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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63화 (263/327)

< 263. 격동의 조선 정계. (2) >

“단주님. 다른 전장의 교환권을 받아 주는 것인데 이게 단순하겠습니까?”

“한양 전장의 교환권을 우리 교환권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단순합니다.”

“하지만, 저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처럼 교환권을 보증하는 은을 보관하고 있겠습니까?”

김재원은 혹시라도 받은 교환권을 한양 전장에서 교환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단주님께서 없으셨던 동안 경상이 송상과 연합하여 선단을 조직했습니다. 그때 경상이 지출을 많이 했습니다. 교환권을 위해 놔둬야 하는 은도 그냥 가져다 썼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아예 지급을 위한 은 자체를 모아두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권항필이 한양 전장에서 교환권을 만들었으니 그의 성정상 은을 제대로 준비해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 한양 전장의 교환권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제가 한양 전장의 교환권을 보니 우리 교환권의 글귀를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더군요. 전장에서 동일 가치의 은으로 교환해 준다는 문구 말입니다. 만약, 그 문구를 보고 실제 교환하러 갔을 때 은이 없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바꿔주지 않는다면 난리가 나겠지요.”

“그겁니다. 교환권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신뢰성이 훼손되게 되는 겁니다. 한번 그렇게 교환이 안 되었다면 다음에 그 교환권을 사람들이 믿고 거래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사용하지 않게 되겠지요. 아, 그럼 단주님은 우리가 받아둔 한양 전장의 교환권을 한 번에 몰아서 은으로 달라고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한양 전장의 신뢰를 떨어트리겠다는 것입니까?”

“네. 모아둔 교환권을 한 번에 교환할 것입니다. 그 한 번으로 한양 전장을 나락으로 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이게 간단하다는 것이지요.”

단순히 교환권을 서로 사용해 주는 이야기일 뿐인데, 한양 전장을 무너트릴 계획까지 막힘없이 이어지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함정을 파서 한양 전장을 무너트린다고 비난을 들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우리가 직접 나서지 않고 소문만 내도 됩니다. 한양 전장에 은이 없다는 소문만으로도 충분히 전장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겁니다.”

소문으로 전장을 무너트릴 수 있다는 말에 재원은 깜짝 놀랐다.

“알 것 같습니다. 한양 전장의 운영이 나빠져 교환권을 바꿔줄 은이 없다는 소문이 돌면 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은으로 교환하려고 할 것이니 전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겠군요.”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문이 진짜가 되는 것이지요.”

김재원은 자신이 매주 춘봉 상단의 주보를 발행하고 있었기에 이 소문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이 되었다.

원종은 현대의 개념인 뱅크런(Bank Run) 사태를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바로 그 현상을 이해하는 김재원이 든든했다.

“그래서 제가 교환권을 만들었을 때 더 이득을 볼 수도 있었지만, 10% 이상은 더 발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소문에 우리도 당할 수 있으니깐요.”

“허면, 그런 소문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물론, 악의적인 소문이 나더라도 보증할 수 있는 은을 들고 있으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리되면 쌓인 은을 놀리게 되는 것이라 너무 아깝습니다.”

김재원은 은자가 몇천 냥이 쌓여있는데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 아까웠다.

“방법이 하나가 있습니다. 보증용 은을 활용하면서도 그런 소문을 막는 방법이...바로 춘봉 전장의 건물을 새로 짓는 것입니다.”

“네?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방법이라구요?”

전장의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방법이라는 말에 김재원은 어떤 원리로 그리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장의 건물을 고래 등 같은 기와가 올라간 호화로운 건물로 지으십시오. 그리고, 건물의 벽에는 이름난 문인들의 시서화를 걸어두고, 입구에는 비싼 조각을 세우십시오. 그런 시서화와 조각으로 전장에 오는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드십시오.”

“호화로운 건물에 귀한 문인들의 시서화라...아! 설마 돈 자랑인 겁니까?”

역시 김재원은 머리가 좋은 것 같았다.

