 글록의 남은 탄알을 계산했다. 총 17발이 들어가는 탄창에서 3발밖에 쏘지 않았으니 14발이나 남아있었다. 충분한 숫자. 탄알세는 것이 끝나자 트럭의 시동이 걸리고 엔진음이 들려왔다. 나는 곧바로 넣어들고 온 연막탄을 꺼냈다. 그리고 사라의 앞에 그것을 들이밀었다.
“사라! 핀뽑아.”
“어? 어.”
그녀는 나의 급한 요청에 앞으로 손을 뻗어 내 손과 연막탄을 만지작하다가 핀을 잡더니 내가 가르쳐준 대로 힘껏 핀을 뽑았다. 미리 연습시켜두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대 잡아!”
태영이 잽싸게 운전석에 타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연막탄을 잔해 쪽으로 던져버렸다. 바람이 불지 않았기에 새하얀 연막은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적들의 시야에서 우리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트럭을 몰고서 우리에게로 가까이 붙였고 바로 권총과 가방을 짐칸에 던져놓은 뒤 사라를 뒷좌석에 태우고 몸을 엎드리게 했다.
“방탄모 양손으로 꼭 누르고 있어! 놓기만 해봐. 머리를 방탄모 스타일로 밀어버릴거니까”
사라가 격하게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을 볼 틈도 없이 뒷좌석의 문을 닫고 태영이 앉아있는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그가 문이 열리자마자 내게 말했다.
“내려야돼! 이 트럭 후진기어가 안 들어가.”
차의 시동을 걸려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이 분명했는데 뒷쪽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후진기어가 들어가지 않는다니. 내 생각대로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빠르게 내리려는 그를 막고서 내가 말했다.
“그딴 뒷치기 필요없어. 출발 준비나 해.”
“뭘 어떻게 하려고?”
“이걸로 저 버스를 박아버려. 그러면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뭐? 미쳤어?”
“첫 경험의 절정에 닿기 전부터 뒈지고 싶으면 내려!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살고 싶으면 닥치고 엑셀이나 쳐 밟아! 사라도 죽게 할 생각이야?!”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세게 운전석의 문을 닫아 버린 뒤 트럭의 짐칸에 올라탔다. 내가 던져버렸던 권총을 주워 손에 쥐고 옆으로 뛰어내릴 자세를 취했다. 태영이 잠시 출발을 미루는 텀이 느껴졌지만 트럭을 급출발 시켰다.
그 반동으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지만 권총과 함께 땅을 짚던 손으로 중심을 잡아 자세를 유지시켰다. 트럭은 순간 빠른 속도로 버스를 향해돌격했다. 이 행동에 놀랐는지 적들은 총을 쏘지 못하고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들은 사람을 죽인 생각이 없으니까. 그것은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는 멍청한 행동이 되었다.
빠르게 돌진하는 트럭이 버스를 쳐버리기 전, 나는 빠르게 일어나 짐칸에서 오른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런 나의 바로 앞에 쓰레기더미 뒤에서 우리를 겨누고 있던 남자가 당황한 채 서 있었다. 저 멀리 주유소에 무언가를 담고있던 남자 2명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담고 있는 것은 휘발유였다. 일이 수월하게 돌아가는 시뮬레이션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나는 오랜만에 이 난장판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안녕, 씨발련아.”
