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찜닭의 빈자리. (1)
안동 김씨의 고택에 와 있으면서 안동 찜닭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쩌면 꽃향기 가득한 청주의 향기에 빠져 안동 찜닭의 그 간장 내음을 잊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안동 찜닭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름에 튀긴 프라이드 통닭과 양념통닭이 한국을 대표하는 치킨 요리로 각광을 받으며 일본의 스시처럼 세계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 그 둘보다 안동 찜닭을 세계화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
기름에 튀기는 닭요리나, 매운 양념을 바르는 닭요리는 한국만의 전통 요리가 아니니 한국만의 특색이 있는 안동 찜닭을 세계화시키는 것이 알맞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면서 들고나온 안동 찜닭의 유래로 한양 도성 안을 뜻하는 '안동네'에서 먹던 닭요리라고 그 유래를 설명했었다.
한양성 밖의 평민에 비해 성안 안동네 반가의 사람들이 해 먹던 요리이니 프라이드나 양념통닭 대신 찜닭을 세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서 찜닭이 가장 만족도가 높았다는 설문조사도 나오며, 안동 찜닭을 세계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안동 재래시장 닭 골목에서 전해 내려온 음식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뒤이어 안동 광산 김씨 집안에서 내려오던 수운잡방(需雲雜方)이란 요리서에 ‘전계아법(前鷄兒法)’이라는 음식이 있다는 게 알려지자 근거 없던 ‘안동네’ 유래설은 쏙 들어가 버렸고, 찜닭을 세계화시켜야 한다고 외치던 이들도 은근슬쩍 사라져 버렸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주장했던 안동네 유래설을 생각해 보면 경북에서만 알려져 있던 찜닭을 전국구 프랜차이즈 음식으로 만들고 싶었던 프랜차이즈 업체의 뒤 작업이었지 않았을까 추정되었다.
그렇지만, 그릇에 올려져 간장 내음을 풍기는 닭요리를 보니 안동 찜닭을 전략적으로 밀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먹지 않고 뭘 하는가? 우리 집 간장 맛도 백화주에 못지않네.”
김덕형의 빨리 먹어보란 성화에 입으로 가져가니 짭조름한 간장의 맛이 밴 닭고기가 부드럽게 씹혔다.
오랜 시간 졸여졌기에 육질이 연해지기도 했겠지만, 전계아법(前鷄兒法)이란 이름처럼 병아리를 갓 벗어난 영계를 사용했기에 원래부터 살이 부드러울 수밖에 없었다.
다만, 현대에서 먹던 그 달짝지근한 맛과 달리 간장의 짭조름한 맛이 강했고, 식초로 인한 신맛, 천초의 알싸한 맛이 주를 이루는 게 아쉬웠다.
그리고, 찜닭의 정체성이라고까지 여겨지던 당면이 없다는 게 더 아쉬웠다.
“표정이 왜 그런가? 별로인가?”
김덕형은 백화주를 마셨을 때처럼 두 형제가 감탄사를 내뱉기를 기대했었다.
원상에게는 자신이 기대했던 맛있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동생인 원종은 반응 없이 먹고만 있자 음식이 잘못된 건가 싶어 얼른 자신도 맛을 봤다.
“늘 먹는 그 맛인데, 뭔가 입에 맞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하. 덕형 형님은 여의치 마십시오. 동생이 사옹원 제조에 있다 보니 음식이나 요리에 대해서는 아주 엄격합니다.”
“아! 그렇군. 맞아 기억나는군. 자네 동생이 제조직을 받았고, 한양에서 화제가 되는 가패의 주인이라고 했지. 허허. 그냥 어린 동생인 줄 알았는데, 이거 예를 차려야 하는 겐가?”
“아닙니다. 지금은 관복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니, 그냥 편하게 대해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이걸 먹고 아쉬움이 커서 멈칫했을 뿐입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고?”
“네. 지금도 충분히 백화주처럼 김씨 가문의 자랑이 될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 맛이 너무 단조롭습니다. 간장의 맛이 너무 강해서 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아 한 가지 맛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김덕형은 이야길 듣고 보니, 와닿는 게 있었다.
“백화주에서 여러 꽃향기가 나듯이 이 찜닭에도 그런 여러 가지 맛이 깃들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지?”
“채소입니다. 지금도 파가 들어가긴 하지만, 파를 다져서 넣었기에 파의 맛이 너무 아쉽습니다. 파를 좀 더 크게 썰어 넣고, 다른 채소도 넣어 졸였다면 채소에서 나온 맛이 닭고기에 더해져 풍부한 맛을 가진 요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호, 채소라…. 혹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순 없겠나?”
김덕형의 요청대로 현대의 안동 찜닭 레시피를 알려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전계아법이란 닭요리에 현대 안동 찜닭 요리법을 알려주게 되면 김덕형의 후손일 수도 있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저자 김유(金綏)에게 영향이 갈 수도 있었다.
