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부산행. (1)
“꺼억~ 정말 잘 먹었다. 엄니도 배부르쥬?”
든든하게 나온 배를 두드리는 덕구는 등지게에 업힌 어머니에게 배가 부르냐며 물었다.
“그래. 피밥이라는 게 저리 맛날 줄 몰랐구나. 앉은뱅이인 내가 이리 호사를 누릴 줄 어찌 알았느냐. 그런데, 정말 이렇게 고기와 밥을 든든하게 먹어도 되는 것이냐? 보부상에게 업혀 올 때도 돈을 안 냈다고 하던데 그게 걱정이구나.”
“보부상에게는 내가 만든 그릇으로 주었으니 걱정하지 마슈.”
“부역으로 온 것인데, 그리 그릇을 마음대로 줘도 되는 것이냐? 혹시, 그게 다 우리가 노비가 되어서 그 값으로 주는 게 아니 드냐? 난 그것이 걱정되는구나.”
“어휴 걱정도 사서 하슈. 원래는 마음대로 그릇을 파는 게 안 되는데, 목표 수량을 채운 후에 만드는 건 보부상에게 팔아도 된다고 했수다. 그리고, 노비로 팔린 건 아닌지 하는 것도 걱정마슈. 오히려 나중에 등록하라고 따로 호구 대장도 써줬수다. 그리고, 제조 영감의 노비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오히려 안된다고 하셨수다.”
“그게 정말이야? 노비가 되겠다고 하는데도 안 된다고 했다고?”
덕구의 어미인 천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역을 피하고자 양반네 집에 노비로 들어갈 때는 양반들이 쌍수를 들며 환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한데, 그렇게 노비가 되고 싶다는 자가 있음에도 안된다고 했다고 하니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노비로 받지 않는 대신에 부역이 끝나면 따로 차리는 개인 가마에 일꾼으로 뽑아 준다고 합디다.”
“일꾼? 품삯 받는 그 일꾼?”
“네. 그래서 다들 그 어디에 가도 이런 대우 못 받는다고, 미리 연판장을 써서 개인 가마에 같이 들어가겠다고 줄을 서고 있수다. 이리 잘 먹고 살게 해주고 이익이 나면 곡식으로 주니 이보다 좋은 곳이 없기도 하우.”
“그럼 너도 얼른 연판장에 이름을 올려야지.”
“헤헤헤. 이미 올렸수다. 그런디 엄니. 예전에 아부지가 호랑이는 그 멋진 가죽 때문에 사냥꾼에게 잡혀 죽고, 도공은 잘 만든 도자기 때문에 닦달받아 죽는다고 했지 않수.”
“그랬지. 그래서 부역으로 끌려가더라도 적당히만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좋은 것을 만들어 내면 계속 좋은 것만 만들어 내라고 혹사시키니 몸이 상한다고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나도 적당히 눈치 보며 일했는데, 여기는 좀 다르우. 진짜 실력 좋은 도공들은 본자기라는 걸 만들면서 좋은 대우도 받고, 자기 이름을 그 본자기 밑에 직접 새기고 있수. 그 자기가 깨지지 않는 한 평생 도공의 이름이 전해진다는 말이우.”
“너는 네 이름을 그리 남기고 싶은 게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은 도공은 없을 거유. 남아로 태어나 군사를 일으켜 용맹을 떨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물려받은 솜씨가 있으니 그 솜씨로 이름을 떨쳐야 하지 않겠수? 내 이름이 쓰인 본자기가 중국 천자님에게 진상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우.”
덕구는 자신이 만든 자기를 천자님이 좋아하며 대대손손 아끼며 쓴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진짜 그 어린 양반 나리 밑에 들어가게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하더냐? 그 갑조인가에 뽑히면?”
“이미 그렇게 갑조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자기가 중국에 진상되기 위해 떠났다고 하우. 죽은 아버지는 실력을 드러내지 말고, 중간만 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못할 거 같수다. 진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도공은 죽어서 도자기를 남기듯이 내 이름을 걸고 한번 제대로 만들어 볼라고 하우.”
“휴우... 그래. 네 마음대로 한번 해보거라.”
“걱정은 하지 마슈. 그렇게 이름을 떨치면 따로 사는 집도 준다고 하고, 그러면 엄니 모실 수 있는 며느리도 데리고 오고 할 수 있을 거유. 그러니 다 같이 붙어사는 숙소가 좀 불편해도 좀 참으슈.”
