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토사구팽(兎死狗烹).
만귀비를 만나기 위해 연경으로 가기 보다는 몽골인들과 있는 동안 조선 조정의 기조가 변했을 수도 있었기에 우선은 동항으로 움직였다.
형을 만나니 몽골의 하파 족장에게 갔다는 것을 전해 들었기에 걱정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소금을 거래하기로 했다고 거래처 영업을 해왔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조선의 사신단은 한 달가량 나를 기다리다 조선으로 돌아갔고, 조선에서는 내가 돌아온 이후로 다시 사신을 보내기로 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제 배로 들어온 소식이 있다. 남경이 황보정 장군에게 함락되었다고 한다."
"헐. 그럼, 태자를 사로잡았답니까?"
“형주 방향으로 도망을 쳤다고 하더구나."
“흠. 다행히 태자가 도망을 쳤다지만, 이제 11살인가 그럴 겁니다. 만귀비처럼 다시 군사를 모으고 제대로 된 장수를 뽑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판이 다 기울었다고 보는구나."
“네. 만귀비가 악독하다고는 하지만 눈치가 빠르고 영민한 여자입니다. 뛰어난 재상이 태자 측에 없다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럼 어찌하겠느냐?"
“우선은 조정으로 들어가 예전의 명(命)이 그대로 인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배가 준비되면 바로 조선으로 가지요."
원종이 조선으로 가는 배에 올랐을 때 남경을 점령한 황보정 장군은 도망친 태자를 잡기 위해 출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급하게 황제의 어지를 들고 온 태감이 도착했고, 어지를 보고 난 이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에는 남경을 점령한 25만의 병력에서 10만 명만을 데리고 출정하여 폐 태자를 빨리 사로잡으라고 되어 있었다.
폐 태자의 본거지인 남경의 치안을 위해 10만 명을 두라고 했는데, 황보정도 이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5만 병력을 연경으로 보내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해서. 어지를 들고 온 태감에게 만귀비의 의도를 물어 보았다.
물론, 남경에서 얻은 패물을 양손 가득 안겨주고 난 이후였다.
"귀비께오선, 산해관 인근의 혼란을 정리하실 생각이십니다."
“내가 연경에서 출정할 때 본래 경비 병력들을 산해관으로 보내었지 않았는가?"
“황보 장군께서도 아시겠지만, 전쟁 초기 여진인들과 조선에 군사를 보내라고 사신을 보내었었습니다."
"그렇지. 하지만, 군사를 보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 설마, 여진과 조선을 치기 위해 5만의 병사들을 연경으로 올려보내라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군사를 요청했을 때 조선은 기병 천명을 보내었고, 여진인들은 아예 보내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이 괘씸하다고는 하나 군사를 보낸 것이지 않나?"
체면치레이긴 하나 기병 천명을 보냈다는 것은 흠잡기 힘들었다.
"그건 그렇사오나. 폐 태자가 연경을 점령했을 때 병사 2만 명을 폐 태자 측에 조선이 보내었었습니다."
“2만 명? 다시 폐 태자에게 줄을 선 것이라면 문제가 있지. 귀비께서 조선에 화가 나신 것이 이해가 되는군."
“그리고, 여진인들은 군사를 보내라는 요청은 무시하고, 이때가 기회라고 여러 관문을 약탈하고 도적질을 해서 북방을 어지럽혔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5만 명을 보내도록 하지. 헌데, 귀비께서는 총애하시는 장수가 따로 있으신가? 아니면 장수까지 같이 보내야 하는 것인가?”
“관정기 장군이 병력을 인수하고자 내려오고 있사옵니다."
"흠. 알겠네."
황보정 장군은 만귀비의 의도를 알게 되자 병사를 골라 5만 명을 만들어 두었다.
하지만, 그런 군 편성을 함께 하던 상여일이란 모사가 말을 꺼내었다.
