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한양에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배에서 호응한다는 놈들은 왜 없어? 왜 다 잡히냐고!!”
박영철의 심복 형만이는 왜구로 분해 공격한 아랫것들이 오히려 역습을 받아 잡혀 버리자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저, 배에 먼저 타서 호응한다는 놈들이 왜 호응하지 않느냐고 그것만 되뇔 뿐이었다.
“우리가 바보가 된 거요. 저놈들은 우리가 기습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소. 선창에서 우수수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미리 매복을 한 거요. 이건 분명 배에 먼저 타서 호응한다는 놈들이 배신한 거외다!”
왜구처럼 보이기 위해 상투를 풀어헤친 이들이 머리를 대충이나마 묶어 올리며 배를 돌리기 시작했다.
형만이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그저 멍하게 빼앗겨 버린 배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앞쪽에 수군 누전선이오! 우리보고 서라고 하오.”
“제길, 우리 배가 더 빠르니 그냥 내빼자!”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꼴이 왜구의 꼴인지라 수군에게 잡히면 관노가 되어 평생 노비가 되어야 한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배 속도가 빠른 수군의 방패선이 누전선에서 내려지고 자신들의 배를 가로막았다. 배 위로 수군들이 올라타자 어떻게든 도망치려 했던 것도 끝이 나버렸다.
“허허. 이거 참으로 신묘하구나. 설마 했는데, 진짜 기습이 있을 줄이야. 어찌 알았을꼬.”
참군 염호진은 동래에서 배를 출발시킬 때만 해도 원종의 말을 믿지를 않았다.
수군의 깃발이 달린 누전선이 있으면 놈들이 오지 않으니 배를 먼저 출발시켜 울산 방향으로 가다 다시 돌아 따라오라는 말에 이게 무슨 쓸데없는 짓인지 의구심을 가졌었다.
한데, 정말 왜구 같아 보이는 놈들이 기습을 해왔으니 이런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아챈 원종의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참군 나리! 23명을 사로잡았습니다. 왜구처럼 옷을 입었지만, 다들 조선 사람이며 배도 왜구들의 배처럼 보이게 해두었지만 한선입니다. 어찌할까요?”
“앞의 배와 연락하기 위해 방패선을 보내었으니 기다려 보아라.”
***
“뒤를 따르던 참군의 배가 도망치던 마지막 배를 잡았다고 합니다. 어찌 처리해야 할지를 참군께서 물으셨습니다.”
“다행히 붙잡았구나. 그럼...”
도망친 배가 아까웠는데, 다행히 염호진이 제대로 일을 해준 거 같아 기뻤다.
“한양으로 배를 움직일 인원만 빼고는 포로들과 나포(拿捕)된 배를 끌고 거제도로 가거라. 거기서 배를 수리하며 기다리도록 하여라.”
“그럼 네 척 모두 사용하실 겁니까?”
“다섯 척이지. 참군이 잡은 배도 내 것이다. 참군 염호진의 본적은 수군이지만 지금은 내 휘하에 들어와 움직인 것이니 저 잡은 배도 내 것이다. 참군이 나포한 배 문제로 뭐라 하지 않을 것이지만, 혹여 뭐라고 한다면 금산이 네가 내 말 그대로 해주면 될 것이다.”
“네. 그럼, 제가 책임지고 배들을 수리하고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요.”
그렇게 나포한 배와 포로들을 정리하곤, 태극 1, 2호를 움직일 인원만 빼곤 모두 거제도로 돌아갔다.
참군 염호진은 금산의 말을 듣기도 전에 잡은 배를 넘겨줬는데, 배의 소유권을 주장하더라도 자기 배가 아닌 우수영의 배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배의 소유권을 우길 이유가 없었다.
“포로로 잡은 114명은 왜구로 처리해서 수영의 관노로 처분한다.”
거제도에 도착한 염호진은 포로들을 관노로 만들었다.
억울하다며 울부짖는 놈들이 있었지만, 수군들은 이놈들이 왜구인 척 도적질하는 놈들인 걸 알았기에 입 다물라고 두들겨 패줄 뿐이었다.
