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조상의 유업. >
“우선, 대영일 공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새로운 발해는 조선의 전조인 고려와 어떤 관계입니까?”
현대의 우리가 배우기로는 대조영이 발해를 세울 때 고구려를 잊는다고 했으며, 통일신라와 더불어 남북조시대를 열었다는 정도로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발해는 건국될 때 ‘발해(渤海)’라는 이름이 아니었다.
대조영은 나라를 세울 때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나라의 이름을 고려(高麗)라고 했다. 혹은 진국(震國)이라고도 했는데, 진(震)은 우(雨 비)와 진(辰 별)의 합성어로서 우뢰가 쳐서 천하를 진동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 진국(震國)이라는 이름은 나라의 이름이 천하를 울릴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내포한 진국이란 이름과 고려라는 이름을 사용했었다.
이러한 고려란 이름과 진국이라는 이름 대신에 우리가 발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당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으며 당나라의 황제가 발해군왕(渤海君王)이라는 이름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 발해라는 지명은 요동반도(遼東半島)와 산동반도(山東半島)가 둘러싸고 있는 발해만(渤海灣)을 말하는데, 그 일대를 대조영의 고려가 점령하고 있었기에 그 지역의 이름을 따서 발해군왕이라는 이름을 내린 것이었다.
물론, 발해라고 부르는 것은 중국과의 외교 때만 그 이름을 사용했고, 그 외 대외적으로 이름을 나타내어야 할 때는 계속 고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문제는 이 고려(高麗)라는 이름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고구려의 장수왕도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 고구려란 국호 대신 고려(高麗)로 이름을 사용했으며, 그 뒤를 이은 ‘대조영의 나라’도 고려였고, 통일신라의 뒤를 이어 건국된 ‘왕건의 나라’도 이름이 고려였기에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후대 사람들은 대조영의 고려라고 하기보다는 당나라 황제에게 받은 군왕의 칭호인 발해군왕의 이름으로 발해라고 고려를 부르게 된것이었다.
이런 복잡한 이름 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원종은 대영일에게 새로운 발해는 왕씨들의 고려와 어떤 관계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새로운 발해는 옛 고구려를 계승하며, 우리 대씨의 고려와 왕씨의 고려도 같은 한 맥이라고 보네. 그래서 왕씨의 고려도 계승해야 하는 나라이네.”
“그렇다면 왕씨의 고려를 멸망시킨 조선은 어찌 대할 것입니까? 복수를 위해 조선을 칠 것입니까?”
고주원은 내 말을 듣곤, 주위를 살폈다.
그러곤 지근거리의 호위들을 넓게 퍼트려 훔쳐 듣는 외인을 경계하게 했다.
조선 땅에서 조선을 칠 것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했기에 주위를 살피는 것이 당연했다.
이 자리에는 대영일과 고주원 그리고 그들의 호위가 있었고, 내게는 상행 책임자인 삼식이밖에 없었기에 대영일은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그 전조들의 맥을 잇는다고 무조건 조선을 적대시할 이유는 없네. 새 발해가 건국되었을 때 조선이 발해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발해도 조선을 좋은 이웃으로 생각할 것일세.”
“그 말은 두 나라가 같이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이군요.”
“옛 발해가 신라와 공존하며 남북조를 만들었듯이 새 발해와 조선도 서로 적대시하지 않는다면 예전과 같이 공존할 수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저도 지금의 제 자리에서 일하며 새로운 발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고 조선과 발해에 다 발을 걸치겠다는 건가?”
“네. 유교에서는 충신은 두 명의 주군을 모시지 않는다고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배달민족, 배달겨레가 아니온지요. 두 나라 모두 잘살게 하는 것에 제힘을 보태겠습니다. 물론, 두 나라의 사이가 나빠진다면 그때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지요.”
원종이 명확하게 답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겠다고 하자 이제까지 듣고 있던 고주원이 나섰다.
“두 나라를 다 잘살게 하겠다는 말은 편복(蝙蝠)처럼 이리저리 이득을 보고 붙겠다는 것으로 들리네. 그런 자를 신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선택하지 않고 두 나라를 같이 돕겠다고 이야길 하면 박쥐의 예를 들며 선택을 강요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역시나 그 말이 나왔다.
그래서 생각해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분은 저를 발해의 사람으로 영입하기 전에 저를 조사해 보셨습니까?”
“물론이네. 우리도 한양에 사람이 있네. 자네의 조상부터 가족관계는 물론이고, 신숙주와 한명회의 관계까지 조사할 만큼 조사했네.”
“그렇다면 저의 조상이 누구인지도 아시는 겁니까?”
“물론이네. 원나라에서 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를 지내다가 1351년(공민왕 1)에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행하고 고려에 들어온 전유겸(錢惟謙)이라 알고 있네. 그리고, 고려의 최영 장군의 누이와 혼인하며 고려의 신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지.”
