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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97화 (197/327)

< 197. 남만이라 불리는 곳. (1) >

현대에서도 뱃사람이라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고 결혼하기 힘든 데, 이것은 조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조선시대에는 아예 신량역천의 신분이라고 하여 천인으로 보았기에 같은 섬사람이 아니면 배필을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총각들 앞에 중국 여인들이 은인들의 나라 조선으로 가겠다고 하니 말도 통하지 않고, 나쁜 일을 당한 여인들이라도 장가갈 기회가 생겼다고 서로 중국 여인들을 안내하려고 했다.

여인들이 조선에 정착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제조님. 조타 키가 고장 난 두 척은 버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조란탄에 맞은 다섯 척은 조금만 손을 보면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끌고 가지 못하는 배의 화물과 쓸 수 있는 집기들은 다 떼어 옮기고, 배에 구멍을 뚫어 가라앉히게나.”

혹시라도 다른 해적 놈들이 키를 고쳐 쓸 수도 있기에 침몰시키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화물 담당 청남이의 주도 아래 해적선에 실려 있던 짐들이 옮겨졌고, 화물이 조사되었는데, 대월에서 왔다는 취엉청이란 녀석의 말이 맞는지 후추와 계피, 강황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모직물 염색에 쓰인다는 단목도 있었는데, 남만에서 왔다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향신료는 이것만 해도 꽤 많은 물량입니다. 경하드립니다!”

침몰한 배까지 해서 화물이나 인적 구성을 보면 해적놈들이 많이도 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해적 퇴치란 것이 많이 남는 장사였다.

화약과 대장군전을 소모하긴 했지만, 향신료 두 대분의 화물에 누전선 크기만 한 큰 배 두 척, 한선 크기만 한 15m 길이의 배 세 척이 생겼으니 엄청나게 남는 장사였다.

아직 왜구나 해적들이 화포로 무장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 아예 해적들만 골라서 잡으러 다니는 사업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적들을 잡으러 다니라고 사략 함대를 허락했던 유럽처럼 조선이 먼저 사략 함대를 운영해서 바닷길을 휩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예전 장보고가 그렇게 왜구들을 처리하여 바다의 제왕이 되었듯이 명의 해금령이 존재하는 동안 무역만 할 게 아니라 바다를 지배할 수 있는 함대를 만드는 것도 추진해볼 만했다.

불화살에 돛이 다 타버린 배들에 임시로 돛을 달아 육지로 움직였는데, 정크 선도 아닌 처음 보는 배였기에 수군들이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아무리 정크선에 격벽이 있어 물이 더 들어차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빠른 수리가 필요했는데, 근방에 수리가 가능한 곳이 없었다.

해적들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바닷가였음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 잘 없었고, 산두(汕头)라는 항구까지 사흘을 더 움직여야 했다.

이게 해적 때문인지 아니면 해금령의 일환인 바닷가 마을의 소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항구를 기록해둔 해도가 시급했다.

“이 근방에서는 여기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다 건너 하루거리에 큰 섬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는 야만인 남만족들이 산다고 합니다.”

명나라의 영토였기에 산두 현청에 신고하니 병사들이 나왔는데, 그들과 이야길 해보니 바다 건너 있다는 큰 섬은 대만섬인 것 같았다.

이제는 조금만 더 가면 홍콩이 나오고 하이난섬을 지나면 진짜 동남아시아인 남만이었다.

이 남만(南蠻)이라는 말은 중국 왕조가 남쪽의 오랑캐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었는데, 춘추전국시대에는 장강 이남에 살던 남쪽 민족을 모두 일컫는 말이었고, 삼국시대에는 제갈량이 개척한 원난성 일대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송대 남송이 되며 장강 이남이 개척되자 원나라 시절에는 모든 남송인들을 남만으로 보고 차별을 했고, 명나라가 되어서는 남만이라는 말이 동남아의 이민족 오랑캐를 이르는 말이 되었다.

이런 명나라의 개념을 조선과 왜도 받아들여 동남아의 문명화되지 못한 나라와 민족들을 남만이라 칭했다.

1500년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상인들도 동남아시아를 통해 올라왔기에 조선과 왜에서는 이런 백인들도 남만인이라고 칭하여 추후에는 남만무역이라고 하면 유럽 백인들을 칭하게 되는 사연이 긴 단어였다.

“살려주시오! 나는 정말 해적이 아니오!”

“우린 대월사람이오!”

“해적이 아니오! 믿어주시오!”

