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맛있는 피. (1)
“정말 소를 주는 겁니까요?”
농사 밑천이나 마찬가지인 소를 한 마리 준다는 말에 사냥꾼들은 다들 놀랐다.
“어디 그뿐인가? 사냥하고 나오는 가죽에 대해서는 모두 사냥꾼들이 처분하도록 보장해 주겠네. 물론, 사냥을 하든 하지 않든 1년에 4번 녹봉(祿俸)처럼 곡식도 줄 것이네.”
“저기 그러면, 양반 나리는 무엇이 남습니까요?”
“범이나 곰, 멧돼지 같은 것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 내겐 남는 것이지. 도공들이 범이나 멧돼지에 다치는 것이 가장 큰 손해이기에 자네들을 불러와 해로운 동물들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네. 그만큼 도자기를 만드는 도공들이 중요하다는 말이네. 그리고, 사냥한 고기가 남긴 하겠군.”
가장 중요한 것이 부리는 도공들이라고 하는 말에 사냥꾼들은 특이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럼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면 되겠습니까요?”
“지금 바로 하지. 자네들 사냥하는 거 구경 좀 하세나.”
***
[챙챙챙 찡찡~ 챵챵챵!]
꽹과리가 울리며 징이 사방에서 쳐지기 시작하자 네발 달린 짐승은 물론이고 날개 달린 새들도 불안해하며 양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컹컹컹!]
사냥꾼이 목줄을 풀자 개들은 산등성이로 비호처럼 올라갔다.
“개들이 산등성이를 넘는다! 놓치지 않게 따라붙어! 징을 쳐서 몰아!”
함경도 관남 사람인 강구는 그 일대에선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사냥꾼이었다. 새끼 때부터 기른 4마리의 풍산개로 몰이사냥을 했는데, 그 몰아가는 솜씨가 일품이라 칡범(표범)도 여러 마리를 잡았다.
하지만, 착호갑사를 선발하는 데는 개를 쓰는 몰이 사냥꾼을 뽑지 않았고, 오로지 무예가 뛰어난 사냥꾼을 착호갑사로 뽑았기에 강구는 다시 함경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경기도 광주에서 몰이 사냥꾼이든 덫 사냥꾼이든 구분 없이 사냥꾼을 모은다는 소식에 개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그리고, 50여 인의 사냥꾼 중에 개를 데리고 있는 사냥꾼이 2명뿐이라 나름 좋은 대우를 받으며 분원의 사냥꾼이 되었다.
사냥하는 걸 보겠다는 양반의 말에 50여 명의 사냥꾼이 모두 동원되었는데, 몰이꾼이 아니라 사냥꾼 50명이 투입되는 큰 사냥은 다들 처음이라 신이 났다.
범들도 일반 사람이 아닌 사냥꾼들이라는 걸 알아챈 것인지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꼬리 빠지듯이 산을 넘어 도망치기에 바빴다.
“인원이 이렇게나 많으니까 사냥이 재미있구만.”
“아, 그러게. 나라님들이 몰이꾼을 몇십 명이나 쓰며 하는 사냥이 왜 재미있는지 알겠구만.”
꽹과리와 징 소리에 놀라고, 개들이 달려드니 산짐승들은 낭떠러지나 가파른 언덕으로 정신없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수십 명의 사냥꾼들 앞에서는 곰이나 늑대도 이렇다 할 반항을 하지 못했고, 그저 창과 화살에 맞아 죽을 뿐이었다.
개들이 몰아가는 모습에 정신없이 도망치던 노루와 고라니, 산양은 언덕에서 굴러떨어져 그대로 죽거나 크게 다쳤다.
그런 짐승들은 언덕 아래에서 기다리던 사냥꾼들이 달려들어 마무리했다.
“엇, 저기 수사슴이다. 사슴피가 그리 몸에 좋다는데 얼른 빨아먹어!”
“아따 산양도 살이 오른 것이 몸에 좋겠구만.”
언덕에서 굴러떨어져 도망치지 못하는 짐승들은 사냥꾼들의 칼에 목에 구멍이 뚫렸다.
짐승들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기에 아픔에 발버둥 쳤지만, 사냥꾼들은 목의 동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마시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의 목에 매달렸다.
“허허. 저리 피를 마시면 어쩌자는 거야.”
원종은 기생충이 얼마나 무서운데, 이리 피를 마시는 거야! 하며 욕을 하고 싶었지만, 이 살아 있는 동물의 피를 마시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자 미신이었기에 말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현대에서도 정력을 위해서 사슴농장에 찾아가 사슴 목에 빨대를 꽂아 빨아먹거나, 대접에 받아 술을 섞어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판국이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기생충 때문에 무턱대고 생피를 마시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양반 나리도 한 모금하시겠습니까요? 이게 몸에 아주 좋습니다요.”
