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 점령전
“이지란 장군께서는 어디 계시는 거냐?"
"그게..."
병사들의 흐리는 말을 들은 왕진우 장군은 총대장인 이지란 장군의 생사도 모를 정도로 대패했다는 생각에 기슴이 막막했다.
하지만, 죽은 이들을 위해 슬퍼할 새도 없었다.
강물을 건너지 않았던 기마대가 건재하다고는 하지만, 총대장까지 죽은 마당이라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살아남은 병사들을 수습해 북쪽으로 물러나야 했다.
"조선의 기병이 따라붙었습니다.”
“양두충 장군에게 기마대로 시간을 벌어 달라고 하거라. 다들 어서 움직여라!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렇게 명나라 군사들은 조선군 기병들에게 끈질기게 쫓기며 압록강을 건넜는데, 강을 건넌 이후로 여유가 생겨 병사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연경에 급보를 띄어라. 3만5천이 압록강을 건넜으나, 총대장이었던 이지란 장군이 죽었고 살아서 다시 압록강을 건넌 이가 채 5천이 되지 않는다고..."
급보를 띄우던 왕진우 장군은 한숨을 쉬며 동항에서 명이 오길 기다렸다.
***
"귀비마마 급보이옵니다!"
만귀비는 급보라는 소리에 좋은 일이 있는가 싶었지만, 태감의 얼굴을 보니 그게 아닌 듯했다.
"머리 아픈 일이면 왕 승상을 불러라!"
동창의 수장이었다가 이제는 승상이 된 왕직이 급히 불려 왔다.
"허허, 이지란 장군이 욕심을 내었던지 해서 실수를 한 것 같군요. 일이 꼬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겠는가?”
“보통은 총대장이 죽고, 그 아래 장수가 병사를 수습하여 잘 퇴각했다고 해도 장수들을 모두 새로 교체를 합니다.
그래야 사기가 떨어진 병사들의 시기를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를 대신해 누굴 보내야 하겠는가?"
“마마, 문제는 인선은 되오나, 병력을 더 보내기가 힘이 든다는 것이옵니다. 병력이든 병량이든 여유가 없사옵니다."
여유가 없다는 말에 만귀비도 짜증이 났으나,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화북 땅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긴 했으나, 식량을 강남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될 수준으로 화북의 생산력 자체가 떨어져 버렸다.
이제는 운하를 통한 강남의 곡물이 없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도 강남땅을 모두 평정하지 못했고, 부족한 곡물로 인해 수도인 연경에서도 식량이 늘 부족한 형편이었다.
“황보정 장군이 강하를 비롯한 지역을 빨리 평정하여야 하는데, 굼뜨게 움직이고 있으니, 조선을 치는 것은 중지하고, 훗날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일 것 같사옵니다.”
조선을 상대로 꼬리를 말아야 한다는 말에 만귀비는 화가 났지만, 현실이 그렇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조선의 왕을 풀어주는 교섭을 하며 시간을 끌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남쪽이 정리될 것이고, 그 이후로 다시 군사를 일으키면 지금의 치욕을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
그렇게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시간을 끌기로 하였으나, 사신이 연경을 출발하기도 전에 다시 급보가 날아들었다.
"조선의 장수 전원종에게 동항을 빼앗겼다고 하옵니다!”
***
청천강 안주 평야에서 대승을 거둔 원종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병사를 꾸렸는데, 의병들이 자원하여 12,000명으로 군사를 늘릴 수 있었다.
물론, 수군으로 있던 1500명과 기마대 4천을 제외하고는 크게 전투력을 기대하면 안 되었다.
그래도 규모가 있다 보니 길게 줄지어 북쪽으로 올라가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함대 선단을 만들어 출항을 시킬 때와는 다른 맛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대군의 모습에 취해 실수를 하게 되지 않을까 늘 조심했다.
이 병력을 잃어버리면 진짜 조선의 한양까지는 막을 병사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명나라의 패잔병들이 압록강을 건너갔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다시 압록강 위화도 모래톱에 자리를 잡았다.
“조정에서는 서거정 대감이 사신으로 명나라로 가기 위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
보고를 들으면서도 머리를 굴렸다.
사신으로 가는 서거정이 명나라에 도착을 하면 굴욕외교를 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나라의 주인이 사로잡혀있고, 새로운 왕을 새우지 않았으니 여전히 성종이 나라의 주인이었다.
