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15화 (115/327)

115. 명문가를 만들어라! (3)

“될 것 같습니다요. 접시류는 틀로 바로 만들 수 있을 겁니다요. 아예 이 틀 자체를 나무가 아닌 자기로도 구워서 쓸 수 있을 겁니다요.”

“백토 반죽을 조정하는 연장들이 좀 까다롭다고 하겠지만, 이 틀에 맞춰 찍어내는 것은 가능합니다요.”

“그럼, 우선은 이 나무틀을 활용해서 손잡이 잔을 만드는데 써보게나. 다음번에는 1등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실제 가장 많은 수량을 만든 전라도 조에 곡식이 주어지는 것을 봐서 그런지 함경도와 전국 조는 휴식이 주어진 며칠 사이에도 모여 뭔가를 만들고 연습을 했다.

며칠 후 다시 공납해야 하는 도기 제작에 들어갔고, 거기에 일부러 포함시킨 손잡이 잔을 만들 차례가 오자 틀이 있는 두 조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반죽을 물레에 돌려 도기 모양을 만드는 일을 조기장이 하는데, 다른 조의 조기장이 하루에 20개를 만들어 낼 때 함경도와 전국 조는 틀에 찍어내었기에 하루에 50개 이상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화문 접시를 만들어 낼 때도 그새 접시 틀도 고안해 내었는지 틀을 이용해 접시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번째 생산 결과를 조끼리 비교하니 틀로 찍어 만들었기에 수량을 쏟아 낼 수 있었던 함경도 조가 1위를 차지했고, 2위는 6개 차이로 전라도 조를 따돌린 전국 조가 차지했다.

전라도 조에는 달인이 많았는지 틀로 찍어내는 두 조와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수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가장 잘 만든 그릇은 이번에도 평안도 조에서 만들어져 나왔다.

이런 결과를 보면 아무리 규격화나 공동 생산을 한다고 해도 수작업이었기에 몇몇 달인에 의해 품질이나 생산량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1, 2위를 한 함경도와 전국 조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고, 최고의 품질로 만들어 낸 평안도 조에게도 곡식을 내렸다.

두 개의 틀을 이용해서 수량 생산 1위를 한 함경도의 작업 방식이 알려지자 자연스레 틀로 찍어내는 작업에 대해 다른 도공들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생산이 끝난 후 휴식이 주어졌지만, 도공들은 그냥 쉬지 않았고, 다들 그릇을 찍어 낼 수 있는 틀을 만든다고 난리였다.

부역 기간 포상을 많이 받아 집에 갈 때 곡식을 한 아름 짊어지고 가려면 생산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도공들이 좀 더 나은 것을 궁리하고 고민하는 이런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었다.

곡식이라는 이득과 목표가 있기에 열심히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한데, 이 시대의 왕들과 위정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통치를 위해 사람을 공짜로 부리는 부역을 만들어 내었고, 거기에 길들여진 백성들은 그런 부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득이 없는 일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사람을 부림에 애국심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지만, 시골에서 흙만 파먹던 이들에게 애국심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일어나겠는가.

왜란과 호란 때 의병으로 일어났던 이들도 애국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과 이웃을 위해 일어났던 것이지, 누가 왕조를 위해 일어났겠는가.

어두운 밤에도 그릇 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솔불을 피워가며 일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부역에 동원되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돌아갔을 이제까지의 도공들 생각에 속에서 욱하는 게 올라왔다.

인권운동이니, 평등사상이니 하는 그런 것은 모르겠지만, 그저 열심히 일하는 백성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주고, 그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중동으로 건설 일을 하러 갔던 한국의 아버지들은 3~4년 후 돌아와선 집이라도 한 채 살 돈을 벌어 왔었다.

한데, 조선에선 부역으로 4년이나 끌려와 일하는데, 집에 돌아갈 때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중국과 일본으로 자기를 수출하여 수익을 만들어 이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해줘야 했다.

물론, 이런 말을 다른 신료들에게 하게 된다면 나라의 모든 것은 왕의 것이라는 왕토사상(王土思想)에 어긋난다고 불측하다고 욕을 들을 터였다.

심하면 역적으로 몰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사고방식이었다.

힘이 없는 지금은 그저 자율적인 발전을 모색하는 도공들을 뒤에서 도와주고 브랜드화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것밖에 없었다.

