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98화 (298/327)

298. 강 건너 불구경.

태감 왕직은 원종이 고민 끝에 독살을 위한 음식을 알려주겠다고 하자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그 누구도 본 적 없다는 음식은 어떤 음식이오?"

“면 요리입니다. 우선은 내일 아침에 보여드리겠습니다. 헌데, 요리를 배울 사람은 있습니까? 왕어르신은 요리를 모르시지 않으십니까?"

“어선방(御膳房)에서 일을 배운 태감을 데리고 왔소이다.”

"그럼, 그자에게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아침이 되어 가볍게 죽으로 시장을 면한 후 요리를 가르치기 위해 왕 태감을 집 뒤로 불렀다.

"먼저 이쪽으로 오시지요."

왕직이 데려온 태감은 이름이 초철이라고 했는데, 이제 열다섯이나 되었을까 싶었다.

“이 음식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5년 이상 묵어 색이 검게 된 된장입니다."

집 뒤에 줄줄이 서 있는 장독을 열어 오래된 된장을 보여주었는데, 그 색이 된장의 갈색을 넘어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바로 이 검게 변색 된 된장이 주재료입니다."

"검은 된장이라.”

왕직은 물론이고 어선방 출신인 초철 또한 검게 묵은 된장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된장은 원종이 담아둔 것이 아니었는데, 바로, 이 집의 전 주인이었던 경상 최홍서가 담아둔 된장이었다.

집을 넘겨 받으며 약된장같이 오래 묵은 된장을 발견하곤 언젠가는 짜장면을 만들어 먹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제 왕직이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요리라는 말에 검은색 짜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조선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봐도 검은색의 음식은 불에 태운 것이 아닌 이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는 검은색,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 본능적으로 인류에게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해서 검은 색의 식재료나 음식을 은연중에 선호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식을 좋아한다는 외국인들도 짜장면은 색이 검어서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비호감이 반대가 될 경우가 있는데, 바로 호기심이었다.

검은색으로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보이는 음식인데도 한국인들이 맛있게 먹어대니 외국인들도 도전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짭짜름하면서도 달달한 춘장의 맛에 자장면과 자장밥을 찾아 먹으며 한국식 중화요리에 입문하는 것이었다.

“오래 묵은 된장이 이렇게 검게 되면 맛이 진해지는데, 짠맛도 함께 강해집니다. 그리고, 쓴맛이 생기게 됩니다."

원종은 이 검게 된 된장을 그릇에 덜어 부엌으로 움직였다.

어제저녁 일꾼들을 시켜 만든 중국식 화덕이 있었다.

특별히 진흙과 돌로 화덕을 두르며 위가 좁게 만들었는데, 커다란 강철로 만든 냄비를 걸치기 좋은 형태였다.

“이 강철로 만든 볶음 솥은 처음에 불 위에 올려 열기로 겉면을 달구어줘야 합니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솥에서 흰 연기가 나게 되면 강철 팬의 표면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이때, 미리 온도를 올려둔 기름을 솥에 넣어 강철 팬 표면을 기름으로 코팅해 줘야 했다.

“된장을 강한 불에 볶을 때는 된장이 솥 바닥에 쉽게 눌어붙게 되니 미리 기름칠을 해줘서 눌어붙지 않게 준비를 해줘야 합니다.”

기름이 온도가 올라 표면으로 기름방울이 올라오자 묵은 된장을 넣고 쇠로 만든 주걱으로 된장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처음 된장을 기름에 넣으면 기름이 이 된장의 주위로만 보글보글거리며 끓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각(15분) 정도 주걱으로 풀어주면 굳어있던 된장이 풀리며 부드럽게 같이 끓게 될 겁니다."

원종은 쉴새 없이 쇠로 된 주걱을 놀려 된장을 볶았다.

일각 여가 흐르자 딱딱한 반죽 같던 묵은 된장이 주걱에서 흘러 내리듯이 풀어져 있었다.

“지금 끓는 기름을 보면 처음과는 달리 된장과 같이 끓고 있습니다. 이러면 사용 준비가 된 것입니다."

원종은 볶던 기름을 옆에 있는 다른 볶음 솥에 부어서 된장과 분리를 했다.

“이 볶아진 기름에는 파와 돼지고기를 넣어 볶아줍니다."