“도련님이 동래로 돌아가면 모두에게 좁쌀 한 가마씩을 내린다고 하셨네.”
“우와! 한 가마?!”
“진짜 좁쌀 한 가마입니까? 세상에!?”
수군이었다가 선원이 된 이들은 금산이 전하는 화끈한 보상에 탄성을 질렀다.
“도련님은 돈을 써야 할 때는 확실하게 쓰시는 분일세.”
“도련님 처... 천세... 합... 왜 입을 막아!”
좁쌀 한 가마니에 천세를 외치려는 선원이 있었는데, 급히 다른 이가 입을 틀어막았다.
입을 막은 이는 턱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는데, 그곳엔 참군 염호진 휘하의 수군들이 있었다.
그들은 같이 움직여 배를 나포했음에도 아무런 보상이 없었기에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았다.
수군에게 큰 포상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참군 염호진의 표정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본 선원들은 기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아, 참군 나리의 배에 탄 수군도 도련님께서 좁쌀 한 가마니씩 주기로 하셨네. 늦게 말했구만.”
“네에?! 우리도 준다고요?”
수군들에게도 좁쌀이 주어진다는 말에 서먹했던 분위기가 금세 걷히며 서로 얼싸안고 난리가 났다.
“좁쌀 한 가마니 받으면 우리 엄니 환갑잔치해드릴 수 있겠구만.”
“난 우리 아들 장사 밑천으로 쓸 거야.”
“정말 인심이 후하시구만. 선원이 되길 잘했군, 잘했어!!”
참군 염호진은 수군들이 이리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에 본인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자신도 선원들처럼 춘봉 상단으로 적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아니, 배가 나간 지가 언제인데, 왜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 사람을 보내긴 한 것이냐?”
“네. 나리. 형만이가 이리 연락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요. 일이 어찌 되어 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내었는데, 여전히 답이 없습니다요.”
내상 박영철은 누전선 두 척을 빼앗기 위해 수를 쓴 것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속이 바짝 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선 다섯 척에 누전선 두 척이면 조선에서 가장 큰 상단을 가지고 있는 송상과 자웅을 겨뤄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의 결과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의 성공 유무를 알리는 연락이 오지 않으니 답답해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나으리! 왔습니다! 형만이에게 보낸 사람이 도착했습니다요!”
온몸이 땀에 젖은 이가 대청 앞으로 왔기에 박영철은 누전선 두 척, 아니 일이 잘못되어 한 척이라도 빼앗았다는 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금세 절망이 되어 버렸다.
“형만과 연락을 하려고 해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소문을 들어보니 수영의 수군에게 왜구들이 퇴치되었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마도 왜구로 분해 습격을 하다 수군에게 토벌이 된 거 같습니다요.”
“뭬야? 그... 그럼 배는?”
“그것도 모두 다 수군이 끌고 갔다고 합니다요. 모두 다 잡혀갔기에 연락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요.”
“그럼 내 배는? 내 배가 이제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냐?”
누전선을 타고 선단을 지휘하던 꿈이 무너진 것은 둘째치고, 이제까지 고생하며 이십 년 넘게 모아온 한선 다섯 척이 날아갔다는 말에 박영철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백미로 천오백 석에서 이천 석의 가치가 있는 한선 다섯 척이 날아갔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게 마치 꿈인 것 같아 박영철은 멍해졌다.
그저 멍하게 정신줄을 놓은 것 같은 박영철을 보며 아랫것들은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두려워 슬금슬금 물러났다.
***
“전라 좌수영도 누전선에서 병조선으로 배를 바꾸게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 배를 수리하는 개삭 때 나오는 배가 있다면 제가 구매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가 수사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원종은 좁쌀을 광흥창에 옮겨주는 길에 각 수영에 들려 수사들에게 본자기를 선물하고, 개삭하며 나오는 누전선이 있으면 사겠다고 미리 언질을 주었다.
그러면서 배를 만들기 위해 제재하며 나오는 나무의 폐목재로 타르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본인이 직접 타고 온 누전선을 보여주며, 석회와 기름을 섞어 바른 것보다 이 타르가 더 저렴하고, 배를 가볍게 한다고 직접 눈으로 보여 주었다.