주인이 잡혀있으니 저자세를 넘어 굴욕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신으로 간 서거정 대감이 어느 정도는 고개를 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줘야 했다.
“내일 압록강을 건넌다. 동항을 치도록 한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뭘 걱정하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전하께서 붙잡히시기 전에 동항을 치려고 하셨고, 안동도를 조선의 영토로 선언해 관찰사를 파견하셨다. 고로, 동항도 우리 조선의 영토다. 영토를 회복하려는
것이니 그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할 것이다."
다시 압록강을 건너가게 되자, 먼젓번에 압록강을 건너갔었던 이들은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었고, 처음 압록강을 건너는 이는 압록강 너머 있다는 여진인들이나 명나라 병사들을 걱정했다.
그런 병사들을 위해 압록강 변에서 하루를 보내었고, 기마대로 천천히 훑으며 동항으로 움직였다.
"명나라 군사들이 목책을 만들고 전을 설치해 동항에서 방어전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성벽이 없는 동항이었기에 목책을 세우고 버티려는 것 같았다.
“숫자는 파악이 되더냐?"
“하루 종일 살펴보니 대략 1만 내외의 병사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사옵니다."
원종은 고민하다 서쪽을 비워두고 병사들을 진을 치게 했다.
그러고는 화포 4문을 앞으로 내어 화포를 쏠 준비를 하며 기다렸다.
“조선 놈들은 왜 공격하지 않고 저렇게 있는 것이지? 괜히 우리만 경계근무를 서는 거 같잖아."
“제갈무후가 동남풍을 기다리듯이 바람 방향이 바뀌길 기다리고 있는 거 아냐?"
"그럼 화공인가?"
"그렇게 우리에게 패했었으니 그대로 우리에게 화공을 쓰려고 하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근방에는 태울 만한 건 다 정리를 하지 않았나."
"그걸 조선 놈들은 모르니 저렇게 기다리는 거 아니겠어?"
명나라 병사들이 목책 뒤에 서서 왜 공격하지 않는지 투덜거릴 때 조용히 동항으로 움직여 오는 무리가 있었다.
“절제사님! 왔습니다! 드디어 태극선단이 도착했습니다!”
“되었다. 그럼 바다에서 자리를 잡는 대로 바로 화포를 쏘도록 전하거라.”
원종은 바퀴가 달려 끌고 다닐 수 있는 견인포가 4문밖에 없었다.
방어적인 측면에서는 충분했지만, 공격용으로는 화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화력의 부족을 함선에 달린 함선포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처음 중국으로 가는 교역의 중심 항으로 동항을 전략적으로 키웠었는데, 이렇게 직접 불을 지르게 될지는 몰랐기에 기분이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퍼퍼펑! 파앙! 터텅!
대운선 4척의 측면에 달린 3 문의 화포가 불을 뿜었는데, 도합 12 문의 화포에서 쏟아져 나온 철환 탄에 명나라 병사들은 혼란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목책 밖의 조선군에게서도 화포 4문이 발사되고, 불붙은 화살까지 쏘아대기 시작하자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명나라 병사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목책에 떨어진 송진이 듬뿍 발린 불화살은 금세 목책을 불태웠고, 한번 불길이 타오르자 그 기세를 막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양 사방에서 펑펑거리며 터지는 소리가 나니 심지가 굳은 병사라도 자리를 지키기가 힘이 들었다.
그런 병사들을 장군 왕진우가 어떻게든 수습하려 했으나, 날이 저물어 어두워지기까지 하니 수습이 불가능했다.
“장군. 조선군이 몰아치면 살아남기 힘듭니다. 서쪽으로 도망쳐야 합니다."
"아아. 조선군이 서쪽을 빼고 진을 칠 때 미리 이것을 대비했어야 하는데, 바다에서 화포를 쏠 줄이야."
왕진우는 대비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이후였다.
양두충과 함께 일군을 꾸려 열린 서쪽 길로 달아나는 것이 전부였다.
“서쪽으로 기마대가 나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병사들도 모두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망원경을 들고 관찰하던 병사에게 보고가 올라오자 더 이상의 공격은 무의미했기에 공격을 멈추게 했다.
“병사들의 항복을 받고, 불을 끄도록 하라! 박투르안과 테이츄의 기마대가 적을 추격하라! 봉황성 앞에서 보도록 한다!"
