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그 남자의 사정. (2)
집으로 백숙을 들고 갈 때는 가난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 머리에 있었다면, 다시 백화 여관으로 가면서는 자신을 받아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정신없이 뛰어 여관에 도착하니 그의 생각대로 원종이 있었다.
“그러니깐 제 밑에서 일하고 싶으시다고요?”
원종은 웬 양민이 자신을 찾아와 말을 건네자 갓과 도포를 입지 않은 모습에 누구인지 알아보지를 못했다.
이야길 나눠보고서야 김재원이라는걸 알았다.
“청지기도 좋고, 서기도 좋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아치가 되는 것을 포기했네. 그저 처자식을 건사할 수 있게만 도와주게나.”
원종은 갓과 도포도 벗고, 뭔가 필사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김재원이 무언가를 내려놓고 결심을 했다는 느낌이 왔다.
“그럼, 지금 저희 백화 여관에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십니까?”
김재원은 가타부타 말없이 여관에 무엇이 필요한지부터 물어보는 질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이게 시험이라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새재를 넘어 충청 땅에 백화 여관을 하나 더 지어야 하네.”
이제 갓 시작한 여관의 발전에 필요한 것을 물었는데, 새재 넘어 충청도에 새로운 백화 여관을 지어야 한다고 하니 원종은 호기심이 생겼다.
“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옛말에 이런 말이 있네. ‘부엌에 가면 더 먹을까, 방에 가면 더 먹을까’ 하는 말이네. 문지방 하나 사이로 부엌과 방에서 더 먹을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는 말이지. 경북과 충북도 마찬가지네. 경북과 충북은 붙어 있지만,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소백산맥 때문에 지척일지라도 먹고 나는 재화가 다르네. 경북과 충북의 재화를 쉽게 교환하려면 충청 땅에도 이런 백화 여관이 있어야 하네.”
“오, 합격입니다! 형님은 양반인데 어찌 그 이치를 아시는 겁니까? 혹시, 장사해보려고 준비를 하셨던 겁니까?”
“그게... 내가 곤궁하다 보니, 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갈 때마다 어떻게 하면 사정이 나아질까 고민하긴 했었네. 그러다 같은 물산임에도 경상도에서는 흔한 해물 말린 것이 소백산맥을 넘으면 비싸지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게 돈이 되는 건지 고민을 했었네. 양반으로서는 부끄러운 생각이었지.”
“아닙니다. 형님이 곤궁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저기 초를 사는 양반들을 보십시오. 저치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에 쓸 초를 산다고 하지만, 여기서 초를 사서 다른 지역에서 팔아 차액으로 이익을 보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가격을 올려야 하지 않나? 다른 지역과 같아야 손해를 보지 않지.”
“네 그게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한 것이 있어 저렴하게 팔고 있습니다.”
“생각한 일?”
“하하하. 그 건은 차차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우선은 형님이 제안하신 백화 여관 2호점을 만드는 일을 맡아 주십시오. 내일, 아니 지금부터 우리 춘봉 상단의 행수가 되신 겁니다.”
“고, 고맙네. 이 은혜 잊지 않겠네.”
김재원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말투를 바꾸었다.
“이제는 모시게 되었으니 말을 높이고, 저를 낮추겠습니다.”
형과 동문수학한 친우였기에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김재원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아랫사람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주종관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방식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양반이 고개를 숙이고 찾아오더라도 이렇게 위아래를 명확하게 하셔야 합니다.”
“흠. 그렇다면 그리하겠습니다. 먼저 금산이와 함께 문경 가마에 가서 벽돌 굽는 것을 보고 새재를 넘어 삼풍리 인근에 백화 여관 삼풍점의 터를 잡아보십시오.”
“명에 따르겠습니다.”
금산이와 문경 가마로 움직여 가는 김재원을 보니, 갓과 도포를 벗고 장사를 선택하게 된 그의 어떤 각오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진기랑 고도개는 본가에서 잡곡 두 가마와 닭 4마리를 행수의 집에 가져다주어라.”
