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2. 기본을 다지다. >
“오늘 불을 지를 거라고? 보부상 놈들이?”
원종은 금산의 보고를 듣고는 기가 찼다.
고의 방화로 우리를 물러나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네. 우리 측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모의를 했습니다.”
“허허 이놈들이 막 나가는구만. 그럼 힘으로 조질 것이냐?”
“네. 미리 매복을 했다가 칠까 합니다.”
“그래 금산이 네게 맡기마.”
원종은 불을 지르겠다는 보부상 놈들에 대한 것을 금산에게 일임하면서도 혹시 몰라 점원들과 육조거리 상단 건물에서 밤을 지새며 방화를 대비했다.
금산은 나루터의 지점과 맞닿은 옆 건물에 사정을 설명하고 매복을 했는데, 자(子)시가 넘어 축(丑 새벽 1~3시)시가 되자 두런두런 소리가 들리며 몇 명이 다가왔다.
“아니, 다들 모이라고 했는데, 다섯 명밖에 안 온 것이 말이 되는 거야? 의리 없는 놈들.”
“다들, 배가 부른 거지. 자기들 구역은 아직 한양으로 직접 구매하러 오는 이들이 없으니,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인 줄 모르는 거라고.”
“맞아. 나중에 한양으로 직접 구매하러 간다고 사람들이 나서면 그때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난리 칠걸.”
“에휴. 하여튼 이런 일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줘야 뭐든 돌아간다니깐. 나중에 오늘 오지 않은 놈들에게 수고비를 받든지 해야겠어. 기름 가져온 거 있지? 골고루 뿌려.”
보부상 놈들이 기름을 뿌리고 부싯돌로 탁탁거리며 불을 붙이려고 쭈그려 앉을 때였다.
“눼~이놈들!”
증거를 잡기 위해 매복하던 금산이가 큰소릴 지르며 달려들어 쭈그리고 있던 놈들을 발로 냅다 차버렸다.
그러고는 이제 막 불이 붙어 타오르려고 하는 불길을 끄기 시작했다.
득달같이 달려든 금산이와 점원들은 놈들을 두들겨 패며 불을 껐고 나루터 근방에 살던 이들이 소음에 놀라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른 놈들은 다 어디에 있느냐? 육조거리의 상단 건물에 불을 지르러 간 것이냐? 입을 열어라!”
금산이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며 추궁을 하자,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은 채로 자기들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혹시나 몰라 사람을 육조거리와 가패로 보내었는데, 급하게 다녀온 이가 다른 곳은 괜찮다고 알려왔다.
급하게 뛰어갔다 온 점원의 말에 금산도 한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흥. 의리 따지는 놈들치고는 진짜 의리 있는 놈들은 몇 없다더니 딱 그 짝이구나. 장터에서 힘없는 이들이 난장 핀 것은 다 때려 부수는 의리가 있지만, 이런 데는 의리가 없구나.”
“금 행수님 이놈들은 의금부에 넘길까요?”
새벽에 터진 일에 순찰을 돌던 병졸들이 왔지만, 춘봉 상단 사람들인 것을 알아보고는 눈치만 보고 있었다.
“먼저, 이놈들 처자식이 있는지 살피고, 없으면 염전 노동자로 보내겠다. 처자식이 있다면 방화 혐의로 의금부에 넘겨라. 그러면 장형을 맞고, 북방으로 일가가 내몰리겠지.”
이 말에 놈들은 일가가 재산을 빼앗기고 북방으로 쫓겨나는 것이 두려워 다들 혈혈단신이라고 염전으로 가겠다고 외쳐대기 시작했다.
“염전이 커지면서 일꾼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이놈들을 염전으로 보내거라. 거기서 10년 노동 교화를 하면 사람이 되겠지.”
방화사건은 이렇게 싱겁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이 일로 인한 영향이 사람들의 입으로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양을 비롯한 경기, 평양의 보부상들은 방화를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모였다.
“아니, 아무리 손해를 보고 있었다고 하지만, 불을 지르다니요! 방화를 저지르는 무뢰배들이 모인 곳이 보부상들이라고 수군거리고 있잖습니까! 가뜩이나 소금값이나 다른 값을 많이 받는다고 욕을 먹고 있는데, 도대체 누구의 생각이었습니까?”
