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29화 (229/327)

< 229. 야망의 한양. >

“어인 일로 두 분이 함께 오신 겁니까?”

원종은 뜻밖의 인물 두 명이 같이 집을 방문하자 의아했다.

내수사 전수 이치현과 송상의 총대방 김만춘이 함께 온 것이었다.

“내수사의 배를 띄우는데 송상이 도와주기로 했다네.”

송상은 나라 몰래 요동의 발해방과 거래하던 것이 있다 보니 선원 수급이 가능했던 것 같았다.

본래 내수사라면 왕과 종친들의 재산을 관리해주는 일을 하는 곳이라 관직을 가진 조직인데, 선원의 수급을 마음대로 못한다는 게 웃겼다.

아마도 국왕이 나서서 교역을 한다는 상소가 올라올 수도 있으니 내수사만의 독자적인 일로 선을 그어두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호피와 표피(표범가죽)를 비롯해서 여진에게 구한 가죽 제품을 가져갈 것이네. 그리고 여러 가마에서 구매한 도자기를 들고 갈 것인데. 이것이네.”

이치현은 옥색 계열의 분청사기(粉靑沙器)를 꺼내었다.

“듣기로는 도자기가 가장 많이 남는다고 하여 구해 온 것인데 어떤가? 그들이 좋아하겠나?”

“색이 밝은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원종은 구해온 분청사기의 색이 좋다고 이야길 하며 자기에 대한 칭찬을 해줬다.

그러면서 말라카에 오는 아랍 상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청화백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귀하게 여기는 옥색의 분청사기는 이미 송나라 때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졌었고, 그렇게 수요가 없었다.

특히나 이런 병 모양의 자기는 사용처가 관상용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인기가 없는 축에 들었다.

물론 훗날 희망봉을 돌아서 오는 유럽인들은 이 분청사기도 비싸게 구매를 해갔었다.

이치현과 송상 총대방 김만춘은 자신들이 배에 가져간다는 상품을 알려주며 다른 이들에게는 같은 항목을 싣고 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조선에서 수출할 수 있는 제품이 몇 없다 보니 중복이 될 수밖에 없다고 달래어 보내었다.

그리고, 송상의 배에는 그의 아들인 김검수가 선장으로 참여를 하기로 했는데, 이미 요동 반도로 가는 교역에서 그 인간 됨을 알았기에 선단을 맡은 염호진이 걱정될 정도였다.

그리고 이치현과 김만춘이 돌아간 이후 만상의 대방 홍득주도 찾아왔다.

홍득주는 갓을 쓰지 않은 상투 머리 그대로였는데, 입고 있는 옷도 만상의 대방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수했다.

“일전에 상단주님이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해서 이것을 좀 가져왔습니다.”

홍득주가 가져온 것은 새끼손톱보다 작은 씨앗들이었는데, 낯이 익었다.

“인삼 씨군요?”

“네. 문경에서 인삼 밭을 만들고 있다는 말에 도움이 될까 들고 왔습니다.”

“충분히 도움이 될 겁니다. 이 귀한 인삼 씨앗을 들고 온 것을 보면 뭐가 말할 것이 있는가 본데 이야기해 보시오. 설마, 만상도 교역에 끼고 싶어 그러는 것이오?”

“송구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저희 만상은 중강개시와 책문후시에서 여진족과 곡식, 가죽을 교역하며 얻는 이익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익은 북경으로 가는 사신단에 끼어 인삼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헌데, 이젠 사신단이 배로 움직인다고 하니 만상은 그 명맥이나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원종도 지리적 이점을 살려 번영한 만상이 뱃길이 열리게 되면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종은 송상이 배를 타고 교역할 때 삼식이에게 만상을 도우라고 했었다.

송상이 너무 커지면 안 되니 견제를 할 수 있게 만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 출발한다는 교역에 참여를 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럼, 배는 우리가 예전에 빌려주었던 그 ‘한선’ 배로 갈 것이오?”

“네. 한선이 대양에서는 위험하다고 하지만, 누전선을 구할 수가 없다 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원종은 내륙연안의 바다와 대양 바닷길을 같게 여기는 홍득주에게 침저선과 평저선의 차이를 설명해 주며 작은 한선으로는 아주 위험하다고 이야길 해주었다.

