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66화 (166/327)

166. 요동을 치즈 향기로. (1)

“목사 나으리! 속히 의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요. 의주에서 사람이 왔는데, 큰 배가 와서 나으리를 찾고 있다고 합니다요.”

원길은 압록강 건너 단동(丹東) 부근에 있었는데 북경에서 끌고 온 소 떼에 대해 여진족 족장인 무찰라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수유가 꽤 비쌌기에 목장을 만들어 수유만드는 것을 추진한다고 여진족의 마을에서 며칠을 묵고 있었다.

“큰 배? 누가 나를 찾는다는 말은 없고? 춘 머시기라고 하는 상단이라고 했습니다요.”

“하하하 춘 머시기가 아니라 춘봉이겠지. 동생이 도착했나보구만. 그래 배에 뭘 실어 왔다던가?”

“배가 이제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크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뭘 싣고 왔는지는 전령도 모른다고 합니다요.”

“그래? 무찰라타 족장도 같이 가보겠소? 아마도 신기한 것을 잔뜩 싣고 왔을 것 같은데.”

원길은 큰 배가 드나들지 않는 압록강에서 이제까지 본 배 중에서 가장 큰 배가 들어왔다는 소리에 여진인들을 데려가 구경시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여진인들도 큰 배가 어느 정도나 크기에 그러는지 궁금해서 따라가 보기로 했다.

지금이야 신의주와 단동을 이어주는 압록강 다리가 놓여있지만, 이때만 해도 압록강을 건널 때는 작은 배를 이용하거나, 물이 줄어드는 섬 인근의 얇은 곳을 말을 타고 건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다행히 한겨울이라 얼어있는 강을 말을 타고 건너려고 하는데, 일군의 무리가 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형님! 저입니다!”

의주의 병사들을 대동하고 원종이 웃으며 말을 타고 왔는데, 전령이 오는 시간에 벌써 상륙하여 움직인 것 같았다.

“추운데 기다리지 어찌 이리 오는 것이냐?”

“이때가 아니라면 위화도(威化島)를 언제 보겠습니까요?”

원길은 위화도라는 말에 추운데도 말을 타고 나온 것을 이해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한 것이 큰 의미를 가지는 행위였기에 북방으로 발령받는 관리들은 일부러라도 의주에 들리면 위화도를 둘러보았다.

물론, 종친이나 병권을 가진 이들은 위화도 근처로 오게 되면 의심을 받을까 두려워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곳이기도 하였다.

위화도 근처에는 모래톱이 쌓여 작은 섬들이 만들어져 있었기에 물이 얇았기에 말을 타고 강을 건너다니며 구경을 했다.

“큰 배를 타고 왔다더니 어디에 있는 것이냐?”

“압록강이 크다고는 하나 얼어있는 곳도 있기에 배는 강 하류 삼각지의 비단섬 앞에 있는 동항(东港)에 정박을 했습니다.”

“동항? 거긴 명나라의 땅이긴 하나 거긴 여진의 땅이다. 거기에 왜 배를 댄 것이냐? 그럼 의주까지 어떻게 물건들을 가지고 올 생각이냐?”

“의주로 물건을 가져가지 않고, 바로 동항에서 가져온 곡식과 생필품을 팔 생각입니다. 국법으로는 강을 건너와 조선 땅인 의주에서 여진족장들과 무역 거래를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맞다. 강을 건너 명나라 땅에서 상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압록강을 건너온 여진인들에게는 물건을 사고팔 수 있다. 국경의 안정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지.”

“네. 그래서, 저는 그 법을 이용해 배 위에서 여진인들에게 곡식을 팔 것입니다.”

“배 위에서?”

“네. 제 배는 조선의 영토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동항의 중국 땅에서 조선의 영토인 제 배로 여진인들이 넘어온 것이니 법적으로는 조선의 땅에서 상행위가 일어났으니 불법이 아니지 않겠습니까요?”

“흠. 편법이긴 한데,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니 말이 될 것 같으면서도 안되는 것 같기도 하구나.”

원길은 원종의 말을 듣고 배 위에서 상행위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건지 고민을 했다.

원길의 고민과는 다르게 원종은 편법이지만, 합법이라 여기고 있었다.

타국에 있는 대사관 부지가 그 나라의 땅으로 인정해 주는 예외법을 배에 적용한 것이니 편법이긴 해도 불법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형님. 고구려 시대부터 의주를 중시 여겨 성을 쌓고, 군진을 만든 이유는 의주 앞 위화도가 만들어지는 모래톱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여기가 강이 얇아지는 부근이기 때문에 강을 건너오는 병사들을 막기 위해 의주에 성을 쌓고 중히 여겼습니다.”