“그리고 불을 질러 끝장을 내려고 했으면 제대로라도 하지, 그걸 잡혀서는 이리 일을 크게 만듭니까? 한양의 계주는 어디 있소이까?”
“이번에 그 일을 주도한 것이 계주요.”
“허허. 이거 참. 그리고 듣기로 춘봉 상단에서 소금을 주지 않기로 했다는 말은 뭐요?”
평양과 경기의 보부상들은 춘봉 상단과의 일을 몰랐기에 그날 압구정에서 이야기를 들었던 다른 보부상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협력 보부상으로 등록해서 도매상처럼 일을 하거나 배송 전문 점원이 되라니. 허허. 이거 참.”
“아니, 이런 이야길 들었으면 우리 경기나 평양의 보부상들과 논의라도 해야 하지 않았소. 춘봉 상단과 협의해서 구역을 정하거나 하는 협상이 가능했는데, 이리 불을 질러 버리면 그런 협상이 불가능하지 않소.”
“이제 협상하려고 해도 이미 불을 질러 버렸으니 우리가 지고 들어가야 하오. 쯧쯧쯧.”
보부상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달 말이 넘어가면 보부상으로서 일해 먹기도 힘들 것 같다는 의견이 나왔다.
“우리는 이미 춘봉 상단의 소금이나 물건이 없으면 제대로 된 보부상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우리는 협력 보부상으로 등록하겠소이다.”
“난 본래 밑천이 적다 보니 그냥 배송 전문 점원이 되는 게 나을 거 같소.”
춘봉 상단과 거래가 많은 보부상들은 협력 보부상으로 등록한다고 빠졌고, 어떤 이는 아예 보부상을 접고 점원으로 들어간다고 하자, 그토록 끈끈하고 의리로 일을 한다는 보부상 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가 나서 이런 이들을 규합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막상 자신의 손해를 보면서 사람들을 규합하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잡혀간 이들의 구역을 두고 누가 가져갈 것인지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이 벌어졌다.
***
“강성으로 분류되던 다섯 명이 잡혀가자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구역을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우고 있습니다.”
“오, 그렇다면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알아서 보부상들의 계가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
“네. 강성들이 잡고 있을 때는 서로의 구역이나 물품에 대한 것을 정해주고 바꾸지 못하게 했는데, 이제는 서로 알면서도 다른 물품을 들고 가 거래하는 것을 모르는 척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계가 없어지고 보부상들 간의 경쟁이 이루어지겠구나.”
원종도 보부상들을 다 없애버릴 생각이 아니었다.
분명 보부상들이 조선의 상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깐.
다만, 다 같이 살기 위해 초창기 만들었던 구역독점이나 물품 독점을 허물어 보부상들 간에 경쟁을 하게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물론, 그런 경쟁을 하다 자연스레 담합을 하고 가격을 정하고 하겠지만, 지금의 보부상 계보다는 나을 터였다.
그리고, 그런 경쟁에서 밀려나는 보부상들은 받아들여 전국을 잊는 유통망을 만들어야 했다.
“승선 총통이 다 만들어졌고, 호위대가 연습까지 다 마쳤다고 합니다요.”
“그래? 그럼, 목포로 내려가지.”
***
원종이 한양에서 생활하는 동안 회령에서 내려온 군관 박치산은 선원학교에 있었는데, 자신이 데려온 갑사들과 함께 삼식이가 데려온 장사들을 교육시키고 있었다.
사실 박치산은 처음 원종에게 훈련 방향에 대한 것을 듣고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먼저, 기존의 환도 길이를 30cm 이상 늘려서 만들고 긴 칼에 맞는 훈련을 시키라는 말이었다.
고려 시대 원나라의 영향과 활의 중요도가 부각 되면서 조선의 환도는 점차 짧아져 보병용 환도는 1.73척(약 53cm)이었고, 기병용 환도는 이보다 더 짧은 1.6척(약 49cm) 이었는데, 원종은 최소 3척(약 90cm) 이상의 환도를 쓰라고 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의 짧은 환도는 문종 1년 군기감에서 만드는 환도의 체제가 길어 장단이 같지 않다고 하여 그 길이를 더 줄인 것이었다.