“아서라. 숙소 불편한 거 하나도 없다. 오히려, 옆 방에 붙어사니 친구들이 더 많아져서 좋아졌어. 그러니 나는 걱정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나 하려무나.”
천녀는 자신을 지게에 싣고 가는 아들의 등판이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혹여나, 이름을 남겼기에 나중에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
“고기향이 나는 그릇을 찾는다고?”
분원의 일을 맡은 달유가 급히 와서 보고하는데, 보부상들이 고기향이 나는 토기를 원한다고 했다. 고기 향이 나는 그릇이 뭔가 싶었다.
“보부상들이 고기향이 나는 토기가 따로 있다고 그걸 달라고 합니다요. 처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살며 마음이 안정된 도공들의 새로운 기술인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요. 보부상들 말로는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토기들에서 그 향이 난다고 하여 도저히 영문을 모르고 있습니다.”
“특정 시기? 아, 혹시 사냥꾼들이 사냥한 고기를 가마에 구운 날 아닌가? 그 고기 냄새가 그릇에 밴 것 같은데.”
“네? 아! 그러고 보니 날짜가 겹칩니다. 3호 가마에서 그릇이 나왔었으니 맞는 것 같습니다. 오! 그럼, 고기를 화공으로 구워내면 그 고기 냄새가 그릇에 배여 고기향 그릇을 계속 만들 수 있다는 거군요.”
생각해보니 뭔가 의도치 않은 나노코팅 같은 기술로 그릇에 냄새가 입혀진 것 같았다.
“그런데, 냄새가 난다면 오히려 더 안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보부상들 말로는 식욕이 당기는 고기 냄새가 나는 그릇이라고 다들 좋아한다고 합니다요.”
“허허. 나도 그 냄새를 한번 맡아보고 싶구만. 몇 개 가져와 보게나.”
그렇게 달유가 가져온 막사발과 종지에 코를 대고 맡아보니 진짜 은은한 스모크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고기의 기름이 기화하며 구워지는 토기에 달라붙어 냄새를 고착화한 것 같았다.
현대라면 새것 같지 않게 냄새가 난다며 불량 그릇이라고 까일 일이었지만, 그릇에 나는 냄새가 고기 냄새라 그런지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이 냄새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아예 고기향을 입힌 브랜드를 만들어 볼까.
본자기는 고급 기술의 자기이고, 이 향이 입혀진 저가형 브랜드를 만들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달유. 보름에 한 번 가마의 화공으로 고기를 넣어 냄새를 입히는 그릇을 만들도록 하게. 사냥꾼들이 잡아 오는 사냥 고기 중에서 맛없는 부위나 기름 많은 부위를 따로 모으게.”
“네. 그럼, 그 일정에 맞추어 사냥에 나서라고 하겠습니다요.”
“그리고, 그 고기향을 입히는 그릇의 바닥에는 한자로 향(香) 한자를 새기도록 하게. 고기 향이 나는 것이 좋은 거라고 하니, 아예 그 향이 나는 그릇이라는 것을 내세우도록 하지.”
“그러면 아예 가마를 정해서 그곳에서만 고기 향이 나는 그릇을 굽도록 하겠습니다요.”
***
“다행히, 고기향이 나는 그릇을 조절하며 만들 수 있어서, 인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런 문을 만들었나?”
“그것이 향이 나는 그릇을 서로 가져가겠다고 보부상들끼리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분원 안으로 몰래 들어와 그릇을 가져가려는 보부상도 있었기에 아예 분원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검수문(檢收門)을 만들었습니다.”
“검수문을 잘 만들었네. 이렇게 해두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야.”
임시로 만들어지긴 했으나 군부대의 게이트처럼 사냥꾼 세 명이 서서 나무 목책으로 길을 막고 있었다.
저 나무 목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원을 쉽게 보는 이들에게 경고의 의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역시, 분원을 맡길 사람은 자네로구만. 사냥꾼 출신이라 다른 사냥꾼들을 다루기도 좋을 것 같고. 내가 없는 동안 생산 일정과 본자기의 생산 수량까지 잘 맡아주게.”
“그저 도련님이 오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요.”
“그래. 문제가 터지면 신숙주 대감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하면 될 것이야. 내 이름은 언제든 팔아도 되니 어려움 없게 쓰도록 하게나.”