손에 들고 있던 글록을나의 바로 앞 남자의 머리에 겨누었다. 이제 막 20살 중반쯤 되어보이는 남자였다. 꽤 잘생긴 외모였는데 그곳에 내가 방아쇠를 당겼다. 빠르게 회전하는 총알은 그가 반격할 수 있는 순간을 주지 않고 그대로 뇌를 파버렸다. 작은 구멍으로 새빨간 피가 흘러나오며 생각이 정지되었을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가려 하고있었다. 잠들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아직은 그러지 못하도록 시체옷자락을 잡고 지상에 무사히 착지한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 시체를 방패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무릎을 굽히며 돌아앉았고 시체의 배와 나의 등이 만나도록 했다. 아직은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시채로 내 것이 아닌 총알 몇발이 날아와 박혔다. 나의 흔들리는 머리카락 옆으로 붉은 핏방울들이 비처럼 내렸다. 몇 발의 총성과 함께 총알이 날아가거나 박히고 잠시 조용한 순간이 찾아왔다. 놓치지 않고 글록은 고쳐잡으며 시체를 옆으로 던져버리고 일어섰다. 그리고 주유소에 있던, 트럭에서 뛰어내리며 보았던 작은 휘발유통를 조준했다.
“불~장~난~”
옛날에 어떤 남자로부터 들었던 노래의 짧은 소절이 떠올랐다. 마지막 음에 맞추어 방아쇠를 당겼고 불을 뿜으며 날아간 총알은 휘발유통으로 향했다.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와 함께 구멍이 뚫리고 곧 수만배로 변하며 휘발유통을 아름다운 불꽃과 함께 터트렸다. 그 순간적인 폭발에 두 명의 남자가 휩쓸리는 것을 보았다.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럴 틈도 없었을 테니까. 우선 3명을 죽였다.
“정진아!”
트럭너머로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방금 죽인 3명중 하나겠지만 누군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으면 이름따위는 무쓸모였다. 소리를 내지른 저 남자에게는 고마움을 느꼈다. 귀찮게 직접 움직일 필요가 사라졌으니까.
트럭의 짐칸쪽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그는다급하게 오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빠르게 다시 숨으려 했지만 늦었다. 미리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고 있던 내가 더 빨랐다. 내 총알이 그의 다리를 부수고 그는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다. 빠르게 다가가 그의 다친 다리부분을 잡고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악!”
남자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끌려왔다. 나는 조금 즐기고자 쥐고있던 권총을 잠시 내려놓고 쿠크리나이프를 꺼내들었다. 그제서야 그가 돌아보며 나이프를 든 내 모습을 보았고 무어라 중얼거리려했지만 다시 아까같은 목소리로 어떤 대사도 내뱉을 수 없었다. 내 나이프가 먼저 목을 베어버렸으니까. 검은 아스팔트위로 붉은 웅덩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색이었다.
4명째를 죽이고 나자 내가있는 쪽으로 총알세례가 쏟아졌다. 뿐만 아니라 총알에 담긴 의도도 달라졌다. 이제는 나를 죽이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더 마음이, 몸이 흥분되었다. 이래야 죽고 죽이는 싸움인 것이니까.
총성으로 들었을 때 저들이 쓰는 무기는 모두 권총이었다. 버스에 있는 놈만 빼면. 나와 같은 글록, 아니면 콜트나 우리나라 경찰들이나 쓰는 리볼버인 듯 했다. 저것들은 어떻게 처리해야되나 생각하던 중 나의 발밑에 굴러다니는 무언가를 보고는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그 무언가를 집어들고 나머지 적이 있는 임시거점으로 높이 던졌다.
이렇게 높이높이 던지면 햇빛 때문에 무엇을 던진 것인지 몰라 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자신들 쪽으로 당당히 던진다면 어떤 것이 날아올지 미리 예상했을 것이다. 아까 연막탄도 깠는데 수류탄이라고 없을까봐? 그리고 멍청한 저들은 정말로 수류탄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모두 피해!”
귀를 기울이자 그들이 임시거점에서 빠르게 튀어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즉시 트럭에 엄폐하고 있던 나는 권총을 들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다급히 권총들을 겨누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무기지식과 경험들이 발목을 잡았다. 나는 동갑이상인듯 한 애들을 겨누며 한 발씩 총알을 박아 넣었다. 모두 머리 아니면 심장을 겨누고 쏘았고 제일 앞에 있던 남녀가 내가 주는 천국행티켓을 거머쥐고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운좋게 심장을 빗겨간 것인지 여자 한 명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겨우 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갈색의 단발인 그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떨리는 그녀의 입술이 겨우 운을 떼었다.