***

세 번째 경쟁 생산에 들어가니 9개 조 모두 틀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덕분에 3,600개가 넘는 수량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를 구울 가마의 공간이 더 넓었다면 그 이상이 생산되었을 정도로 다들 생산에 열의를 보였다.

그저 수량에만 맞추어 생산하고 시간이 흘러 끝이 나는 부역이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테지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성과가 달라지니 도공들이 서로 나서서 만들었던 것이었다.

분원에서 10년 넘게 있었던 사령은 이렇게 많은 수량이 나오는 것이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제조 어른의 뛰어나신 방략(方略)에 질그릇이나 접시의 생산은 오히려 남아돌 정도로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허나, 진상을 올려야 하는 분청 그릇은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분청은 이렇게 물량으로 해결할 수가 없사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네. 이렇게 수량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은 막 그릇에나 어울린다는 것도 잘 아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생산을 하면서 누구의 손이 재빠르고, 누구의 손이 정확한지 알게 되었지 않은가.”

“그럼 솜씨 좋은 자를 따로 뽑기 위해 이렇게 하셨다는 말이옵니까?”

“뭐, 겸사겸사인 것이지. 우선 평안도 조의 수준 높은 이들과 다른 조의 뛰어났던 도공들을 묶어 갑조와 을조를 만들 것이네. 그들로 진상할 수 있는 상등품을 만들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

“대단하십니다. 솜씨 좋은 자를 뽑기 위한 방책이 저 경쟁 생산에 포함되어 있었다니 제조 어른의 한 수 앞을 내다보는 안목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하하. 사령께서 분원에 오래 있었다더니 혀가 아주 달콤하오이다. 우선은 도공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게 준비나 해주시오.”

원종은 근처 백정들에게 이야기하여 양반들은 잘 먹지 않는 소의 곤자소니(창자와 항문 사이에 달린 기름기 많은 부위)와 소 곱창, 소양을 모두 샀고, 발골되어 살이 없는 소뼈도 잔뜩 사 왔다.

탕반(湯飯)을 끓일 재료였다.

분원에 있는 인원이 천명에 달했기에 모두에게 먹일 수 있는 음식은 탕반이 거의 유일했다. 그리고, 국물에 말아 먹어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큰 가마솥 30여 개에 소뼈와 고기를 넣었고, 무와 파, 마늘을 넣어 오랜 시간 끓여냈다. 중간에 삶아 내었던 곤자소니와 소 곱창, 소양은 잘게 잘라 밥과 함께 그릇에 먼저 넣어두었다.

“오, 기름이 줄줄 흐르는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잘 넘어가는구만. 이 국 이름을 혹시 아는가?”

“그냥 소뼈국 아닌가?”

“이게 그 한양에서 나라님이 제사 지내고 먹는다는 그 설렁탕이 아닐까? 그 선농단인가 하는 곳에서 매년 제사 지내는 그거 말이야.”

“그게 아니야. 이건 살짝 맑은 국물이니깐 반테가 나는 것이라 공탕(空湯)이야.”

“공탕? 그런데, 반테는 무슨 말이야?”

“이런 촌놈을 봤나. 반테는 반가의 테가 난다는 뜻이잖나. 양반가의 테가 나는 국물이라는 뜻이지. 그 선농단에서 제사 지내고 먹었다는 설렁탕이란 것은 흰 국물이야. 이렇게 기름이 흐르고 맑은 국물과는 완전히 다르네.”

“그럼, 국물이 흰색이면 설렁탕이고, 맑아서 반테가 나는 것은 공탕이라는 겐가?”

“그래, 맞다니깐.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건 공탕이라구.”

“명심해야겠구만, 국물이 맑으면 공탕! 국물이 흰색이면 설렁탕!”

“그런데 저 제조 어른이라는 꼬마 도령은 무슨 돈이 있어서 우리에게 곡식을 주고, 이리 고깃국도 주는 건가?”

“난들 아나, 그러고 보니 원래 공납으로 올려야 하는 질그릇보다 더 많이 만들어졌다고, 그걸 상단에 판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 들었는가?”

“그럼, 많이 만들어진 그릇을 팔아 번 돈으로 이리 고깃국에 곡식을 주는 것이구먼.”

“그건 아닐세. 오늘 아침 달구지에 질그릇 싣던 영춘이가 들었다는데, 상단에 판매하고 벌어들인 돈은 모두에게 나눠줄 거라던데.”