작자가 명확하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요리서에 수록될 전계아법이 나로 인해 달라지거나 아예 없어질 수도 있었기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채소를 써서 찜닭의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조리법을 알려주면, 나는 백화주를 빗는 법을 알려주도록 하지. 어떤가?”
원종이 망설이자 김덕형은 백화주의 비법과 바꾸자고 했는데, 원종도 향이 너무 좋았던 백화주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원종은 아예 전계아법과는 다른 이름으로 알려주고, 영계를 쓰지 않는 찜닭 레시피를 만들어 전계아법과는 다른 음식인 것을 강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레시피 변화로 수운잡방에서 전계아법이 사라지지 않을 터였다.
아예 다른 음식처럼 보이는 방법을 고민하다 당면까지 미리 넣어 버려야겠다고 결정했다.
“좋습니다.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파와 당근, 마늘, 생강을 준비해주십시오. 그리고, 재료가 있는 광을 볼 수 있습니까?”
“광을? 좋아. 바로 가보지.”
김덕형은 닭요리가 완벽해진다는 생각에 술을 마시다 말고 일어났다.
오래된 집안이다 보니 광에는 여러 가지 재료가 있었는데, 전분을 뽑기 알맞은 작물은 잘 보이지 않았다.
고구마나 감자가 없는 상황에서 당면을 만들고, 보급하기 위해서는 가장 흔하면서도 전분이 있는 작물이 필요했다.
그냥 곡식으로 하면 되겠지만, 곡식은 늘 부족한 상황이라 당면을 위해 곡식을 사용하는 건 조선의 식량 사정상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사항을 고려하며 광을 살피니 말린 고사리가 보였다.
산과 들에서 쉽게 캐올 수 있고, 전국 팔도에서 구할 수 있는 고사리라면 그 전분으로 당면을 만든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저 고사리를 쓰겠습니다.”
“고사리? 흠. 난 고사리 냄새가 별로인데.”
“고사리를 맷돌에 갈아 쓰기에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멈들은 고사리를 물에 불려 맷돌로 갈아 주시오.”
“고사리 묵을 하는 겁니까요?”
“비슷하지만, 다르오. 고사리묵을 하듯이 전분을 뽑아내어야 하니 물에 불리고, 맷돌에 갈아 전분만 따로 뽑아주게나. 그건 알려주지 않아도 되겠지?”
“네. 바로 전분을 뽑도록 하겠습니다요.”
“전분을 뽑아야 한다면, 닭요리에 금방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구만. 도토리묵을 말린 묵 말랭이로 대체는 안 되는가?”
“묵 말랭이도 좋지만, 그건 그것대로 쓸 곳이 따로 있습니다.”
도토리묵을 썰어 말린 묵 말랭이는 그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있기에 그것도 따로 챙겼다.
이튿날 어멈들이 만들어둔 고사리 전분을 보니 걸쭉한 것이 제대로 전분이 뽑힌 것 같았다.
전분은 밀가루와 달리 글루텐(gluten)이 없어서 면을 뽑기가 힘이 들었는데, 현대에서도 전분으로 면을 뽑는 압착기와 일반 밀가루에서 면을 뽑는 국수 압착기가 혼용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동남아에서 라이스 페이퍼를 만들 때 쓰는 증기 방식이었다.
물을 넣은 솥 위에 떡을 안칠 때 쓰는 떡시루를 올렸다.
떡시루 입구에는 면포를 둘러 줄로 묶었는데, 면포의 당김이 강해야 했기에 북처럼 두드렸을 때 통통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면포를 입구에 꽉 묶었다.
이후 솥 안의 물이 끓기 시작하자 국자로 전분물을 떠 면포에 둥글게 펴 바르고는 뚜껑을 닫았다.
10초 후 뚜껑을 여니 하얀 라이스 페이퍼보다는 못하지만, 아이보리색의 고사리 전분 페이퍼가 만들어져 있었다.
금산이와 희재에게 만들라 시킨 대나무 판으로 조심스레 전분 페이퍼를 옮겨놓았다.
“이거 신기하구만, 투명한 고사리 전이 만들어지다니. 먹어봐도 되는가?”
“이것은 바로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늘에서 반나절을 말려서 먹어야 합니다.”
“복잡하구만. 이렇게 만들어 말리고, 그걸 다시 닭요리에 넣는다니. 시간도 시간이지만, 효율이 하나도 없구만.”
“하하하. 맞습니다. 효율이 없지요.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고사리 전을 그늘에 하루, 햇빛에 하루 이틀 동안 말리게 되면 1년이 지나서도 먹을 수 있는 구황식품이 될 수 있습니다.”
