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명문가를 만들어라! (4)
“질그릇을 팔고 번 수익을 도공들 수로 나누니 한 사람당 콩으로 한 되 반 정도의 분량이네. 작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다들 나와서 받아 가게.”
제대로 된 통보나 동전이 있었다면 쉽게 계산되어 분배되었을 터지만, 그런 게 없다 보니 일일이 되로 재어서 콩을 나눠 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힘을 써가며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도공들에게 진짜 이익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주어야 했기에 힘들더라도 이런 퍼포먼스적인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수익을 챙겨 받게 되자 도공들은 기쁠 수밖에 없었다.
“미쳤구먼.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부역으로 끌려와서 삯을 받았다고 말하면 그 누가 믿겠나?”
“아 그래. 내가 뭐랬소? 이번 저 양반은 믿어도 되는 사람 같다고 하지 않았소.”
“저 제조 양반 이름이 뭐라고?”
“문경 사람 전원종이라고 합디다. 저 치가 뭐를 한다고 하면 믿어도 될 거유.”
“그렇지 않아도, 각 조에서 일 잘하는 이들을 따로 뽑고 있던데, 그건 또 얼마나 주려나.”
“일을 잘해야 뽑아간다고 하더라구.”
“그렇다면 저기에 뽑혀가기 위해 오랜만에 그림 연습 좀 해야겠구만.”
***
“막 쓰는 사발이나 그릇은 공납 수량을 다 채웠으니 이제는 궁중의 연회에 주로 쓰이거나 장식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분청사기를 만들어야 하네. 그릇들을 만들며 누가 가장 뛰어난지 알았을 테니 가장 뛰어난 자들은 갑조, 그다음 실력자들은 을조로 나누겠네.”
갑, 을 조에 뽑힌 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자 기분이 좋았고, 분청을 만드는 것도 수량이나 품질에 따라 추가로 곡식을 준다고 하니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제작하는 도기의 아래에는 ‘분원 갑’이라는 이름을 새기게 될 것이네. 내가 왜 도기 아래에 이름을 쓰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가?”
“호랑이 가죽 그거 아닙니까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도공은 도자기를 남겨야 한다는 그런 거 아닙니까요?”
“맞네. 그리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네. 세도가가 ‘분원 갑’ 이름이 새겨진 도자기가 마음에 들어 하나 더 사려고 할 때는 어찌하겠는가?”
“그야 당연히, 분원의 갑조에게 연락이 오지 않겠습니까요?”
“맞네. 그거네.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구해서 다시 하나 더 사려고 해도 이게 어디에서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지 못해서 더 사지 못하는 경우가 많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분원 갑이라는 이름을 새기는 거네.”
“헌데, 도자기가 마음에 든다고 멀리에서 여기까지 사러 오겠습니까요? 길이 얼마나 먼데요.”
“아무리 멀다 한들 그만한 가치를 가진다면 조선 팔도는 물론이고 만주나 천축까지도 물건을 사고팔러 가는 것이 상인이야. 자네가 만든 도자기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 어디에서든 사러 올 것이네.”
실제 역사에서도 중국의 도자기를 사기 위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가며 중국 경덕진으로 오가는 유럽의 배들이 있었으니 거짓말이 아니었다.
“제조 어르신의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요.”
“허허. 이게 내 허언이 아니래두. 너희의 멋진 솜씨가 만들어 낸 도자기의 가치를 내가 증명시켜 줄 터이니 우선 진상해야 하는 분청자기부터 만들어 보세나.”
“헌데, 저 소뼈는 왜 있는 것입니까요? 우리가 먹었던 공탕 뼈도 다 가지고 오셨던데.”
“백토를 저 소뼈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네.”
“백토를 만든다고 하셨습니까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허허. 해 보지도 않고 안된다고 하면 아니 되지. 이제까지 없었다고 앞으로도 없으란 법이 있는가? 나무 틀을 사용해서 찍어내는 그릇도 이제까지는 없던 그릇이지 않은가?”
“하긴, 그렇긴 합니다요.”
“그리고, 이 근방의 백토가 바닥을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가마에 쓰이는 땔감이 부족할 때는 나무를 찾아 근방으로 이동하면 되지만, 백토가 부족하면 아예 이 지역을 떠나야 할 수도 있어. 그러니 소뼈로 백토를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네.”
도자기를 굽는 데는 흔히 고령토(高嶺土)라는 흙이 필요하다고 이야길 하는데, 어떤 이는 이 고령토를 경북 고령에서 나는 흙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오래된 흙이란 뜻의 고령토(高齡土)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고령토는 도자기의 유명 산지인 중국 장수성 경덕진에 있는 고령(高嶺)이란 지역에서 나는 흙이라는 뜻이었다.
