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백화 여관. (1)
배다른 동생 진기는 첩의 소생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자식이라고 아예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내 마음 같아서는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지만, 이건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우선은 멍하게 서 있는 둘에게 사랑채의 객방에 거하도록 했다.
“아이고, 이런 기와집에도 살아보고 고도개 팔자가 폈구나.”
“먼 길 왔으니 개울에 가서 발도 좀 씻고 멱 좀 감고 오게나.”
“아이고, 소인이 눈치가 없었습니다요.”
고도개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진기와 따라 들어온 원종을 보고는 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허허 알다가도 모르겠구만.”
김고도개는 참으로 알 수가 없었다.
한양에서 큰 벼슬을 한다는 도령과 자신과 같은 방에 머물게 되는 꼬마 도령이 분명 형제라고 했는데, 대우가 이리 다르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충 어미에 따라 이렇게 신분이 정해진다는 건 알았으나, 여진족에는 그런 차별이 없었다.
포로로 잡아 온 다른 어미에게서 태어나도 아비가 같다면 그냥 형제로 같이 컸기에 이렇게 차이를 두는 것이 도통 이해 가지 않았다.
“조선은 참으로 어려운 동네로구만.”
***
“진기야 아버지에게 아들로 인정을 받고 싶으냐?”
“네. 흑흑. 아들이고 싶습니다. 흑흑흑.”
그제야 진기는 서러웠던지 눈물을 쏟아내며 소매로 얼굴을 닦으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 네가 이름을 빛내면 된다. 그러면 아버지도 인정해 주실 것이다.”
“천출이 어떻게 이름을 빛낼 수 있습니까? 흑흑.”
“너는 대호군(大護君) 장영실을 아느냐?”
“네에.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장호군도 일천즉천의 법도에 따라 어미가 관기였기에 그도 관노였다. 하지만, 어찌 되었느냐? 세종대왕 시절 대호군에 올라 관직을 지냈으며 이후 그의 집안은 양반 가문이 되었다. 천출이라도 이름을 빛낼 수 있는 것이다.”
“그... 그럼 저도 공교(工巧)한 솜씨를 쌓을 수 있게 공인을 소개해 주십시오.”
“쯧쯧 단순한 놈. 네가 한양에서 있을 때 보았던 서얼들이 장호군처럼 되기 위해 공인들에게 기술을 익히더냐?”
“그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왜 그렇겠느냐? 그들이 게을러서? 아니면, 타고난 재능이 없기에 애초에 포기를 한 것이겠느냐? 천출임에도 호군의 직위를 얻을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이 허송세월만 보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잘...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지금의 주상이 세종대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왕 시절에는 장호군처럼 솜씨 좋은 기술자는 물론이고, 의술이 높은 자에게도 관직을 내려 중히 여겼다. 하지만, 이후의 주상들께서는 그런 기술을 가진 이들을 우대하지 않았고, 중히 여기지도 않으신다.”
“그러고 보니 장호군 이후로 솜씨가 좋다고 벼슬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뭐, 솜씨 자체가 장호군에 다다른 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여튼, 서얼들이 기술을 배워 솜씨를 키운다고 하더라도 그 이름을 빛낼 방법이 없으니 한양의 서얼들은 그냥 자포자기하고 인생을 허송세월로 보내는 것이다.”
사실 한양에서 놀고먹던 서얼들은 그래도 반쪽이 양반이라고 기술을 배우겠다는 마음을 아예 가지지 않았다.
잡과라도 응시하여 관직에 나서는 서얼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저는 어찌 이름을 빛내야 합니까?”
“장사를 해야지. 상인이 되면 관리가 될 수도 있고 양반도 될 수 있다.”
“장사를요? 장사를 해서 어떻게 관리가 되고, 양반이 되는 것입니까요?”
“너는 중국 진나라의 여불위(呂不韋)를 아느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리니 모를 수도 있지. 여불위는 본시 상인이었으나 장사(?)를 잘해 진나라의 재상(宰相)이 되었고, 나중엔 나라의 바탕이라는 뜻의 상방(相邦)이라고까지 불리며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물론, 그 장사가 사람 장사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끝내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은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중국까지 갈 필요도 없다. 보부상의 시조라고 불리는 백달원은 아느냐?”