“그렇지요. 그게 맞습니다. 저의 조상님은 전(全 온전할 전)씨중에서도 특이한 전(錢 돈 엽전 전)씨를 쓰셨지요. 거기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시지 못하셨습니까?”
고주원은 전씨라는 성씨가 왜 특이한 것이지 생각하며 온전할 전(全) 한자를 떠올렸다. 그러자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서, 설마!? 원래 성씨가 전씨가 아니라는 말인가?”
고주원의 놀란 듯한 반응을 보니 내 거짓말의 미끼를 물었구나 싶었다. 이때 챔질을 해야 했다.
“그렇습니다. 생각하시는 것처럼 저의 본래 성은 전씨가 아닌 왕씨입니다.”
이 말에 고주원과 대영일은 흐음 하면서 그럴 수 있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헌데, 이게 내 거짓말인 줄 모르는 삼식이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지 휘청거릴 정도로 놀래었다.
“자네가 전조의 혈통인 왕씨라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그것이 도리인 것 같은데.”
고주원은 송상의 총대방 김만춘도 원래 왕씨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원종의 본래 성씨가 왕씨라는 말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고, 왕씨이기에 조선이 아닌 새로운 발해에 오는 것이 맞다고 여겼다.
“성씨로만 따진다면 고려의 이름을 내세우는 새로운 발해와 함께하는 것이 도리와 이치에 맞겠지요. 허나, 다른 왕씨의 파(派)들이 전씨나 김씨 혹은 옥씨로 성씨을 바꿀 때 저희 조상님은 돈 전(錢)자로 성씨를 바꾸었습니다.”
“거기에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인가?”
“네. 특별히 돈 전(錢)자로 성씨를 바꾼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이 전(錢)자로 성씨를 남긴 조상님의 유업(遺業)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전까지는 새로운 발해로 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유업을 남기셨기에 그러는 것인가?”
원종은 조상의 유업을 이야길 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 겨우 입을 열었다.
“윗대 할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돈을 벌어 배를 수십 척으로 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달 이상 항해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배를 두만강(豆滿江)이 흐르는 땅을 지나 저 멀리 북쪽으로 움직이라고 하셨습니다.”
“수십 척의 배로 북쪽으로 가라고?”
“네. 북극성을 보며 배를 움직이다 북극성의 높이가 더 올라가지 않는 위치에 도착하면 배의 방향을 동쪽으로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동쪽으로 20여 일을 움직여 나가면 거기에 조상님들이 준비해둔 약속의 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준비해둔 약속의 땅?!”
“네. 거기에는 옛 고려의 동명성왕(東明聖王 고주몽)과 부여의 천왕랑(天王郎 해모수)의 유산이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왕씨가 조선을 이기고 다시 고려의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그 유산을 먼저 찾아야 천하가 고개를 숙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고려의 유산이라. 헌데, 북쪽의 땅으로 가게 되면 몹시 추운 땅만 있을 터인데. 그런 곳에서 동쪽으로 20 여일 가면 약속의 땅이 있다고?”
고주원은 고려의 유산과 약속의 땅이 있다는 말에 두만강 위로 무엇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조선 시대에도 혹한의 땅 시베리아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는데, 바로 몽골과 여진구(女眞寇) 덕분이었다.
겨울이 너무 심할 때는 몽골인들도 만주까지 내려와 겨울을 보내었기에 그들에게 시베리아의 혹한에 대해 전해 들었었다.
그리고, 여진인들은 배를 타고 왜구들처럼 약탈 질을 했는데, 약탈을 위해 북쪽으로 가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이 죽은 것 같은 눈 덮인 땅만 있다고 확인을 했었다.
그래서, 여진구들도 북쪽으로 가지 않고, 남쪽에 있는 조선 반도와 왜의 땅을 약탈하며 북쪽으로는 올라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고, 훗날 러시아가 내려오기 전까지 두만강 위로 올라가는 배는 아예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러시아 연해주 해안선을 따라 쭉 북쪽으로 항해하여 베링해를 지나면 알래스카 만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원종은 알고 있었다.
그 연해주 베링해 해협 항로를 이들에게 조상이 남긴 유업이라고 하며 알려줄 생각이었다.
거기에 오래되어 전설과도 같은 고주몽 동명성왕이나 부여의 천랑왕 해모수를 미끼로 해서 대영일과 고주원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고려의 유산, 건국왕의 유산, 망국의 왕족이 남긴 유업.’
단어만 들어도 뭔가 남자의 욕구를 자극했다.
이런 보물찾기는 현대인들도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이야기였고, 이 시대의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유혹적인 이야기가 없었다.
더구나, 새로운 발해를 세울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이라면 그 건국의 당위성이나 명분을 위해서라도 동명성왕의 유산, 고려의 유산을 찾으려고 할 터였다.
물론, 있지도 않은 유산을 찾기 위해 북방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누구보다도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될 터였다.
콜럼버스가 인도로 생각하여 이름을 붙인 서인도 제도의 발견은 1492년이었고, 앞으로 20여 년 남아 있었다.