타르를 배에 사용하는 것은 아직 알려진 것이 없어 다들 망설였지만, 폐목재로 타르를 만들어두면 내가 사겠다고 하니 다들 타르를 만들어두겠다고는 했다.
전라 좌, 우수영과 충청수영에서 타르가 만들어지고 내가 계속 사용해서 직접 보여 주게 된다면 자연스레 타르를 쓰게 될 것이었다.
강화도 앞바다를 지나 한강 하류로 접어들자 마포구에 있는 광흥창까지는 금방이었는데, 물에 젖은 좁쌀 문제로 130석은 한양에서 조달해서 광흥창에 낼 수밖에 없었다.
이 좁쌀도 신숙주 집안에 쌓여있던 것을 사서 보낸 것이었기에 신숙주에게 한양에 온 인사 겸해서 들렸다.
“그래, 내상에게 텃세를 당했다고?”
“조운 운송일이 처음이라 손해를 좀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다른 이익을 갑절로 얻었으니 오히려 동래 상인들에게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할 판입니다.”
“크하하 절을 해야 할 판이라고? 어떻게 그리 이익을 얻었기에 그러는가?”
“영업비밀을 그리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리고 집안에 남는 곡물이 많다고 하던데 좀 파십시오. 배에 실어 의주로 가서 곡물을 풀까 합니다.”
“의주로? 여진 야인들에게 식량을 팔 것인가?”
“네. 혹자는 식량이 풍족해지면 여진인들이 강성해져 국경이 혼란해진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식량이 부족해지면 여진인들이 칼을 들고 일어나 국경이 혼란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식량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면 식량을 팔아 평화를 얻고, 그들과의 교역으로 이득을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구만 좋아. 우리 손녀사위가 딱 50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나와 함께 아주 많은 일을 했을 것인데, 참으로 아쉽구만.”
50년 일찍 태어났으면 여러 사화에 얽혀 세상을 빨리 하직했을 수도 있었기에 나는 무조건 반대였다.
“조정의 몇몇 대신들은 여진족들에게 식량을 파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길 하지만, 난 손녀사위처럼 여진인들에게 식량을 파는 것을 찬성하고 있네. 제(齊)나라 관중의 ‘관자’ ‘치국(治國)’ 편에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백성을 먼저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고,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라고 했어. 이는 조선 백성뿐만 아니라 야인인 여진족에게도 맞는 말이야.”
신숙주가 이야기한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다는 말은 쉽게 이야기하면 배부르고 등 따시면 칼 들고 일어나는 자가 없다는 말이었다.
흔히 말하는 곳간이나 쌀독이 채워져 있으면 인심이 난다는 속담과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여진인을 백성으로 보지 않고 야인으로보만 보는 이들이 참으로 많아. 세종대왕께서 6진(六鎭)을 개척하고 여진인들에게 성씨를 내려 조선인으로 받아들였음에도 아직도 여진인들을 야인으로만 보고 있으니 그게 참으로 아쉬워.”
“처조부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형이 의주 목사로 있으면서 여진인 족장들에게 낙농업을 가르치고 있고, 정착할 수 있게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칼을 들고 약탈해서 먹고살기보다는 조선과 명나라와의 중계 무역으로 먹고살 수 있다는 상도(商道)를 가르쳐 조선인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캬! 이래서 자네가 딱 50년만 일찍 태어났어야 한다는 것이었어. 사마천의 화식(貨殖)을 제대로 쓰는 인재가 있었어야 했어. 아 세월이 아쉽구만 아쉬워.”
신숙주는 원종과 같이 상도를 내세우는 이가 이제야 나타났다고 아쉬워했다.
“그리 아쉬우면 잡곡이나 좀 많이 내놓으십시오.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격이 저렴한 잡곡을 사서 여진인들에게 팔고, 여진인들에게 은과 염소, 양 같은 가축을 받아 오겠습니다.”
“은과 양? 그럼 양은 아마도 의주의 백정들에게 맡겨 내륙으로 옮길 것 같고, 은은 받아서 어디에 쓸 것인가?”
역시 신숙주였다. 은과 가축을 가져온다는 말에 내가 엇나갈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추궁하듯 이야길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