파에서 향이 나오고, 돼지고기에서 묵직한 기름이 나와서는 춘장을 볶았던 기름에 베어 있던 짠맛을 중화시켰다.

그리고, 양파와 당근, 배추를 잘게 썰어 넣었고, 설탕과 후추 등 양념을 넣어 한참을 볶았다.

채소들의 숨이 죽자 볶아진 된장을 한 움큼 넣어 볶았고, 멸치 육수와 밀가루, 전분을 넣고는 퍽퍽해질 때까지 계속 저어주었다.

면은 우리가 만들어서 팔고 있는 국수를 사용했는데, 얇은 면이었기에 좀 더 먹기 쉬울 터였다.

흰색의 백자 대접에 국수 면을 담고는 짜장을 덜어 부어주었다.

백자 그릇에 부어진 검은색의 짜장이 뭔가 더 이질적인 느낌을 만들어 내었다.

그 위로 삶은 완두콩과 삶아서 반으로 자른 계란을 올려주었다.

시각적인 색 대비를 위해 계란을 튀기듯이 구어 올리지 않고, 삶은 계란을 쓴 것이었다.

“이것이 자장면(炸醬麵)입니다.”

“흠. 장을 튀긴 면이라 기묘하군. 검은색의 음식이라니, 마치 마시는 약 같아 보이는구만. 냄새는 그럴듯하군.”

왕직은 그릇을 받아 들고서 이리저리 살펴보기만 했다.

“확실히, 나로서도 처음 보는 음식이야. 너는 이걸 그대로 만들 수 있겠느냐?"

어린 태감 초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 연습을 하면 될 것 같사옵니다. 헌데, 저 검은색의 묵은 된장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자장면을 이렇게 신중히 보고 거사에 쓰일 음식으로 낙점되었다는 것이우스울 터였다.

그만큼 한국의 자장면은 흔한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50~60년대 인천에서 자장면이 인기를 끌었을 때는 설렁탕이나 곰탕과 가격이 같았을 정도로 비싼 음식이었다.

미국 덕분에 밀가루가 흔해지고 면 요리 자체의 가격이 낮아져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지만, 밀가루를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 지금 시대에는 고급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왕이나 황제에게 진상이 될 정도의 음식인 것이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검은 된장을 모두 다 드리지요. 면발이 붙기 전에 맛을 한번 보시지요. 먼저 이렇게 젓가락으로 비벼야 합니다.”

왕직은 젓가락을 들어 원종이 하는 것처럼 자장면을 비볐고, 면을 들어 맛을 보았다.

후룩,후룩 후르르륵!

기름에 볶은 검은 된장의 짭조름한 맛과 설탕의 단맛이 났고, 뒤이어 후추와 마늘 등의 다양한 맛이 느껴졌다.

왕직은 강한 맛과 더불어 부드럽게 면발이 휘감겨 오니, 검은색의 양념장은 이런 맛을 내는구나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맛과 외양이라면 그 누구든 호기심을 가지고 먹어보려 할 터였다.

"저, 대인,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돼지고기를 먹고 있음에도 뭔가 육고기 맛 이외의 깊은 맛이 느껴집니다. 무엇을 쓴 것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초철은 어선방에서 일했다는 것이 거짓되지 않았다는 듯이 혀에 착하고 감기는 맛을 알아챈 것 같았다.

"춘장을 넣어 볶을 때 밀가루와 전분을 넣는데 이때 사용한 물맛이네. 멸치와 양파, 다시마를 달인 물이지."

MSG 조미료가 없기에 그 맛을 얻고자 다시 물을 우려내어 넣은 것이었다.

“깊은 맛이 나는 이유가 있었군요."

초철은 한 젓가락을 먹고 생각하고, 또 신중하게 한 젓가락을 먹으며 맛을 음미했다.

그런 모습이 마음에 들어 다르게 변형하는 것도 알려주었다.

“여기에 면 대신 밥을 넣어 먹어도 맛있으며, 채소와 계란을 넣어 볶은 밥 위에 이 짜장을 올려줘도 되네. 자장을 한번 볶아두면 온종일 다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지."

초철은 요리에 센스가 있는지 한 번에 짜장면을 했고, 볶음밥에 올려내는 것까지도 쉽게 따라 했다.

그래서 수타면도 알려주기로 했다.