송상을 견제시킬 수 있는 카드가 만상이었기에 노하우를 좀 풀어 줄 수밖에 없었다.

“선단을 이끄는 염호진 참군은 안전을 위해 산동반도를 지나 중국 내륙으로 해서 남쪽으로 내려갈 것인데, 그때 남경 인근에 가면 정크선을 살 수 있을 것이오. 누전선의 2배 크기에 달하고 대양에서 운행할 수 있는 배이니 거기에서 큰 정크선으로 바꾸는 걸 추천하오.”

“네? 그렇게 배를 구하기가 쉬운 것입니까?”

원종은 홍득주에게 중국의 해금령으로 인해 버려지다시피 한 큰 배들이 아직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큰 배에 실어 올 것이 설탕이나 후추일 것인데, 그걸 한양이나 조선에 풀지 말고 요동 반도와 여진족에게 풀면 돈이 될 것이라 알려주었다.

물론 내려갈 때도 도자기보다는 비단, 포와 베 같은 면직물을 준비하라고 귀띔 해주었다.

“그리고 의주를 기반으로 하는 만상이지만, 내 형님이 있는 동항으로 만상의 터전을 옮기는 걸 추천하오. 말 100마리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을 배 한 척에 쌓을 수 있소. 이제 바닷길의 시대가 열릴 것이오.”

“그렇지 않아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배를 댈 수 있으며 여진족과의 거래에도 용이한 동항을 중심으로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만상 대방 홍득주는 50대의 중 늙은이였지만, 변화되는 환경을 잘 받아들이고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자였다.

송상보다 늦었지만, 만상이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원종이 집에 있는 기간 동안 내수사와 송상, 만상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한양에서 상업으로 돈을 좀 만진다는 이들이 계속 드나들었는데, 이들이 팔고 싶어 하는 물건을 받아서 팔아주기로 계약을 했고, 반대로 무엇을 구해 달라는 주문계약도 받았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진상도 끼어들었다.

“말라카에 가면 거기의 여자를 좀 구해오게나.”

거래를 위해 방문한 자가 이렇게 이야길 했다면 당장 꺼지라고 욕을 쏟아부을 수 있었지만, 이 말을 당당하게 꺼낸 이가 처삼촌인 ‘신정’이었다.

신숙주의 넷째 아들로 호부견자(虎父犬子)로 유명했는데,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는 것을 즐겁게 받아들일 생각보다는 그곳의 계집은 어떤 맛인지를 더 궁금해하는 작자였다.

“말이 안 통하는데 되겠습니까?”

“계집을 이야기하기 위해 데리고 오나? 말보다 몸으로 하는 대화가 더 빠른 법이야. 그러니 그 말라카의 계집 중에 미색이 뛰어난 것들 두서넛을 사 오게.”

한숨이 나왔지만, 이미 중국과 동남아에서 여러 사람을 데리고 왔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부를 할 수가 없었다.

“네.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럼 내가 하나 이야길 해주지.”

신정이 해주는 이야기였기에 시시콜콜한 이야기겠지 했지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자네 처 외조부의 권세가 얼마 안 남았네.”

“네?”

“대비께서 왕후의 몸이 약한 것을 알고, 후궁을 들이라고 하시네. 그리고 만약 후궁에게서 손을 보게 된다면 자네 처 외조부의 권세도 끝이네.”

신정은 자기 나름대로 궐에 떠도는 소문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었는데, 아직은 소문일 뿐이었다.

우선 성종이 아직도 어렸고, 왕후인 공혜왕후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궐에서 떠돌고 있다는 것은 왕보다 더 강한 한명회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흠흠. 소생은 이 이야기를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하하하. 그 속의 이야길 보게. 자네가 내 명으로 데리고 오는 말라카의 계집을 전하께 바치겠다는 거네.”

“아아, 그렇군요.”

신정이 단순히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말라카에서 여자를 데리고 오라는 게 아니었다.

색다른 여자를 헌상해 운이 좋으면 그 헌상한 여자에게서 손이 나올 수도 있었다.

더구나 왕후가 아이를 못 낳는 상황이라면 지금 한명회처럼 막후의 실력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조선 출신의 후궁을 뽑을 때는 심혈을 기울이지만, 이런 외국에서 들어오는 공녀 형태의 여자라면 그런 간택을 볼 필요 없이도 자기의 심복과 같은 여자를 꽂아 넣을 수 있었다.

