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16화 (316/327)

316. 위기. (2)

“이 말이 청야전술을 펼친다는 뜻이 확실하오?"

한반도 역사상 가장 유서 깊은 방어 전술이 청야전술이었다.

견벽청야(堅壁淸野)라고도 불리는데, 적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불태워 없애는 나 죽고 너 죽자 식의 극단적인 전술이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 때 고구려가 선택했던 전술이기도 했기에 어찌 보면 북방에서는 가장 흔한 전술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평양성까지 이르는 모든 곡식을 다 불태워야 한다는 말이오?”

“휴우. 명나라 놈들에게 병량을 넘기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가을에 접어들어 수확해야 하는 시기인데, 그런 농작물을 모두 불태워 청야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고구려가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는 하였지만, 결국엔 연개소문 사후 당나라에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후계문제와 더불어 인구의 부족 때문이었다.

인구 부족이 고구려의 발목을 잡았는데, 북방 민족과 수당과의 싸움에서 너무 자주 청야전술을 썼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농경지가 개간되고, 제대로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는데, 그런 농경지를 자기 손으로 파괴하고 다시 개간하다 보니 농업생산력이 오를 수가 없었고, 자연스레 인구의 증가 또한 일어나기 힘들었던 것이 고구려의 패망 이유 중 하나였다.

조선도 왜란과 호란이 없었다면 좀 더 빨리 인구의 증가가 일어났을 것이고,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기에 전쟁으로 인한 농경지 유실과 그로 인한 인구 감소를 최소화해야 해야 한다는 게 원종의

생각이었다.

특히나, 물산이 풍부하고 인구가 많은 평양성에서 청야전술을 쓰겠다고 하니 조선의 북쪽 경제를 다 박살 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조정의 결정을 원종은 따를 수 없었다.

그리고, 평양성까지 가는데 일주일이 걸리는 길인데, 함께 움직이고 있는 피난민들도 문제였다.

명나라의 기병들이 쫓기 시작하면 피난민들이 그대로 사냥당할 터였다.

청야전술을 쓰지 않고 피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도를 가져오거라!”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는 보부상을 통해 현대적 지도를 만들었는데, 평안도에 있는 여러 성도 표시가 되어 있었다.

지도를 보니 평양으로 가는 길목에 안주성이 보였다.

지리적으로 따졌을 때 최적의 조건이었다.

우선, 청천강 하구를 끼고 있어 뱃길로 보급할 수 있었고, 청천강 옆으로 있는 평야에서 싸울 경우에는 우리 기마대가 건재했기에 이득이 있을 수 있었다.

“상단에 이야기한 물자를 안주성으로 모두 실어 오게 하고, 수군들도 안주 성으로 집결하라고 전해라."

내 명령에 이득길이 펄쩍 뛰며 놀랐다.

"안주성의 성곽이 튼실하다곤 해도 평양성에 비하면 낮습니다. 거기서는 청야를 펼치기가 힘이 듭니다.”

"난 청야하라는 명을 따르지 않을 것이네. 피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안주성으로 가는 것이고. 이 청천강 평야에서 결판을 낼 것이네.”

"허나...아닙니다.”

청야전술에 반발해 급작스레 전면전을 이야기하는 원종의 모습에 이득길은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설득을 하자니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고, 그렇다고 병권을 빼앗을 수도 없었다.

그저 한양으로 파발을 보내 변화된 상황을 알리는 것이 이득길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박투르안과 날랜 기병들을 풀어 명나라 병사들이 어디까지 왔고,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를 파악하게 시켰고, 피난민 중에서 병사로 쓸 수 있는 이들을 선별해서 뽑기 시작했다.

***

"어허, 조선의 백성들은 성에서 버티는 것을 잘하는데, 평야에서 결판을 내겠다니요! 어서 판관을 보내 절제사 전원종을 붙잡아 와야 합니다. 그나마 남은 병사들마저 잃어버리면 청야할 병력도

없어집니다!"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 문제로 혼란한 조정에 평양성이 아닌 안주성 앞에서 결전을 치를 것이라는 소식이 오자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손녀사위가 명을 따르지 않는 것은 한명회의 위세를 믿고 저러는 것이라고 한명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장의 상황이 변하면 지휘관이 명을 어기고 변화를 줄 수 있는 법이오. 그대들은 송나라의 진회와 같은 자가 되려 하는 거요?"

한명회가 송나라의 간신이었던 진회를 언급하자 대신들은 입을 다물었지만, 또 몇몇은 손녀사위를 명장 악비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거냐고 또 반발을 했다.

"시끄럽소! 그대들이 직접 평양성이나 안주성에 가서 싸우지 않는다면 전장의 지휘관을 잡아 오라는 말은 하면 안 되는 것이오. 지금 불만이 있다면 가노들을 이끌고 평양성으로 올라가시오!"

"그럼, 절제사가 안주성에서 패하게 되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오?"

“허허.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패하는 것에 대해 질책을 하는 의도를 모르겠소이다. 그럼 이겼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이오?"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 문제로 서로 기분이 상해 있던 상황이다 보니 대신들 간의 싸움으로 정전이 시끄러워졌다.

결국, 결전을 벌이기로 한 전원종을 놔두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한명회는 승리했을 때와 패했을 때 두 가지를 상정하여 대응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

“기마가 대략 3천에 보군이 2만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기마는 각 현을 돌며 물자를 챙기고 있고, 청야전술을 펼칠 것을 알고 준비를 하는 듯했습니다.”

명나라 놈들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청야전술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그럼, 안주 성으로 백성들을 들어가게 하고 우리는 여기 밖에 머문다.”