“네. 제가 집을 압니다.”
마침 진기가 김재원의 집을 알았다.
“다행이구나. 행수의 집을 살펴보고 더 필요한 게 있을 것 같으면 진기 네가 챙겨 주도록 하거라.”
***
“허허. 한양에서 가패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경기도 광주에 있는 분원이 제조어른, 아니 상단주님의 것이나 마찬가지란 건가?”
“네. 그 외에도 농장이나 그런 게 있지만, 차츰 알아가시면 될 것입니다.”
김재원은 금산과 이야기를 나누며 문경새재를 넘었는데, 이야길 하면 할수록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신이 가족을 위해 원종의 밑으로 들어온 것이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도련님의 곁에 글줄이나 읽었던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 행수님이 생겼으니 한자를 쓰고 하는 일은 행수님이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헌데, 여기 여관을 지으려면 벽돌로 지어야 하는데, 벽돌을 일일이 들고 새재를 넘어와야 하니 수레부터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여관만 짓는다면 그렇게 수레로 벽돌을 가져오면 되겠지. 허나, 소백산맥이 가로막고 있기에 충청과 경남의 물류는 좋지 못하네. 문경에 있는 가마를 아예 여기에도 만들어 벽돌을 구워내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네.”
김재원의 말을 들은 금산은 백화 여관 2호점을 1호점과 연계하기보다는 별도로 꾸려가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면 삼풍리에 도자 가마를 만들고, 벽돌 흙을 구하기 위해 알아보고 하는 것들이 중복으로 투자되는 것이 아닙니까요? 수레에 실어 오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를 것 같은데요.”
“일견하기엔 그렇게 보일 것이네. 하지만, 벽돌을 수레에 싣고 문경새재를 넘다 보면 오히려 그 들고 오는 비용이 더 크게 나올 수도 있네. 충청에서 벽돌이 필요할 때마다 문경에서 실어 오는 비용보다, 삼풍리 인근에서 만드는 것이 쌀 것이네. 옹기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이고. 처음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만 보면 실어 오는 게 이득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손해일 거네.”
금산은 단기간이 아니라 몇 년 후까지 생각하는 김재원의 판단을 보니 왠지 그 판단이 원종 도련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배운 사람은 다른 것이구만.’
실제 조선 후기 실학자인 박지원도 청나라를 다녀온 후 청나라처럼 도로를 닦아 수레를 이용하여 물자를 유통하면, 조선도 사통팔달(四通八達)되어 풍요로워질 것이라 수레의 사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물자를 옮기는 방도는 말이 수레만 못하고, 수레는 배만 못하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고 들(평야)이 적으므로 수레가 다니기 불편하다. 그래서 배에 화물을 싣고 운반하여야 한다.’ 고 박지원과는 다른 주장을 펼쳤었다.
당연히 산을 허물고 도로에 아스팔트를 깔 수 있는 현대의 기술이 있다면 박지원의 말처럼 경부고속도를 뚫는 것이 최고의 방법일 테지만, 그런 기술이 없는 시기에는 산이 많은 조선에서 수레를 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외적의 침입을 두려워해 길 정리를 아예 하지 않았던 조선이었으니, 수레로 물건을 옮기는 것 자체가 극한의 일이었다.
그런 사정을 아는 김재원은 한군데에 생산 시설을 만들고 옮겨 오기보다는 같은 생산 시설을 여러 곳에 만들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보았다.
물론, 이 지역별 생산 방법은 대량 생산이나 원가 절감에는 좋지 않았지만, 조선 시대처럼 길이 좋지 않아 물류가 어려운 시대에는 이 지역별 생산방식이 맞는 방식이었다.
***
“도련님. 화전민들이 울타리 안에서 물건을 팔아도 되는지를 물어보는데, 어찌해야겠습니까요?”
새재를 넘어가는 길목에 4~5집씩 만들어져 있는 화전민들이 찾아왔는데, 개천에서 잡은 개구리를 말린 것이나, 고사리나 산채를 뜯은 것들이었다.