“사...살려주.”
“싫어. 병신아.”
누워서 겨우 숨을 내쉬는 그녀의 가슴을 밟고 심장위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여자의 눈동자가 떨리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입으로는 계속 켁켁거리며 무어라 떠들고 새빨간 피가 묻은 양손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 내 손목을 잡고힘을 주며 떼어내려고 했다. 그게 가여워서 방아쇠를 당겼다. 짧은 총성과 함께 여자의 몸은 힘없이 떨어졌다. 붉은색의 피가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베어버린 임시거점에서는 아까 내가 던진 빈 연막탄이 조용히 구르며 소리를 죽였다. 총성들의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버스로 향했다.
버스는 트럭이 여전히 박힌 채 찌그러져 있었고 안에는 마지막으로 남게 된 남자가 기절할 채 누워있었다. 팔에는 유리파편 몇몇이 박혀있었다. 그가 사용했던 총은 K2소총. 특별한 총은 아니었다. 손에 쥔 글록을 들고서 그에게로 다가가 잠시 앉았다. 그대로 뺨을 한 대 후려갈겼다.
“일어나! 새끼야.”
남자의 눈이 조금 꿈틀대다가 검은색의 눈동자를 보였다. 그 눈동자는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내가 겨누는 총구에서 멈추었다. 그러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 잠깐만요!”
“내가 왜?”
우선 한 발 박아넣었다. 다리에.
“아악!”
남자는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으려 두려움에 가득찬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내 자신이 곤란할 정도였다.
“살려줘요! 뭐든지 할 테니까 살려만 주세요!”
이 새끼는 자존심도 없네. 눈물까지 질질 흘리면서 나에게 빌고 있는 모습이 갓난 애새끼같았다. 그래서인지 살려줄지에 대한 고민이 1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가지, 물을 것이 생각나 아주 잠깐 살려두기로 했다.
“뭐든지? 그러면 왜 우리를 공격했는지 부터 말해볼까?”
“그, 그게.”
“솔직히 말해라. 구라까면 손목이 아니라 바로 목구멍으로 담배피게 만들어버릴 거니까. 씨발아.”
“물자를 뻇으려고 했어요! 죄송해요.겨우 여자 2명에 남자 1명이어서 만만해보였어요. 저희도 다급해서. 그뿐이에요!”
그 뿐이라는 것에 사라를 겁먹게 했고 다치게 할 뻔했다는 것에 화나긴 했지만 더욱 화나는 건 따로 있었다. 태영은 만만하게 봐도 상관이 없었고 사라는 진짜로 약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내가 만만해보였다는 것에 무척이나 화가 났다. 겨우 팔 하나가 없다고 무시받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간 방아쇠를 당길 뻔했지만 아직 물을 것이 있는 것을 떠올리며 천천히 억눌렀다.
“너희 말고 다른 놈들 있냐? 여기 근처에 말이야.”“그......없어요.”
다시 한 발. 손에다가 쳐 박아버렸다.
“아, 아악!”
“구라칠래?”
“이, 있어요! 있다구요! 7명. 10분쯤 거리에 한 팀이 더 있어요!”
“호오.”
여기와 똑같은 숫자의 인원이었다. 이제쯤 감이 잡힌다. 이 새끼들은 학생무리일 것이다. 이 근처의 어디 대학교같은 곳에서 같은 친구들이었거나 지인들끼리 모여서 생존자 무리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숫자를 앞세우거나 군대 다녀온 애새끼들이 직접 나서서 이런식으로 약탈해가며 살아온 듯 했다.
“그들하고는 나중에 만나기로 했어?”
“네. 1시간 정도 뒤에 각자의 물자를 찾은 뒤에 만나자고.”
