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 대마도. (1)
모든 벼슬아치의 녹봉으로 교환권이 지급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도성의 하급 관리들 녹봉이 교환권으로 지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1~2년 동안 문제없이 교환권이 돌아간다면, 고위 관리와 전국적인 교환권 도입도 고려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조선의 상계를 다 잡았다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기쁜 마음에 부산에서 급하게 올라왔다는 서신을 펼쳤다.
"이거 편하게 한양에서 놀 팔자는 아니군. 김 대행수. 한양 전장의 일이나 이번에 인수한 상가들에 대한 운영을 다 맡아 주셔야겠소. 그리고, 벽란도에 오가는 두 척의 배를 빼고 지금 운영 가능한 배가 몇 척이오?"
“염호진 행수의 선단과 삼식 행수의 선단이 다 나가 있어 끌어모은다고 해도 작은 배 다섯 척일 것입니다. 아, 경상의 선원들을 태우고 온 염호진 선단의 누전선이 있으니 여섯 척입니다."
화포 4문이 달린 누전선이 한 척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헌데 그 서신이 무슨 내용입니까?"
"일기도(이키섬)의 도주 마츠우라 켄타로가 대마도를 도모한다는 서신이네."
김재원에게 서신을 넘겨주니 김재원도 고민을 했다.
“흠. 대마도의 사정이 안 좋다고 상관 요원들에게 보고 받았기에 약점을 잡아 공격하는 일기도에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그렇게 일기도의 왜구인 마츠우라에게 대마도가 넘어가면 아니 되네."
"그럼, 싸움도 생각해야 하니 배에 선원들보다는 호위대와 이번에 맞아들인 제주 박씨들을 최대한 태우도록 하겠습니다. 승선총통과 화약도 모두 싣겠습니다."
이미 물자가 한양에 다 있었기에 원종과 여섯 척의 배는 목포에 들르지 않고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
부산에 도착하니 경상 수영의 배들이 부산포에서 나오는 배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다행히 출발하기 전에 오셨습니다요. 이미, 일기도의 배들이 대마도로 들어가고 나오는 이들을 막아선 지 이틀이 되었습니다."
"수영의 배들이 부산포를 나가는 배를 막는 것도 같은 것이냐?”
“네. 일기도의 도주 마츠우라가 우리 측에 요청한 사항입니다. 수영에는 대마도에서 왜구들 간의 싸움이 났기에 거기로 가는 왜의 상인들을 막아야 한다고 부탁을 했습니다.”
희재는 자신의 수군 훈련원 관인(官印)을 보여주며, 드디어 이걸 써먹었다고 자랑했다.
일기도의 마츠우라가 대마도로 들어가는 상인들을 몇 개월 전부터 막았고, 섬을 봉쇄하며 아예 상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으니 대마도를 말려 죽이겠다는 작전이었다.
본래라면 조선과의 무역 최전선인 대마도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춘봉 상단의 활약으로 대마도의 중요성이 낮아졌고, 대마도의 도주 소 사다쿠니의 후추 강매로 인해 상인들이 알아서 멀리하게 되니 이 봉쇄 작전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대마도의 상황은? 우리 상관 요원은 섬을 나왔나?”
"아닙니다. 아직까지 섬 안에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배를 내어 마츠우라 도주의 봉쇄 작전에 참여하도록 하지. 마츠우라에게는 우리
상관의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전언을 보내고 함께 작전에 참여하겠다고 알려라."
한참을 출진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희재가 웬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단주님, 발해방 사람들이 함께 가길 원하온데 어찌할까요?"
"발해방?”
북해도를 개척하라고 정보를 준 발해방의 사람들이 부산포에 왜 있는지 몰랐다.
희재와 함께 온 이는 고형만이라고 했는데, 키가 크고 얼굴이 큰 것이 장수의 모습이었다.
그는 고주태의 혈족으로 내 이야길 많이 들었다고 했다.
“북쪽의 섬 개척은 잘 되고 있소?"
“네. 나름의 성과는 내고 있으나, 아직은 미진합니다. 희재 공에게 듣기로는 왜구들의 섬인 대마도에 출진을 한다고 들었는데, 함께 가면 아니 되겠는지요.”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소? 발해방에는 이득이 없을 터인데."