사냥꾼들은 내가 다가가자, 자리를 내주며 사슴피를 마시겠냐고 권했는데, 이 피(血)라는 것이 생명력의 상징이자 정력의 근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자인 나에게 권하는 것이었다.
사실 실제로도 피에는 철분과 비타민, 칼슘 등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 영양학적으론 몸에 좋기는 했다.
다만, 기생충, 그게 문제였다.
현대라면 기생충 약으로 기생충 대부분을 죽일 수 있기에 기분 좋게 먹을 수 있을 테지만, 이 시대에는 약이 없었다.
어찌 보면 나만 생피를 안 먹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약간의 거짓을 섞어서 피를 바로 마시지 않게 만들어야 사냥꾼 개인에게도 좋을 것이고, 미래 조산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았다.
“동물의 피는 바로 마시면 영양이 별로 없네. 한번 굳혀서 요리해 먹어야 몸에 더 좋은 것이야. 피를 그냥 마시지 말고, 대나무 물통이나 사기그릇에 받도록 하게나.”
“에? 그냥 마시는 것이 좋은 게 아니었습니까요?”
사냥꾼들은 이미 내가 한양에서 가패라는 가게를 가지고 있고, 지금의 제조라는 벼슬도 나라님에게 요리를 바쳐 얻은 거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 양반이 생으로 먹는 것보다 요리를 해서 먹는 게 좋다고 하니 다들 입에 묻은 피를 닦아내곤 대나무 물통에 피를 받기 시작했다.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사냥꾼의 등에 실려 분원으로 들어오자 도공들은 물론이고 도공의 가족들까지 몰려들어 고기를 먹는다고 좋아했다.
“가마의 화공(火孔) 구멍으로 들어가는 크기로 고기를 손질해서 쇠봉에 꽂아라. 꼬치처럼 구울 것이다. 그리고 곰의 쓸개는 따로 챙기거라.”
토기를 가마에 구울 때 가마의 옆면으로는 불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해 화공이라는 구멍을 만드는데, 그 구멍으로 꼬치처럼 끼운 쇠봉을 넣어 고기를 구울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낙들은 동물들의 내장을 다듬어 오게. 순대를 할 것이니 창자를 뒤집어서 빡빡 씻어오게나. 피를 받아 온 것은 여기에 다 풀게.”
피를 받아 올 때 중구난방으로 대나무 물통이나 박으로 만든 물통,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에도 받아왔기에 이미 굳어가는 피도 있었고, 여러 동물의 피가 섞이다 보니 응고가 더 빨리 일어나서 굳어지는 거 같았다.
그냥 굳혀서 선짓국밥을 해 먹어도 되었지만, 분원에서 자주 먹는 게 공탕이다 보니 국밥 말고 국물이 없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메밀가루와 담아둔 갓김치를 가지고 오거라.”
메밀가루는 다들 알지만, 한국 사람 중에서도 갓김치의 갓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갓김치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바로 겨자 줄기로 만든 김치였다.
갓을 한자로는 개채(芥菜) 혹은 신채(辛菜)라고 부르는데, 이 개채의 씨앗이기에 개자(芥子)라고 불렸다. 그리고, 개자는 우리가 아는 겨자라는 이름이 되었다.
물론, 이 갓도 돌산갓, 청갓, 적갓 등등 종류가 많아서 같은 지역에서 만들어진 갓김치라도 쓰인 갓에 따라 맛이 다 달랐다.
이 갓 줄기는 겨자처럼 톡 쏘는 맛이 있었기에 느끼한 음식이나 기름기 많은 음식에 알맞았는데, 그 특유의 강한 맛 때문에 고춧가루가 없는 이 시기에도 현대의 갓김치와 가장 맛이 유사한 김치 중 하나였다.
늘 천여 명의 도공들에게 밥을 먹여야 했기에 분원의 부엌은 단체 급식소처럼 화덕이 10여 개가 늘어서 있었는데, 그 화덕 절반에 냄비 솥뚜껑을 거꾸로 놓아 프라이팬을 만들었다.
“갓김치를 잘게 썰어 메밀가루와 섞게. 다른 잡곡의 가루를 넣어도 되네.”
“갓김치 전입니까요?”
냄비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것을 보고 몇몇 아낙들이 아는 체했다.
“아니네. 피전(血奠)이라고 들어 봤는가?”
“피전요?”
아낙들은 처음 들어 보는 전이라고 갸우뚱했다.
“저는 들어 봤습니다요. 함경도 관남이나 강원도 북부 사람이라면 다 알 것입니다요.”
“그런가? 그럼 자네가 손 씻고 와서 반죽 좀 하게.”
사냥꾼 강구는 고향에서도 잔칫날에나 먹던 피전을 해준다는 말에 얼른 손을 씻곤 반죽 대야 앞에 앉았다.
원종이 먼저 메밀가루와 잘게 썬 갓김치를 넣어 주자, 강구는 잘 섞어 주었고, 그 위로 굳어가는 피를 흥건하게 넣어 주자, 강구는 군침을 삼키면서 반죽을 치대기 시작했다.