호부견자로만 보이던 신정이 달리 보였다.

욕심이 있는 야심가였다.

“그러니 제대로 된 계집들을 선별해서 데리고 오라고 하게.”

이런 신정처럼 개인의 욕심과 영달을 위해 원종에게 뭔가를 구해오라는 이들과 뭔가를 팔아 달라는 이들이 몰렸는데, 어떻게 보면 무역회사와 같았다.

유럽에서도 좀 더 훗날에 생기게 되는 수출입무역의 형태가 싹을 틔운 것이었다.

덕분에 태극 선단의 화물 입, 출납을 담당하는 청남이가 아랫사람을 둘 정도로 바빠졌고, 누전선이 도착해 짐을 싣기 시작하자 나루터에 사람들도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나 종이를 만들며 성도암 절에서 했던 말로 중국을 통해 천축으로 가려는 승려들까지 모이자 한양 바닥이 시끌벅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구매했던 정크선이 한강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배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

한강 나루에서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15척의 배가 출발하게 되었는데, 기존의 누전석 4척과 이번에 개삭하여 새로 받은 7척, 정크선 1척 해서 우리 배만 12척이었다.

그리고 내수사의 배 1척, 송상과 만상의 배가 각각 1척 해서 총 15척의 대 선단이었다.

물론, 15척의 배에 실을 화물의 절반 정도는 벽란도에 있었기에 출항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한강 나루에서 환송식을 하려는 것이었다.

중국의 조선 기술자와 수영의 기술자가 정크선을 바탕으로 만들고 있는 더 큰 대운선(大運船)이 있었다면 더 화제가 되었겠지만, 아직도 건조 중이었다.

그리고 원종은 모이는 사람들을 이용해서 보부상들에게 소문을 내게 시켰다.

“그러니깐, 저기 한강 나루에 정박한 배에 선원이 되면 1년에 백미 20섬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야? 그거 사람들 속이려고 퍼트리는 거짓말 아냐?”

“아니래도. 진짜 웬만한 당하관보다 더 많이 녹봉을 받는다고 하더라니깐.”

“에이 그러면 다들 선원이 되려고 하지, 누가 과거 공부를 하겠냐.”

“그게, 선원이 되려면 수군에서 3년의 역(役)을 지내야 한다고 하더라고.”

“수군으로 3년의 역을 진다고? 흠. 수군으로 3년이라... 이거 엄청 고민할 수밖에 없겠군.”

“고민할 게 뭐 있나. 난 이미 우리 아들을 수군으로 역을 살라고 지원하라고 했네. 수군으로 하지 않더라도 다른 역을 살아 북방으로 끌려가든 성을 쌓는 데 끌려갈 것인데, 그냥 수군으로 3년 보내고 선원이 되라고 했네.”

“그래? 아들이 좋다 하던가?”

“다행히 아들이 춘봉 가패에서 파는 가수저라를 너무 좋아해서, 선원이 되면 가수저라를 자주 먹을 수 있다는 소리에 두말 않고, 바로 간다고 하더군.”

“하하하. 하긴, 말라키인가 말라카인가 거기에 가면 설탕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고 하긴 하더구만.”

“이왕 져야 하는 군역(軍役)이니 수군으로 역을 살고 돈도 잘 벌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둘째 아들도 보내야 할까 고민할 정도라니까.”

“엇, 그러고 보니 나쁠 게 없는 것 같으이. 나도 우리 아들놈을 잘 꼬셔서 지원해 보라고 해야겠군. 헌데 어디서 지원을 하는 건가?”

“춘봉 상단에 가 보면 그 옆에 수군역 지원 상담을 하는 수군이 앉아 있더구만. 거기에 지원을 하면 된다더군. 그리고, 무턱대고 아들에게 지원하라고 하지 말고, 나루터에서 저 배들을 보여주고, 화물 실리고 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게나. 그러면 백발백중 좋다고 할거네.”

“오오! 그렇지. 그래야겠어. 나흘 뒤에 배가 출발한다고 하던데 그때 직접 보여줘야겠어.”

< 229. 야망의 한양.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