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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203화 (203/327)

< 203. 무역 거점. (1) >

“그러니깐 이슬람 상인들이 타고 다니는 ‘다우선’을 사자고?”

원종은 참군 염호진이 뜬금없이 배를 사자고 하는 말에 이유를 물었다.

“네. 출항 준비를 하며 천축과 아랍 상인들의 배를 보았사온데, 조선과 중국의 배와는 다른 삼각형의 돛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런 배를 다우선이라고 부르더군요.”

“사각형의 돛과 삼각형의 돛이 차이점이 있는 것인가?”

“네. 제가 살펴보니 돛대에 세로로 걸어지듯이 세우는 사각형의 돛에 비해 삼각형의 돛은 그 펼쳐지는 방향을 좌우로 변경할 수 있어, 바람의 방향에 따라 급격하게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참군 염호진은 돛 모양에 따라 바람을 받는 위치가 달라지고, 그 위치에 따라 배의 움직임이 크게 바뀐다며 설명을 해주었다.

“해협처럼 좁은 구역에서 바람이 여러 방향으로 불 때는 이런 삼각돛을 가진 배들이 훨씬 더 빨리 선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우선이라는 배를 사서 삼각돛의 활용법을 배워 우리 배에도 삼각돛을 설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염호진의 이야길 듣고 보니, 유럽의 범선들이 사각돛과 삼각돛을 같이 사용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정화 태감의 정크선이나 조선의 배들은 사각 돛만 쓰고 삼각형의 돛 자체를 아시아에서는 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일전 해적들과의 싸움에서 겪었다시피 화포를 장착한 배는 배가 회전할 수 있는 선회력이 가장 중요했다.

좌우로 회전하여 양쪽에 설치된 화포를 번갈아 쏘려면 빠른 선회가 필수였고, 그런 선회력에 삼각돛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더해서 다우선을 구매해서 분석하다 보면 인도양을 건너다닌 아랍과 인도의 선박 기술도 어느 정도는 배울 수 있을 터였다.

“흠. 염 참군 말대로 다우선이 필요하겠구만. 두 대를 사 오도록 하지. 미리 선장과 선원들을 선별해 두게나.”

원종은 그길로 말라카의 재상 뚠빼락에게 가서 다우선 두 척을 구매했다.

물론 배를 빨리 구하는 조건으로 아랍에서 인삼처럼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유향(乳香)을 100근이나 사야 했다.

다우 선은 기원전부터 중동에서 만들어져 사용되던 배인데, 특징적으로 삼각형 돛인 라틴 세일(Lateen Sail)을 사용한다는 것과 못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우선은 티크 나무줄기로 만든 줄로 야자나무를 묶은 후 나무끼리 끼워 만든다는 특징이 있었다.

못을 쓰지 않고 줄로 묶어 끼워 만드는 배인 만큼 그 내구성은 좋지 못했지만, 오히려 이런 부분 때문에 암초에 걸렸을 때 배가 한 번에 부서지지 않았고,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 장점이 되었다.

바람이 중구난방으로 불어대는 암초 많은 좁은 해협에선 안성맞춤인 배였다.

이런 좁은 해협을 움직이기 위해 삼각돛을 좌우로 움직여 바람에 따라 조절하는 기술은 화포를 쓰는 범선 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

염호진은 이틀 만에 다우선을 구매해 오는 원종의 모습에 감동받았다.

아랫사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자, 그걸 받아들여 바로 움직여 주는 윗사람을 처음 겪어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알아주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주는 이가 과연 조선에 또 있을까 싶었다.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을 위해 장수들이 목숨을 건다는 고사를 처음 들었을 때는 진짜 그랬을까 싶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실행해 주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게 되자 염호진은 그런 장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뭐, 이게 대단한 거라고. 결국, 이 선단을 자네에게 맡길 것이니만큼 자네가 운영하고 싶은 데로 맞춰 주는 것일 뿐이야. 그리고 배를 맡아 움직이는 수군들도 우리가 큰 수익을 얻은 것을 보았어.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게 자네가 단속을 해야 할 거네.”

“이미 입단속을 해두었습니다. 이번에 얻은 수익이 있어야 가족들을 섬에서 꺼내 올 수 있다고 하니 다들 혀가 뽑히더라도 입을 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몇몇은 이제 글도 안다고 연판장도 써야 한다고 해서 다 같이 연판장도 만들었습니다.”