"이득이 있사옵니다. 북해의 섬에도 야인들이 살고 있는데, 그런 이들과는 크게 싸울 일이
없었습니다. 특히나 배로 싸우는 것은 아직 경험이 없습니다. 해서 그 경험을 쌓아보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싸움 경험이 없다면 지금 이 봉쇄 작전에 참여하는 것이 좋은 수업이 될 것 같긴 했다.
“흠. 배는 몇 척이고 인원은 몇 명이오?"
"정크선이 3척에 단선이 4척이 있습니다. 천 명이 조금 안 되는 인원입니다."
“흠. 그렇다면 정크선 3척에 사람들을 태워 같이 갑시다. 그리고, 철저하게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약속을 하시오."
“명을 따르겠다는 명령장을 쓰겠습니다."
원종은 마츠우라에게 전언을 보내고 희재 선단의 배와 발해방의 배를 합쳐 15척의 배로 부산을 출발했다.
**
"뭐? 춘봉 상단의 배들도 봉쇄 작전에 참여를 하고 싶어 한다고? 크하하하. 기분 좋구나. 놈들도 우리에게 승산이 높으니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이겠지."
마츠우라 켄타로의 호기롭게 웃음을 지었다.
"춘봉 상단은 두지포(豆地浦)를 봉쇄하겠다고 합니다. 어찌할까요?"
"좋지. 니노만에 우리가 집중할 수 있게 두지포를 맡아 주겠다는 거군. 두지포에서 나오는 배들을 단속해 달라고 전해라. 헌데 배의 규모는 어찌 된다고 하느냐?"
“크고 작은 배 15척이라고 합니다.”
"오호! 분명 삼식 선단이라고 하는 선단이 남쪽으로 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고도 그만큼의 배가 있다는 말인가?"
마츠우라는 의외로 많은 이들이 온다고 하자 왠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다.
"춘봉 상단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마도 대마도를 얻은 이후 혜택을 많이 달라고 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처음에는 들어준다고 하고, 시일이 지나 안정되면 그 혜택을 거두어들이면 될 것입니다."
"하긴 상단의 상인들이 다른 생각을 가질 리가 없겠지."
마츠우라는 춘봉 상단의 배가 도착하자 대마도의 도주가 있는 니노 군으로 배들을 중첩 시켰는데, 그런 늘어난 배를 보며 소 사다쿠니는 열불을 내었다.
“내가 첫날 한 번에 몰아서 뚫어보자고 하지 않았느냐? 저렇게 배가 늘어나게 되었는데, 어찌할 것이냐?"
“도주님. 저들의 배가 늘어났다는 것은 입이 늘어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배에 싣고 온 식량이 떨어지면 물러날 것이옵니다. 오래전 원나라와 고려는 물론이고, 조선의 군사들도 다들 한 달을 버티지 못하였습니다."
중신인 아나바 쿠노의 말에 소 사다쿠니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의 말대로 이제까지 대마도를 정벌하기 위해 왔던 나라들은 보급 문제와 신풍이라 불리는
태풍에 피해를 보고 물러났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이 있었다.
지금 대마도도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조선 왕족들 간의 혈전(血戰)으로 세조라는 왕이 등극한 이후 대마도는 왜관 무역을
좌지우지하며 부를 쌓았었다.
본토의 대 영주들보다 풍족한 삶을 무역 이익으로 누린 것이었다.
덕분에 대마도의 호구(戶口)도 2배 가량 늘어나 있었다.
헌데, 이 2배로 늘어난 섬민들이 지금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었다.
“다른 마츠우라 48방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느냐?"
"그것이 제대로 서신이 전해졌는지도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일기도의 마츠우라 켄타로가 대마도를 공격하고 있지만, 다른 마츠우라 48방의 세력들은 켄타로가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해적 세력인 마츠우라 48방에도 도움을 요청했었다.
거기에 더해, 예전처럼 힘 있는 다른 해적들이 나타나 켄타로와 싸워주길 원했지만, 예전 외부의 침략과는 달리 왜의 내부 세력 다툼이다 보니 다른 해적들도 끼어들기가 애매한 것이었다.
어떻게든 소 사다쿠니는 버텨보는 방법밖에 없었다.
