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61화 (261/327)

< 261. 변화들. >

날이 휘어진 것이 달이 찬 것과 같다고 하여 만월도라고 불리는 칼은 날이 날카롭게 세워져 있었는데, 대충 보기에도 사람 여럿 죽였을 것 같은 흉악한 칼이었다.

이런 칼을 사탕수수 농사에 쓰라고 줬으니 수십 자루의 칼을 받아든 배일욱과 김수로서는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야 이 칼에 건장한 노예도 100여 명이나 더 줬으니 이거 그냥 농사나 지으라는 것은 아니겠지? 네가 머리는 좀더 잘 굴리니깐 생각해봐.”

“내가 머리 굴리는 동안 그 입 좀 다물어라.”

배일욱은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을 되뇌었다.

김수의 친족이자 상인이었던 케하루가 춘봉상단을 따라 중국 남부에 다녀오더니 왕원종 아니, 춘봉 상단주의 수족처럼 굴었다.

거기다, 본래 가지고 있던 배보다 훨씬 더 큰 여러 척의 배를 가지고 규슈와 남중국을 다니며 교역 일을 크게 벌린다고 했었다.

케하루는 김수의 친족이니 가진바 재산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큰 배 여러 척이 생겼다고 했으니 분명 춘봉 상단에서 마련해 준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좋은 쇠로 만든 칼을 수십 자루 주었으니 이것이 무엇을 의도하는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더러 예전 어르신들처럼 세력을 만들라는 그런 거야?”

“김가야. 세력이란 말이다. 돈이 있어야 하고, 무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래. 그건 나도 안다고. 아마도 케하루 저것이 돈을 만들면, 우리에게는 저 잡아 온 포로라는 놈들을 길들여 무력을 만들라는 것이겠지. 사탕수수도 재배하고, 예전 조상들처럼 병사도 길러야 할 것 같다고.”

“김가야. 내 말을 끝까지 좀 들어라. 세력은 말이다, 돈과 무력에 이어 정치질도 해야 세력이 될수 있는 것이다. 돈과 무력만 있으면 그건 무뢰배들이나 도적일 뿐이다.”

“돈과 무력에 이어 정치질?”

“그래. 아마도, 돈과 무력을 갖추고 우리더러 오키나와의 정치에도 관여를 하라는 그런 말인 것 같다.”

“흠. 그럼 이거 상단주가 줄을 선 왕자파에 서라는 것인가?”

“그렇겠지. 정확하게는 아직 어린 상진(尙眞)왕자의 후견인인 아지(按司 토호, 족장등의 명칭) 기토마루 측에 서라는 것이겠지.”

“그렇담. 내가 미리 교섭을 하고 안면을 트고 다니도록 하마. 그런데, 저 무식해 보이는 포로 놈들에게 언제 말을 가르치고 글을 가르칠까. 어휴...”

김수와 배일욱은 할 일이 많다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들의 눈은 반대로 빛이 나고 있었다.

그냥 콩 농사만 지으며 작은 섬에서 한가하게 살던 둘에게 큰일이 맡겨(?)졌으니 일할 맛이 나는 게 당연했다.

**

오키나와를 지나 사츠마 번에 도착을 했으나 히로타, 아니 이제는 고 히로타가 된 사내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데리고 다녔던 종을 집으로 보내어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라고 가족들을 배로 불러오도록 했다.

황망해 하는 가족이 오자 고 히로타는 한복을 입고, 조선식 상투를 틀고 나왔는데, 그 낯선 모습을 보고 가족들은 놀라워 했다.

놀란 가족을 앉힌 히로타는 사츠마 번 상인역의 자리를 장남에게 물려주며, 번주에게는 히로타가 남중국 상행 중 죽은 것으로 보고를 올리도록 했다.

“내 나이 36살에 진정한 주군을 찾았다. 해서 나는 이제 조선인 고 히로타가 되었기에 예전의 나는 죽은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놀란 가족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본래라면 가족 전체가 조선으로 가서 조선인으로 사는 것이 맞겠으나, 사츠마 번과 우리 집안과의 인연 또한 50년이 넘는 인연이니 쉽게 잊을 수가 없다.”

고 히로타는 말을 하면서도 선대부터 이어진 50년이란 긴 세월이 느껴져 울컥했다.