이 고령에서 나오는 진흙에서는 알루미늄 규산염 광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이 가마에서 1,300도 넘는 온도를 견디게 해주고, 소성(燒成)되게 해주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도 이 경덕진 고령의 흙과 유사한 흙을 찾아 도자기를 구웠기에 도자기를 굽는 흙은 그냥 다 고령토라고 불렀고, 은연중에 도자기는 무조건 고령토라는 인식이 뿌리내려 버렸다.
하지만, 실제 도공들은 조선에서 찾은 흙 점토가 흰색에 가깝기에 백선토(白善土)·백악(白惡)·백토(白土)라고 불렀다.
“우선, 갑조는 기존의 방식대로 분청자기를 만들게. 그리고 을조는 나와 같이 백토를 만들어 보지.”
백토와 소뼈를 섞어 백토를 만든다는 것에서 이미 본차이나(bone china)를 떠올린 사람이 있겠지만, 처음 이 본차이나를 대량 생산해서 세상에 알려질 때는 그 이름 때문에 진짜 중국인들 뼈를 갈아서 만든 거라는 소문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했다.
스포드(Spode)사의 설립자인 조사이어 스포드(Josiah Spode)가 일부러 이 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는데, 점토에 구운 소뼈 가루를 섞는다는 것을 비밀로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중국인의 뼈가 들어간다는 악의적 소문을 내기도 했다.
1700년대에는 이집트 미이라의 가루도 만병통치약으로 통하던 시기였기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중국인은 오리엔탈리즘의 신비와도 같았다.
그래서 중국인들의 뼈를 갈아 만들었다는 것이 혐오적인 것보단 오리엔탈 적인 신비로움의 명성을 본차이나에 가져왔다.
실제로도 뼈를 넣어 만들었기에 점토로만 구운 백자 도자기보다 무게가 30%가량 가벼웠고, 색감 또한 좀 더 따뜻한 색감을 나타내었기에 사람들은 흙 대신 중국인의 뼈가 들어갔다는 것을 믿었다.
깨짐에 대한 강도 또한 기존 도자기보다 3배 이상 강해져서 도자기 끼리 부딪히더라도 깨지거나 이가 잘나가지 않았다.
이 본차이나를 만들기 위해 한양 탕반가에서 저렴하게 구매해온 소뼈들을 가마에 차곡차곡 쌓아 넣었다.
그러곤, 도자기를 굽듯이 소뼈를 구워내었다.
도공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귀찮아했지만, 처음 영국에서 본차이나를 만들었던 때와 비교하면 신선놀음이었다.
영국은 우리처럼 소뼈를 고아서 국을 만들어 먹지 않았고, 설령 국을 소뼈로 끓여 먹었다고 해도 탕반가 같은 곳이 없었기에 대량으로 소뼈를 구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처음 본차이나를 시도했던 토마스 프라이(Thomas Frye)이 같은 경우에는 도축장에서 반쯤 썩어가는 소뼈를 가지고 와 농을 제거하고, 지방 같은 부산물을 처리하기 위한 일도 직접 했었다.
결국, 토마스 프라이가 세계 최초의 본차이나를 만들었지만,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이후 스포드 사에서 소뼈를 구워 가루 내 만들어내는 방법을 정립하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영국의 상황과 비교 했을 때, 이미 곰탕이나 설렁탕을 끓이기 위해 손질되었고, 골수나 지방도 모두 빼먹은 소뼈는 마치 본차이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보물과 같은 재료였다.
“다 구워져 퍼석거리는 소뼈를 가루로 만들어 백토와 섞어 보게. 5:5의 비율부터 9:1 비율까지 비율을 맞춰서 연장이 반죽을 만들어 주게나.”
본래 3:7이 가장 이상적인 비율이었지만, 이런 비율은 도공들이 직접 해 보며 자신들에게 맞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 좋았다.
솜씨가 좋은 이들만 추려 뽑은 것이기에 백토와 섞어서 반죽을 만들어내는 연장들의 솜씨도 탁월했다.
“확실히 반죽이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제조 어른의 말씀처럼 소뼈를 섞어서 쓰게 되면 기존에 들어가던 백토의 양이 줄어 확실히 이득이 됩니다.”
조기장이 목이 긴 세병과 문병을 만들어 그늘에서 건조를 시켰고, 이후 화청장이 그림이나 글귀를 넣기 위해 나섰다.
“아니네. 소뼈를 갈아 넣은 도자기는 여기서 유약을 발라 한번 구워내야 하네. 그 이후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다시 구워야 하네.”