“얇은 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굵은 면을 만들면 되는데, 이렇게 재주를 부리듯이 면을 만들어 주면 시선을 끌 수 있을 것이다.”

탕!탕!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늘리고, 손으로 들어 도마에 쳐가며 굵은 수타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글리텐 함량이 낮은 면이라 현대의 면만큼 가늘게는 힘들었지만, 굵은 면 빨 특유의 두터움이 자장소스와 만나 맛을 만들어 내었다.

스파게티처럼 굵은 면에 볶아주는 것까지 알려주자 일이 끝이 났다.

"그럼, 그 독은 어떤 독인 것이오?"

왕직은 초철이 요리를 다 배운 듯 보이자 독에 관해 물어 왔다.

"복어의 독입니다.”

"어?"

왕직은 초철을 돌아보았다.

초철은 복어를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종은 일꾼들에게 시켜 복어를 들고 오게 했는데, 황복과 까치복이었다.

“이 황복이라는 녀석은 바다와 강을 왔다 갔다 하는 녀석으로 독을 가진 부위가 가장 작고, 독이 가장 약합니다. 해서, 오래전부터 이 황복을 먹어왔습니다."

송나라 때 시인인 소동파는 복어요리를 먹은 후 그 맛이 너무 좋아서 '복어의 맛은 죽음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라고 극찬을 할 정도였다.

아마도, 소동파가 먹었던 복어도 독이 상대적으로 약한 황복이었을 터였다.

“복어의 독은 내장과 피에 있다고 합니다.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원종은 황복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었고, 이어 까치복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었다.

“이 두 개만 놓고 보았을 때 구분이 되십니까?"

"내장은 전혀 구분이 안 되는군."

“네, 구분이 되진 않지만 그 속에 든 독의 양은 5배 이상이 납니다. 이 까치복의 내장을 황복 내장과 바꿔 넣어 궁으로 들여가면 되실 겁니다."

"오오! 민물 황복은 독이 약하니 그냥 먹는 경우도 있으니 넘어가 준다는 말이군."

“네, 맞습니다. 그렇게 들여간 복어는 멸칫국물에 쓰시면 됩니다. 이 복어의 독은 뜨거운 물에 넣어도 없어지지 않으며, 1시간 동안 끓인다고 하더라도 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은으로

만든 수저를 쓰더라도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비상과 같은 계열의 독은 황(黃Sulfur) 성분을 가지고 있기에 색이 변하는 은 식기로 검출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 복어의 독은 그런 검출법 자체가 없었다.

솜씨 좋은 초철의 능력이라면 멸칫국물을 우려내며 그 안의 건더기를 건져 자장면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이 복어 독은 먹으면 바로 죽는 건가?"

“기미를 하는 궁녀나 상선이 있더라도 괜찮습니다. 복어 독은 치사량을 먹더라도 바로 독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1각 이상 지나야 독에 중독된 증상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 시간이면 중간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되기에 누구의 소행인지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음. 좋군. 귀비께서는 자네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네.”

"좋은 소식을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왕직은 원종이 알려준 요리와 독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날 바로 장독 3개를 들고 배에 올랐는데, 초철에겐 살아남으면 찾아오라고 했다.

나루에서 왕직과 초철이 떠나는 것을 보고는 바로 염호진을 불렀다.

“말라카로 갈 준비는 되었는가?”

“네. 선원들도 충분히 쉬었사옵니다."

“그럼. 이 편지를 태자 측에 있는 텅신황에게 전하게나. 편지 내용을 봐도 좋네.”

염호진은 편지를 봐도 좋다는 말에 내용을 읽어 보았다.

“...검은색의 음식은 태자님께 안 맞는다는 내용이군요. 헌데, 검은색의 음식이 있습니까?”

염호진은 자장면을 몰랐기에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종은 이런 반응을 텅신황에게도 원했다.

“텅신황이 자네와 같은 말로 물어보면, 이렇게 이야기해 주게. '검은 것을 먹으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고 말이야. 알겠나?"

염호진은 뭔가 선문답 같은 원종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네. 그대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검은 음식과 독을 만귀비 측에 알려주었으니 이제는 그걸 피할 방도를 태자 측에 알려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알려주었음에도 피하지 못한다면 그건 태자의 운명이었다.

만귀비가 독으로 부활할지, 아니면 독을 피한 태자로 인해 만귀비가 죽을지는 하늘만이 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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