"신풍이 불어올 때까지 버텨본다."
평소라면 오지 말라고 기도를 했던 신풍에게 빨리 오라고 제를 올리기도 했다.
"크... 큰일입니다. 도주님, 두지포가 넘어갔습니다. 거기 살던 아비루(阿) 씨족들이
투항했다고 합니다."
"뭐어?"
어떻게든 봉쇄된 것을 버텨보겠다고 했지만, 대마도에서 가장 번화한 두 곳 중 한 곳인 두지포가 넘어갔다면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이 빌어먹을 아비루 놈들의 씨를 말렸어야 했는데! 무사단을 꾸려라! 직접 두지포를 쳐서
회복하겠다!"
하지만, 소 사다쿠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니노만을 막고 있던 배들이 상륙해 오고 있습니다. 지시를!"
“이익! 양동작전이구나!!"
소 사다쿠니는 무사단을 꾸려 배에서 상륙하는 이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소 사다쿠니만큼 마츠우라 켄타로도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아비루 씨족이 투항한 것이냐?"
“그것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조선 상단의 배들이 두지포를 막고 하루가 지나자 두지포의 아비루 씨들이 투항을 요청해 왔다고 합니다."
“제길, 힘들게 밥을 해서는 다른 놈들에게 먹이고 만 것이구나. 두지포에서 니노까지 육지로 움직이는 데 방해물은?"
“없습니다. 허나, 조선의 상단이 육지에서 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선인들은 칼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기분이 나쁘잖느냐! 이 싸움의 주역인 나는 지금도 배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뒤늦게 온 조선 놈들은 벌써 상륙을 하여 이득을 취하고 있지 않으냐!"
켄타로는 조선의 배가 15척이나 되었고, 그중 3척은 몇백 명이 탈 수 있는 큰 정크선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 정크선에서만 600명의 병력이 내린다면 제아무리 정예로 소문난 소 사다쿠니의
50 무사단이라고 해도 패퇴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한 것이 조선인들의 계획이었다면 재주는 자신이 피우고 이익은 조선인들이 다 볼 것이었다.
“우리도 상륙한다. 괜히 조선인들에게 여지를 주지 않는다!”
***
“정녕 우리 아비루에게 다시 대마도를 맡기실 것입니까?"
작은 얼굴이 주름살로 가득한 촌로 아비루나칸은 상단주라고 불리는 이의 옆에 서 있는 아비루 촌음을 쳐다봤다.
분명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아이였고, 아비루 성씨의 직계 혈통을 가진 이 중 한 명이었다.
“맞네. 나는 촌음이 해준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너무 아팠네. 당시 도주였던 아비루 치카모토(阿比留親元)가 고려와 교역을 했다는 이유로 목이 잘리고, 아비루 성씨가 쫓겨났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좋지 않았네."
아비루나칸은 그때가 언제인데, 지금 그 말을 꺼내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비루 촌음이 나칸에게 상단주가 그 고려의 왕족이며, 오래전 고려에서 쫓겨났던
삼별초와 다른 후신들을 찾아 바로 세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래전 그 관계를 다시 복구하려고 하네. 다만, 대마도의 도주는 내 밑에서 일을 했던 아비루 촌음이 될 것이네."
나칸은 대마도의 주인이 소씨에서 다시 아비루씨가 되더라도 고려 왕족이라는 저 상단주의 손아귀에 있을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꼭두각시 도주가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소씨의 아래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씨족이 이어지는 한 언젠가는 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
여겼다.
“아비루 씨족은 춘봉 상단을 받들겠습니다. 오래전 함께 했던 고려와 아비루 씨족의 우호가
영원하길 고대하겠습니다."
"좋군. 일어서게. 우선은 두지포를 장악하고, 하루 거리인 니노가 어찌 돌아가는지를 보세나."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기세와 인력으로만 두지포를 가져가는 원종의 모습에 발해방 사람
고형만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선, 춘봉 상단의 준비에 놀랐고, 그런 준비에 몇 년을 쏟았을 재력과 지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발해방도 나름 준비를 많이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았다.
“발해방 사람들의 무예가 뛰어나다고 하던데, 우리 제2호위대와 함께 나서주는 것이 어떻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