염호진은 선원들의 맹세가 담긴 연판장 종이를 보여주었는데, 기나긴 항해 동안 다들 한글을 배웠는지 제법 자기 이름을 쓸 줄 아는 것 같았다.

“다들 소고기를 먹고, 남는 것으로 육포까지 만들어서 먹게 해주시는 단주님의 은혜를 뼈에 새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귀한 후추까지 마음껏 먹게 해주셔서 다들 이런 호사가 계속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 이 호사를 계속 누리려면 비밀을 지켜야지.”

삼각돛을 쓰는 다우선을 움직이는데 선원들이 적응하는 며칠 동안 향초(바나나) 말린 것과 여러 열대 과일을 다우선에 실었다.

라임과 레몬 같은 시큼한 말린 과일들도 구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실었는데, 설탕과 같이 뜨거운 차로 낸다면 겨울철 최고의 차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말라카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배들이 출발하기 시작했는데, 재상 뚠빼락은 부두로 나와 일일이 상인들의 무사 귀환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서 나도 이슬람 상인과 인도 상인들에게 초대장 종이를 나눠 주었다.

선원들의 연판장을 보고 생각한 것인데, 조선으로 교역하러 오라는 초대장을 뿌리는 것이었다.

성종에게 받은 마패를 도장 삼아 먹물을 묻혀 종이에 찍어서 초대장을 만들었는데, 조선에 도착하는 상인들이 한자와 한글로 쓰인 초대장을 가지고 있다면 박대하지는 않을 터였다.

이런 초대장을 든 상인들이 조선에서 이득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중국에 들렀다가 조선으로 오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무역으로 인한 상업 경제도 발달하게 될 것이었다.

이런 초대장을 100여 장 찍어 뚠빼락과 취엉청에게 주어 다른 상인들을 조선으로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곤 우리도 말라카를 출발했다.

***

“또 바닷새가 왔다. 준비해!”

선원들은 소고기 육포를 갑판에 널어두곤 멀리 떨어져서 줄을 잡고 있었는데, 갈매기나 기러기 비슷한 새들이 갑판으로 날아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경계했다.

“지금!”

어느 정도 새가 모인 것 같자 줄을 당겨 그물로 새들을 잡았는데, 크고 작은 새 7마리였다.

“아니, 육포도 많은데 새는 왜 잡는 거야?”

“맨날 같은 거 먹을 수 있나. 새고기도 좀 먹어야지. 그리고 이 새들도 살을 발라 말리니깐 나름 괜찮은 육포가 되더라고.”

“맞아 후추 좀 뿌려서 말리니깐 소고기와는 다른 색다른 별미야.”

“깃털도 모아서 베개를 만들거나 옷을 만들면 되니깐 남는 장사라고. 그리고, 사실 할 일도 없잖아.”

“하긴. 할 일이 없지.”

배의 수리나 타르 칠은 말라카에서 정박하며 모든 것을 다 수리하고 보강을 했기에 항해하는 동안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선원들은 바닷새라도 잡아야 시간이 가는 것이었다.

“단주님이 바다를 보고 마음이 울적하고 우울해지려고 할 땐 고기를 먹으라고 하셨잖아. 그러니 별미 새고기가 짱이지. 꼬지로 구워 먹고, 말려서 육포도 해 먹고 하자고.”

“하긴, 우울할 땐 고기 앞이지.”

“엇! 근데 저기 봐! 연기가 피어오른다! 군데군데 보이는 거로 봐서는 자연적인 건 아닌 것 같은데. 일단 종을 쳐!!”

비상 종소리를 듣고 갑판으로 나오니 우리가 출발했던 베트남 붕따우 일대에 피어오르는 연기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

“허허. 이젠 여기가 참파 왕국이 아니라 크메르 왕국의 땅이오?”

말라카에서 두 달여를 보내고 오니 참파의 붕따우 땅이 크메르 왕국의 붕따우가 되어 있었다.

“내 그때 이야기하지 않았소. 전쟁이 날 것 같다고. 지금은 크메르 인들이 참파인들을 찾아 죽인다고 저렇게 불을 지르고 난리를 치는 것이오.”

“그럼, 상인들은 괜찮소?”

“우리야 뭐, 양쪽에 다 줄을 대고 있으니깐 괜찮소이다. 헌데 배가 10대가 되었구랴. 말라카에서 재미를 좀 보신 듯하오.”