“맞습니다. 춘봉 전장에 은이 없어서 교환을 못 해준다는 소문이 돌게 되면 교환권을 들고 있던 자들이 전장으로 들이닥칠 겁니다. 하지만, 근방에서 가장 부유해 보이는 건물과 비싼 시서화가 걸려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돈 자랑을 건물과 시서화로 하는데, 교환해 줄 은이 없겠어?’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겠지요. 그리고 은이 없다는 소문은 헛소문이라고 여기게 될 것 같습니다.”

“그걸 노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건물과 재력으로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신뢰감을 주는 방법인 것입니다.”

사실, 이 방법은 현대의 은행이나 일반 기업에서도 흔히 쓰는 이미지 마케팅방법이었다.

유동 인구가 많은 번화가에 비싼 월세를 내고, 은행 객장을 고급스럽게 꾸미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비싼 월세를 내고 비싼 인테리어를 할 만큼 돈이 많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는 신뢰성의 이미지를 은연중에 고객에게 심어주는 것이었다.

시장통에 있는 작은 새마을 금고는 왠지 동네 지역민을 위한 편한 은행이라는 느낌이 들어 소시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지만, 소위 제1금융권이라 불리는 은행은 그 반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마케팅 전략이었다.

바로 객장의 문턱을 높여 고급화 전략을 쓰는 것이었다.

금액적으로도 시장통의 소시민 10명이 주는 이득보다 1명의 PB고객이 주는 이득이 더 크기도 했으니 그런 전략이 기업 입장에서는 맞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미지 브랜딩 전략을 춘봉 전장에도 심어두는 것이었다.

부유하고, 신뢰성이 있어서 소문이 돌아도 끄떡하지 않는다는 든든함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야 했다.

그런 이미지 브랜딩을 위해서라면 국왕을 제외한 조선 최고의 부자가 전원종이라는 것을 소문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렇게 되면 은이 없다는 소문이 돌더라도 ‘설마, 조선 최고의 부자가 교환권 바꿔줄 은이 없겠어?’ 하는 말이 먼저 나올 터였다.

그런 신뢰성 있는 이미지를 구축해야 했다.

“헛소문을 방어하기 위해 뛰어난 목장을 불러 새 건물을 세우도록 하고, 시서화를 모으도록 하겠습니다.”

“네. 거기다 전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옷차림도 통일을 해야 합니다. 점원들의 이름이 쓰여있는 표찰도 왼쪽 가슴에 붙여 이름을 내놓고 책임감 있게 일한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원종은 전장과 가패, 국숫집에서 일하는 이들도 각각 일할 때 입는 옷을 만들게 했다.

“만약 제가 원행을 나가 부재중일 때라도 한양 전장의 교환권이 쌓여있고, 은이 없다 싶으면 바로 소문을 내고 작업을 하셔야 합니다.”

“네. 하지만. 경상의 선단이 교역에 성공해서 큰 이득을 남기게 되면 은이 쌓여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 방법도 헛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본래 교역 일이란 크게 남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태풍을 만나 배가 난파당하거나 해적들에게 배를 빼앗길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런 사태가 생긴다면 오히려 전장의 돈이 더 나가야 할 것이니 그런 때를 노리십시오.”

“네. 그 시기를 잘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번 말라카에 다녀오면 10배 넘는 엄청난 이득이 나지만, 이런 수익도 올해가 끝일 겁니다. 그 이후로는 3배 이상 남기기가 힘이 들 것입니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지금은 이슬람인들에게 청화백자가 인기가 있지만, 그 수요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럽인들이 희망봉을 돌아서 오기 전까지는 아마 이 이상의 거래 확장도 힘들 것이었고, 청화백자의 공급도 많아지면서 가격도 낮아질 터였다.

인도까지 직접 간다면 또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모험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김재원도 흔하게 된 물건은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원종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

“상단주님께서 다들 한 달 보름의 휴가를 주셨다. 남해로 내려가는 이들은 내일 배가 출발하니 오늘 밤까지 들고 갈 물건들을 배에 싣도록 해라.”

