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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86화 (186/327)

< 186. 이것은 김입니다! >

“우리는 그런 내용을 전달 받은 것이 없소이다. 임시로 항구에 배를 대 물자를 충당하는 것은 막지 않겠으나, 천진으로 상륙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소이다.”

관복을 입은 서거정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까지 나서서 조선에서 왔으며 북경으로 상경해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천진의 관리들은 그런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며 사신단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았다.

문장가로 이름 높은 서거정의 위명도 북경이 아닌 천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중국인 특유의 꽌시 같은 것을 하려고 해도 애초에 천진에 아는 인맥 자체가 없었고, 뇌물로 쓸 돈도 없었다.

혹여나 인맥이 있는 발해방 사람들과 함께 왔다면 아는 이가 있어 육지로 오르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이상하구만, 분명 우리가 출발하기 한 달 전 사신단이 배로 올 것이라고 전달할 사자가 출발하였는데, 아무런 통보가 없었다니.”

“사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거나 아니면 우리가 너무 일찍 와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두 달이 걸리는 길을 한 달 만에 왔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만. 그럼 어찌한다.”

아직은 추론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육지로 먼저 보낸 사자가 우리보다 늦게 도착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와서 생긴 문제이니 이거 웃을 수도 없고, 원. 허허.”

천진의 관리들도 우리가 조선에서 온 사신단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3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무턱대고 북경으로 갈 수 있게 해주진 않았다.

다만, 북경으로 가서 정식 공문을 들고 올 수 있게 네 명을 올려보내 주는 정도는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무작정 배에만 있게 하는 것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천진의 외곽에 있는 산장에 머물게 해주었다.

산장의 뒷산에는 온천도 있었기에 배를 타고 오며 축난 노신들의 몸을 챙기기에는 괜찮은 조건이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하는 민족이었기에 다들 온천 안에 들어가 풍류를 즐기기 시작했다.

“으흐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좋구만. 아예 배를 타고 오는 사신단의 정규 일정에 이 산장을 넣는 것이 어떤가? 배를 타고 오며 뱃멀미로 인해 몸이 축난 사람들이 있을 터이니 여기에서 몸을 보양하고 북경으로 가는걸세. 어떤가?”

“좋네. 좋아. 대명 천자에게 배를 타고 와서 꾀죄죄한 몰골을 보이기보다는 온천에서 때 빼고 광을 낸 다음 가는 것이 예의에 맞는 것이겠지.”

“자자! 이 그릇들을 받으십시오. 온천 안에서 드실 수 있게 그릇째 가져왔습니다.”

원종은 온천에 몸을 담근 채로 먹을 수 있게 육포와 무를 넣어 만든 국물에 밀떡을 불려 각자 한 그릇씩 돌렸다.

배에서 먹는 것과는 달리 나무젓가락에 익힌 무를 끼워 같이 주었는데, 짭짜름한 밀떡을 먹고 국물에 조려진 어석거리는 무를 먹자 다들 한잔이 생각나는지 입맛을 다셨다.

그래서 겨우 구한 중국 술도 한 잔씩 돌렸지만, 다들 중국의 백주는 텁텁한 향과 맛이 난다고 하여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천물에서 놀다 보니 혈액순환이 좋아져서 먹거리에 대한 욕심만 늘어나는 어르신들이었다.

“이렇게 뜨거운 온천물에 담갔다가 먹는 오리알이나, 달걀이 최고라니까.”

동지사 이철견은 그새 준비를 했는지 온천물에 넣어 두었던 달걀을 꺼내어 밀떡이 담겨있던 그릇에 깨어 넣었는데, 온천물에 겉만 살짝 익어 있던 달걀이 수란처럼 풀어졌다.

“오오! 마치 흰 구름이 그릇에 들어가 있는 듯하구먼.”

육포와 무를 우려 만든 짭짤한 국물에 수비드처럼 살짝 익은 달걀이 들어갔으니 보기에도 좋았고, 맛이 없을 리 없었다.

이철견은 그릇의 국물과 같이 달걀을 마시듯이 먹었는데, 입안에서 설익은 노른자가 터지자 달걀 특유의 담백하고 풍부한 맛이 국물과 함께 술렁술렁 넘어갔다.

“캬! 이것이 온천의 맛이지. 안 그런가? 하하하.”

온천에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이 자연스레 만들어지자 아예 밥도 온천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런 온천에 앉아 그릇 하나로 먹는 스타일은 일식이 알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많이 만들어 둔 육포와 무로 만든 육수까지 같이 사용해야 했기에 참마를 갈아 만드는 도로로지루(とろろじる)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사실 준비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참마의 껍질을 벗겨 그냥 갈아내고 거기에 육수를 넣어 뻑뻑한 죽처럼 만들면 끝이 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릇에 보리밥을 담고 그 위에 뻑뻑한 참마 죽을 붓고, 참기름과 참깨를 뿌려주면 되는 간편식이었다.