원종이 지도에서 가리킨 곳은 안주 성의 앞이 아니라 안주성을 해자처럼 감고 흐르는 청천강 남쪽 지류의 밖이었다.

“안주성에서 싸우려면 이 해자처럼 흐르는 남쪽 지류를 끼고 싸워야 하는데, 어찌 이점을 버리고 배수의 진을 치려 하는 겁니까?”

“그것이 전략적으로 우세하기 때문이요."

"설마, 백성들 중에서 뽑은 이들이 전열을 이탈하여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배수의 진을 치는 겁니까?"

"그게 아니요, 북쪽 지류에는 기마대를 놓고, 보군은 이 남쪽의 지류에 놓아 떨어트려 놓을 것이요."

“삼각지 평야 중간에 언덕도 있는데, 언덕에 진을 치지 않는 것입니까?"

이득길은 방어군의 기본이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경사를 올라오는 적을 치는 것이라 배웠다.

그런 언덕을 놔두고 평지에 진을 치겠다고 하는 전원종을 보니 패퇴하기 위해 용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병력도 열세인데, 이렇게 기마대와 보군을 떨어트려 두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진을 치고 있는 겁니다. 이 언덕에 진을 치고, 안주성과 서로 도울 수 있게 하여야 버틸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방어를 하고 버티기 위한 것이라면 그 말이 맞을 것이오. 하지만, 버티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기 위해서 이렇게 배치하는 것이오."

원종이 이렇게 배치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미리 준비한 총동과 수군들이 도착했기에 전통적인 방어 배치를 버리고 정면으로 적이 달려들게 만들기 위해서 이런 배치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배치된 조선군의 배치를 본 명나라 장군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안주성은 작은 성이지만, 루와 4대 문이 만들어져 있는 성으로 앞에 강물이 흐르기에 공략이 힘든 성입니다. 그리고 오래전 수나라의 양제가 여기에서 고구려군에게 크게 대패를 했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으니 조선군들이 여기서 우릴 맞서겠다고 생각한 것이로군. 그때는 어떻게 수양제가 패배를 한 것이지?"

"거짓으로 항복하겠다는 고구려의 속임수에 속아 시일을 허비했고, 병량이 부족해져 퇴각하는 와중에 강둑을 터트려 수공으로 공격을 했다고 합니다."

“수공?"

“네. 바로 여기 북쪽 지류의 끝을 둑으로 막았다가 터트렸다고 합니다."

“조선의 기마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군. 이번에도 수공을 하려 한다면, 오히려 여길 먼저 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래서 주변의 조선인들을 잡아 와 강 수위에 관해 물어보니, 여름이야 비가 많이 오기에 강의 수위가 높지만, 지금은 가을이라 물이 그렇게 없어 수공을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지란 장군도 조선을 공략해 오며 날씨에 대해 미리 알아봤었다.

더운 여름에는 비가 잦고, 태풍이 오지만, 가을에는 비가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모르니 우리 기병들은 강을 건너지 않고, 북쪽 지류를 살펴 둑을 만드는 것을 살펴라. 그리고, 다른 병력들은 일제히 강을 건너도록 한다.”

수나라가 고구려의 청야전술과 거짓 항복으로 시간을 끌어 병량 부족으로 퇴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속전속결로 조선군을 깨트리는 것이 바른 판단이라 여겼다.

"조선군에게 청야전술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어서 강을 건너라!"

***

백성들과 함께 안주 성으로 들어온 이득길은 원종의 말대로 백성들을 성벽 위로 올리고 깃발을 들고 서게 했다.

멀리서 보면 군사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허장성세(虛張聲勢)는 명나라군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고, 강을 건너온 명나라군은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움직였다.

강을 건너지 않은 기마대가 북쪽 지류를 감시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몰라 1대를 더 추가로 북쪽 지류를 따라 움직이게 했다.

둑을 만드는 수공이 없더라도 조선군의 기마대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2대는 본대로 안주 평야에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게 했고, 남쪽 지류를 따라 올라가는 3대와 함께 조선군 본대를 상대하기로 했다.

이지란 장군은 채 1만이 되어 보이지 않는 조선군이었기에 2대와 3대의 2만 병사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언덕을 올라간 2대와 평지인 남쪽 지류를 따라 걸어 올라가는 3대가 속도 차이가 나기 시작했고, 3대가 먼저 조선군 본대와 만났다.

“2대를 기다립니까요?"

"흠. 이제 언덕을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가 먼저 나아가 공격하도록 한다!"

3대를 맡은 부장 진가행은 기병들이 주로 쓰는 추행돌파진을 쓰기로 하고 삼각형의

진법으로 병사들을 앞세워 나아가기 시작했다.

***

“적들이 추행진으로 오고 있습니다요!"

“총통대는 기다려라! 내가 신호를 할 때까지는 총통을 쏘지 말라!"

총통대라고 했지만, 실제 마차 바퀴를 달아 이동이 쉬운 천자총통은 4문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포격전으로 지상전을 치른 적이 없는 병사들이기에 총통이 안겨주는 공포감을 기대했다.

그리고, 진짜 숨겨둔 전력은 선상총통이라 불리는 개인화기였다.

10개를 붙여 만든 십상총통을 배에서 다 들고 왔는데, 그 수가 100개가 넘었다.

한 번에 1,000명이 산탄총을 쏘는 것과 같을 터였다.

선상총통의 산탄으로 철저하게 방어를 해서 막아내기만 한다면 각궁으로 병사들을 줄여나갈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기세가 꺾이기만 한다면 조선군이 몰아칠 수 있을 터였다.

미리 표시해 두었던 500m 거리를 병사들이 통과하자 총통대에 신호를 보냈다.

“발포하라!"

퍼펑!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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