현청의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와중에 입안을 거적때기로 막아 조용히 시켰던 자들이 울며불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저 배에 있던 단목은 ‘탄호안’에서 구매한 것이고, 강황은 ‘후에’에서 구매한 것이오! 나는 정말 상인이란 말이오! 감합부는 해적들이 뺏어갔단 말이오. 믿어주시오! 살려주오!”

취어청은 목이 터져라 외쳤는데, 그가 외치는 교역품을 어디서 구했다는 말에 진짜 상인인가 하는 믿음이 갔다.

“그럼 그대의 고향은 어디요?”

“뿌맛 산 근처요. 나를 살려주면 가문에서 몸값을 지급할 거요. 나는 정말 해적이 아니오! 살려주시오!”

“대인! 정말입니다. 우리는 해적이 아닙니다.”

향신료를 구하는 것을 떠나 후추나무의 모종과 다른 나라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물소의 뿔도 가져가야 했기에 동남아 현지인이 필요하긴 했었다.

“헌데 당신은 대월 사람들이 아니라 중원 사람 같은 생김새인데, 진짜 대월 사람이 맞소?”

“네. 맞습니다요. 예전 중원이 송나라일 때 내려와 뿌맛 산맥 인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취엉청은 중국계 대월인 즉 화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풀어주고 고향으로 갈 수 있게 배도 한 척 주겠네.”

해적에게 빼앗은 배가 다섯 척이었기에 가지고 있어도 우리가 다 운행하지 못했기에 인심 좋게 배를 준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요!”

이번에 줄에서 풀어주니 취엉청은 며칠 전과는 다르게 굽신거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제야 예의를 차리는구만.”

“그게 그때는 배 위였고, 다 그놈이 그놈인 듯 하여...”

풀려난 취엉청과 그 일행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이야길 들었는데, 같이 잡혀있었던 이중에 대월과 참파로 가는 길과 항구들을 꿰뚫고 있는 이도 있었다.

남만으로 가본 경험있는 자가 없어 걱정이었는데, 취엉청으로 인해 길잡이를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감합부를 들고 영파나 항주에서 도자기를 구하려고 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을 구하려고 한 것인가?”

“도자기도 구하고, 도서를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 끝난 겁니다. 집에서 독립하며 가산을 다 털어 배와 교역품을 샀는데 망할 놈의 해적 놈들이....흐흐흑. 이제 저는 끝입니다. 살아도 사는게 아닙니다. 흑흑.”

밥을 먹고 난 취엉청은 그제야 목숨은 살렸지만, 화물과 사람들을 잃었다는 생각에 억울하고 슬퍼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취엉청과 대월 사람들이 울기 시작하자 그걸 본 중국 여인들도 훌쩍거리기 시작했는데, 집을 떠나온 지 석 달이 넘어가는 수군들도 집 생각이 나는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때맞춰 비도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자, 후덥지근한 날씨처럼 분위기가 축 처지기 시작했다.

“그만 울게나. 취엉청 그대의 말을 믿겠네. 해적선에 실린 향신료를 자네가 샀겠지. 그 가격에 맞춰서 경덕진에서 우리가 산 도자기를 나눠주겠네. 그거면 손해를 어느 정도 만회하고 버틸 수 있겠는가?”

“네에? 네네. 그렇게 해주신다면 살아날 수 있습니다!”

“자네 고향에 자리 잡을 수 있게 아예 우리가 가져가는 화물을 자네가 거래해 주게. 그러면 거기서 떨어지는 수익으로 상회를 만들어 운영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요. 이번 한 번만 대월로 오시는 게 아니시지요?”

“자주 오진 못해도 정기적으로 우리 상단이 대월로 가게 될 것이야. 우리 상단과 고정거래만 해도 괜찮을 거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후에나 탄호아의 교역 항구에서 상회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계약하지, 자네는 우리에게 줄 향신료를 구해주고, 우리는 도자기와 약재, 도서를 가져다주겠네.”

“감사합니다.”

감합부는 물론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런 것이 하나도 없어 서명으로 계약을 하려 했는데, 취엉청은 손가락을 칼로 찔러 지장을 찍었다.

해적에게 잡혀 죽다 살아났기에 이런 각오라도 해야 한다며 아예 피 묻은 손가락으로 계약서를 적었다.

“그럼, 계약도 되었고, 교역물을 처리할 수 있는 거래 상대를 얻은 기념으로 음식을 하나 해주지.”