온천에 들어앉아 그릇을 잡고 숟가락 하나로 퍼먹기에도 좋았다.

“오오! 참마를 갈아서 밥이랑 먹다니 이거 특이하구만. 처음엔 죽인 줄 알았는데 밑에 깔린 보리밥과 섞어 먹으니 걸쭉한 참마와 탱탱 거리는 보리쌀의 탄력이 아주 별미 중에서 별미일세.”

이철견은 참마의 끈적임이 입안을 불쾌하게 할 때 보리알의 탄력 있는 탱글거림이 불쾌한 끈적임을 날려주며 식감을 좋게 만들어 주자 이제까지 이런 음식은 먹어 본 적이 없다며 극찬을 했다.

“전 제조는 이렇게 참마를 올려 먹을 생각을 어찌 한 건가. 내 자주 가는 온양온천에서도 이렇게 해 먹어야겠어.”

“난 참마밭을 가지고 있는데, 집에서 해 먹어야겠어. 헌데, 이 죽밥에 이름이 있나?”

“덮죽밥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간 참마와 육수를 섞어 만든 죽을 밥 위에 덮듯이 올려 먹는다고 해서 덮죽밥이라고 합니다.”

“덮죽밥이라. 죽에도 이런 종류가 있는 것을 처음 알았구만. 아주 맛있어.”

양반들은 온천물 안에서 그릇째 먹는 참마 덮죽밥이 맛있다고 했지만, 사실 덮죽밥이라고 하기에 애매했다.

모 방송국의 방송에 나온 그 덮죽과는 그 괘가 달랐고, 보리밥과 비벼 양념처럼 먹는 일본의 도로로지루와도 다른 음식이었다.

그 두 음식의 중간쯤 되는 형태였기에 그냥 부르기 쉽고 시각적으로 죽이 덮어져서 나오는 것이기에 덮죽밥이라고 했다.

***

“북경에 갔던 이가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예상한 것처럼 한 달 먼저 출발했던 사자가 북경에 늦게 도착하여 이제야 예부에서 통지서가 내려왔습니다.”

“허허. 이거 육로로 오는 것과 배를 타고 오는 것이 이리 차이가 있구만 그려. 그럼 다들 북경으로 갈 채비하세.”

사신단의 사람들이 산장에서 준비를 하는데, 온천에서 보름 가까이 탄수화물 폭탄급인 밀떡과 덮죽밥을 배불리 먹었기에 얼굴에 기름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혈색이 좋고, 살이 오른 조선의 사신단을 본 명나라의 관원들은 이번 사신단은 다들 풍채가 좋구나 여길 수밖에 없었다.

서거정과 대관들이 예종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성종의 즉위를 설명하며 명나라 황제가 성종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조서를 기다릴 동안 원종은 북경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육분의(六分儀) 같은 항해에 도움이 되는 장비를 구하기 위해서였는데, 천체와 수평선의 각도를 측정해 현재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 망망대해에서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육분의란 물건은 1700년대 서양에서나 나오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이 육분의와 가장 비슷한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천문도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조선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라는 별자리 천문도가 태조 때 만들어져 목판본이 있었고, 세종 때도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라는 동아시아의 별자리에 관한 책이 있었다.

중국에는 3원 28수와 관련된 별자리 천문도가 많았는데, 이러한 별자리 천문도와 하늘을 보고 지금 배가 어디쯤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런 별자리 위치로 대충 어느 정도에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으면 나침반을 따라 망망대해에서도 배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리를 가공하는 장인을 찾아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를 여러 개 만들었는데, 이런 렌즈를 나무 틀에 꽂고 가죽으로 원통으로 말아 원시적인 망원경도 제작했다.

배율이 좋은 망원경을 만들려면 굴절 망원경을 만들어야 했지만, 그런 광학적인 방법을 모르다 보니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를 일렬로 배치하는 일 안 망원경이 한계였다.

그래도 이렇게 가죽으로 감아 만든 망원경도 X2, X3의 배율을 보여줬다. 물론, 깨끗한 현대의 망원경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배 위에서 관측을 위한 용도로는 충분했다.

그리고 최공손을 위해 명나라의 병기나 화기에 관한 책도 구하려고 했으나, 그런 책은 법에 묶여 있어서 그런지 구할 수가 없었다.

***

“오늘은 자네도 채비하게, 조서가 내려왔기에 만귀비께서 우리와 공신부인 한 씨까지 불러 연회를 베푸신다고 하시네.”

“그럼 가서 요리를 해야 합니까?”

“요리 이야기는 없었어. 다만, 자네가 의주 목사 전원길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고는 만귀비께서 아주 좋아하셨어. 그 이유를 몰라 태감들에게 물어보니, 전 목사가 북경에서 요리 실력으로 만귀비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여 전 목사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더군.”