“에이, 자네는 양반네들이 하는 말을 믿나? 질그릇 남는 걸 팔아서 우리에게 주겠나? 뭐 돈은 안 줘도 지금 이 고깃국이라도 자주 끓여주면 다행일 거네.”

“하긴, 이제까지 더 많이 만들어 본 적도 없긴 하지만, 더 많이 만들었었다면 관리들이 뒤로 팔아서 제 배나 채웠겠지. 저 양반은 안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천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지.”

“하지만, 곡식은 제대로 나눠 주었잖나.”

“그래. 포상을 걸고 제대로 안 주던 관리들하고는 완전히 다르잖아. 한번 기다려 보자고.”

“질그릇을 판 수익을 기다리느니, 나무 틀을 만들어서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궁리나 하겠네. 곡식은 제대로 나눠 줬으니 그걸 받기 위해 힘쓰는 게 더 나을 거야.”

도공들은 남는 질그릇이 팔리면 그 이익을 나눠 준다고 했지만, 양반들에게 당한 것이 많다 보니 그 말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

“손잡이 잔이 광주에서 도착했습니다요. 가패 두 곳의 이름이 쓰여 있으니 나눠서 쓰고, 개인 잔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잔을 이 전(대략 4천 원)에 팔면 된다고 하셨습니다요.”

다희는 손잡이 잔과 접시에 멋들어지게 춘봉(春奉)과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쓰여져 있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종친이나 까다로운 양반들의 잔 돌려쓰기에 당당할 수 있어 기운이 났다.

“헌데, 잔이 왜 이렇게 많이 온 것인가?”

다희는 자기가 가득 실려있는 소달구지가 세 대나 되는 것을 보고 그 수량에 놀랐다.

“일차로 1,500개가 왔고 1,200개가 더 올 것이라고 합니다요. 가패에서도 팔고, 공랑점포에서도 판매를 한다고 합니다요.”

다희는 늘어난 접시와 손잡이 잔의 숫자에 기분이 좋았지만, 몇백 개나 만들어진 이 잔들이 과연 팔릴지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지방에서 과거를 보러 올라온 선비들이 향교로 온 그림으로 가패를 보았다며, 기념품으로 사 갔고, 지방에서 올라온 상인들도 지방에 팔고자 구매를 해갔다.

심지어 명나라에서 사신으로 온 중국인들도 한양에 온 기념품으로 손잡이 잔을 수십 개씩 사가기 시작하자, 그런 걱정을 버렸다.

오히려 개인 잔을 쓸 수 있다는 말에 다른 이들과 잔을 같이 쓰기 싫었던 이들이 너도나도 잔을 구매하여 들고 다녔기에 가패의 매출이 덩달아 늘어났다.

하지만, 다희는 분원에서 필요하다고 구해달란 물건을 모으기 위해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야 했다.

“설렁탕을 끓이고 남은 소뼈를 달라고?”

“네. 거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값을 치르고 사겠습니다.”

“허허, 탕을 끓일 때 몇 번이나 푹 고아 이제는 더 나올 국물이나 건더기가 없을 터인데, 그걸 왜 사는고?”

“왜 사는지는 묻지 마시고, 파시지요.”

“허허. 이상하구만.”

탕반가(湯飯家)에서 설렁탕을 팔고 있는 청함이는 오래 끓여 뼈에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소뼈를 사겠다는 부인의 의도를 몰라 망설였다.

“쇠뼈를 그래서 팔겠다는 거유? 안 팔겠다는 거유? 안 팔면 다른 집에 가고.”

“허허 성질 참 급하고만. 팔겠네. 팔겠어. 헌데 버리기 위해 쌓아둔 것이 많은데 다 가져갈 수 있겠는가?”

“달구지에 가져가면 되니 다 주시오.”

다희는 원종이 요청한 국을 끓여 먹고 남은 소뼈를 모으기 위해 한양의 탕반가를 모두 돌아다니며 소뼈를 끌어모았다.

이미 골수까지 다 뽑아 먹어 구멍이 뚫려있는 소뼈들이었기에 탕반가의 주인들은 흔쾌히 반 냥에 소 한 마리 분의 뼈를 넘겼다.

그렇게 모은 소뼈는 손잡이 잔을 싣고 왔던 달구지에 가득 실려 사옹원 분원으로 옮겨졌다.

0