“지금 너희는 얼마나 지났어?”“이미 1시간.”
그렇다면 그들이 여기로 오려면 대략 20분은 걸린다는 소리였다. 지금부터 집결지에서 그 팀이 이들을 기다리는데 10분, 기다리다가 무슨 일이 생긴것을 알고 이곳에 오는데 10분. 그렇게 20분. 만약 그들이 여기에 오게되면 자신들의 친구들이 거리에 나뒹구는 것을 보고 빡친 다음에 나를 찾으려 들것이다. 그러면 한 번 더 싸우게 되겠지. 엄청 기대되잖아, 시발.
“후후.......그렇단 말이지. 뭐, 대답한다고 수고했어. 너희들은 이제 가도 좋아.”
“너희? 다른 애들은 어떻게 한 거죠?”
“돌려보내 줬지.”
남자는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재밌어라. 멍청한 새끼.
“마리아님 곁으로.”
“네?” 마지막 한 발. 총성이 울렸다.
“사라!”
싸움이 끝나고 트럭으로 가서 뒷좌석의 문을 열고 사라를 내리게 했다. 그리고 혹여나 다치기라도 했을까 그녀의 방탄모를 벗기며 몸 상채를 확인했다. 얼굴, 팔, 다리들을 모두 확인했지만 다행히도 조금 쓸린 자국 말고는없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이 없었다.
“난 괜찮아.”
태영은 뭘 하길래 안내리나 하고 운전석을 열어보니 얘도 기절해있었다. 머리에 약간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대충 같이 부딪혔나 보다. 그래도 큰 상처를 아니었고 정말 잠깐 기절한 것 뿐이었다.
“엔, 태영씨는?”
“무사해.”
일단 그를 깨우기로 했다. 마땅히 뿌릴 물이 없으니 직접 깨우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야, 일어나!”
뺨을 여러대 때리며 친근하게 불러주었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다가 계속 때려대니까 조금씩 반응을 보였고 마침내 눈을 뜨고서 나를 바라봐주었다.
“첫 경험 어땠어? 짜릿하지?”
“......일단 고맙다고 해야하나?”
“죽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그래야겠지, 자기.”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정신을 깨우는 태영을 부축해서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럴 때를 위해서 항상 붕대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가방에서 붕대를 꺼내 그의 상처난 머리를 감을 수 있도록 했다. 태영은 더 이상 피가 나지 않도록 붕대를 감으며 내가 벌려논 난장판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에 시체들이 들어오자 썩 좋은 표정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목숨을 구해주었고 먼저 총을 쏜 건 저들이었으니까.
“엔, 다친 곳 없는거지?”
사라가 두 손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물었다. 따뜻한 손이 나의 여기저기를 무법지대처럼 휩쓸고 다녔지만 기분이 좋아서 내버려두었다.
“아무 상처도 없어.”
“다행이다. 이제 다 끝난거야?”
“그래. 싸그리 쫓아냈어.”
사라에게는 ‘죽였다.’가 아닌 ‘내쫓았다.’로 바꿔말했다. 그녀는 내가 사람죽이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 여자였다. 그걸 알기에,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태영도 같은 생각인지 내가 죽인 사람들을 보고서도 다른 말을 붙여주었다.
“다 도망갔네.”
사라는 다행이라며 마음을 놓았고 나에게 대단하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정말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칭찬이라서 헛웃음만이 나왔다. 나는 다시 가방을 메고 글록의 탄창을 꺼내 빈 탄들을 채워넣었다. 아직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조금 뒤면 다른 놈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도 해야했다. 사라와 태영은 모를 테지만 군부대 안이라면 충분히 숨을 곳이 있을 테니까 거기에 집어넣고 나머지들도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들마저도 죽이려는 데는 목적이 있었다. 부가적으로는 물자탈취와 후환을 제거하는 것. 주목적은 나의 ‘즐거움’에 있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은.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