“네. 태조대왕과 백달원의 이야기는 보부상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백달원만 해도 태조대왕께서 벼슬을 내리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보부상의 본분에 맞지 않는다고 벼슬을 거부했었지. 여불위나 백달원의 예를 봤을 때 공인의 기예를 쌓는 것보다는 상인으로 성공하는 것이 더 가능성이 큰 것 같지 않으냐?”
진기를 이야길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았다.
더구나, 한양에서 가패를 하며 가패에 찾아오는 벼슬아치들과 안면을 트고 지내던 참렬형을 기억해내자, 상인이 되는 것이 가장 빠르게 벼슬을 받고 양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련님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상인이 되어 벼슬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우선은 네게 호형(呼兄)을 허락하니 우리 둘이 있을 때는 형님이라고 부르거라.”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진기는 호형을 허락한다는 말에 눈물이 다시 터져 나올 뻔했다.
“그래. 그러라고 내가 너를 데리고 온 것이다. 태어난 배는 다르다고는 하나, 같은 정(精)으로 태어났으니 형제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형... 님... 흑흑.”
“나를 따라다니며 넓은 세상을 둘러보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거라. 그래야 여불위처럼 큰 장사를 할 수 있는 상인이 될 수 있다.”
“네,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우겠습니다. 꼭 여불위처럼 큰 상인이 되겠습니다.”
“그래. 그 정도로 큰 상인이 된다면 그 누구도 네가 천출이라고 무시하지 못할 것이며, 너의 후손들은 너를 문경 전씨의 새로운 파조(派祖)로 여기게 될 것이다.”
아예 새로운 분파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말에 진기는 깜짝 놀랐다.
그저, 큰 상인이 되어 이름을 빛내고 아들로서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아예 자신의 후손들이 새로운 문경 전씨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그럴수도 있는 것입니까요?”
“물론이다. 네가 가진 부(富)가 그렇게 해줄 것이다. 상인이 되어 큰 부를 쌓아야 하는 이유를 알겠느냐?”
“네, 이유를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진기는 자신의 시선과 관념을 넓혀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그럼 이만 쉬거라.”
원종은 원종 나름대로 충고와 지도를 고깝게 받아들이지 않고, 진실로 받아들이는 진기를 보니 곱게 잘 컸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했다.
***
“사당패 놈들이 아주 개판으로 여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양에서 가패가 어찌 돌아가는지를 보았기에 가패를 기준으로 여관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일하는 것 자체가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금산과 희재가 새재 입구에 있는 여관을 둘러보고 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야길 했다.
“처음 만들었을 때 내가 일을 어찌하는지를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되었더니 이리된 것이겠지. 그리고, 먹고 놀기 좋아하는 사당패의 생활방식이 쉽게 고쳐지긴 힘들었겠지.”
“그래도, 양봉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본가에 도착하여 쉬었다가 부산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오랜만에 내려온 문경에도 일이 밀려있었다.
양봉을 맡은 만길 노인은 내가 한양에 있었던 동안 작은 형의 도움으로 부산 다대포에서부터 시작하여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오며 양봉을 했고, 한여름이 지난 지금은 다시 문경으로 돌아와 산에서 양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만길 노인이 800근(약 480kg)이 넘는 꿀을 수확했고, 밀랍도 100근(약 60kg) 넘게 모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또 산속에서 양봉을 하고 있으니 가을에는 추가로 더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거, 다행이군. 양봉과 초를 만드는 것은 만길 노인과 손자인 석동이에게 일임하지. 진상을 위한 용촉과 상단에서 팔 수 있는 금촉을 도공들과 함께 만들도록 하고 평민들이 쓸 수 있는 포촉도 일정량 만들도록 전하게.”
“네엡.”
문경새재로 올라가며 생각하니 여관의 이름도 제대로 지어주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그저 새재의 여관이라고 불렀는데, 이름부터 정해야 뭔가가 될 것 같았다.
“도련님! 어디 가셨다가 이제 오셨습니까요?”
