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64화 (264/327)

< 264. 여색. >

“송구하오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넷째가 자네에게 부탁을 했더라도 자네가 거절할 수 있지 않았나.”

“아, 그것이...”

넷째 아들인 신정이 내게 부탁해 여자들을 데려온 것을 타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휴우...하기사 단순히 이국의 계집을 데리고 와달라고 했던 일이었으니 이리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래. 전하를 뵈었나?”

“아직 뵙지 못했습니다. 전하를 만나기 전에 처조부님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맞을 것 같아 바로 왔사옵니다. 조정이 많이 혼란스러운 것입니까?”

“혼란을 넘어 난잡해졌지. 휴...”

원종은 신숙주의 한숨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사실, 조선의 국왕쯤 되면 미색이 뛰어난 궁녀든 일반인이든 언제든지 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왕이 마음대로 원하는 궁녀를 품을 수 있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궁중 법도상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승정원(왕의 비서실)의 업무일지인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왕의 동선은 철저하게 관리가 되는데, 볼일을 어디서 몇 번 보았다는 것까지 나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승지들이 24시간 붙어 있다 보니 미색이 마음에 드는 궁녀가 있더라도 1대1로 연애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승지들의 눈을 피해 마음에 드는 궁녀에게 성은을 입히더라도 그것이 후계 생산이 아니라 색욕을 위한 것이라고 신하들이 판단을 하면 바로 신독(愼獨) 사상을 들고 왕을 공격했었다.

대학에 나와 있는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라는 구절에서 나온 사상이자 말인데, ‘군자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늘 올바르게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색을 밝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렇듯 은밀해야 하는 잠자리조차도 신독(愼獨)의 준수를 신하들이 요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신하들의 횡포는 왕권이 약해진 중종 이후에 주로 보이게 되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잠자리마저도 관여하는 것이 유교 국가인 조선의 신하들이었다.

그래서 원종은 신정이 동남아의 여자들을 바친다고 해도 대관들이나 왕후들이 막을 것이었기에 별 영향 없을 것이라 여겼었다.

헌데, 궐이 혼란을 넘어 난잡해졌다고 하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궁금했다.

“다른 대소신료들이 경연에서 나서지 않은 것입니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운 것이고, 부원군도 자식 복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쯧쯧쯧.”

병상에 누운 처조부의 이야길 듣고 보니, 이것이 또 우연이 겹친 결과였다.

***

“좌승지가 이국의 미희들을 전하께 바칠 것이라고 하던데, 이걸 어찌해야 하느냐? 왜 이게 나에게 떨어진 거야? 누구 부원군(한명회)의 의향을 아는 이는 없느냐?”

대사간 성준은 이제까지 없었던 일에 머리가 아팠다.

사간원이 하는 일은 임금이 정사를 그릇되게 할 때 임금께 간하여 논쟁을 하는 일이었는데, 이국의 미희와 관련된 일이 뜬금없이 자신에게 떨어지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나, 국구(國舅 왕의 장인)이자 실세인 한명회의 의향이 중요했기에 성준은 골치가 아픈 것이었다.

“좌승지가 보한재(신숙주) 어르신의 4남이니 부원군도 허락하신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미 계비(계후 繼后) 두 분께서 회임을 하신 마당이니 후계 문제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다만, 왕후(한명회 딸)께서 병중에 계시고, 계비 두 분이 회임을 하셨는데, 미희를 들인다는 게 말이 되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 미희들을 바치며 좌승지가 가져온 문서를 국서로 친다면 받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흠. 그렇게 보면 또 맞는구나. 말라카의 재상이 보낸 서신이니 국서라고도 봐야지. 그렇다면 이 미희들도 공녀(貢女)라고 보고 정식으로 들이더라도 말은 안 나올 것이고. 맞느냐?”

“네. 혹시라도 경연에서 그런 말이 나오지 않게 정식으로 미희들을 공녀로 받아들였다고 언관들에게 이야길 해두겠습니다.”

***

“그래? 정식으로 미희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말이지? 하하하.”

신정은 진상하기 전 데리고 있는 이국의 미인들을 보며 침을 삼켰다.

다소곳이 방안에 인형처럼 앉아 있는 모습이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미희들을 데리고 온 염호진 선장의 말에 따르면 말라카의 재상 뚠빼락이 고르고 고른 미인들을 주었다고 했었다.