내가 손으로 그려둔 지도도 조상님께 받은 것이라고 대영일에게 건네주고 한다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아메리코 페스푸치(Amerigo Vespucci)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가 아니라, 새로운 발해의 땅이라고 발해 대륙으로 불리게 될지도 몰랐다.
내가 구상한 이 떡밥을 발해방 사람들이 물고 나를 대신해 아메리카를 발견해줬으면 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고생하지 않고, 손쉽게 남미에서 나오는 고추와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작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로 인해 인류 발전 방향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두만강을 지나 얼마나 더 올라갈 수 있는지는 여진인이나 동모산에 계신 어른들에게 물어봐야 하겠군. 헌데, 이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한 적 있는가?”
“배를 타고 북쪽으로 가라고 한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유업을 전해 들었고, 그 유업을 이루고자 제가 배를 모으고 상업을 하며 항해 능력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조상이 남긴 유업을 위해 어느 나라를 선택할 수 없다는 원종의 말에 대영일과 고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동명성왕의 유산과 약속의 땅이 가장 필요한 곳은 발해방일 겁니다. 명분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지 않겠습니까?”
원종의 말에 대영일은 동의했다.
몇백 년이 지난 발해를 새로 건국한다는 명분이 있어야 했다. 단순한 고토(古土)를 회복한다는 명분보다는 동명성왕의 유지를 따르기 위해 일어선다고 하면 건국의 명분이 될 터였다.
“그대 조상의 유업에 참여하는 것이 명분에 맞겠지만, 확답을 하는 것은 뒤로 미루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른들께 물어보고 확인을 해야겠어. 진위 여부를 알아야 할 것 같아. 다만, 이것은 확실한 것 같군. 자네와 우리가 남이 아니라는 것. 안 그런가?”
“맞습니다. 동모산에 계신 어르신들께 고려의 유산에 대해 물어보고 정보가 있으면 제게도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원종이 있지도 않은 동명성왕의 유산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나라든 폐망할 때 도망친 왕족은 있을 것이고, 그런 왕족들은 보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한두 개는 들고 도망을 쳤을 터였다.
그런 이야기를 아는 노인들이라면 보물이나 유산에 대한 전설이라고 하면 아마 남겨져 있을 수도 있다고 대답해 줄 것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지만, 서로 간에 여지를 남기고 헤어졌다.
“여윽시! 도련님! 뭔가 도련님이 특별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망국의 왕자님이셨군요. 어릴 때부터 떡잎부터 다르다고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요. 어찌나 귀티가 나던지.”
옆에 있었던 삼식이는 내 거짓말이 진짜인 줄 알고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조상님의 유업을 위해 자신도 분골쇄신하겠다고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부들부들 손까지 떨며 감동했다고 난리였다.
마치 자신이 망국의 왕자를 돕는 고사에 나오는 충신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이런 책임감이 나쁜 것은 아닌지라 삼식이에게 진실을 알려줄까 하다 그냥 착각하게 내버려 두었다.
***
“그러고 보니 조선에는 고려의 왕족이 많군. 물론, 왕씨란 성을 쓰지는 못하지만.”
“조선의 태조가 왕씨를 배에 태워 물에 가라앉혀 죽였으니 성씨를 바꾸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헌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은 동모산으로 가보지. 가문의 어르신 중에서 북쪽 땅에 남겨진 유산에 대해 알고 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네. 한번 확인을 해볼 만해. 명분이 있으니깐.”
나라를 세움에 있어서 건국의 명분이 필요했는데, 고구려의 시조가 남긴 유산이라면 새로운 발해의 건국 명분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대영일은 자신이 조상들의 유업을 이루기 위해 새 발해를 건국하고자 움직이듯이 원종도 조상의 유업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기에 동질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고, 그가 자신처럼 조상의 유언을 중히 여기는 자라면 믿을 수 있는 자라고 생각되었다.
***
“아니, 국숫집의 이름을 잔치국수로 하겠다는 것은 절대 안 되옵니다.”
한때는 관기였지만 이제는 춘봉 가패의 홀 매니저 역할을 하는 채월이가 국숫집의 이름으로 잔치국수는 절대 안 된다고 태클을 걸어왔다.
“아니 왜? 국수는 잔칫날에 먹는 음식이라고.”
“도련님. 생각을 좀 해보십시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입니까?”
“시대? 아니 국숫집 이름을 정하는데 왜 시대를 들먹이는 거야?”
원종은 잔치국수란 이름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채월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 179. 조상의 유업. > 끝
작가의말
사실 문경 전씨의 시조인 전유겸에 대한 이야기는 20세기에 편찬된 문경 전씨 족보에만 등장할 뿐 고려나 조선, 그리고 원나라의 어떠한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합니다.
전씨 한자도 대부분의 전씨는 온전할 전(全)을 쓰지만, 문경 전씨만 돈 전(錢) 자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