“장군께서는 남경에서 출진하신 후 시일을 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일을 끌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병사를 데려가기 위해 관정기 장군을 내려보냈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관정기 장군은 정2품 용호장군의 위계이옵니다. 병사들을 데리고 다시 연경으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고위직을 보냈다고 여겨지지 않으십니까?"
"그야 병력을 이끌고 올라가며 훈련을 시키고 바로 산해관을 넘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훈련이라면 부장들을 시켜도 충분하옵니다. 소신이 보기엔 아마도, 관정기 장군에게 남경과 10만의 병력을 줘서 남경을 지키게 할 것입니다."
"응!?"
상여일의 말을 들은 황보정은 그제야 아차 싶었다.
“내 군사를 쪼개어 내 힘을 빼려고 하는 것이구나."
“힘만 빼려는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연경에서 23만을 합비에서는 10만을 물리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남경에서 12만을 물리쳤기에 이제 폐 태자에게는 제대로 된 병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25만이 있으니 그게 문제였겠군.”
"그렇습니다. 이제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걱정해야 할 때입니다.”
사냥해야 할 토끼가 없으면 사냥개는 솥에 들어가야 하는 제 목숨을 걱정해야 했다.
“어쩌면 산해관으로 보낸다는 5만 병력도 견제를 위해 빼는 병력일 수도 있겠지."
물론, 이러한 생각이 기우(杞憂)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병사들의 중심이 될 수 있게 퍼트려 두었던 정병들을 따로 모아라, 정병과 경험이 풍부한 이들로 내 병력 10만 명을 채우고, 치중으로 데리고 다녔던 이들로 15만 명을 채워 주어라."
병사들의 질을 완전히 뒤바꾸겠다는 소리에 상여일은 상책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강군으로만 꾸려진 황보정 장군의 10만 명은 남경을 출발해 폐 태자가 있다는 여강을 목전에 두고 진군을 멈추었다.
황보정 장군의 와병과 남방의 기후로 인한 병이 돌아 병사들에게 돌림병이 돈다는 이유였다.
물론, 이렇게 시일을 끄는 것은 자신이 두고 온 15만 명의 병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고 판단하기 위한 것이었다.
황보정 장군이 군사를 멈춘 곳은 여강과 인접한 정덕진이었다.
도자기의 산지로 유명한 정덕진에 10만 명의 병사들이 주둔을 하게 되니 자연스레 도공들은 도자기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이 도자기를 거래하던 텅신황 같은 상인들은 죽을 맛이었다.
물론, 쫓기던 폐 태자는 황보정 장군이 쫓지 않으니 여강에서 다시 병사들을 모을 수 있었고, 재정비를 할 시간을 벌수 있었다.
“장군. 우리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관정기 장군이 남경에 남았고, 수하 부장이 5만을 이끌고 연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소식을 가져온 상여일의 말에 황보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면 폐 태자를 처리한 이후엔 관정기에게 토사구팽당할 뻔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폐 태자와의 싸움뿐만 아니라 본인이 생로(生路)도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태자에게 은밀히 편지를 보내라. 익주를 거쳐 사천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
중국 남부의 전황이 지지부진할 때 남경에서 북상한 5만이 연경에 도착했다.
“산해관과 요동반도를 어지럽히는 몽골인들과 여진인들을 정리하라. 그리고 피해가 없다면 조선의 압록강까지 진군하여라."
"네 마마. 압록강 인근의 동항이 번화하오니 그곳까지 점령한 이후 어찌 하오리까?"
"조선의 왕을 길들여야지. 현지 상황에 맞게 조선과 여진인들을 이간질하고, 조선의 왕이 다시는 서투른 짓을 하지 못하게 길들이고 오라."
“네 마마. 천세 천세 천천세!"
5만의 병력을 이끄는 이시록 장군이 궐을 나서자, 어선방의 어린 태감인 초철도 급히 궐을 나와 천진으로 움직여 배를 탔다.
***
조선에 도착한 원종은 무탈하게 돌아왔다고 성종과 대신들에게 감축을 받았다.