“두 번을 굽는다는 말이옵니까?”
“맞아. 이 흰색을 위한 것이네. 초벌구이는 기존의 도자기보다 낮은 온도에서 한번 구워내야 하네. 그 이후 그림이나 글귀를 넣고 다시 유약을 발라 구워내면 되는 것이네.”
“흠. 도자기의 크기나 두께에 따라 두세 번 굽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오나. 이리 얇은 것을 그렇게 두 번 굽게 되면 터져나갈지도 모르옵니다.”
“걱정하지 말게나. 그렇게 2번을 굽고 나서 다시 금박과 은박을 넣어 세 번 굽는 것까지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게야.”
금박과 은박을 넣어 세 번까지 구워낸다는 원종의 말에 대부분의 도공들은 도자기가 터져나갈 거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계급이 깡패인 세상에서 시키면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원종의 말대로 한번 구워낸 기존의 도자기보다 재벌구이로 구워낸 도자기의 색이 더 밝고 안정적이고 터져나가는 것도 별로 없자,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 신기해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굽기 전에 불상에 붙이는 금박으로 글씨를 넣고 유약을 발라 구워내니 이제까지 구워왔던 도자기들과는 질이 다른 명품이 나왔다.
“보통은 자기가 구워질 때 열을 받은 표면이 갈라지고, 그 갈라진 틈으로 유약이 들어가 고착이 되어 대부분의 자기에는 그 자국이 있습니다. 헌데, 소뼈를 갈아 넣어 만든 자기의 표면에는 그 갈라진 자국이 없사옵니다.”
“네. 이건 마치 열댓 살 먹은 고운 계집의 피부와 같이 부드럽사옵니다. 무게도 확실히 가볍사옵니다.”
“백자의 색 또한 푸르스름한 기운이 어느 정도는 나오지만, 소뼈가 들어가서 그런지 무언가 포근한 느낌의 흰색이 나왔습니다요. 백토를 바꾸지 않고, 이렇게 색이 변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요.”
직접 본차이나를 만든 을조의 도공들은 물론이고 기존의 방식대로 자기를 만든 갑조의 도공들도 고운 흰색에 놀라워했다.
“을조에서 만든 자기가 갑조에서 만든 자기보다 가볍기에 더 약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네. 다들 보게.”
원종은 같은 모양의 문병 두 개를 들어 그대로 힘껏 부딪혔다.
[퍼각!]
힘껏 휘두른 두 문병이 맞부딪히자 말 그대로 터져나가듯이 한쪽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어, 어떻게 더 가벼운 자기가 깨지지 않고, 더 무거운 자기가 깨지는 것입니까요?”
“이것이 소뼈의 힘이네. 이 자기를 만들기 위해 소뼈를 구해 가루를 내고, 두세 번을 구워야 하기에 확실히 손이 많이 가는 도자기인 것은 확실하네. 하지만, 그 결과물이 이렇다면 그런 수고를 감수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는가?”
“물론입니다요. 이리 잘 깨지지도 않고, 고운 빛깔이 나온다면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요.”
“그럼, 분청자기나 진상을 위한 자기에는 이 소뼈를 섞어서 만들어 보게나. 가마에서 두, 세 번 구워야 하기에 감화장들은 돌 숯으로 불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네. 역시나, 올려야 하는 수량을 웃돌게 되면 팔아서 자네들에게 나눠줄 것이네.”
도공들은 이미 수익이 배분된다는 것을 직접 보았기에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이런 최고급품이 팔리면 얼마의 수익이 생길지도 궁금해했다.
“제조 영감. 그럼 이 방법은 백골토(白骨土)로 제작하는 방법이라고 기록을 남기면 되오이까?”
나이 든 분원 사령이 기록을 어찌 남겨야 할지 물어보자 고민이 되었다.
본차이나로 만든 도자기라고 기록을 남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지. 다만, 언문으로 쓰도록 하게.”
“네? 언문으로요?”
“그래 한자로 쓰게 되면 중국인들이나 왜국인들이 제작비법을 알아보기 쉬울 것이네. 그러니. 언문으로 쓰게나. 내가 데리고 있는 박복이란 아이를 보낼 테니 내가 쓰는 언문의 방법으로 기록을 남긴다면 외국으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백골토로 만드는 도자기 제작법은 본(本)이 될만한 도자기 제작 방법이니 이 방법을 본조선자기(本朝鮮瓷器) 제작법이라고 명시하도록 하게. 그리고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자기는 본자기(本瓷器)로 불러 일반 백토로 만든 도자기들과 구분하도록 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