참군 염호진이나 수군들은 내가 음식을 자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들 환호했는데, 중국 여인이나 대월인들은 이해하지를 못했다.

상단을 책임지고, 현청의 관리에게 표찰을 보여주는 것으로 봐서는 신분이 높은 자로 보였는데, 직접 음식을 한다고 하자 그 이유를 몰라 혼란스러웠다.

“제조님은 우리를 가신으로 생각하시기에 집안의 어르신으로서 우리를 먹이시는 것이네.”

“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맛있는 것을 먼저 챙겨주시는 것과 같지.”

옆에 있던 수군들의 말에 취엉청도 그런가 싶었는데, 원종이 대월에서 먹는 쌀을 절구에 넣어 빻게 하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해적선에 보니 이 쌀이 있더군.”

“네. 중국에서는 먹지 않고, 대월에서 먹는 쌀입니다.”

대월에서 먹는 쌀을 안남미(安南米)라 부르는데, 이는 당나라 시절 베트남에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어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나라 이후 안남도호부가 없어지고 베트남이 독립하여 자신들을 대구월(大瞿越), 대월(大越), 대남(大南) 등으로 베트남을 부르게 되었지만, 중국인들은 여전히 베트남을 안남으로 불렀고, 이런 명칭이 조선에도 전해져 베트남인들이 먹는 쌀을 안남미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비가 오고 기분이 우울할 때 먹을 수 있는 것을 해주지.”

원종은 안남미 빻은 것에 밀가루를 넣었고, 노란 가루인 강황과 달걀을 넣어 반죽 물을 만들었다.

이 반죽 물에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잘게 썰어 넣었고, 항구의 아낙들이 파는 새우와 조개류를 썰어 넣었다.

“전을 하시는 것입니까요?”

언년이가 그래도 요리를 좀 보았다고 전이냐고 물었지만, 전이 아니었다.

“북경에서 대월 사람들도 보았는데, 그들에게 들은 음식이다. 이 반죽 물을 전처럼 굽는데, 기름에 튀기듯이 바짝 얇게 구워야 한다.”

둥근 팬에 들기름을 듬뿍 넣고 묽은 반죽을 넣었는데, 묽은 반죽이다 보니 팬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반죽 물을 움직여 얇게 구워낼 수 있었다.

마치 밀 전병처럼 얇게 구워진 전 위에 배에서 길렀던 숙주를 올렸고, 먹을 수 있는 야채들을 올려 종이 접듯이 접었다.

얇게 구워진 쌀 전병이 접어지며 그 열로 속에 있는 숙주와 야채들을 익히는 것이었다.

“반으로 접어 먹는다고 ‘반세워’ 란 요리네.”

베트남의 전통 요리인 반쎄오를 커버전한 요리였다.

그릇에 담을 때도 바삭거리는 전병 소리가 났는데, 젓가락으로 부수어 안의 야채와 함께 먹는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본래라면 액젓류의 소스에 찍어 먹어야 했지만, 아직 베트남이 아니다 보니 그런 소스가 없어, 간장과 식초를 섞은 간장에 찍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저기, 술은 안되옵니까요? 이건 술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계약을 하고 재기할 기회가 생기자 본래의 괄괄한 성격이 살아났는지 취엉청은 술부터 찾았다.

“그럼, 경계근무 서는 자를 빼고는 오늘 반세워와 술을 먹어보세나. 배에서 키우고 있는 콩나물과 숙주를 다 들고 오게나!”

< 197. 남만이라 불리는 곳. (1) > 끝

작가의말

중국에서 오랑캐를 칭할때 夷戎蠻狄(이융만적) 이라고 했는데,

이(夷)는 동이. 융은 서융, 만은 남만, 적은 북적이라 했습니다.

동이는 다들 아시다 시피 활을 잘 쏘는 오랑캐의 뜻이며,

서융의 융(戎)은 갑옷(甲)과 창(戈)이 합쳐진 글자라 갑옷과 창을 든 오랑캐 라는 뜻입니다.

남만의 만(蠻)은 벌레 훼(虫)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로 된것으로 벌레와 뱀을 숭상한다는 뜻입니다.

무협지에 나오는 묘족을 남만족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북적의 狄(적)은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 변(犭)의 部과 亦(역→적)이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로

개털 개가죽을 입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나름 이융만적이라는 말에 오랑캐라 불리었던 각각의 특징이 다 담겨 있답니다.

ps:11/27일 문장 부분 수정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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