“해서 장남인 무라이에게 가독을 상속하여 사츠마의 상인역을 계속 수행했으면 한다. 막내인 이케이는 내가 데리고 가겠다.”

장남 무라이는 처음 종복이 와서 아버지가 남중국에서 죽었다고 했을 때 황망한 감정에 머리가 어질어질했었다.

하지만, 배에 와서 아버지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곤 한숨 돌릴 수 있었는데, 자신은 죽은 것으로 치고, 가독을 이으라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동생을 아버지가 데리고 가겠다는 말을 듣고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동생과 가산을 나누기보다는 오롯이 혼자 가지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아비를 보려면 이키섬(壱岐島 일기도)으로 와야 할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 같은 명을 들은 무라이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렀고, 사츠마 번과 인연을 끊은 히로타는 이키섬 상관을 본부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사츠마 번을 떠나 이키섬에 도착하자 도주인 마츠우라 켄타로가 우릴 반겼다.

“소 사다쿠니가 가지고 있는 후추가 똥값이 되어서 소가는 아주 매일을 똥 씹은 표정으로 산다고 하더군. 크하하하. 나와 자네 상단이 대마도로 들어가는 물건을 조절한 덕분이야. 아주 기분 좋아!”

마츠우라 켄타로는 요즘 좋은 일만 있다며 즐겁게 이야기를 했고, 자신이 대마도를 도모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며 기대를했다.

“그래서 말인데, 조선으로 가면서 대마도에는 들리지 않았으면 하네. 아마, 자네가 대마도에 들어가게 되면 사다쿠니 그 녀석이 칼을 들고 후추를 사라고 협박할 것이야.”

“에이 설마 대마도의 도주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정말이래두. 대마도로 가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음이야.”

마츠우라 켄타로는 우리 상단이 대마도에 들어가 대마도의 숨통을 틀게 해줄까 봐 걱정을 했고, 어떻게든 대마도에 도움을 주지 않길 원했다.

“하하하. 그럼, 도주님의 조언대로 대마도에 들리지 않고 바로 조선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요.”

원종도 마츠우라 도주의 말을 웃으며 따르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 이키섬 상관에 쭉 있었던 요원에게 들은 정보가 있었기에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제까지 대마도는 후추와 물소의 뿔, 단목, 명반 같은 물건을 왜의 상인들에게서 구매하여 부산포 왜관에 팔아 이득을 챙기는 중계무역을 업으로 삼았다.

그래서, 대마도의 도주 소 사다쿠니는 무리해서라도 상인들에게 후추를 대량으로 구매했었던 것이었다.

조선에는 늘 후추가 귀했으니 들고 있기만 하면 왜관을 통해 다 팔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런 대마도의 중계무역 이익은 구한말까지도 이어지는 것이 본래의 역사였다.

하지만, 말라카까지 가서 후추와 물소 뿔 등을 대량으로 가져온 나로 인해 상황이 변해 버렸다.

이제는 조선의 후추 가격이 왜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더 싸게 되었으니, 본래라면 대마도 도주에게 큰 이득을 안겨줬어야 하는 후추가 반대로 소 사다쿠니의 목을 조르게 된 것이었다.

상황이 급하다면 손해를 안고 후추를 처분하면 되었지만, 이제까지의 중계무역에서 이득만 보았었기에 소 사다쿠니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대마도에 드나드는 상인들을 이키섬의 마츠우라 켄타로가 선별하고 있었기에 소 사다쿠니는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해 난감해 하고 있었다.

“그 외의 정보는? 소 사다쿠니가 그냥 앉아서 말라 죽을 것 같지는 않은데.”

대마도와 일기도를 오가는 상관 요원들에게 직접 보고를 받았는데, 오키나와로 갔던 몇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았다.

“아직 뚜렷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하지만, 후추 거래가 이루어지는 왜관의 개시 자체가 우리 상단으로 인해 힘을 잃어가고 있다 보니, 소 사다쿠니는 이번 일을 쉽게 넘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관 개시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네. 예전에는 왜에서 후추와 다른 향신료를 조선에서 비싸게 구매했었으나, 이제는 조선 상인들이 사는 것은 거의 없고, 조선의 인삼이나 물산을 팔기만 하니 왜의 상인들도 이런 변화에 돈을 쓰기를 꺼리고 있습니다.”

“오호. 염호진 선단 행수가 가져온 물건들 때문이로군.”