몽골인들에게 끌려가서 아무 일 없이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 여겼다.
다만, 만귀비의 화를 어찌 누그러트려야 할지를 다들 고민할 뿐이었다.
“만귀비가 지금은 연경에 있다고 하니 이번에는 배를 타고 다녀오게나.”
“네, 전하. 만귀비의 화를 누그러트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다시 동항을 경유해 북경으로 가기 위해 나서는데, 이번에는 마누라인 종희가 앞을 막아섰다.
“사신단으로 함께 간 자들이 낭군님이 잡혀갔다고 하였을 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하하하. 내 이렇게 잘 살아 돌아오지 않았소?"
"이번엔 하늘이 도와주셔서 무사 귀환하셨지만, 다음에도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정말 밤잠도 자지 못하고 걱정에 말라 죽을 거예요."
"그럼 나와 같이 가겠소? 연경으로 가게 되면 신기한 것도 많을 것이고 별천지일 것이오."
“하오나, 사신단으로 가는 길에 부녀자를 대동하고 갔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전례가 없으면 이번에 만들면 되는 거 아니겠소? 그리고, 사신단에 마누라와 여인들이 끼어 가는게 아니라, 사신단이 춘봉 상단의 배를 얻어 타는 것이니. 미리 춘봉 상단의 배에 타고 있었다고 하면 되는 것이오."
사실 눈을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렇게 데리고 간다면 공식적으로는 같이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명회의 외손녀인데, 이렇게 가는 것을 트집 잡을 이도 없을 터였다.
"그럼 같이 가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으면 되겠지요.”
"무슨 그런 소리요. 그냥 관광차 갔다오는 것으로 여기시오. 이제는 만귀비와 황제가 주변의 치안을 제대로 정리했을 것이오. 그리고,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배로 천진을 통해 가면 되니 안전할 것이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아마, 만귀비께서도 내 내자라고 하면 예뻐해 주실 것이고, 한 부인께서도 아껴주실 것이오."
그렇게, 종희는 물론이고 형수와 조카, 유모, 식모 등등 여러 종들이 함께 춘봉 상단의 배를 타게 되었고, 다들 조선을 떠나 명나라로 간다는 것에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도 동항에 도착하자마자 깨어졌다.
***
"초철이란 어린 태감이 찾아와 긴히 전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어찌 할까요?"
동항에서 오랜만에 가족끼리 모여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기에 급히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내게 짜장면과 복어 독을 배워간 태감 초철이 맞았다.
"긴히 할 이야기가 무엇이냐? 아, 이분은 내 친형이니 무슨 이야길 해도 상관이 없다."
"그것이 속히 동항을 떠나셔야 합니다."
"동항을 떠나야 한다고? 왜?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네. 연경에서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이시록 장군이 출진을 했습니다."
"아아, 그건 나도 들어 알고 있다. 일전 있었던 전쟁에서 산해관의 병사들마저 빠지자 그 주위로 약탈이 일어나고 치안이 나빠져 그걸 바로 잡으려고 한다고 들었다.”
원길은 이미 들은 군사들의 움직임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겉으로는 그런 목적이오나, 실제 목표는 바로 이 동항이옵니다."
“겉과 실제 목표가 다르다고? 왜 그렇게 하는 것이냐? 네가 직접 들었느냐?”
“네. 소인이 궐에서 만귀비님이 하는 말을 직접 들었사옵니다.”
어린 태감이 만귀비가 하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하니 무시할 수 없는 말이었다.
“원종아. 이 태감의 말을 다 믿을 수 있겠느냐?"
“음. 말을 들어도 손해는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태감은 실세인 동창의 왕직 밑에 있는 태감으로 믿어도 되는 이입니다."
“그럼, 이 동항을 점령해서 뭘 한다고 하더냐?"
"조선의 왕을 이곳으로 불러들여 석고대죄하게 만들고 길을 들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