전쟁이 났어도 여전히 붕따우에서 아무렇지 않게 장사하는 화교 상인은 교역에 성공한 우리를 이리저리 살피며 뭐가 돈이 되는지 파악하려 했다.

“다행히 도자기로 수익을 좀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곳의 호족인 시쭈꾸란 군장은 어찌 되었습니까?”

“시쭈꾸는 크메르에 참파가 패하자 판티엣으로 도망쳐 갔소이다. 아참! 그러고 보니 명나라로 간다면 판티엣을 거쳐서 가는구만. 그러면 잠시만 있으시오.”

우리에게 후추 가지를 챙겨갈 수 있게 해주었던 시쭈꾸의 쿨했던 행동이 마음에 들었기에 근황을 물었는데, 죽진 않은 것 같았다.

화교 상인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30여 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크메르에게 붕따우가 점령될 때 미처 대피하지 못한 참파 사람들이오. 이들 모두 시쭈꾸의 휘하 사람이니 판티엣을 지나가는 길이라면 좀 실어다 주시오. 육로로 가게 되면 크메르 인들에게 잡혀 죽을 것이오.”

“시쭈꾸에게 도움 받은 것이 있으니 실어다 드리겠소. 전쟁에서 대피한 사람들을 숨겨주다니 좋은 일을 하셨소이다.”

“하하하. 좋은 일은 뭐. 우리도 다 돈 받고 숨겨 준 것이오. 판티엣까지 우리에게 태워 달라고 돈도 받았는데, 그거 반을 드리겠소이다.”

화교상인은 이런 전쟁통에도 장사를 하는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판티엣으로 실어 주기로 하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더 나타났는데, 50여 명까지 늘어났다.

붕따우에 더 있으면 참파 피난민들이 더 몰릴 것 같아 바로 붕따우를 출발했다.

이틀이 지나 판티엣에 도착했으나, 여기도 이미 참파 왕국이 밀려 후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쭈꾸의 병사였던 자가 판티엣에서 시쭈꾸를 찾아왔는데, 우리를 후추나무 군락지로 안내해 주던 여유 있던 군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전쟁에 패한 힘없는 군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거지를 잃은 군장은 결국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이야길 들어보니 산간 마을인 달랏으로 간다고 하는데, 이들을 다 데리고 갈 수 있겠소?”

참파에서는 크메르군에게 계속 밀리자 바닷가가 아닌 산악 지방인 달랏에서 항전하기로 한 것 같았는데, 문제는 피난민들을 다 데리고 달랏으로 갈 수 있는가였다.

현대에서는 베트남 커피의 생산지로 유명한 달랏이었지만, 분지 지역으로 산에 둘러싸인 곳이라 험지 중의 험지였다.

그런 곳에 여자와 아이들이 섞인 피난민들이 갈 수 있을까 싶었다.

“모르겠소.”

시쭈꾸는 어린 아들과 딸을 안고 있었는데, 이들도 우리가 태워 온 것이었다.

붕따우에서 대피할 때 얼마나 급했던지 가족들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것이었다.

“거리가 좀 더 먼 냐짱으로 모두 실어 줄 수 있는데 가겠소?”

사실 냐짱으로 간다고 해도 근거지를 잃은 상태였기에 자신의 땅을 수복하기 전까지는 고생문이 훤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가족이나 병력이 채 100명이 안 되었기에 붕따우의 땅을 다시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럼, 전쟁이 없는 조선으로 가는 건 어떻게 생각하오? 내 고향은 이곳과는 달리 전쟁이 없는 곳이오.”

“전쟁이 없는 땅이 있다는 게 말이 되오?”

“백여 년 전에 전쟁이 있었고, 앞으로는 전쟁이 없을 땅이오. 그대가 조선에 간다면 내가 지원을 해줄 수 있소.”

“뭣 때문에 나를 돕겠다고 하는 것이오?”

“그대가 먼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었기에 그 호의를 다시 돌려주려는 거요. 조선 사람들은 그런 호의를 그냥 잊어버리지 않고 꼭 같은 호의로 돌려주오. 그것이 조선 사람에게 있다는 정(情)이오.”

사실 원종은 말은 호의를 베푼다고 정이라고 했지만, 그 속으로는 꿍꿍이가 있었다.

< 203. 무역 거점.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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