“도련님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손님이 없습니다요. 도련님께 편지라도 쓰고 싶었는데, 글도 모르고 그저 언제 오시나 오매불망했습니다요.”
재인들의 우두머리인 모가비 길근은 물론이고 다들 앓는 소리를 하며 장사가 힘들다고 난리를 피웠다.
“이리 좋은 벽돌집이 여러 채에 재인들의 재주도 볼 수 있는 여관인데, 장사가 안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아이고, 허울 좋은 과부와 같습니다요. 보기에나 좋지, 실속이 없습니다요. 저리 벽돌집이 있고, 베로 만든 이불과 베개가 있으면 무얼 합니까요? 우리가 자랑하는 놀이를 보여주고 싶어도 새재를 넘어가는 일이 바쁜 이들은 닭곰탕만 말아먹고 가버리고, 과거 보러 가시는 선비님들은 오히려 방해된다고 재주를 하지 말라고 하시니. 이건 좋은 명마가 있어도 달릴 곳이 없는 상황과 같습니다요.”
“하하하. 이거 여관 일을 하며 입으로 힘이 다 몰렸구만. 그럼 그 닭곰탕부터 한 그릇 가져오게.”
여관 앞에는 평상도 있고, 길게 만든 탁자도 있기에 탁자에 앉아 닭곰탕을 먹어보았다.
다행히 닭곰탕은 본가의 어멈들에게 제대로 배웠는지 꽤 먹을 만했다.
“이 닭곰탕이라도 없었다면 진짜 입에 거미줄을 쳤을겁니다요. 과객들도 든든하게 먹고 간다고 다시 내려갈 때 찾아오기에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요.”
“보부상들은 들리지 않던가?”
“보부상들은 돈을 아낀다고 밥 덩이를 들고 다니며 먹는 족속이라 새재를 넘나들어도 우리 여관에는 아예 들리지를 않습니다요.”
이야길 듣고 보니, 처음 여관을 만들 때 과거를 보러가는 경남의 선비들을 주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길근의 말처럼 과거를 보는 선비들은 번잡스럽다고 공연 같은 것을 즐기지 않았고, 보부상 같은 상인은 돈을 아끼기 위해 아예 이런 여관을 들리지 않으니 손님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떻게 보면 내 실수였다.
조선에 오고 나서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조선을 너무 몰랐기에 문경새재에 여관을 만들면 장사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과객은 물론이고 여행객도 별로 없는 시대에 이런 여관이 될 턱이 없었다.
이건, 재인들의 문제가 아니고,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해서 생긴 문제였다.
재인들에게 장사 못 한다고 뭐라고 할 게 아니었다.
단순하게 공연을 보는 여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기능과 볼거리가 있는 종합 엔터의 형식을 가진 여관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리는 게 아니라, 여관 때문에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
“가장 저렴한 천을 가지고 오거라.”
우선은 현수막을 만들어 새재를 넘어가는 길목에 홍보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가로세로 길게 이어 만든 천에 문구를 쓰려는데, 여관의 이름부터 정해야 했다.
단순한 여관이 아닌, 숙박과 쇼핑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야 했기에 고민하다 백화여관(百貨旅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백화점처럼 많은 물건을 보고 사람을 모이게 한다는 그런 의미로 백화라 결정했다.
[당나라의 합격음식 저제(猪蹄)를 먹으면 당신도 과거에 합격!]
[배앓이에 좋은 방설환 판매개시! 급변은 이제 안녕!]
[재인들 공연 관람이 가능한 여관!]
[포촉(布燭) 초가 싸다! 밝기가 다른 촉!]
언문과 한자를 섞어 쓴 현수막을 문경새재로 올라가는 길 세 곳에 걸어두게 시켰다.
“포촉이나 방설환은 본가에서 만드는 것이니 알겠는데, 저 저제는 무엇입니까요? 저걸 먹으면 과거에 걸립니까요? 저 한자를 보니 저건 돼지 저 같은데, 먹으면 과거에 합격하는 음식이 돼지고기입니까요?”
“맞다. 그래도 모가비가 한자를 몇 글자 알아보니 다행이구나. 저 저제란 한자는 돼지의 발이라는 뜻이다.”
“그럼, 족발이 합격 음식이었습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