“그렇지. 강이 얇아 건너오기 쉬우니 방비를 하는 것이지.”

“중국의 상인들도 강을 건너기 쉬우니 위화도의 모래톱을 통해 의주를 드나들었고, 그래서 의주가 국경무역의 중심이 되었던 것입니다. 헌데, 그 얇은 수심 때문에 제가 가진 배는 여기까지 올라오기가 힘이 듭니다. 위화도의 아래에 있는 신의주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의주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형님. 하지만, 앞으로 저처럼 타고 온 배를 명나라이자 여진인들의 땅인 동항에 대고, 배 위에서 물건을 파는 꼼수를 부리게 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아직은 배를 가진 대 상단이 몇 없기도 하고, 그런 편법을 쓰면 나중에 경(更)을 치지 않겠느냐?”

“그 경(更)을 치지 않아도 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흠. 그렇게 되면 중국에서 온 중국인은 물론이고 여진인들도 의주가 아닌 동항으로 가게 되겠지. 허나, 그렇게 되면 의주의 상권이 붕괴하여 명나라의 동항만 좋은 일 시켜주게 되는 것이 아니냐?”

“그 좋은 알짜를 형님이 먹으셔야지요.”

“알짜를 내가 먹으라고? 그럼, 동항이란 곳에 상관을 만들어 조선에서 오는 배들에게서 이익을 만들라는 뜻이냐?”

“네. 맞습니다. 의주는 오래전부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토관 출신의 상인들이 있으니 형님이 자리를 잡기는 힘이 듭니다. 하지만, 동항은 작은 어촌이니 미리 선점하면 형님이 다 휘어잡을 수 있을 겁니다. 헌데, 저 여진족장 무찰라타는 믿을만한 자입니까?”

“무찰라타와 그 아들은 음흉하지 않아 나름대로 신뢰가 가는 이다. 지금은 거의 반 정주의 상태이니 조선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상신하여 무찰라타에게 성과 이름을 내려 달라고 상소를 올릴 예정이었다. 북경에서 가져온 60마리의 소로 농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거든.”

“소 농장요? 혹시 수유(치즈, 버터)를 만들려고 하시는 겁니까?”

“오! 소 농장이라고 하니 바로 아는구나.”

“당연하지요.”

그러고 보니, 들판이 펼쳐진 요동이야말로 목축업을 하기엔 최적의 조건을 가진 땅이었다.

“형님 북경에서 왔다는 소를 보러 갑시다.”

***

역사적 의미가 있는 위화도를 보러왔다가 북경에서 데려온 소를 보는데, 조선의 한우와 같은 황토색의 소도 있었고, 물소와 섞인 듯한 뿔이 큰 녀석과 검은 털이 긴 야크와 닮은 녀석들까지 종류가 4~5종류나 되었다.

북경에서 포상으로 급히 모아 준 소들이다 보니 여러 종자가 온 것인데, 오히려 이게 좋았다.

“암소 중에서 새끼를 잘 낳고, 젖이 많이 나는 애들이 있다면 그 암컷의 종을 최대한 늘려가는 방식으로 접을 붙이면 될 겁니다. 지금은 짠 우유를 어찌하고 있습니까?”

여진족의 족장 무찰라타는 원길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 동생도 참으로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양반 신분을 알리는 고운 비단옷을 입기에, 이런 일은 한 번도 안 해봤을 것 같았는데, 소들의 코뚜레를 잡고선 입을 벌려 나이를 알아맞히고, 건강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오래된 여진인 같아 보였다.

그리고, 어떤 소가 고기가 좋고, 수놈은 한두 마리만 종자로 두고 처분해야 한다는 목축에 대한 것도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더구나, 수유를 만들기 위해 우유를 담아두는 소의 위(胃)를 꼼꼼히 살펴보곤 인상을 쓰고 고개를 젓는 모습에 무찰라타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소 위에 있는 성분이 우유를 담았을 때 우유를 굳게 만들지만, 저 위는 너무 오래 사용했습니다. 보통 10번 넘게 쓰게 되면 위에서 나오는 물질이 줄어들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위는 다 큰 소의 위이기 때문에 우유를 굳게 만드는 성분이 처음부터 작았습니다.”

우유를 굳게 만드는 레닛(Rennet)이라는 성분은 어미의 젖을 먹는 어린 개체의 위에서만 나오는 효소이기에 다 큰 소의 위에서는 소량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럼, 어린 소의 위로 수유를 만드는 부대를 만들라는 말인데, 어린 소는 위가 작아 우유를 많이 담을 수 없지 않소.”

“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수유를 만드는데, 소의 위나 말의 위에 꼭 우유를 담을 필요가 없습니다. 큰 가마솥에 우유를 담아서 만들면 소의 위로 만드는 것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우유를 굳게 만드는 건 어찌하고?”