메밀가루와 갓김치의 밝았던 반죽 색이 금세 핏빛으로 뒤덮였다.
여기에 다진 마늘과 생강이 들어갔고, 잘게 썬 파도 한무대기가 들어갔지만, 핏빛의 반죽은 그다지 식욕을 자극하는 색이 아니었다.
“뭔가 보기에는 안 좋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피전을 구워 먹는 것이 그냥 피를 마시는 것보다 더 몸에 좋을 것이다.”
원종은 열이 오른 솥뚜껑에 피 칠갑 된 반죽을 올려 얇게 펴 굽기 시작했다.
“어엇? 저거 봐! 색이 변한다.”
붉었던 피 반죽은 열을 받자 점점 팥죽색으로 변해갔는데, 피가 열에 굳으며 적갈색으로 익어가는 것이었다.
피전을 뒤로 뒤집자 현대의 초코 팬케익과 같은 검 갈색으로 색이 변해 있었는데, 구수하게 익는 냄새까지 나자 조금 전까지 피 칠갑이 되어 있던 그 반죽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가장 먼저 구운 것을 옮겨 담아 한번 맛을 보았다.
이북 사람들 중에서도 함경도에서 내려온 어른들을 통해서만 구전으로 떠돌던 피전이었는데, 나도 처음 만들어 보는 음식이었다.
더구나, 소나 돼지의 선지가 아닌 산짐승의 피를 모아 만든 선지였기에 노린내가 심하면 어쩌나 고민도 되었다.
하지만, 입속에서 느껴지는 피전의 맛에는 노린내가 나지 않았다.
선지의 피맛이라는 특유의 텁텁한 맛이 크게 느껴졌지만, 메밀가루가 기름에 구워지며 내는 고소함이 그 텁텁함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 뒤로 갓을 씹게 되자 톡 쏘아대며 솟구치는 강렬한 갓 맛이 텁텁함과 고소함을 밀어내었다.
갓김치는 마치 비싼 향신료처럼 앞의 두 맛을 눌러 잡으며 풍성한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들 한쪽씩 먹어보게.”
피전을 잘게 잘라 어멈들에게 먹이자, 아낙들은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놀랐다.
“선지의 텁텁한 맛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깔끔합니다. 기름에 구워져 고소하고, 갓김치의 톡 쏘는 듯한 깔끔함이 있으니 이게 피를 구운 음식이라는 것도 잊을 정도입니다.”
“저는 선지의 모양새가 안 좋아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이러면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맛을 본 아낙들이 다들 맛있다며, 이게 피전이 맞냐며 입을 모으자 뒤에 있던 사냥꾼과 도공들도 그 맛이 궁금했다.
“강구는 계속 반죽을 하고, 어멈들은 화덕에서 피전을 구워내게나.”
강구는 대야 한가득 피 반죽을 하고 아낙들은 갓김치를 썰어 계속 피전을 구워냈다. 구워지는지는 족족 뒤로 전달되어 금세 사라지니 다들 별미라며 좋아했다.
“아니, 함경도 남관? 관남? 그쪽 동네 사람들만 이 맛있는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이야? 그냥 피를 마시는 거보다 몇 배나 맛있잖아.”
“그러게. 몸에 좋다고 피비린내 나는 걸 억지로 참고 빨아 먹었는데, 이젠 그렇게 먹을 필요가 없겠어. 이렇게 반죽을 해서 피전을 해 먹으면 되는 것인데. 이제야 알았다니.”
“그러니. 이제는 짐승의 목에 입을 대고 빨아 먹지 말게나. 그렇게 먹는 게 신선하고 더 좋다고 말하지만, 그게 아니네. 오히려 방금 막 나온 피에는 짐승의 원념이 서려 있어 몸에 해로울 것이야. 짐승을 잡을 때는 바로 멱을 따 죽이고 피를 받아 이렇게 먹어야 짐승들의 원한도 받지 않는 것이야.”
이렇게 요리를 해 먹이고 알려줘도, 신선한 게 좋다고 바로 먹는 자가 있을 것 같아 짐승의 원념까지 들먹이며 피를 바로 마시면 안 좋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피전을 하고 남은 피는 피순대를 해 먹어도 되는 것이니 피전을 못 먹는 자는 순대로 해 먹게나.”
“산 짐승으로 순대도 해 먹는 것입니까요?”
“물론이네. 순대는 소와 돼지로만 되는 게 아니야. 발굽이 있고 풀을 먹는 짐승이라면 다 순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네.”
“오, 그렇군요. 그럼, 피순대도 혹시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요?”
“피순대뿐이겠나? 피를 넣어 짓는 피밥과 피만두도 알려주겠네. 다들 오늘부터 피는 생것으로 먹지 않고, 요리해서 먹는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