밤새 이어진 불길을 잡고, 동항을 정리하니 명나라 군사들이 놔두고 간 군량이 조로 2천 석이나 있었다.
동항을 맡기기 위해 원길 형에게 연통을 넣었고, 형이 오기 전까지는 임시로 태극 선단의 염호진에게 동항을 맡겼다.
정리가 된 동항을 나서 서북쪽으로 진군을 시작했는데, 봉황성 앞에 박투르안의 기마대뿐만 아니라 일 만에 가까운 기마대가 머물고 있었다.
어디서 온 것인가 보니 형님이었다.
“형님! 어찌 여기에 계신 겁니까?"
“하하하. 북쪽 사얼후 산에 있으니 동항에 큰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려 기회라 여겨 여진인들과 함께 내려오던 길이다. 그러다 도망치던 명나라 놈들을 만나 상황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기마대 1만이 생기자 머리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사신으로 가는 서거정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넘어서 좀 더 강하게 몰아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래라면 안동도의 감영이 있어야 하는 봉황성을 점령한 이후 끝내려고 했던 서진을 계속했다.
요하를 건너기 전에 있는 안산성에 명나라의 왕진우 장군과 패퇴한 명나라 병사들이 들어가 버티자 내 본대가 안산성 앞에 진을 쳤고, 윈길 형과 여진인들에겐 북쪽의 교역 중심지인 요양성을
공략하길 부탁했다.
여진인들은 약탈도 가능하다는 말에 바로 말을 달려갔고, 박투르안과 테이츄의 기마대에게는 남하하여 요동반도의 명나라군을 처리하고 대련항을 점거하라고 명을 내렸다.
동항의 염호진에게도 명을 내려 선단을 대련으로 보내어 대련항을 점령하게 했다.
그렇게 요동반도를 점거하고 요하강까지 점령을 했을 때, 연경으로 동항을 빼앗겼다는 급보가 들어갔고, 왕진우 장군이 안산성에 고립되어 버티고 있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아니, 어찌했기에 동항을 빼앗기자마자 요하까지 밀려버린 것인가?"
"마마. 요동은 행정상으로는 명나라의 영토이지만, 실제 거주하는 이들은 여진인이 절반을 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대항하지 않고 넘어가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럼 승상은 어찌할 생각인가?"
"안산성이 고립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조선에서 사신이 오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들어왔사옵니다.
동창의 태감인 진충을 보내어 더 이상의 서진이 없도록 협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협의 조건으로 조선의 국왕을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닙니다. 시간을 끌며 잠시간의 평화를 가져야 하겠지요. 남쪽의 황보정 장군이 병을 이겨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하니 이제 남방이 정리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가 패배했다는 것이 되지 않나! 그렇게 되면 조선 놈들이 더 기고만장할 것이 아닌가? 내게 신선로를 만들어 주며 국물을 부어 주던 놈이 대장군이 되어 요동을 점령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나를 모욕하는 것이지 않은가!"
"전원종이 이리 병략에도 재능이 있는지를 몰랐시옵니다. 그때 만났을 때 처리를 해야 했는데. 대신에 우리가 조선을 혼란하게 할 방도가 있사옵니다."
“혼란하게 할 방도?"
“네. 마마. 조선의 왕이 등극을 했을 때 그의 위로 나이가 더 많은 형이 있었다고 하옵니다.”
“형이 있는데, 왕이 되었다고?”
“네. 돌연사한 선왕이 지금 왕의 삼촌인데, 그 왕에게는 젖먹이 왕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그의 형이 있었음에도 장인을 잘 두어 두 사람을 젖히고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 승상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겠구나. 그렇게 한다면 조선은 혼란하게 될 터이지."
"그렇사옵니다. 지금 잡힌 왕의 친형인 월산대군에게 조선의 왕이라고 영지와 관직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세자로 있는 1왕자에게도 조선 왕이라고 이름을 내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잡혀 온 왕은 풀어주지 않으면 되겠군.”
"맞사옵니다. 그리고, 전대 왕이었던 예종의 적자에게는 동항과 그 일대의 안동도의 왕으로 영지를 내리면 됩니다."
"좁은 땅에 왕이 3명이 되는 것이군."
"맞사옵니다. 잡혀있는 왕까지 4명의 왕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렇게 각자의 입맛에 맞는 왕을 우리가 세워주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서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호호호. 좋구나. 그렇게 하여라. 조선 놈들에게도 혼란함을 선물해 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