풍양 오일장에 내다 팔기에는 양이 부족하고, 거기까지 다녀오는 데도 힘이 드니 길손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여관에서 팔아보려는 것이었다.
“화전민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게. 대신에 물량의 1할은 우리에게 자릿세로 내라고 하고. 그리고 나물류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으니 필요한 것을 미리 알려줘서 납품을 받는 것을 말해보게.”
이런 먹거리나 잡다한 물건을 가진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자 인근에서 오일장을 못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흥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흥은 손님이 없다고 걱정하던 재인들의 우두머리 모가비에게도 기운을 주었다.
모가비는 내가 현수막을 만들어 홍보하는 것을 보았기에 자기들도 현수막을 만들었는데, 내가 전에 알려준 ‘서거수단’이란 이름을 새겨 홍보물로 사용했다.
매일 시간을 정해 줄타기를 하고 탈놀이를 하며, 풍물놀이까지 공연하니, 이것을 보기 위해 시간에 맞춰 오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구상했던 백화점식 숙박업체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
“삼풍리에 2호점이 생기게 되면 행수도 보부상에 가입하여 채장을 받게나. 그리고 울타리를 만들어 이렇게 안마당에서 난전을 깔면 될 것이야. 재인들의 서거수단 공연은 격주 단위로 1호점과 2호점을 돌아가며 하면 될 것이야.”
김행수에게 여관의 운영 방향을 알려주고, 방설환을 만드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문경 가마에서 도공 10여 명이 찾아왔다고 알려왔다.
“도련님. 본자기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걸 만든 곳이 분원이고 도련님이 본자기를 만드는 것을 알려줬다고 들었습니다요. 저희에게도 본자기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문경 도공들은 우두머리인 지관이었다.
그의 손에는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이 들려 있었는데, 본자기의 밝은 흰색이 유독 빛나는 것 같았다.
“흠. 본자기의 기법은 천금과 같은 기술이라 쉽게 알려줄 수가 없네. 본자기를 만들려면 분원으로 들어가야 하네. 기술의 보안을 위해 분원에서만 본자기를 만들 수 있네.”
“네? 분원에서 도망쳐 왔는데 다시 가라시면...”
문경의 도공들은 분원의 역을 피해 도망 나 온 이들이라 분원으로 가야 본자기를 만들 수 있다는 내 말에 사색이 되었다.
“분원으로 들어가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요?”
“지금 자네가 들고 있는 본자기 잔 하나에 백미가 1섬이네. 누군가에게 쉽게 가르쳐 주었다가 그 기법이 퍼지게 되면 본자기의 가격은 내려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네들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을 거야. 그러니 본자기는 포기하게.”
“하지만...”
“대신에 문경 가마는 문경 만의 새로운 물건을 만들면 되는 거네. 분원에서 만들지 못하는 걸 내가 알려주지.”
“네? 분원이 만들지 못하는 물건요?”
“그래. 지금으로서는 문경 가마에서만 생산이 가능한 물건이지.”
“그게. 어떤 물건입니까요? 어떤 것이기에 분원에서도 못 만들고 여기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요?”
“바로 이걸로 만들어내는 물건이네.”
원종은 말을 하며 서탁에 아기 주먹만 한 물건을 올렸다.
“그건, 돌 숯 석탄 아닙니까요? 이걸로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요?”
“돌 숯은 그냥 불에 태우면 끝인데, 이걸로 뭘 만들어낸다는 것입니까요?
도공들은 내가 자신들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석탄을 제대로 살펴보지를 않았다.
“허허. 자네들 눈은 업혀 가는 돼지 눈인가? 자세히들 보게나 이게 돌 숯인지.”
도공들은 가마에서 도기를 구울 때 나무 대신 쓰고 있는 석탄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원종이 자세히 보라고 이야길 하니 직접 손으로 들어 자세히 살폈다.
“엇! 일반적인 석탄과는 뭔가 다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구만. 그걸로 뭘 만들어야 하는지 알려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