“1년? 말린 고사리가 1년이 지나서도 먹을 수 있다더니, 거기서 나온 고사리 전분도 1년을 가는구만.”
모든 전분으로 만든 페이퍼들은 습기만 차지 않으면 2년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조선 팔도에 남아도는 고사리를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기에 다른 전분도 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전분물로 몇 번이나 페이퍼를 만들어 부엌어멈들에게 보여주곤, 가장 솜씨가 좋다는 어멈에게 맡겨보았다.
처음 3~4판은 너무 얇게 하거나 두껍게 해서 실패를 했지만, 금세 내가 만든 것과 비슷하게 전분 페이퍼를 만들어냈다.
“나으리 그런데, 이건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요? 그냥 고사리 전(煎) 이라고 하기에는 진짜 고사리 전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요?”
“음. 이건, 투명하고 얇은 종이와 같으니 지전(紙煎)이라고 부르게. 지전이 마르는 동안 재료를 손질해야 하니 당근과 파, 애호박을 가져오게. 아, 그리고 영계가 아니라 노계, 나이 든 닭으로 가져오게.”
“네에? 그러면 닭이 질기고 냄새가 나서 먹기 힘이 들지 않습니까요?”
“맞아. 하지만, 지전을 그늘에서 말리는 동안 시간이 넉넉하니 해결할 방법이 있네. 그러니 노계로 잡아 오게나.”
전계아법의 이름처럼 영계가 아니라 고기가 질겨 먹기 힘든 노계로 음식을 한다고 하니 김덕형도 의아해했다.
“언년, 아니 언놈아. 안동 김씨 고택에서 전계아법을 보고 당면 찜닭을 만든다고 기록하거라. 그리고 기록한 것은 나중에 이 집에 줄 수 있게 세로로 쓰거라.”
이렇게 글로 전계아법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명시해두면 추후 수운잡방이 쓰일 때 문제가 없을 터였다.
잡아 온 노계를 토막 내고 칼집을 넣어 뜨거운 솥에 넣어 끓여 내었다.
노계를 잡을 때 나름대로 피를 뽑았겠지만, 남은 피와 노계 특유의 닭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한번 끓인 물은 버렸고, 삶아진 닭에 다진 마늘과 생강, 간장을 넣어 조물거려 양념이 고기에 배게 했다.
대파와 당근, 애호박도 큼직하게 썰어 넣었고, 설탕 대신 꿀과 참기름도 한 바퀴 둘러 재어뒀다.
그러곤 말린 떡과 묵 말랭이도 물에 담가 불려두니 만들어두었던 고사리 지전이 당면으로 써먹을 정도로 말랐다.
“이틀 동안 그늘과 햇빛에 말린 고사리 지전은 바짝 말라 있기에 물에 담가 불려서 써야 하지만, 이렇게 만든 지 반나절 된 지전은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쓸 수 있습니다.”
지전들을 여러 장 겹쳐 넓적 당면처럼 썰어 두니 기성품으로 파는 당면과 색이 좀 달랐지만, 감촉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자 솥에 재어둔 노계를 넣었고, 당근과 애호박이 익을 때까지 주걱으로 뒤적거렸다.
채소들이 어느 정도 익자 간장과 된장을 넣어 간을 맞추었고, 천초 가루와 내가 들고 있던 후춧가루를 뿌렸다.
고춧가루가 참으로 아쉬웠지만, 이게 지금의 최선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익은 것 같다고 여겨질 때 썰어 둔 고사리 당면을 넣고 물을 추가했다.
당면이 양념 국물을 흡수할 때까지 졸였다.
이후 그릇에 담아낼 때 깨소금을 뿌리고, 참기름을 한 번 더 돌려서 찜닭을 내놓았다.
“어제 먹었던 전계아법의 부족했던 맛을 좀 더 풍요롭게 한 안동 찜닭입니다. 당면을 넣었으니 안동 당면찜닭이 맞겠지요.”
김덕형은 젓가락을 들고 달려들었는데, 그의 젓가락이 집은 것은 닭고기가 아닌 고사리 당면이었다.
“이게 과연 무슨 맛인지 궁금했네.”
김덕형은 국수를 먹듯이 당면을 후루룩 삼키더니 젓가락을 그대로 놓았다.
*
[작가의 말]
우리가 아는 안동 찜닭의 이미지는 봉추찜닭이 전국 체인화되며 당면과 떡이 들어가 있고, 크게 썰린 야채가 들어있는 프랜차이즈의 이미지입니다.
그 원모습이라는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전계아법(前鷄兒法)을 보면 야채가 잘게 다진 파만 있고 다른 야채가 아예 없습니다.
그리고, 그냥 고기만 덩그러니 있는 요리보다는 야채와 당면, 떡이 들어있는 찜닭이 더 맛있습니다요.
그래서 오늘은 찜닭 어떠십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