이는 조선 초기 전술의 대부분이 궁술과 기병에 의한 것이다 보니 활의 중요도가 커지고 주력 무기인 창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나 보조 무기인 환도가 길 필요가 없었기에 짧아진 것이었다.
하지만, 원종은 오히려 그 환도의 길이를 더 길게 하라고 하니 쉽게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허나, 선원학교에서 승선 총통이라는 개인 화포를 경험해 보자 원종의 명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활은 여전히 중요하겠지만, 이 승선 총통이라는 것이 널리 퍼지게 되면 장비 휴대의 문제로 인해 병사들이 창을 들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총통을 쏜 이후 몸에 걸어둔 검으로 싸워야 하니, 지금의 환도 길이를 늘이는 것이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바로 환도 대신 철회편(鐵回鞭 편곤)을 무기로 쓰겠다고 우기는 이들 때문이었다.
“아니, 군관님. 쇤네가 날 때부터 창검을 사용할 줄 모르는데, 이 환도를 들었다고 강해지겠습니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쓴 가장 손에 익은 이 쇠도리깨를 무기로 쓰겠습니다요. 어느 세월에 제가 환도를 배우겠습니까요?”
“저도 농사를 짓던 놈이라 이 도리깨가 편합니다요. 허락해 주십시오.”
삼식이가 힘이 좋고 담이 큰 애들을 모았는데,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며 큰 사람들이다 보니 환도를 쓰기보다는 어릴 때부터 휘두른 철회편이 더 손에 맞았고, 환도 대신 이것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박치산은 이런 이들에게 강제로 환도를 쓰게 만들까 하다, 배에서는 이 편곤이 또 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긴 장대와 짧은 장대가 쇠사슬로 이어져 있어 휘두를 때 원심력이 커지는데, 그때의 위력을 환도가 따라갈 수가 없었다.
특히나, 배 위에서 배 아래를 보고 휘두를 때는 그 장점이 극대화되었기에 이 쇠도리깨를 쓰지 않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해서, 박치산은 쇠도리깨 편곤을 아예 기본 장비로 해서 모두에게 장비하고 배우게 했다.
그런 호위대의 모습을 본 원종은 박치산의 유연한 사고에 감탄을 했다.
실제, 이 쇠도리깨인 철회편(鐵回鞭)은 임진왜란 시대에 조선의 농민들이 애용한 무기였다.
창칼을 잡아본 적 없는 고양 땅의 농민이 자신의 아버지가 왜적에게 죽자 쇠도리깨로 왜적을 400명이나 때려죽였다고 조정에 알려질 정도로 농사일을 하던 이들에게 어울리는 무기였다.
조정에서도 조선의 환도가 짧아 긴 도를 든 왜인들과 싸울 때는 도리깨가 알맞은 무기라고 유성룡이 이야기할 정도였으니, 칼을 든 왜인들과 싸울 때 효용성이 있는 무기였다.
승선 총통과 활, 쇠도리깨, 환도까지 들고 있는 호위대를 보니 원종은 든든했다.
“따로 왜국에서 생활할 사람들은 정해 두었습니까?”
“네. 단주님께서 대마도와 일기도(壱岐島 이키섬)에 살며 정보를 모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기에 왜어에 능숙한 이들로 11명을 준비했습니다. 선원학교에서 교육받기도 했지만, 부산포나 울산에서 자연스레 배운 왜어이기에 쉽게 왜구들과 동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종은 부산에서 4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대마도는 무조건 조선인이 점령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마도에서 정보를 모으고 공작을 펼칠 이가 필요했고, 대마도 다음에 있는 일기도 섬에도 정보를 모을 사람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복강(福岡 후쿠오카)에 상관을 열어 구주(九州 규슈)의 일부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이번 첫 왜국 교역은 이득보다는 정보 수집과 토착 왜인들의 성향 파악이 우선이었다.
“우선은 부산포로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