“맞사옵니다. 본래 왜를 통해 구했던 다른 물건들이 이번 항해를 통해 대량으로 조선에 풀리다 보니 더 비싼 왜의 상인들에게 물건을 살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하하하. 재미있군. 여기에 우리가 가져가는 물산까지 있으니 가격은 더 내려갈 것이고 왜관 개시가 더 위축되겠군.”

“네. 그래서 김재원 행수께서 벽란도의 이한위 행수와 부산포의 희재 행수를 불러들여 전체적인 물건값의 조절을 명하셨습니다.”

“오~ 좋구나.”

한양으로 불러들인 재원 형이 갑작스러운 물가 폭락을 막고자 공급 가격 조절에 나선 것 같았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잘 굴러가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저희가 대마도에서 영입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입을 했다고? 상관에 사람을 들였다는 말이냐?”

“네. 아비루(阿比留) 성씨를 쓰는 촌음 이란 자이온데. 전략적인 이유로 영입을 하였습니다.”

“전략적인 이유?”

“네. 본래 대마도의 도주가 소씨 이전에는 아비루씨(阿比留氏)가 도주였다고 합니다. 아비루 촌음은 그런 아비루 씨의 적장자 중 한 명입니다.”

“아비루씨의 적자라...”

본래 대마도는 가마쿠라 막부 이전에는 아비루 씨가 도주로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아비루씨에서 소씨로 대마도의 도주가 바뀐 이유가 황당했는데, 바로 고려와 교역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246년 당시 도주였던 아비루 치카모토(阿比留親元)가 당시 국교가 없었던 고려와 교역을 했는데, 다자이후(太宰府 태재부 지방 행정관청)가 허락을 받지 않은 교역을 했다는 이유로 교역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고려와의 교역으로 이득을 본 아비루 치카모토는 고려와 계속 교역을 했었고, 결국 다자이후의 명을 받은 재청관인 소 시게히사(宗重尚)가 대마도로 세력을 끌고 와 아비루 치카모토를 잡아 죽였다.

이후 다자이후의 다른 명이 있을 동안 소 시게히사가 대마도를 다스렸는데, 그 이후로 소씨가 도주로 쭉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당시 소 시게히사가 아비루씨족을 많이 죽였지만, 오랫동안 대마도에서 살아왔던 아비루씨는 지금도 많았고, 가장 적통에 가까운 아비루 촌음을 상관 요원들이 영입했다는 것이었다.

“저희도 대마도에 있으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데, 고려와 교역을 했다는 이유로 죽었다면, 저희가 챙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렇지. 도움을 주어야지.”

한반도와의 교역으로 인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지금은 이키섬의 마츠우라와 함께 대마도를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트리고 있지만, 마츠우라가 대마도를 먹는 것을 방관할 생각은 없었다.

호전적인 마츠우라가 대마도를 먹게 되면 조선 근해 교역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훗날 마츠우라와 대마도를 두고 다투게 될 때 상관 요원들이 영입한 아비루 촌음이란 자를 중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수를 만들어 낸 상관 요원들을 칭찬해 주었고, 아비루 촌음을 부산포로 불러 한번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

마츠우라 켄타로와 나누었던 이야기처럼 대마도를 거치지 않고 부산에 도착했는데, 희재가 도포와 갓을 쓰고 마중을 했다.

“북방 회령으로의 훈련 항해는 잘 다녀오신겁니까요?”

뜬금없는 희재의 인사에 뭔가 싶었으나 뒤이어 나오는 이들을 보고는 연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평생 부산이나 상관에서 볼일이 없을 것 같았던 양반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국의 햇빛에 얼굴이 검게 탄 상태에서 북방에 다녀왔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웃겼지만, 장단을 맞춰줘야 했다.

“그래 선원 훈련소의 원행 훈련은 잘하고 왔네. 헌데, 여러분들께서는 부산포에 어인 일로 오신 것입니까?”

“하하하. 우리도 배를 띄어 보고자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다네. 해서 희재 행수의 배를 타고 근해 교역에 대해 배우고 있네.”

“교역을 배우고 있다고요?”

양반들의 입에서 교역을 배우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어이가 없었다.

양반이 교역을 배우고 있다고 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희재를 보니 할 말이 아주 많아 보였다.

뭔가 내가 오키나와를 다녀오는 동안 조선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말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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