“이슬람을 믿는 왕후장상들은 하렘이라는 것을 만들어 여인들만 살게 하고, 방중술을 가르친다고 하더니 그냥 보기만 해도 그 색기가 욕정을 일으키는구나.”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여인들이 왔다는 소리에 천한 인상의 여인들일 거라 생각했으나 쌍꺼풀이 진하게 있고, 은은한 차양과 면사를 둘러쓴 여인들은 묘하게 남자를 자극하는 색기가 있었다.

호리병같이 매끈한 굴곡을 가진 몸매가 드러나는 옷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시원하게 큰 눈의 색상이 갈색과 노란색 등 다양한 색이었기에 그 신비한 아름다움이 배가 되었다.

장안의 탕아라고 소문난 닳고 닳은 신정의 가슴에서도 욕구가 치솟는데, 혈기 왕성한 10대 후반의 청년인 성종은 아주 당연하게 이국의 미희들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같이 성장한 공혜왕후가 병중이었고, 계비로 들인 두 숙의(淑儀)는 이미 회임 중이라 성종은 욕정을 풀 곳이 없었다.

그런 에너지가 가득 쌓여있는 때에 이국의 미희들이 4명이나 진상이 되었으니 성종은 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본래라면 이런 미희들에게 빠져드는 것을 대관들이 경연에서 막았어야 했으나, 성종은 아직까지 후사가 없었기에 이러한 욕정의 발출을 후계를 위한 행위로 여겨 그 누구도 경연에서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정비이지만 처가에서 병중인 공혜왕후, 들이자마자 한 달 만에 회임이 된 계비들.

그리고 이제 한창 그 재미를 알아가는 혈기 넘치는 젊은 왕.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이국의 미희에게 빠져드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회임 중이신 두 마마의 태중 왕손이 태어난다면 조금은 그 마음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자식을 보게 되면 자식들을 본다고 미희들과 멀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두 숙의 마마가 아들이 아닌 딸을 낳으시게 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리고, 이국의 미희들 중 세 명도 회임을 했기에 최악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야.”

혹시라도 계비들이 아닌 미희들에게서 아들이 태어날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원종은 그럴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여유가 있었다.

지금 숙의이자 회임한 후궁은 공교롭게도 둘 다 윤씨였는데, 한 명은 바로 그 유명한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였다.(함안 윤씨)

그리고, 다른 윤씨는 파평 윤씨로, 훗날 중종의 어머니가 되는 이였다.

장남인 연산군이 태어난다는 것을 원종은 알고 있었기에 원종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에도 원종의 신색이 평화롭자 신숙주는 원종이 뭔가 수가 있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원종의 이런 여유로운 모습을 보자 신숙주도 왠지 안정이 되었다.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다른 걸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어느 숙의께서 왕세손을 생산하시겠나? 자네 생각은?”

“처조부님의 사촌 동생이신 신씨 부인의 딸 숙의 윤씨일 겁니다.”

사실, 폐비 윤씨(함안 윤씨)의 친정어머니가 신숙주의 고종사촌 동생이었기에 윤씨가 뽑힐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파평 윤씨인 다른 숙의 윤씨는 한명회의 입김이 붙어 있었는데, 숙의 윤씨의 증조할아버지인 윤곤이 한명회의 고모부로 숙의 윤씨는 한명회의 조카손녀 항렬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압구(狎鷗 한명회)와의 내기에서는 내가 이기겠구먼. 후후후.”

신숙주는 기분이 좋아졌다는 듯이 다시 편하게 누우며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늘 기분이 안 좋으셨는데, 자네를 보곤 마음이 편해지신 것 같구만. 신정이 오기 전에 갈 것인가?”

“아닙니다. 처조부께서 편찮아 보이시니 여기에 묵겠습니다.”

“흠. 신정이 때문에 불편할 것인데, 괜찮겠느냐? 아마 이국의 미희들을 더 데리고 와야 한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방을 준비시키도록 하마.”

압구정 한명회의 집 인근에 지었던 옛집으로 가도 되었지만, 좌승지인 신정을 통해 들어야 하는 이야기도 있고, 병문안을 오는 이들을 통해서도 정보를 얻어야 했기에 당분간은 처가에 묵기로 했다.