“그건 저도 형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럼, 요리 이야기는 없더라도 분명 그 말이 나올 것이니 준비를 해서 가겠습니다.”

사실 원종은 북경으로 가게 되었다고 할 때부터 명나라의 황제나 귀비들을 위한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길 형도 일이 잘 안 풀릴 때 요리를 해서 윗사람의 마음을 돌리게 했었다고 말했기에 그런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명나라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로 갔을 때 그 지역의 왕이나 호족들에게 요리를 전파하고 관계를 개선할 필요도 있었기에 요리 준비를 해온 것이었다.

“그래. 네가 원종이구나. 건번이라는 것을 네가 만들었다고? 내 간식으로 자주 먹고 있느니라.”

공신부인 한 씨는 꿀에 절여 구운 건번을 자주 먹고 있다며 어린아이가 재주를 부린 것이라고 아주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만귀비 또한 원길 형의 효과로 인해 긍정적인 눈으로 봐주는 것 같았다.

“그래, 듣기로는 자진해서 요리를 준비해왔다고?”

“네. 귀비마마. 형님에게 이야길 듣고, 어떤 음식을 할지 고민 끝에 만들어낸 음식입니다. 그리고, 제가 상상하였던 귀비마마의 풍모에 아주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호호호. 상상했던 내 풍모가 무엇이기에 그 풍모에 어울리는 음식이라고 하는 것이지? 어서 올려 보거라 궁금하구나.”

만귀비는 자신의 풍모를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말에 어떤 음식이 나올지 궁금해했다.

말이 떨어지자 태감들이 커다란 탁자를 들고 나타났는데, 탁자에는 푸른색의 천이 깔려있었다.

“푸른색의 천이라. 이것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냐?”

“저 머나먼 동해를 뜻하옵니다. 그리고 인적없는 동해의 중앙에는 신선들이 산다는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섬이 있사옵니다.”

원종은 탁자 위로 오목한 쟁반을 놓았다.

그러자 태감이 불이 붙은 숯을 쟁반 위에 올렸고 원종은 쟁반 위로 놋쇠로 만들어진 뚜껑을 덮었는데, 그 뚜껑의 모양새가 괴이했다.

뚜껑에는 뚜껑을 잡을 손잡이는 보이지 않았고, 마치 뫼 산(山) 글자처럼 세 개의 봉우리가 달려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중앙의 가장 큰 봉우리 끝은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쟁반에 넣은 숯불의 잔 연기가 슬금슬금 올라오고 있었다.

“이 신선들이 산다는 섬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사옵니다.”

원종은 종이로 감싸진 검은 것을 꺼내어 봉우리에 붙였는데, 물기가 있는 검은 것은 뚜껑 봉우리에 들러붙더니 시간이 흐르자 초록색으로 색이 변했다.

“오오! 이것은 무엇이기에 검은색이 초록색으로 변하는 것이냐?”

“김(金)이라고 합니다!”

< 186. 이것은 김입니다! > 끝

작가의말

중국 백주에는 특유의 텁텁한 맛이 나서 못 드신다는 분들이 많은데, 이는 발효법의 차이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대부분의  술 제조방법은 액체 발효법이지만, 중국에서 예전부터 유명했던 백주들은 대부분이 고태(固態) 발효법으로 만들어지기에 특유의 향이 있습니다.

한국의 소주는 물론이고, 그 원류가 되는 중앙아시아의 증류법은 당이나 전분을 액체형태로 만들어 효모로 발효 시켜서 술을 만들고, 그걸 증류시켜 투명한 술을 만드는데, 중국의 백주는 이런 액체가 아닌 곡물의 고체 그대로를 발효를 시켜 술을 만듭니다.

곡물(메벼, 찰벼, 수수, 밀, 옥수수)를 혼합하여 거칠게 빻고, 껍데기를 혼입한채로 찧어 발효지(醱酵池)라 불리는 구덩이에 넣어두는데,  누룩 가루를 넣어 곡물과 누룩의 미생물들이 서로 섞여 발효되게 만듭니다.

이렇게 곡물 가루에서 발효되게 60~100일 가량 두면 눅눅하게 되며 효모가 자라 반죽처럼 되며 발효가 되는데 이 뭉쳐진 덩어리를 단식 증류기에 넣어 만드는 것이 중국의 백주입니다.

두세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가루로 발효가 되어 반죽처럼 되었기에 그 특유의 텁텁함과 향이 중국 백주의 특징이 된 것입니다.

술에 따라 단식 증류를 여러번 해서 항아리에 담아 숙성 시키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유명한 마오타이(茅台酒), 수정방(水井坊), 꿔짜오(國窖) 같은 명주입니다.

이런 고체 가루를 발효시키는 오래된 발효지가 있다는 것을 업체들은 자랑으로 여기는데, 꿔짜오는 명나라 시기(1573년)에 만들어진 발효지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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