“우유를 굳게 하는 물질은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의 새끼라면 위에 그 성분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치즈를 한번 만들 때마다 송아지나 망아지를 잡아서 만들라는 거요?”

“되새김질을 하는 것은 소와 말뿐만 아니라 양과 염소도 있습니다. 양과 염소의 새끼도 우유를 먹고 크기 때문에 그놈들의 위에도 우유를 굳게 하는 성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는 소와 말에 비해 저렴하지요.”

“아! 양이나 염소 새끼로 해도 되는것이구만.”

“우유를 큰 통에 담고, 양이나 염소의 위를 긁어낸 성분을 넣어 통 안에서 굳게 하면 위로 만들어진 포대로 만드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쉽게 더 많이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했으니 이왕 온 것 한번 만들어 보시지요.”

무찰라타와 여진인들이 우유를 짜서 모을 동안 사람을 시켜 가마솥과 중탕을 위한 큰 냄비를 가져오게 시켰다.

대략 70ℓ를 담을 수 있는 냄비였는데, 가마솥에 물을 올리고 냄비를 넣어 중탕했다.

온도계로 재어가며 해야 했지만, 온도계가 없다 보니 손등에 물을 올려가며 체온보다 약간 낮게 온도를 잡아야 했다.

무찰라타의 아들 무철호가 3개월 된 양을 잡아 위를 떼왔는데, 위의 내용물을 씻어내고 위벽을 긁어 잘라내어 우유에 집어넣곤 섞일 수 있게 휘저어 주었다.

온도를 주의하며 일각 가까이 저어주자 점성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는 더 세심하고 천천히 저어주었다. 그러자, 마치 연두부처럼 단백질과 유청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시간 정도 지나자 탄력이 느껴질 정도로 단백질이 분리되었는데, 이제까지 수유를 만들어 보았다는 여진인들도 탄력 있는 덩어리에 놀라워했다.

“이제까지는 소의 위로 만든 부대에 담아서 만들었기에 온도를 조절하지 못했을 겁니다. 자연의 온도에 맡겨 수유를 만들었겠지요. 하지만, 체온보다 약간 낮게 중탕으로 온도를 유지해 주면 우유가 더 잘 굳게 됩니다. 다만 체온보다 더 높게 되면 위에 있던 성분이 죽어버리니 온도 조절이 중요합니다.”

수유를 만드는 여진인들의 손등에 일일이 중탕 물의 온도를 찍어 발라주며 온도를 알려주었다.

이제 만들어진 냄비 통 안의 단백질과 유청을 분리해야 하는데, 역시나 제대로 된 작업대나 통이 문제였다.

이제까지 중탕으로 물을 끓이던 가마솥을 화로에서 들어내어 가마솥 바닥에 구멍을 뚫었다.

좋은 쇠로 만든 가마솥을 쓰지 못하게 구멍을 뚫는 모습에 다들 아까워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가마솥 구멍에는 면포를 둘러 단백질 덩이가 빠지지 못하게 막고, 유청 물을 받아 낼 수 있게 항아리를 아래에 받쳤다.

면포에 탱글탱글하게 만들어진 단백질 덩이들을 손으로 버무리고, 나무 주걱으로 두드려 뭉치고, 흩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 반복 작업을 해주어야 이 덩어리 사이의 공기와 물이 빠져 탄탄하게 되고 안쪽에서 섞는 일이 없으니, 최소 다섯 번은 뭉치고 흩트리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곤 덩어리를 사각형으로 만들어 한참을 두자 단백질이 발효되듯이 살짝 부풀어 올랐다.

이 덩어리를 손바닥보다 약간 크게 잘라 소금물에 담가야 했는데, 여진인들에게는 소금도 부족했다. 최대한 소금을 풀어 물에 담가 두었다.

삼투압 현상으로 치즈 안에 있는 유청 성분이 소금물 쪽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소금물에 담그어야 살균도 되고 짠맛이 들어 풍미가 올라갑니다. 소금이 귀하다면 바닷물을 가져와서 담그어도 됩니다.”

한 시진을 소금물에 담가 두고 꺼낸 후 다시 민물에 씻어야 했는데, 해가 이미 져버려 여진족의 마을에 묵을 수밖에 없었다.

여진족 족장 무찰라타는 나를 대접하기 위해 돼지를 잡았는데, 역시나 음식에 대한 요리문화가 없어 불에 구워 먹거나 물에 삶아 먹는 것이 전부였다.

“돼지고기를 저며서 가져오십시오. 그리고, 삼식이는 오늘 만든 치즈 덩이를 두 개 건져 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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