언제든지 내 이름을 팔아도 된다며 편지까지 남기자, 이제야 부산으로 내려갈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신숙주에게 들려 부산으로 간다고 알리고는 공랑점포와 가패에 들러 결산 보고를 박복이에게 하라고 일러두었다.
박복이를 분원에 남겨 호적 일과 한양에서 벌여놓은 사업의 결과 보고를 매달 편지로 보내게 했다.
그리고, 공조에 들려 사람을 구했다.
“철간(철광 광부)을 구하고 싶다고 했는데, 어디에 쓰려고 하는 건가? 철간은 구분전(口分田)을 주어 나라에서 관리하는 이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공조판서 양성지는 나라에서 중시하는 철 생산과 관련된 철간을 구해달라는 소리에 의문을 가졌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분전이 군전(軍田)으로 돌려지는 경우가 많아 철간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흐흠. 그 깊은 사정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꼭 필요한 연유가 있겠구만. 갑자기 왜 철간을 구하는 건가?”
“그것이... 철광산에서 광석을 캐내어 철을 제련하는 데는 시탄(柴炭)이라 불리는 땔감이 필요하다 들었습니다.”
“맞네. 그래서 광산의 입지 조건에는 광맥도 있지만, 풍부한 산림도 있어야 하지.”
“네. 철을 제련하는 것처럼, 도자기를 굽는 것에도 나무가 들어가기에 풍부한 산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분원을 맡으며 문경에서 실어 온 돌 숯이라 불리는 석탄(石炭)으로 도자기를 구우니 들어가는 나무의 양이 7할이나 줄어들었습니다.”
“오호. 그렇다면 땔감이 없어 10년에 한 번씩 이사하던 것이 좀 더 길어지겠군. 분원의 이전 비용이 줄어들겠어.”
“네. 그래서 이 돌 숯, 석탄이라 불리는 것을 철의 제련에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실력 좋은 철간을 데려다 문경의 석탄 광산을 개발해 보려고 합니다.”
“흠. 석탄 광산이라.”
양성지는 광산이라는 말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모든 광산은 왕토사상에 입각하여 개인이 개발하거나 소유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석탄이라는 물건이 나오는 광산은 아직 정식 광산으로 인정이 되지 않았기에 법외의 광산이라 난감했다.
“금, 은, 철이나 보석이 나는 광산은 나라에서 운영하기에 철간을 두고 구분전을 내려 캐낼 수 있지만, 이런 지금 석탄 광산은 철간 없이 운영되기에 그 개발이 아직까진 주먹구구식입니다. 그래서 은퇴한 철간이나 일이 없는 철간을 문경 석탄 광산에 보내어, 석탄을 캐내려고 하옵니다.”
공조판서 양성지는 실제 광산에서 철광석을 캐거나 제련하는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제련에 들어가는 나무의 양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철 제련에 쓰이는 나무를 시탄으로 썼기에 광산 근처 산이 황폐해지자 제련에 들어가는 나무가 부족한 판이었다.
오죽했으면, 철광석을 실어 산림이 풍부한 곳에 가 제련하기도 했고, 나무를 불법으로 베어와 제련하는 폐단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석탄 광산이 개발되어 석탄 수급이 된다면, 철을 제련하는데 석탄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겨울철 난방에도 석탄을 쓸 수 있게 되니 도성의 산림 황폐화까지도 막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흠. 그 석탄이라는 것을 널리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니, 조심할 필요도 있겠지. 하지만 그 효용이 크다고 하니, 충분히 추진해볼 만하겠군. 내 철간 몇을 알아보겠네. 헌데, 광산에는 인부가 많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인력은 필요가 없는 건가?”
“그 문제는 다행히 형조의 도움으로 도성의 범죄자들을 문경 석탄 광산으로 보내주고 있습니다.”
“하하하. 이거 자네 너무 열심히 사는 것 아닌가? 호조에서도 기웃거리더니 형조까지 발을 뻗치고 있었다니. 아주 육조의 단물을 다 빨아 먹고 있구만.”
“판서님. 이게 어디 제 한 몸 편해지고자 하는 짓이겠습니까요? 제가 나서서 생기는 이익은 모두 다 조선을 위한 것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요. 이것도 제가 나섰으니 나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요.”
“흠. 그러고 보니 그렇구만. 제련에 석탄을 써서 생산량이 늘어난다면, 그것이 다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이겠지. 솜씨 좋은 철간들을 뽑아 주도록 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