***

“그래. 자네는 너무한 거 아닌가? 이 좋은 것을 왜 자네만 알고 있었나? 이번에는 북방에 다녀왔다지?”

알현하게 된 성종은 나를 보자마자 왜 이제까지 이 좋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냐고 타박부터 했다.

“좌승지가 미희들을 진상하지 않았다면 세상의 절반이 이렇게 되어 있는지를 몰랐을 것이야. 그래 회령 넘어 북방에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던가?”

내가 몇 개월 조선을 떠나 있던 기간에 북방으로 선원들의 훈련을 간 것이라 알고 있었기에 성종은 북방의 민족들을 궁금해했다.

“예전 원나라의 후예들이 있는 북방 내륙은 소신도 가보지 못했으나, 대신에 동해를 건너 있는 삼봉도(三峯島)를 보고 왔습니다. 그곳에는 아이누(Ainu)라는 민족이 살고 있사옵니다.”

“오! 그래? 그들은 어떻게 생겼나? 피부색은? 어떻고?”

“우리 조선인과 비슷하게 생겼사온데, 털이 많았사옵니다. 우부승지처럼 남자들은 모두 다 가슴까지 털이 길었고, 손등과 팔등에도 털이 많은 민족이었습니다.”

사실 아이누족이 있다고 이야기해도 실제 가볼 사람은 없을 터였다.

“여자도 그러한가?”

“네. 여자들도 코 밑으로 털이 많이 나옵니다.”

“허허. 이상한지고.”

성종은 콧수염이 난 여자들을 생각해보다 고개를 저었다.

“과인은 그 민족들이 궁금하여 몇 명을 데려오게 하려고 했으나 그들은 데려오지 않아도 될 것 같군. 그리고 배를 타고 멀리 나가게 되어 생김새가 다른 이들을 보게 되면 꼭 데리고 오게.”

성종의 말은 새로운 민족을 보게 되면 그 민족의 여자를 데리고 오라는 말이었다.

“미희들에게 이야길 들어 보니 저 멀리 서역을 넘어가면 피부가 흰 눈과 같이 하얗고, 머리카락이 금색 실로 난다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군. 눈 색깔 때문에 색목인이라고 한다는데, 그런 이들은 본 적이 없는가?”

“소신도 비단길이라 불리는 실크로드의 끝에 가면 그런 사람들이 산다고 들었사온데, 아직 본 적은 없사옵니다.”

“흠. 원나라의 역참이 안정적일 때는 그런 색목인들이 장안에도 왔었다고 하던데 아쉽군.”

“배를 더 멀리 보낼 수 있게 되면 그런 색목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는 꼭 조선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꼭 데리고 오게. 참. 자네가 말라카에 갔을 때 그곳의 음식을 먹어보았나?”

“네. 먹어보았습니다. 혹시, 미희들에게 말라카의 음식에 대해 들으신 겁니까?”

“역시 자네는 척이면 척하고 알아듣는구만. 하하하. 내가 가장 아끼는 타두가 고향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군. 뭐라더라. 아얌고랭이라고 혹시 아는가?”

성종이 아끼는 미희인 타두는 인도네시아 출신인 것 같았다.

“네. 소신이 할 수 있는 요리입니다.”

“하하하. 그거참 다행이구만. 지금 당장 해주게나.”

작가의말

실제 신하들이 신독(愼獨)을 강조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중종실록에 보면 조광조가 경연 자리에서 중종에게 허리 똑바로 세우고 앉으라고 훈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혹시 요즘 혼자 계실 때 마음 공부를 게을리해서 그런 것이 아니 옵니까?’라고 다그칠 정도였습니다.

연산군 이후 얼떨결에 왕이 된 중종이다 보니 더 신하들이 들들 볶은 것이지요.

이후로도 중종이 미색이 고운 희빈 홍 씨를 특별히 가까이 했는데, 사헌부(지금의 검찰청) 정 4품 관료가 ‘여색에 빠지는 자는 용렬한 임금’이라고 둘러서 멕이는 지적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평검사가 대통령에게 여색에 빠지면 안된다고 대놓고 이야길 한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연산군 이후로 이씨들의 조선에서 신하들의 조선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