“와아! 감사합니다!”

남해와 하삼도 출신의 선원들은 한양의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옷감과 패물 등 집에 줄 선물을 구매한다고 난리였다.

“엇? 청봉이 자네는 집이 이 근처인가?”

선원들은 통역을 하는 청봉이가 커다란 등짐을 지고 배에서 내리자 다들 물었다.

“여주가 본래 집이라네. 그럼 다들 한 달 보름 후에 다시 보세나.”

청봉이는 배가 한양에 닿자마자 여주를 지나가는 봇짐장수를 통해 편지를 집으로 보냈었다.

배 타면 죽는다는 부모님께 잘 살아 돌아왔노라고 알리는 게 급했기 때문이었다.

등짐에 백미 두말(약 16kg)을 지고 움직이고 있었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리고, 집에서 하루 거리까지 인척들이 마중 나와 있었기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다들, 얼굴이 검게 그을린 청봉이의 모습에 신기해했고, 등짐 가득 짊어진 백미와 포목, 저 멀리 남국에서 난다는 새콤달콤한 말린 열대 과일에 놀라워했다.

청봉이 집에 와 부모님께 절을 하니 나이 든 어머니는 그저 무사히 다녀온 것이 천행이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말 없는 아버지는 그저 잘 살아 돌아왔다고 어깨를 두드려 주셨는데, 남들이 보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것인 줄 알 것 같았다.

집으로 몰려온 친지들도 마치 다른 세상에 다녀온 사람처럼 청봉을 대하였는데, 다들 이국의 말린 과일을 먹어보곤 천상의 맛이라고 난리를 부렸다.

친지들에게 잡혀 청봉은 사흘 밤낮으로 왜국과 오키나와, 대만과 남중국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는데, 온 집안사람들이 밥때를 잊고 이야길 들을 지경이었다.

“아니, 이걸 어찌 다 기억하는 거야. 청봉이가 아니라 두겁 쓴 요괴 아닌감? 이걸 어찌 다 외워?”

“하하하. 책이 있어서 그렇지. 단주님이 한글로 틈틈이 일기를 쓰라고 하셨거든. 덕분에 그날 있었던 일을 까먹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

청봉이는 자신의 일기장을 들어 보였는데, 친인척들은 서유기의 손오공이 천축에서 가져온 불경이라도 된 것인 양 일기장을 중히 여겼다.

청봉이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어린아이들은 환상과 꿈에 젖어 바다 건너에 있다는 대만이나 오키나와로 가는 꿈을 꾸었다.

“엄니 나도 나이만 되면 청봉이 삼촌처럼 배를 탈 거야!”

본래 내륙사람들은 배를 타면 죽는다고 여겼기에 평소라면 등짝을 두들기며 그런 헛소리 하지 말라고 했을 터였지만, 오늘은 배를 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다들 생각했다.

청봉이뿐만 아니라 휴가를 받아 집으로 간 이들은 다들 이런 대접을 받았고, 일가친척 아이들에게 대양을 항해하는 꿈과 환상을 심어주었다.

***

“오! 전 서방 왔는가!”

원종은 궐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보기 위해 처조부인 신숙주의 집으로 왔는데, 신숙주의 삼남이자 처숙부인 신찬이 맞이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이 자네를 기다린 지 오래네. 어서 들어가게나.”

처조부인 신숙주는 병색이 완연했는데, 풍채 좋던 살이 쏙 빠져 예전의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방안에 들어서자 당뇨병 환자들이 몸에서 당분을 분해하지 못해 난다는 단내가 풍겨왔다.

당뇨로 살이 빠져 저리 누워 있는 것이라면 백약이 무효였다.

“어서 오게...이리 가까이 오게나. 다행히 죽기 전에 자네를 볼 수 있게 되었구만.”

“일찍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래. 내 우선 하나만 물어보세. 왜 그랬나?”

병상에 누운 처조부 신숙주의 말에 원종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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